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마쵸에게 미래는 없다.

여성주의, 페미니즘 냄새가 조금이라도 풍기는 곳에
어김없이 출몰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쵸맨’. 마초들의
주요 전략은 ‘염장 지르기’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버린
후 게시판의 반응을 살피는 것. 자신의 글이 얼마나 사람들
염장을 질렀는가를 차분히 검토하는 걸 인생의 낙으로 삼는다.
그리고 가장 열 받은 사람의 글에 리플을 달아 다시 염장을
지른다. 이런 경우 가장 확실한 처방은 ‘절대, 아무도,
리플 안 달기’. 자신의 폭력적이고 야비한 글에 응대조차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마쵸에겐 가장 쓰디쓴 처벌이며 아픔이다.
 
최근 들어 마쵸들의 전법은 날로 세분화, 지능화
되고 있는데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여자인 척 하고
글 올리기’ 전략이다. 회원가입 시스템을 갖춘 경우라 해도
다른 사람의 아이디를 도용하거나 대화명을 여자인 것처럼
바꾸는 전법을 구사한다.
방법이야 어떻든 간에 게시판에
올려진 마쵸들의 글을 지우다보면 이 남자들이 얼마나 사는
게 외로우면 이럴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남자답게(?) 적당히 폭력적이고, 이기적이며,
감정이 메마른 자신을 왜 여자들이 인정해주지 않을까…
부모님 말씀대로 부엌 근처에 안가고 착실하게 차려준 밥상,
떠다주는 숭늉 받아먹고 잘 컸는데 여자들이 왜 날 사랑해주지
않는 것일까…하면서 ‘나, 남자야!’하면서 못난 투정을
부리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제 남자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기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결코 아버지 같은 남자로 살고 싶지
않다는 젊은 남자들의 이야기도 예사롭지 않으며(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우리들과 닮아 있지 않은가!) 생계부양자로
살기보다는 ‘가족의 일원으로’ 혹은 아예 결혼을 하지 않고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다는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젊은 남자들에게  닮고 싶은 4,50대 이상형이
존재할까?  
기성세대 남성들의 삶을 동정하거나,
부정하는 남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건 확실하다. ‘나는 돈버는
기계로 살고 싶지 않다’, ‘요리하는 게 좋다’, ‘외모에
신경 쓰면서 살겠다’… 남자들의 관심사도 다양해졌다.
80년대 후반 여성주의인식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때와
유사한 현상이다. 기존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남성으로서의
새로운 경험과 삶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 내가 여성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나를 설명할 수 없음’이었다. 내 안에 있는 여러 가지
특징들, 욕구들에는 세상이 말하는 ‘여자’라는 것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꽤 있었다. 나를 찾기 위해서, 이름 없는 경험들에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 십여 년을 여성주의자로 살아왔는지
모른다.

얼마 전 만났던 한 30대 남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내가 전화로 친구하고 한 1시간 이야기
하다가… 나중에 이러는 거 있죠. ‘야, 만나서 다시 얘기하자.
전화로 다 얘기 못하겠다.’ 하하. 한 시간도 넘게 이야기를
했는데 말이에요.  무슨 일 생기면 득달같이 서로
찾아가고 만나고, 이야기 하고… 그러는 거 보면서 부러울
때가 많아요. 저요? 친구들하고 그런 얘기 안 하죠.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고 힘을 주고받고 할 만한 기회가
별로 없어요…"
이런 답답함을 남자들끼리 서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여성주의 웹진 ‘언니네’에 ‘오빠네
세탁소’라는 게시판에 가면 자기 성찰 적인 남성의 목소리들이
가득하다. ‘나는 매일 부엌으로 출근한다’는 남성의 책도
나와 있으며, 육아를 위해 휴직하는 남편들도 늘어나고
있다.

남자로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10년, 20년 후에 어떤 남자로 살아가고 있을까?…
남자들에겐 취직, 결혼, 아버지 되기..사회적으로 성공하기라는
판에 박힌 미래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남성상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이들에게 남은 숙제는 만만치
않다. 남자들이 주어진 기득권의 벽을 넘어서 ‘열린 인성’
찾아내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자신의 아버지를 닮고 싶어하지
않는 남자들이 ‘아버지’의 권력까지도 포기할 수 있을까?
 우리 여자들이 독립을 꿈꾸면서도 부모나 남편에
의존한 삶의 안락함을 포기하기 힘들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남자들의 정체성 찾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아마 남자들은 계속 새로운 남성상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마쵸에겐 더 이상 미래가 없음을 그들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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