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 없는 유토피아/ 김수행

어제까지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이 느끼는 황당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오래간다. 또한 갓 사회에 나오는 청년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실업자가 없는 세상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실업자가 생기지 않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아침에 일어나니, 모든 기업과 은행에서 사장이나 대주주가 없어지고, 종업원들이 기업과 은행의 주인이 되어 버렸다고 상상해 보자. 종업원들이 주인이기 때문에 해고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일거리가 줄어들면, 그 작은 일거리를 나누어 하기 위해 모든 종업원들이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가를 즐길 것이다. 또 이 사회에서는 일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을 할 것이기 때문에, 사회의 생산물은 거대한 규모에 달할 것이고, 따라서 사람들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 사회의 공동생산물을 소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일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하루에 3시간만 노동해도 그 사회는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여가시간을 많이 가지게 된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자기의 잠재력을 개발하는 일에 종사하면서 하루를 보낼 것인데, 사회를 어떻게 더 나은 사회로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고 토론하는 데에도 긴 시간을 배당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사회처럼 노동자에게 저임금과 장시간의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가도 없고, 주가 조작으로 떼돈을 벌 수 있는 주식시장도 없으며, 사회의 재산이 모두 `나의 재산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의 재산’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남을 속이거나 착취할 이유가 없어져 순진하기 짝이 없고 항상 환하게 웃을 것이다.

꿈 같은 이야기, 꿈 같은 사회인 유토피아는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이 어려운, 살기 힘든 세상이 아니라 새로운 편안한 사회가 있다는 것.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물론 유토피아는 `아편’이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을 몽롱하게 만들어 순간 순간을 허송하게 해서는 안 된다. 유토피아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회를 그리워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도록 자극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이야기한 유토피아는 헛된 공상만은 아니다. 나는 영국에서 10년을 살았는데, 학교와 병원이 모두 무료였고 저소득층은 소득에 따라 집세를 내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픈 사람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 언제나 병원에 가서 무료로 치료받지만, 나는 `필요가 없어서’ 10년 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간 적이 없다. 스웨덴에서는 공장이 새로운 기계를 도입하면서 종업원들을 해고하자, 정부가 앞장서서 동네마다 탁아소, 도서관, 학교, 유치원을 지어 실업자를 고용했고, 공원을 가꾸며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고용을 증가시켰다. 또한 지금 프랑스에서는 실업자를 줄이기 위해 하루의 노동시간을 대폭 단축했다.

세상이 어려울수록 우리는 유토피아를 이야기하고 유토피아에 점점 더 살을 붙여야 한다. 지금 왜 실업자가 많은가? 기업가들이 지금의 상황에서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또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이전과 같은 큰 규모의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당연히 나오게 된다. 우리나라와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왜 `다수’의 시민이 `소수’의 부유층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가? 이 희생을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는 정부가 과연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구조조정의 진정한 의미는 실업자를 줄이기 위해 경제 전체를 어떻게 재편해야 하는가에 있을 것이다.

물론 사회를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기득권자가 정치적 경제적 사상적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 자기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득권자의 권세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김수행/서울대 교수·경제학
* CARLITO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11-2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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