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모닝 헤럴드
(이건 딴지에서)

이건 공식적인 사실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중 가장 위대한 월드컵이다. 한국이 그걸 확인시켰다. 아마 크리스띠앙 비에리의 오른발이, 팀 버스에 오르는 것 말고 좀 다른 일에 쓸모가 있었던들 이 흥분은 완화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에리는 Bossley Park경기장 외곽에서 연습게임 하던 시절에 코치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 모든 세월 후에 그 사실은 되돌아와서 그를 괴롭혔다. 지난 대전에서의 16강전에서 두 번의 황금같은 기회가 그의 오른쪽 방향에서 찾아왔고 비에리는 그 둘 모두를 뭉개버렸다. 이제 이탈리아는 월드컵 바깥으로 밀려났고, 세계는 아주리 군단의 최후가 아니라 한국의 승리를 찬미하고 있다.

이것은 중요한 구분점이다.
새천년의 첫월드컵에서는 세계 축구의 서열에 지진과도 같은 교체가 뚜렷이 특징지어졌다. 한세기도 더 전부터 시작된 축구 게임을 지금껏 지배해온 소위 축구의 제1세계 국가들은 최초로 거세게 도전받았다. 이것은 즐길만한 일이다.

토너먼트에 8개의 팀이 남았고, 6개의 축구대륙 중 5개가 대표되었다. (빠진 건 우리 오세아니아다. 그치만 그건 다른 이야기다) 그렇지만 16강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초기의 전복들에도 불구하고 크림이 표면에 떠오를 것이라고 여겨졌다.(크림은 ‘정수’라는 뜻을 가집니다. 결국 8강에는 전통의 강호들이 갈 것이다… 라고 여겨졌다는 뜻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그렇지 않았다. 최소한 전에 기대되었던 양상 그대로는 아니었다. 그리고 한국의 화요일 밤의 근사한 승리는 세계 축구의 외관을 영원히 바꿔버렸다.

물론, 아직 3개의 전 우승팀이 우세하다고 여겨지며 남아있긴 하지만 -독일, 영국, 브라질- 그들중 나중의 두 팀은 이번 금요일날 8강전을 치를 것이고, 그 중 한 팀만이 남을 것이다. 10일 후 요코하마에서 벌어질 결승전에서 트로피에 새 이름이 새겨지고, 그 이름이 축구의 새로운 세력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이제 현실적인 가능성이다.

세네갈, 한국, 그리고 미국은 아직 생생하고 활기가 넘친다. 그들은 이제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이번 월드컵에 신선하고 후련하고 도발적인 분위기를 가져왔다. 그리고 전통적인 지배세력들은 털끝만큼도 그걸 좋아하지 않았다.

추락한 거인들은 예외없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서투른 주심판정부터 기후까지 모든 것에 대해 불평을 해댔다. 그들은 위엄이나 기품을 갖고 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상대팀에 대한 존중의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당연하게 승리할 신성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경고 사인을 읽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가졌다.

감칠맛 나는 아이러니가 하나 있는데, 이탈리아에 칼을 들이댄 스트라이커 안정환이 세리에 A리그에서 뛴다는 사실이다. 거기서 그는 페루자 팀과 힘겹게 분투하며 인정받는데 오랜 시간을 끌어야 했다. 안은 페루자에서 막 끝낸 시즌에서 모습을 드러낸 31경기에서 2골을 득점하며 제 몫을 다했지만, 그가 항상 기억할 골은 그의 내셔날 팀 유니폼을 입었을때 터졌다. 옆의 사진에서, 그가 해낸일의 어마어마함을 깨달은 그의 얼떨떨한 표정을 볼 수 있다. 이탈리아전에서 득점한 다른 선수인 설기현도 벨기에의 안더레흐에서 뛰는 팀 유일의 다른 유럽팀 소속 선수이다. 이것은 아시아 선수들이 아시안 팀에서 유럽선수들을 희롱한, 바로 그 경우이다.

그들이 배운 과정은 느렸을지 몰라도 꾸준했다. 세 번의 월드컵에서 견습과정을 거친 후 한국과 미국은 이번 토너먼트에 격차를 좁혔다는 정당화된 믿음을 갖고 임했다. 세네갈은 와일드카드로 진출하긴 했지만, 아프리카에서 두번째로 좋은 팀이며 23명의 선수중 2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정기적으로 프랑스 1부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다. 그들은 존중받아야 마땅했다.

“존중”. 이것은 축구의 제1세계 선수들이, 받는것은 항상 당연하게 요구하면서도 나타내 보이는데는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유럽인들, 그리고 좀 좁은 범위의 남미인들은 이제 이 혁명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항상 거기 있었다. 그들의 바로 눈앞에서 진전되고 있었다.그들은 스스로의 오만함으로 눈이 멀었던 것이다. 그것 뿐이다.

