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근길에 어제 사진동호회에 올라온 한 글이 문득 떠올랐다.
그 글은 브레송이 현상, 인화 작업을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은 사진을 찍는 일에 더 전념하겠다고 한 말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묻는 내용이었다.
때가 되면 반복되는 주제다.
요지는 현상, 인화작업을, 현대적으로 본다면 스캔, 포토샵 보정 작업을 포괄하는 이 보정작업을 예술적 범주로 볼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사진의 미학적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질문과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사진과 미술 또는 그래픽 아트를 구분짓는 것은 어디에 있는가.
미술이나 그래픽 아트는 없는 형상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러나 사진은 현실에 존재하는 형상을 바라보는 작업이다.
미술과 달리 사진은 ‘복제의 원본’과 복제 결과물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질문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진은 불가피한 원본의 왜곡에 대한 이유와 정당성을 묻는다.
왜곡하는 이유와 그 정당성은 곧 사진가의 원본에 대한 태도를 뜻한다.
내가 보기에 이 태도가 사진이라는 미학의 핵심이다.
사진의 원본에 대한 왜곡이 극단으로 간다면 그것은 사진적 범주가 아니라 회화적 범주에 가까울 것이다.
이 지점 어딘가에 현상, 인화의 예술적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크로스 오버를 말하는 게 아니라면, 사진은 곧 태도다.
이 태도는 그렇다면 어느 지점에서 발현되는가.
나는 사진을 찍는 순간에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포토그램처럼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행위를 건너뛴 것이라 해도 이를 사진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인화지에 상을 박는 그 순간 사진가는 찍는 행위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물과 현실에 대해 당신의 시선은 빛과 구도와 감정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를 따지는 게 사진인 거다.
그렇다면 현상과 인화는…
이 시선의 태도를 관철하기 위한 하나의 사후적, 수단적 방법이다.
사진과 회화의 경계 사이에서 헤매지 않고 딱 사진적 범주에 정주하고 볼 때는 말이다.
다시 말해 당신이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현상, 스캔, 포토샵 스킬, 스캔 스킬, 좋은 렌즈, 좋은 바디…이 따위에서 사진의 미학적 원인을 찾지 말고 바로 당신이 사진을 찍는 행위 속에서 당신의 태도에 대해 더 고민하는 것이 온당하다.
우리 아마추어 사진 동호인들은 이런 기술 미학에 많이 혹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 생각에 이건 덫이다.
사진 재미없게 하는 덫.

사진 찍는 것은 작곡하는 것과 같을 것이고
인화하는 것은 연주하는 것과 같을 것인데…
뛰어난 작곡자나 연주자 모두 예술가로 인정해주죠.
브레송은 작곡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니 사진으로 작곡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이고
삐에르 가스망은 연주에 소질이 있으니 브레송이 작곡한 사진을 암실에서 연주 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입니다.

오늘(2008.05.10) 이 댓글을 보고 또 아래와 같이 댓글을 달아 버렸다.

저도 현상, 인화 전문가에 대해 예술적인 어떤 영역을 인정하자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인화에는 연주처럼 작품에 대한 해석이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어쨌든 결국 우리는 사진을 인화물(또는 후보정 완료된 스캔본)로서만 볼 수 있습니다.
음악과 달리 한 사진에 대해 다양한 인화본이 존재하는 게 아니니 사진이라는 작품에 있어 현상, 인화가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사진은 음악과 달리 위대한 원곡에 대한 다양한 편곡과 연주 방식에서 그 미적 가치를 논하는 분야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아마 우리는 많은 위대한 사진가들만큼이나 많은 위대한 인화 작업가들의 이름을 (미학적인 수준에서) 기억해야겠지요.
영화도 감독 이외의 크고 작은 기여를 한 수많은 스탭들은 잊혀집니다.
이건 분명 불공평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는 이유는 사진이나 영화 작품이 사진가의, 영화감독의 태도라는 시원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를 보고 ‘촬영감독 실력 죽인다’라고 기억하기 보다는 ‘드 팔마 영화의 화면 구성은 정말 죽여’ 이런 식으로 기억하는 것처럼요.)
저는 영화든 사진이든 주어진 결과물로서의 작품 자체만 두고 봐야 한다고 믿는 편입니다.
(심지어 사진가나 감독의 의도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작품 뒤에 숨어 있는 작가라는 작자를 불러내야 한다면 그건 인화한 사람이 아니라 찍은 사람, 스탭들이 아니라 감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공평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감상자, 비평자에게는 작품의 미적 가치에 가장 많은 책임을 져야 할 단 한 사람이 필요할 뿐이니까요.
(애가 잘못하면 선생보다 부모 탓하는 것처럼요)
어쨌든 사진이라는 예술 활동에 있어 현상, 인화의 기능적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미적 가치는 사진가가 책임진다, 이게 제 생각의 요지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가 좀 오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 분 댓글이 틀린 말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든 찍는 것이 뽑는 것보다 우위에 있다고 설득하려고 애쓰는 것 같아 보인다.
굳이 이럴 것까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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