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호님의 글

박정희 시대를 생각한다

스탈린 시대에 대한 책을 읽으면 거의 언제나 박정희 시대를 생각하게 된다. ‘국민’학교 시절의 손가락 때 검사, ‘용모단정’이라는 교실 벽의 표어, 선생님을 대신해 아이들을 벌주는 반장. 반공웅변대회, 반공포스터 그리기, 귀순용사 강연회, 추운 겨울 날 달달 떨면서 운동장에 서 있어야 했던 조회 시간, 충효일기 작성과 검사, 미니스커트와 장발 단속, 불량 퇴폐가요 금지, 유언비어 적발… 언제나 남침야욕에 불타는 북한 괴뢰 도당에 대항해 우리는 안보태세를 늦추지 말아야 함과 동시에, 서양의 무분별한 자유주의 개인주의 사상의 침투에도 경계해야 했다. 이 모든 일들은 1930년대의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일어난 일의 다른 버전으로 보인다.

1930년대 소련의 공산주의자는 자본주의 세계에 둘러싸인, 전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사회주의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항상 주위에 적이 있음을 (동지로 가장하고 있음을) 명심하고 감시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했다 (수상하면 신고하자. 간첩식별 요령!). 동시에 후진적인 국민을 문화적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청결, 복장, 화장, 음주, 아내 구타 등에 대해 공연, 집회, 영화, 방송, 소모임, 학교 수업, 강제 수용을 통해 체계적으로 교육했다. 그리고 이런 의무를 게을리 하는 사람에게 창피 (또는 벌을) 를 주었다 (두 달 전에 어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왜 러시아 여자들이 화장을 어릴 때부터 짙게 하고 다니는지 알았다. 화장은 1930년대 이래 문화적 진보의 상징이었다!) 국민을 교육하고 지도하며 상과 벌을 주는 정부. 그 정부의 지도자는 오직 한 사람 스탈린이었다. 당 정치국의 4인방조차도 자신들이 스탈린의 완전한 신뢰를 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이 대목에서 박정희는 항상 비슷한 힘을 가진 두 사람 또는 세 사람의 충성 경쟁을 유도하고 즐겼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이 두 독재자는 모두 공식적인 라인보다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주요 정책을 결정했다. 둘 다 서민적인 풍모를 지녔거나 또는 지닌 것으로 보여졌다는 공통점도 있다 (양주보다 막걸리가 좋다는 박정희, 인자한 웃음에 검소한 옷, 검소한 생활의 스탈린/ 지성적이고 날카로운 트로츠키)

박정희와 같이 스탈린도 사상 유례없이 빠른 공업화를 이룩했다. 실업자가 넘쳐나던 사회에서 일손이 부족한 사회로 만들었다 (그 내용은 차지하고). 나라의 위신을 높였다. 후르시초프 시대 때 영국의 수상은 “이대로 가면 소련이 우리 나라를 추월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외환위기 전의 한국인이 몰려온다는 뉴스위크의 표지기사!). 스탈린 시대 때의 바람직한 지도자는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장을 돌아다니고, 단호하며 실질적이고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면 호통을 치며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켐페인이 끊임없이 조직되었고, 군대식의 구호로 대중을 동원했으며, “하면 된다”는 정신이 강조되었다. 사업체의 사장은 법규 따위는 무시하더라도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계획 달성에 필요한 원료와 기계를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목표의 초과달성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정주영이 스탈린의 공업화 시대 지도자상에 잘 들어맞는 본보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게다가 정주영은 빈농 출신으로 출신성분도 좋다) 소련 시민들은 스탈린 체제의 거부는 결국 당시 대공황으로 시달리는 자본주의체제로 돌아가 더 심한 고생을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한다. 마치 박정희 독재체제의 거부는 북한 공산집단에게 나라를 맡기는 것으로 인식시켰던 것처럼.

소련의 스탈린은 물론 더 잔인했다. 수천 만 명을 강제 수용소에 보내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몇 달 수용된 뒤 풀려 났던 것으로 보인다), 무자비한 숙청과 학살로 체제에 도전하는 사람과 집단 뿐 아니라 무고한 사람까지도 공포에 잠겨 복종하도록 만들었다. 스탈린의 중공업, 군수산업 중심 정책은 대중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지 않고 오히려 하락시켰다. 2차 대전후50년대부터 소련의 생활 소비수준은 많이 나아졌다. 스탈린 숭배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에 대한 존경의 차원을 넘는 그 무엇이었다.

스탈린과의 이런 차이 때문일까? 조갑제를 비롯한 어떤 사람들은 부끄러움도 없이 죽은 독재자 박정희를 찬양한다. (나는 조갑제 같은 확신범은 잘 모르지만 그 추종자들은 대체로 그 체제로 돌아가서는 권력을 누리지 않는 한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숨막혀 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그들도 어느 정도 민주화의 혜택을 누려왔고 익숙해져 있다. 민주화는 정치뿐만 아니라 생활양식의 문제이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어떤 사람들은 박정희 때문에 산업화가 단기일에 된 것은 아니라며 그 독재체제를 공격한다. 나는 박정희로 상징되는 파시스트 집단에 대한 비판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의미있는 활동이라고 인정한다. 특히 “지도자주의”에 대한 비판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대중의 생활과 사회의 분위기라는 점에서 스탈린 체제와 박정희 체제의 유사성에 자꾸 관심이 간다. 어제 만난, 에딘버러 대학에서 교수를 하는 선배는 아마도 그런 유사성을 냉전 체제라는 틀을 통해 보려고 하는 것 같다. 대중의 나날의 생활이 어떻게 생산, 재생산되는가 하는 문제를 파악하기에 독재체제라는 말은 분명 한계가 있다. 하지만 냉전체제라는 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바닥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한 용어가 아닐까? (트로츠키나 부하린도 노동규율과 상호감시를 강조한 점에서는 스탈린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그들이 정권을 잡았다면 좀더 ‘부드러울’ 수도 있었겠지. 마찬가지로 박정희 이외의 정권 이었다면 좀더 ‘부드러운’ 시대이었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부드러움”은 급속한 성장과 함께 가기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압축성장을 하는 나라들은 비슷한 모양을 보이는가. 푸코가 이야기하듯이, 서양에서도 학교에 나오는 어린아이를 시켜 부모의 나쁜 행실을 보고하게 했고 (‘감시와 처벌’), 17세기 파리 거주자 100명 가운데 한 명 꼴로 강제 수용소에 수용당하기도 했다 (‘광기의 역사’). 우리가 지금 인도네시아에서 보고 있는 것은 지난 몇 백년 간 근대를 통해 일어났던 일의 압축판이기도 하다는 고진의 언급은 어떤 시사를 준다. 물론 이 두 독재 체제의 잔혹성과 비인간성이 이렇게만 설명되어 넘어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잔혹성과 비인간성에 대한 비판은 좀더 근본적인 비판을 함축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의 경우 여기서 공부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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