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bermas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  )는 현대사회에 들어 의사소통 과정에서 생겨난 적신호, 장애물을 논의한다.

  근대철학 이후의 주체와 대상의 분리라는 이원론은 결국 주체의 분열을 가져온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기도하며, 인식이란 무엇인가라고 되묻기도 한다. 프로이드는 인간의식을 이드(id), 에고(ego), 슈퍼에고(superego)로 나누기도 한다. 최근 뇌연구에 의하면 좌뇌와 우뇌는 분리되어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필요에 의해 중간의 연결을 끊어주기도 한다고 한다(수술을 통해). 하버마스는 이러한 분리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주체와 대상을 분리해 놓자는 가정을 해놓고, 다시 이를 통합하자면 기존의 가정을 깨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완벽한 주관도 없고, 완벽한 객관도 없이 서로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하버마스는 상호주관성이라 부른다.

  “인식주체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세계 속의 실체들을 객관화하여 대하는 태도는 더 이상 특권화될 수 없다. 상호이해의 패러다임에서 근본적인 것은 그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에 이미 참여하고 있는 주체들의 행위이다.이들은 언제나 세계 네에 있는 존재에 관해 서로 의견을 나눔으로써 자신들의 행위계획을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자아가 언어행위를 실행하고 타자가 그것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 이 두 사람은 상호인격적인 관계를 시작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주체의 분열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와 주체 간의 의사소통이다. 그래서 그의 관심의 의사소통에 왜곡된 요소나 장애물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에 의하면 현대사회는 체계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관료제에서 처럼 진리가 아니더라도 명령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절차와 행동이 규정된다. 이러한 것은 개인 생활에 까지 침투된다. 하버마스는 이것을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라 부른다.

  그러나 아도르노가 도구적 이성의 맹목적인 힘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았지만, 하버마스는 이성을 훨씬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성을 인지적(도구적) 영역, 규범적(도덕적)영역, 표현적(미학적)영역 세 가지로 구분하고, 현대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인지적 영역의 이성의 비만상태를 비판적기능(규범적, 표현적) 영역으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철학의 궁극적 목적이 인간해방에 있다는 계몽의 틀을 유지하면서, 이성이 스스로 뿌린 씨를 스스로 걷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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