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셀

테크놀로지에 잠식 당한 정신. 정신분열과 꿈, 대화, 어린이, 상처받음과 상처입힘 등을 가지고 엮어낸 설정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았으리라 생각됨에도 불구하고 스타일의 과잉에 밀려난 상상력. 그 음침한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는 필은 없다. 그 정도 기술에 내놓는 쓰레기 블록버스터들보다야 할 말은 있는 듯하지만, 그 할 말이 안 녹아나고 나오려다 다시 들어가 버린다. 기술이 예술과 조화되지 못하고 예술을 먹어 삼킨 꼴이라는 표현 말고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아쉽다.

엑소시스트

올해 수정 개봉했지만 분명 결말부만으로 따진다면 예전 것이 훨씬 나을 것.(진정한 엑소시스트 메린 신부마저 죽고 고뇌하는 카라스 신부가 그의 몸에 악마를 가두고 자살하는 엔딩이 악마를 물리쳐 내는 엔딩보다 더한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70년대 미국 중산층의 욕망을 자극적으로 잘 건드린 공포영화. 남편과 헤어졌지만 영화 배우로 풍요로운 생활을 보장받으며 딸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맥린 부인. 중산층의 가치를 대변하는 그녀를 위협하는 악령. 그 악령은 단순히 보기에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그녀의 딸에 스며들어 그들의 삶에 침범하면서 그들의 삶 전체를 공중분해시키는 존재. 이 위협적인 타자를 어떤 부류로 상정하고 바라볼지는 자유. 우리는 맥린 부인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단란한 가정이 악령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지기를 바라면서 카라스 신부와 메린 신부의 악령 퇴치 작전의 엄숙함에 깊숙히 몰입한다. 남편 없이도 꿋꿋이 살아나가는 맥린 부인이 유일한 낙이라 할 수 있는 딸마저 잃어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위기의식을 공유하면서 그 두려운 존재의 정체는 그들에게(좁혀 말한다면 경제적으로 당당히 독립한 커리어 우먼에게)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DVD는 기본 영화 외에도 다양한 메뉴가 추가되어 있고 그것을 골라볼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하다. 엑소시스트는 그 타이틀 하나 가지고 무려 다섯 시간을 우려 먹었다. 당시 TV 광고들, 극장 예고편, 감독, 배우 및 각종 스탭들 인터뷰와 비사, 콘티들 등등…리모콘 가지고 깨작거리는 것이 즐겁다. 하지만 구형 TV에서 보면 비디오나 큰 차이 없다. 컴포넌트 단자는 커녕, 둥그런 컴포짓 단자 하나 딸랑 있는 데다 스피커 하나에서 구질구질한 소리가 나오는 TV란…ㅠ.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없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하지만, 쓸모 없어 처리를 요하는 AV 장비가 있는 분은 급히 연락 바란다…

창조를 위한 혼돈

국론분열, 편가르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 조선일보>는 최근 `긴급진단-위기의 지식인 사회’라는 기획물을 통해 `동지 아니면 적이라는 극단적 편가르기’가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다고 걱정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극단적 편가르기를 조장하고 부추겨 온 세력은 누구인지, `공존을 파괴하는 언어폭력’을 마구 휘두른 인물들은 누구인지, 그들이 가르키는 손가락질은 엉뚱한 곳에 가 있다.

걸핏하면 생사람을 빨갱이로 몰며 사상검증을 하고, `대통령 만들기’를 하면서 제 편과 반대편을 두 줄로 세워온 언론권력 조선일보는 그런 극단적 편가르기에 전혀 무관하다는 투다. 김병상 신부는 25일 `언론개혁을 위한 종교인 1천인 선언’자리에서 “국론의 분열은 조선일보 측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고 했다.

`언어폭력’에 이르면 할 말을 잃는다. 조규익 숭실대 교수(국문학과)는 조선일보 긴급진단 시리즈 2회분 `공존 파괴하는 언어폭력’에서 “끓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 못하는 지식인들이…너절한 쾌감을 맛보고자…”라고 썼다. `너절한 쾌감을 맛보고자’ 하는 `언어폭력’의 현장을 한번 보자.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너희는 짖어라. `낙하산’은 간다”(조선일보 5월 10일 사설제목) “집권측의 살기 가득한 증오심…적으로 간주해 말살시키겠다는 극렬한 정서…”(조선일보 7월7일자 사설) “진지함 따위는 헛간에 처박고 쌈빡하게, 화끈하게 가슴 속을 후벼주는 큰 말, 상말, 헛말들이 활개치는 분위기…”(조선일보 7월20일 `위기의 지식인 사회’ 3회분. 정과리 연세대 교수) “조선과 동아를 부정하고 서울대학을 부정하고 이승만과 박정희를 부정하고 삼성과 현대를 부정하는 악령들…”(조선일보 7월7일 `악령’들의 문화혁명. 유석춘 연세대 교수) “간지가 엿보인다. 살기마져 번득인다. 여기에 치기어린 홍위병까지 날뛰고 있다”(동아일보 7월4일 < 시론> 이민웅 한양대 교수).

누가 언어폭력을 휘두르는가.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인가. 스스로 극언을 하며 편가르기의 저주와 증오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역사에 담겨있다. 친일을 어떻게 보는가, 박정희·전두환의 군부 독재정권 때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살았는가, 지금까지 지니고 누려온 기득권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 남북관계를 냉전대결의 눈으로 보는가 아니면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의 눈으로 보는가, 지성도 이성도 마비시키는 블랙홀같은 지역주의에 얼마만큼 함몰되어 있는가…개인과 집단의 삶이 어떤 역사적 경험을 안고 살아 왔는가에 따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입장과 답이 분명하게 나온다.

언론탄압 시비도, 언론사 세무조사가 김정일 답방과 관련이 있다는 색깔론도, 한거풀을 벗기고 보면 이런 역사적 삶의 궤적과 맞아 떨어진다. 지금 언론사 세무조사를 지지하고, 족벌신문 극복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면면을 보라. 민족작가회의, `1천인 선언’을 한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등 4개종단의 종교인들, 전교조, 민주노총, 해직 언론인, 개혁과 진보를 외쳐온 일반국민, 대학생…군부독재, 냉전체제 극복을 위해 애써온 우리사회의 민주화 양심세력이 아닌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민주화 양심세력의 외연이 크게 넓어지고 있는데 대해 수구, 기득권, 냉전세력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오랫동안 누려온 편안한 기득권이 침해를 받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살기’ `악령’ `홍위병’ 등의 극언을 해왔다.

맑은 영혼의 눈이 보는 시대의 흐름

과거의 틀이 무너지고,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는 과정에서 혼돈과 갈라짐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묻어둔 채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침묵으로 적당히 떼울 수 있는 그런 과거의 틀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기호 신부는 < 한겨레> 7월20일치 `신문을 위하여’에서 “하느님의 창조 이전도 혼돈이었다”며 “오늘의 혼돈은 옳고 바른 것과 그른 것, 본질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혼돈과 갈라짐을 통해 새 질서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창조를 위한 혼돈-이 시대와 역사를 맑은 영혼의 눈으로 꿰뚫어본 선지자의 예언이다.

정연주/논설주간jung46@hani.co.kr
* CARLITO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11-24 1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