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희’의 첫 장면. 오랜만에 선희와 우연히 마주친 이민우(극중 이름을 모르겠다)가 커피나 한 잔 하러 가자고 한다. “왜요?” “그냥.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지금 다른 볼 일이 있어서 이만.” 홍상수의 영화에서 대화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느닷없고 기괴한 면이 있다. 같이 커피를 먹고 싶다는 즉흥적인 제안과 물어볼 내용이 뭐였는지는 생략된 궁색하고 맥락 없는 이유가 대화로 구성되는 것이다.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발화로 이어지는 대화의 아슬아슬함은 때때로 이후에 그 발화가 반복되면서 어떤 운율로 바뀌기도 한다. 문수(이선균)가 창경궁에 있는 선희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만나자는 말에 선희가 왜 그러냐고 물을 때 문수는 첫 신에서 이민우가 한 말과 같이 “물어볼 게 있어서”라고 답한다. 이민우의 이상한 대사가 문수에게서 다시 나올 때 이 비논리적, 충동적 언어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작은 규칙을 하나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홍상수의 영화는 특유의 uncanny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말들이 어떻게 변주된 운율로 변하는지 참고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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