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권력 논쟁은 미적 계몽의 형태를 띠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문학권력을 담지하고 있는 개인 혹은 집단은 문학이 초월적인 가치를 지니며, 세속성의 가치를 뛰어넘는 신성함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경험의 미학적 승화로 규정될 수 있는 이러한 태도는 문단, 출판, 언론, 학계의 제도적 불구성에도 불구하고, 문학이야말로 그 자체로 은은하게 빛나는 독자적 규칙을 갖고 있다고 상정한다.

불구화된 제도 속에서 초월적이며 신성한 문학이 탄생한다는 이 흥미로운 역설에 주목해 보자. 무엇이 문학을 그렇게 만드는가? 문학에 대한 관념, 더 정확하게는 미적 이데올로기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른바 문학적 우파의 ‘미적 자율성’이라는 것은, 문학이 현실세계의 이해관계와 독립된 자율적인 질서를 가지며, 이때 창작과 비평은 사심 없는 미학적 쾌락에 자신의 영혼을 맞기는 행위로 규정된다.

이 이론은 자본주의 근대의 출현을 추동했던 부르주아 계급,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중산층 계급의 미학적 이데올로기의 반영이다.

그렇다면 문학적 좌파는? 이들은 문학권력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기는 한다. 그러나 문학권력에 대한 논의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 치부된다.

이들에게 근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자본주의 세계체제라는 구조악이다. 이들은 자본주의 세계체제라는 구조악과 문학권력이라는 문학제도 속에서의 행태악이 형태론적 유사성을 가진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이들은 근본모순만 해소되면, 여타의 하위모순들은 자동적으로 해소되기 마련이라는 안일한 낙관주의에 빠져 있다. 이 낙관주의가 현실의 구체성에 눈감게 만든다.

문학권력 비판이 미적 계몽의 형식을 띠게 되는 것은 이 부분에서이다. 비판자들에게 문학은 제도 속에서 규정되고 역으로 제도를 규정하기도 하는 인간행위의 방식이, 여타의 사회적 메커니즘과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된다는 사실이 인지된다.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문학에 드리워진 초월성과 신비함의 표지를 박탈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문학장의 구조가 이 과정 속에서 적출된다. 이 문학장의 구조는 좌, 우의 이념적 경계와 무관하게 작동되는 문화적 상호작용과 권력과정에의 참여가 특정한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독점되고 전유되고 있는 현실을 밝혀낸다.

그러나 미적 계몽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계몽은 실천의 전제조건이 아닌가. 문학권력의 해체를 위해서 가능한 실천은 무엇일까? 첫째, 문학을 둘러싼 억견(doxa)을 해체할 필요가 있다. 문학(장)에 대한 인식론적 재정의가 필요하다.

둘째, 권력의 출발점인 평가와 제도 조정의 독점을 비판하면서, 권력과정에의 참여가 개방적이며 탄력적인 방식으로 운용될 수 있는 조건을 구조화한다.

셋째, 특정한 문학을 초월적이며 신비롭게 조작하는 마술적인 담론의 간계를 해부하고, 이 담론이 문학 외적 여론조작 과정에서 어떻게 강화되는가를 폭로한다.

지금까지의 문학권력 논쟁이 ‘네거티브 전략’이었다면, 앞으로는 ‘포지티브 전략’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포지티브 전략이라니? 불구화된 문학제도의 문제성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면서, 권력담론의 망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수 있는 소수담론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문학적 소수자들이 ‘권력과정’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을 창출해야 한다. 이는 또 다른 실천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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