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종교들에 관한 기이한 얘기나 음모론 따위를 즐기는 편이다.
어쩌면 한번 솔깃하면 탐닉하는 편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예전 공작왕이라는, 세계 종교를 교묘하게 묶어 놓은 희한한 만화를 미치도록 몰아봤던 것도 내 괴팍한 취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기독교에 대한 한 나는 좋은 관점을 갖고 있지 않았다.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이교도적인 불교를 믿는 외가의 간접적인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르나, 공교롭게도 미션스쿨인 중고교를 다니면서 기독교의 부정적인 측면을 많이 봤다고 느낀 것이 오히려 더 결정적이었을 수도 있다(현실 기독교, 제도화된 한국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지 않기는 힘들지 않을까).
그러나 최근에 나는 기독교에 대해 더 중립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 같다.
물론 거기에는 발터 벤야민과 같은 훌륭한 종교적 사상가나 종교적인 인간이 세상에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증명하는 주위의 몇몇이 도움을 줬을 게다.

최근에 나는 다빈치 코드를 읽었다.
이번에도 역시 탐닉해 버렸다.
독서속도에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는 내가 이틀을 꼬박 새며 다 읽어 버린 것이다.
(이제는 최근에 쏟아져 나온 관련 다큐멘터리들을 훑어볼 계획이다. 이게 바로 백수의 여유다)
그 소설에 나오는 상당 부분은 나도 어디에선가 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정확치는 않지만 미학과 철학, 사회학 관련 강의들에서였던것 같다.
특히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하는 과정에서 자행된 공식/비공식적인 수정과 은폐 노력은 그 때나 이 소설을 읽은 지금이나 귀를 솔깃하게 한다.
지나치게 대중적인 서사 구조가 꼭 반가운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은 기독교의 세계에서 잃어버린 반쪽을 열심히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흥미로왔다.
상대적으로 폄하되거나 생략되었던 대지, 여성, 또는 음과 같은 개념 말이다.
(나는 많은 종교, 신화, 사상 등에 하늘/땅, 남/녀, 음/양 등의 대립물이 어우러져 있다고 알고 있다. 이에 비해 기독교의 은유와 세계관은 반쪽의 지평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것에 나는 동의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 의하면 그 반쪽의 지평은 기독교가 인지하지 못하는 어둠의 편에서 항상-이미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억압받으면서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성스러운 양지의 이름을 잃어버렸을 뿐이다)

아무튼 다빈치코드는 종교를 좀더 은유의 세계에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즐거운 베스트셀러였다.
(당연히 반대의 관점에서 종교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이외의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나는 그런 부류를 이미 충분히 봐 왔고, 그들은 대체로 세계를 명령처럼 떠받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종교가 인간을 좀더 겸손하고 예술적이게 하는 좋은 측면을 이들과 다르게 상상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 주를 개인적으로 다빈치코드 주간으로 할까 생각 중이다.
마침 며칠 후 영화가 개봉한다.
감독이 론 하워드라는 게 썩 내키지 않지만 소피로 오드리 토투가 나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럼 이만희 전작전은 어떡하지?)

다빈치코드…”에 대한 5개의 댓글

  1. 오히려 론 하워드라서 다행이란 생각이 잠깐 든다.
    소설 자체가 워낙에 영화문법에 근접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론 하워드라면 그 정도 이어붙이기엔 이미 충분히 능숙하지 않나 싶거든..하기사 자극이 조금 부족할라나?…ㅋㅋ

    가끔은 장 피에르 주네나 데이빗 핀처같은 양반들이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하지만…
    참, 팀 버튼도 빼놓으면 안되겠군..ㅎㅎ

    • 론 하워드는 이 익숙한 내용 구조에서 결국 또 익숙한 영화 하나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소설과 다른 그 무엇’을 만들어 내기는 힘들 거라는 생각에 기대를 반감시키지 ㅋㅋ

  2. 글쎄, 내가 본 관점은 ‘원작을 얼마나 해치지않고 영화화를 하느냐’였거든. 그런 면에서 톰 행크스의 캐스팅 역시 소설을 읽는 와중에도 충분히 떠올렸던 이미지고 말이지.(사실 난 내심 곱슬머리에 둥근코를 가진 톰은 안돼!를 외쳤었지만^^)

    브라이언 싱어나 알란 파커정도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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