축구의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온 선수들은 지난 20년간 유럽리그팀들을 통째로 침윤시켜왔다. 스칸디나비아인들, 동유럽인들, 그리고 아프리카인들은 마침내 정당한 프로로 인정받고, 대부분의 경우 그에 걸맞게 (금전적으로)대접받는다. 다른 나라들에게는 아직 갈 길이 남았다. 영국 팀 풀햄에서 지난 시즌에 단 한 경기에 출전을 허락받았던 US 미드필더 에디 루이스는 상황을 이렇게 최고로 요약했다. “미국 선수로서, 유럽이 (미국 선수들의 실력에 대해)품는 의심을 내게 유리하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가 우리에게 분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에겐 존중하는 태도가 없다고 말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과 경쟁할 만큼 잘 한다는 것을 믿고싶어 하지 않아 합니다. 그치만 여기까지 온 것이 태도를 바꿀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미국 선수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겁니다.”

그것이 월드컵의 매력이다. 그리고 월드컵만의 매력이다. 월드컵은 진정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축구 게임이다. 희망차게도,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은 수많은 신화를 깨뜨렸다. 정말이지, 미국, 일본, 한국선수들을 영입하는것이 -주니치 이나모토 등- 비즈니스적으로 자신의 팀에 좋은 결정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이번 월드컵에 온 스카우터들과 에이전트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세계 최강국들과 맞서서, 이 선수들은 자신들이 걸어다니는 광고판 보다 훨씬 그 이상의 무언가라는것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썩 훌륭한 축구선수들이기도 한 것이다. from 시드니 모닝 헤럴드, 6월 20일자.

심판판정-영국 BBC 보도내용
(이것도 아마 딴지에서…)
  Accept the defeat, Italy

이탈리아여, 패배를 인정하라.

1. Totti’s call was not exactly examplary. However, there was no PK for Italy for sure.

토티의 퇴장으로 진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게 PK 가 없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2. The offside goal is a hogwash. Tommasi was called offside reasonably long before he put the ball in the net. At that precise moment, the Koreans stopped playing him, and he continued to dribble and put the ball in the net. That is not a goal disallowed. That is a continuation of a dead play by the Italian.

그 오프사이드 골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 토마시는 골을 차넣기 한참전에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그때 정확하게 , 한국 선수들은 플레이를 멈추었고 토마시는 드리블을 해 골대에 차 넣었다. 그것은 무효골이 아니다. 경기가 중단된 상황에서 이탈리아 선수가 계속한것이다.

3. There are some calls missed by the ref in that game — against both sides –which is not that surprising considering the physical nature of the game. How about we rectify all the missed or borderline calls and contemplate how they might have changed the outcome? After all, it is possible and rather easily to argue that a foul 40 meters away from the goal could indeed have been converted into a goal. It is all subjective conjecture and probability.

그 경기에서 주심의 잘못된 판정이 몇개 있었다. – 양측에게 모두 – 하지만 과격했던 경기를 감안하면 그리 놀랄일은 아니다. 모든 주심과 선심의 오판을 정정하고 그게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두고 보기로하면 어떨까? 결국, 골대에서 40미터 떨어진 곳에서 골이 될 수도 있었던 상황의 반칙에 대해 언쟁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것은 모두 주관적인 추측이며 가능성일 뿐이다.

4. The Koreans had 8 shots on goal while the Italians 5. 12 and 11 shots respectively. That does not justify Trapattoni’s assertion that the Italians had more chances (as most Italians seem to believe). In fact, Trapattoni argues that the Italians should have won because of the missed chances. I am pretty sure that the Koreans can argue the same thing based on the chances they have missed including the PK.

한국은 12개의 슛중에 8개, 이탈리아는 11개의 슛중에 5개가 골문을 향했다. 이것은 이탈리가가 더 많은 기회가 있었다는 트라파토니의 주장은 맞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다른 대부분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말을 믿는것 같다). 트라파토니는 그 놓친 기회때문에 이탈리아가 이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난 한국팀도 ‘기회’에 근거해서 똑같은 주장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PK를 포함해서.

5. The Koreans got 27 fouls assessed to them while the Italians 23. The Koreans got 4 yellow cards shown to them while the Italians 5. The second yellow to Tottis was converted into a red; thereby, the Koreans had an advantage on the yellow by one. That much advantage in calls for the Koreans as some Otalians claim?

한국은 27개의 파울을, 이탈리아는 23개를 했다. 한국은 4개의 경고를, 이탈리아는 5개를 받았다. 토티의 두번째 경고는 퇴장명령이 되었다. 따라서 한국은 경고하나의 어드밴티지를 받았다. 그정도의 어드밴티지가 이탈리아가 항의할 정도인가?

6. It was the Italians who made the match very physical from the very beginning. It was the Italians who constantly argued when they did not get the calls that they thought they deserved, regardless of the correctness of the calls. The Koreans just got up and played when they did not get calls. That left an impression to Italians that the Italians might be treated badly by the referee. But, I truly doubt that the calls were as partial.

경기를 시작부터 거칠게 만든것은 이탈리아이다. 주심의 콜은 정확했음에도 자신들이 반칙이라고 생각했을 때 주심이 불어주질 않자 계속해서 항의를 한것도 이탈리아이다. 한국선수들은 주심이 불어주지 않아도 다시 일어나서 경기를 계속했다. 이것이 이탈리아 선수들이 자신들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는 인상을 남긴것이다. 하지만, 판정이 편파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간다.

