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대학, 새로운 이념형의 모색

 

 [3] 담장 밖에서 본 대학

 

사회적 관점에서 대학이라는 제도의 기능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대학을 바라보는 내 관점은 아직까지도 개인적인 성격의 것이다. 즉 나는 그저 공부가 재미있었고, 공부로 밥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대학이기에 가능하면 그곳에 머무르고 싶었다. 나름대로 제도권에 편입되기 위해서 무던히 애도 썼다. 하지만 제도권은 이 처절한 노력을 몰라준다. 제도권이 얼마 안 되는 내 자존심마저 포기하기를 요구했을 때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후 대학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요즘은 ‘공부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대학’이라는 선입관을 반박해주는 가능성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 생활이 불안정하기는 해도 훨씬 더 많은 정신적 자유과 생활의 여유가 있다. 요즘 나는 ‘일체유심조’라는 원효대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몸뚱이로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인문학은 위기여야 한다.

한때 “인문학의 위기”라는 아우성이 있었다. 솔직히 그때 나는 쌤통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내가 보기에 한국의 대학제도는 너무 비효율적이다. 그러니 자본주의 논리를 도입해서라도 상업적 경쟁이라도 강요하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인문학의 위기”는 사회에서 존재가치를 입증하지 못한 인문학자들이 자초한 위기이다. 물론 인문학에 경제적의 가치를 생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인문학이 사회적 현실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제 고민을 발전시켜 왔다면, 지금처럼 ‘통폐합을 해도 문제없다’는 식의 모욕은 듣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의 인문학은 제 존재가치를 입증하는 데에 실패했다.

나 역시 시도 때도 없이 ‘경쟁력’ 운운하는 신자유주의적 천박함에는 역겨움이 난다. 하지만 상아탑에도 ‘경쟁’은 필요하다. 공정한 학적 경쟁의 시스템 말이다. 내가 보기에 우리의 상아탑에는 이 경쟁의 메카니즘이 없다.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허탈하게 만드는가. 열심히 공부해 봤자, 승부는 엉뚱하게 결정난다. 그런 것을 바라보면서 학생들은 일찍부터 학적 능력보다는 외교력, 지적 성실보다는 인간관계의 성실에 모든 것을 걸게 된다. 학문이란 이전 세대의 한계를 깨고 나아갈 때 발전할 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상아탑에서 그런 것은 어차피 금기다. 그 결과 지식의 시장에서 묘한 독과점의 지배가 형성된다. 여기에서는 당연히 새로운 것이 나올 수가 없다. 지적 도전을 할 시기에 한국의 대학은 순응의 지혜부터 가르친다.
한국의 대학은 현실과 별 관계가 없다. 그곳의 논의는 현실에서 올라온 고민들이 이론으로 결정화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지식은 현실의 문제해결을 위한 노우하우라기보다는 지식인의 신분을 사회적으로 구별짓는 기호일 뿐이다. 현실에 조회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히 지식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된다. 왜? 현실에서 검증될 기회가 없는 지식에는 발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과 매치되지 못한 개념은 추상성을 벗을 수가 없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쉽게 표현할 능력이 없는 것은, 그들이 정말로 고차원적으로 사고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실은 자기가 말하는 개념이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반증의 위험이 없는 추상의 높은 수준에서 발언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구름위의 대학

경쟁도 없고, 현실과의 연계도 없기에 한국의 대학에는 프로젝트라는 게 없다. ‘프로젝트’라는 말은 단지 기업과 연결된 몇몇 이공계열에서나 사용되는 단어로 여겨진다. 사실 대학원을 다니면서 내가 가장 놀라웠던 것은 도대체 ‘교수든, 학생이든, 도대체 궁금해하는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학이라는 것이 일단 궁금증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해결하는 프로젝트의 형태를 띄는 것일텐데, 세상에 대해 전혀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이 학을 한다는 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단 경쟁이 없으니 굳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 제시할 의무도 없고, 현실과의 연계도 없으니 그런 프로젝트가 애초에 필요하지 않다. 프로젝트란 작든 크든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 그것을 설명하는 새로운 틀, 그 속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식의 체계를 의미한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대학에는 이 프로젝트라는 관점 자체가 없다.

