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 휴스 칼럼]내가 본 히딩크 <하>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승리, 히딩크 감독이 허리를 숙여 관중에게 인사 하고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코치들과 경기를 지켜볼 수 있는 통유리 박스에 앉은 지 3주가 아닌 한 세기쯤 지난 것 같다.

붉은 바다에 잠긴 부산 월드컵경기장에서 폴란드와의 첫 경기가 시작된 지 30분쯤 지났을 때였다. “히딩크, 우리의 꿈을 실현해 주오(HIDDINK, MAKE OUR DREAM COME TRUE)”라는 대형 격문(檄文)이 내걸렸다.

그 꿈은 초과 달성됐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대표팀을 지휘하며 환상적인 투쟁심을 이끌어냈다. 그는 영웅이 자신이 아니라 골키퍼 이운재로부터 홍명보 송종국 박지성을 거쳐 마지막에 골을 넣어 모든 영광을 한몸에 받는 공격수들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감독은 그들의 노력을 조직화할 뿐이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에게 자신의 폭 넓은 지식을 쏟아부었다. 그는 선수들의 패기를 자신의 경험과 조화시켰다.

그는 이미 너무도 많은 칭찬을 받아 더 이상의 칭찬을 원하지도 않는다. 이제 그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그가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갈 것으로 믿는다. PSV 아인트호벤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 피와 살이 펄떡펄떡 뛰는 한국 선수 3명을 데리고 갈 것이다.

한국인들이 지금 아무리 많은 영광과 부를 약속할지라도 그는 스포츠에서, 인생에서 이런 칭찬은 덧없는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감독은 마지막 승리 때가 가장 좋을 때다. 다음에 찾아올 패배는 그를 또다시 초라하게 만들 것이다.

어쨌든 한국인들은 이 남자를 못 잊을 것이다. 그는 한국 역사에서 놀라운 한 달을 창조해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한여름밤의 꿈이다. 상황은 결코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며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늙고 지쳐 수백만의 한국인을 거리로 끌어낸 능력을 잃어갈 것이다.

거울 앞에 서서 여러분이 히딩크 감독이라고 상상해 보라. 정부의 훈장이 곁에 있다. 상상도 못했던 돈까지 있다. 원한다면 제주도에 여름 별장도 얻을 수 있다. 평생을 마시고도 남을 공짜 맥주가 있고 언제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항공기 일등석도 있다. 이 남자의 발 아래는 헤아릴 수 없는 물질적 풍요가 널려 있다.

나는 이런 유례없는 현상에 관해 그와 개인적으로 얘기해본 적은 없다. 그를 둘러싼 벽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물론 네덜란드인 보디가드, 조언자, 코치, 친구들, 스폰서들, 팬들 등등…. 그들 모두는 히딩크 감독의 한 부분을 원한다.

그와 언론의 관계는 거의 ‘동물원 수준’이었다. 그는 수백명의 보도진을 상대로 한꺼번에 말한다. 숨기는 것도 없고 모든 것이 기대 이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한가지,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통로를 통해 선수들을 인도하고 이끈다. 이 내부 집중력은 팀을 위한 것이다.

그의 힘은 그가 축구에 집중하는 데서 나온다. 그는 자중할 줄 알아야 하며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충실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경기마다 양 골대 사이 잔디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나친 칭찬은 등뒤의 비수(匕首)가 되기 쉽다. 하지만 그도 케사르 루이스 메노티의 칭찬엔 흐뭇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을 것이다. 1978년 월드컵때 아르헨티나 감독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메노티씨는 현재 현대 축구에 신랄한 독설을 퍼붓고 있다.

메노티씨는 이번 월드컵에 대해 냉혹한 평가를 내린다. 선수들은 로봇으로 전락했고 교과서적인 축구를 하며 개인의 창의성을 상실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하지만 메노티씨는 한국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말을 한다. “그들은 비록 플레이에 질서를 갖고 있지만 그 틀 안에서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 나는 이 팀이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을 지켜봤고 히딩크 감독은 재능 넘치는 선수들이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도록 허용했다.”

메노티씨의 이 말은 히딩크 감독에게 쏟아지는 한국내 어떤 찬사보다 감동스러운 말이다. 히딩크 감독은 여기서의 임기가 끝나면 과도한 친절과 히스테리로부터 피난처를 찾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이 위대했던 한 달을 차분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선수들에게 “꿈을 실현시키자”고 격려했던 히딩크 감독은 이제 56세다. 4년 후 그가 다시 한국이 선택한 최선의 감독일지라도 그는 결코 이번과 같은 에너지를 뿜어낼 수 없다. 선수들은 물론 자신의 영혼에서 이번과 같은 불같은 투쟁심도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대부(代父)나 고문(顧問)과 같은 존재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를 고용한 대한축구협회가 “히딩크씨. 여기 보너스가 있으니 작별합시다”며 그를 보내는 것은 잘못된 일일 것이다. 물론 똑똑한 정몽준씨가 그럴 리는 없다. 하지만 오늘의 열기가 식는 순간 히딩크 감독은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 있을 것이고 그가 또다시 한국과 관계를 맺는다면 후임자에게 조언하며 옆에서 돕는 데 그칠 것이다.

그건 아주 다른 임무가 될 것이다. 행복감이 사라질 무렵 누군가가 나서 한국인의 축구에 대한 엄청난 열광을 가라앉히고 다시 새로운 승리의 길을 닦아야 할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때와 장소에 딱 들어맞은 천운(天運)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의 전설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랍 휴스/잉글랜드 축구 칼럼니스트 robhu@compuser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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