All in all, I do sympathize with the Italians for the Totti call from which I think the ref should have walked away as rendering no call on either side. But, I do not sympathize with the Italians arguing that they should have won based on 1) their subjective views regarding who played better that night, 2) contemplation on the continuation of a dead play, 3) non-sensical PK demand, and 4) how biased the calls were. For the sake of their own dignity, Italians should accept the defeat.

어찌되었건, 주심이 어느쪽에 대해서도 경고를 주지 않고 그냥 지나쳐야했다고 생각하는 토티의 퇴장에 대해서는 이탈리아에게는 동감을 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항의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감하지 않는다.

1) 누가 더 잘했다는 식의 주관적인 견해

2) 경기 중단시 플레이해서 넣은 골

3) 명확하지 않은 상황의 PK 요구

4) 심판의 편파판정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서, 이탈리아는 패배를 인정해야한다.

[랍 휴스 칼럼]투지가 승리 만든다
(이건 명동 형 홈페이지에서)
프랑스와 아르헨티나, 포르투갈이 오만과 자아도취에 취해 상대를 깔봤고 결국 월드컵 무대에서 쫓겨났다는 게 통설이다.

나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우리가 매일 파란과 충격을 경험하는 진짜 이유는 ‘두려움’이다. 강팀들은 세네갈이 프랑스를 무너뜨린 첫 경기에서 충격의 파동을 감지했고 이번 월드컵에서 이변과 파란이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포르투갈의 스타 선수들이 한국전에서 거친 파울 플레이에 의존했던 것도 바로 그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탈리아가 한국을 상대로 할 때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의 가슴속에 있는 것은 우월감이 아니다. 자신들이 형편없다는 게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깊은 공포심이다. 백만장자가 된 유럽 선수들은 여러분의 선수들처럼 반드시 이기려는, 쓰러지거나 상대의 항복을 받아낼 때까지 그라운드를 달리려는 불굴의 정신력을 못 갖고 있다.

나는 지난 토요일 니가타에서 ‘우시노쓰노쓰키’란 걸 처음 봤다. 일본식 소싸움인데 1000㎏이나 되는 두 소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싸움 전의 의식은 길지만 승부는 순식간에 결정난다. 니가타 주민들은 죽은 소를 먹는다. 그때 한 주민이 “늙은 싸움소 고기는 너무 질겨 햄버거용으로나 쓸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아르헨티나, 포르투갈은 이번 대회에서 바로 그 늙은 싸움소 고기 신세다.

여러분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지난주 나는 이곳에서 한국이 포르투갈을 이길 것이라고 썼다.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의 용기와 상대를 압박하는 강한 승부욕을 믿었던 것이다.

한국은 이탈리아도 충분히 위협할 수 있다. 이탈리아는 신경질이 지나치다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물론 그들은 프란체스코 토티와 같은 훌륭한 선수들을 앞세우고 있다. 하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에게 토티가 예술을 선보일 시간이나 공간을 내주지 않도록 지시할 것이다. 우리는 토티가 과연 천재성을 입증할지, 신경질을 못이기고 무너질지 지켜보면 된다.

월드컵 본선 32개국 감독들 모두가 당초 프랑스와 아르헨티나를 우승 후보로 꼽았지만 두 팀 다 조별 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했다. 여러분도 아르헨티나의 중도 하차가 결정된 직후 에르난 크레스포가 미야기월드컵경기장 그라운드에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봤을 것이다. 축구 영웅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벤치에 앉아 고개를 떨군 채 절망과 상처 난 자존심에 괴로워하는 모습도 봤을 것이다.

문제는 그라운드에 ‘축구의 신’과 같은 선수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인 조 머서는 “천재는 팀과 조화를 이룰 때만 아름답다. 천재가 두드러지면 주변 다른 선수들이 망가진다”고 설파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에는 천재(지네딘 지단)가 있었지만 허벅지 부상을 했다. 아르헨티나에는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이 있었지만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포르투갈 역시 루이스 피구에 많은 것을 기대했지만 그는 이미 발목을 부상한 상태로 레알 마드리드를 위해 너무 많은 경기를 치렀었다.

무엇보다 포르투갈은 인천에서 공포에 질린 나머지 한국의 ‘붉은 전사’들을 걷어차 항복을 받아내려 했다. 사실 그것은 ‘아시아인은 거칠게 다루면 흐트러지고 만다’는 인종주의적 생각이었다. 그들이 잊었거나 절대 몰랐던 것은 한국의 투쟁력이었다.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공산주의를 상대로, 한국을 과소평가하려는 세계의 편견에 맞서 싸워왔다.

이탈리아든 그 다음 상대인 스페인이든 교훈은 간단하다. ‘열광적인 서포터스 앞에서 한국선수들을 걷어찰 테면 차라. 한국은 그라운드에서 반드시 패배의 쓴잔으로 복수할 것이다.’

<잉글랜드 축구칼럼니스트>robhu@compuserve.com

출처 : 동아일보

월드컵과 관련된 세 개의 외국 기사”에 대한 한 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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