사진으로는 시선을 전달하는 것이다.
주체의 시선은 어떤 감정, 사상, 기억 따위를 품고 있을테고 그 시선은 사진을 통해 전달된다.
그러나 사진은 시선을 고스란히 재현하지 않는다.
사진은 자기만의 형식과 구조를 갖춘 한에서 (촬영자의) 시선을 대리하여 전달할 뿐이다.
다시말해 사진은 촬영자의 시선을 인용하고 있는 타자의 편지다.
따뜻한 사진,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사진 등등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사진의 이상형에 대한 피상적인 말은 이 타자를 알지 못하는 한에서 가질 수 있는 주관성의 착각이다.
사진은 촬영자의 의도대로 나오지 않는다.
사진은 항상 촬영자가 보고 있는 것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에서의 빨간 색은 시선이 파악한 빨간 색에 비하면 정말 의외의 것이지 않은가)
사진을 찍고 난 후에 이 과잉이 마치 원래 자신의 시선이었던 것처럼 얼버무리는 것은 얼마나 정상적이면서도 안타까운 거짓말인가.
그런데 이 거짓말을 너무나도 진실되게 하거나 너무나도 솔직하게 인정하고 간극을 놔 버리는 것은 눈여겨볼 만한 태도다.
이 양극단에서 시선은 과잉의 영역과 뒤섞여 버린다.
주관적 시선이 한쪽에서는 물질적 형태 자체가 되려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스스로를 텅 비워 버리고 객관성만 남겨 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시선은 자신의 물화한 현전에 대해 강박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즉 시선이 품고 있는 어떤 감정, 사상, 기억 따위가 바로 그 물질적 현전 말고는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 물신주의의 순수한 태도.
그리고 이 물화한 현전, 사물화된 시선으로서의 사진이야말로 스스로 말을 건네는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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