할 일이 없으니 당연히 뭔가를 할 의욕이라는 것도 존재할 수가 없다. 가끔 부산한 움직임도 있으나, 그건 대개 교수님이 어디서 받아잡수신 연구비의 명분을 제공해주기 위한 쓸 데 없는 작업일 뿐,  그나마도 대부분 대학원생들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교수님의 이력서를 화려하게 할 목적으로 프로젝트(?)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때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그 눈동자에는 총기가 없다. 어차피 자기의 일도 아니고, 그 일의 중요성을 정작 그 일을 맡긴 분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는 내가 번역해 드린 독일 사전의 서문이 두 페이지 가량 교수님의 새 책에 인용부호도 없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았다. 내게는 인용임을 안 밝힌 그 양심보다도 중간에 남의 글을 통채로 끼워놓고도 제 생각을 일관성있게 끌고 나갈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이 더 놀라웠다. 내용 이전에 문체론적으로라도 이게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더 큰 문제는 자기들만 공부를 안 하면 되지, 굳이 공부를 하겠다는 사람들까지 못하게 한다는 데에 있다. 뭐 좀 해보겠다고 하면, “튀지 말라”, “멀리 가지 말라”, “왜 허락도 없이 그런 일을 하느냐”는 둥 다양한 제재를 받게 된다. 나는 책을 번역하는 데에도 별도로 교수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관행이 있음을 책이 나오고 난 뒤에 욕을 먹는 가운데 배웠다. 내 문제의식을 적어 학회지에 제출한 글은, 어쩐 이유에선지 그게 편집위에 속하지도 않은 원로교수의 손에 들어가더니 결국 그 팔 힘을 동력으로 하여 훨훨 하늘을 날다 쓰레기통 속에 들어갔다. 다른 것은 다 이해해도 이건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 한 사람이 공부하는 게 왜 자기들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한국의 대학, 그곳은 나의 지성적 파악을 거부하는 숭고의 영역이다.

이상한 나라에서 빠져 나온 지금 경제적으로는 쪼달려도 여유가 있고, 자유가 있고, 무엇보다도 정치적, 철학적, 미학적 프로젝트가 있다. 정치적 프로젝트는 한국의 사상시장의 극심한 우경도를 바로잡기 위한 정치철학적 기획이다(<엑스 리브리스>). 철학적 프로젝트는 플라톤부터 데리다까지 서구의 철학사를 언어관의 관점에서 고찰해 보는 작업으로, 내 모든 작업의 인식론적 기초를 이루는 작업이다. 이는 박사과정의 논문과 별도의 작업으로 구체화될 것이다. 미학적 프로젝트는 탈근대적 사유들의 미학성을 드러내고, 기존의 미학사를 탈근대의 관점에서 다시 읽고, 탈근대의 관점에서 근대의 인식론적 미학을 뛰어넘는 탈근대의 ‘존재미학’을 수립하려는 기획이다 (<앙겔루스 노부스>). 이 세 가지 기획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한국의 시민사회를 위한 미학적 에토스의 형성에로 모아진다.

 

잡스런 논문 vs. 꿰뚫는 잡글

대학 밖에서 내가 누리는 또 하나의 자유는 문체의 자유다. 처음에 여기저기에 잡글을 쓸 때는 그저 생활의 한 방편으로 어쩔 수 없이 쓰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 다양한 주제로 산발적으로 쏘아댄 그 쪼가리 글들이 외려 높은 추상의 차원에서 노는 고상한 글들보다 어쩌면 더 현실을 더 잘 비추어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나의 잡글들은 그 하나 하나를 보면 현실의 파편에 불과하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논문이라는 형식의 평면성을 극복하고 현실의 입체성을 보여주는 큐비즘의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벤야민이 말하는 ‘분산된 지각’의 효과…. (요즘은 벤야민을 읽는다. 나는 그를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사유, 그것을 할 자유, 그리고 최소한의 자존심. 그것을 찾아 나는 대학 밖으로 나와야 했다. 내 잘못일까?

진중권(문화평론가)

* CARLITO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11-24 17:02)

담장 밖에서 본 대학 – 진중권 Magritte 홈페이지에서 퍼옴”에 대한 한 개의 댓글

  1. 그 분 말씀 대로라면 이 세상 모듯 것이 맞는것 같아요 그러나 지구는 너무나 의견이 다르고 다양합니다 근데 진중권씨는 너무나 편협적으로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 아닙니까 전 원래 말 솜씨가 별료 없어어요 다 한 국가를 아니 대한민국을 위하는것 맞 잖아요 너무 비평 아니 비판 만 하지 마시고 진정한 대한힘국이 뭔지 고힌해 보십이 어떻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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