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이가 말야…” “영삼이가 말야…” “종필이가 말야…” 오래 전, 동네 복덕방에 모인 영감님들은 저마다 한국정치의 운영자였다. 정치적 권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보이는 이들이 자못 한국정치를 운영하는 희한한 풍경은 오늘 인터넷 세상에서 흔히 발견된다. 오늘 적지 않은 한국의 청년과 노동자들(물론 사무직을 포함한)은 밤마다 인터넷의 복덕방에 모여든다. “노무현이 말야…” “정몽준이 말야…” “이회창이가 말야…” 신문 쪼가리에서부터 출처가 불분명한 풍문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사 자료들을 꿰어찬 채 그들은 밤이 새도록 한국정치의 운영자 노릇을 하는 것이다.

서글픈 일은 그토록 정치에 열중하는 그들이 예나 지금이나 정치에 당하기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정치에 당하는 단 한가지 이유는 그들이 열중하는 정치가 실은 그들의 정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만 제 삶이 변화할 그들은 딱하게도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 보수정치가 정치의 전부라 생각하고 그들의 정치라고 생각한다. 간혹 그들 가운데 평소 보수정치의 기만성에 넌더리를 하며 진보정치의 중요함을 내비치던 사람들도 막상 선거철이라도 되면 마법에라도 걸린 듯 보수 정치에 목을 맨다. 그들에게 진보란 대개 좀더 나은 보수, ‘좋은 보수’를 뜻한다.

그런 딱한 상황엔 아픈 배경이 있다. 오랜 군사 파시즘 기간 동안 우리의 소망은 민주화, 즉 ‘좋은 보수’를 이루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피의 대가로, 보다시피 오늘 우리는 죄없이 잡혀가 고문을 당하거나 벌건 대낮에 군인들이 양민을 도살할 가능성은 적어진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물론 그런 변화는 참으로 대단하고 값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변화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세상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죄없는 사람을 고문하거나 죽이는 일이 적어졌다고 해서,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진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애초부터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었던 사람들, 민주화만으로도 살 만한 세상이 된 ‘시민 계급’에게 더 이상의 변화는 절박한 게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들로선 선거에서 ‘나쁜 보수’가 이기는가 ‘좋은 보수’가 이기는가는 대단한 차이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민주화가 되고서도 제 삶이 달라진 게 없거나 오히려 나빠진 사람들, 그놈의 ‘좋은 보수’의 정치에 늘 당하기만 하는 대다수 노동자 농민의 처지에서, 선거에서 어떤 보수후보가 이기는가는 그리 대단한 차이를 갖지 않는다. 노동자 농민의 현실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수정치란 똑 같은 놈들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노동자 농민들이 ‘좋은 보수’를 찍어야 한다고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못나고 비굴한 일은 없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노동자 농민들이 ‘좋은 보수’를 찍어야 한다고 그게 최선이라고 강요한다면 세상에 그렇게 염치없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급기야 “너희들 때문에 이회창이 되면 어쩔 거냐.”는 공갈까지 나온다니 아마도 오늘 세상은 인간의 염치가 완전히 사라진 세상인 모양이다. 대체 무슨 이유로 보수 정치에 거덜이 난 노동자 농민이 보수 정치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박정희와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오늘 다시 이회창을 대통령으로 미는 나라라면 ‘이회창 대통령’이 걸맞은 나라라고 밖에!)

노무현은 다르다고? 11월 13일 농민대회에서 노무현이 달걀을 맞고 쫓겨나는 꼴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가. 노무현이 되면 적어도 더 나빠지지 않는다고? 속없는 소리 하지 마라. 노동자 농민에게 이미 세상은 충분히 나쁘다. 사람들아, 제발이지 되어먹지 못한 소리들 좀 그만 두어라.

문화예술인 165인 권영길 후보 지지선언문

모든 위대한 예술의 바탕에는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인간의 염원이 깔려 있다. 예술은 그 유토피아의 꿈이 빛나는 순간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당연한 권리들도 한때는 예술 속의 꿈으로만 가능했던 것들이다. 예술이 선취한 그 꿈들을 조금씩 이루기 위해 오늘 우리는 이곳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지지를 선언한다. 그의 정치적 지향이 오랫동안 예술이 꿈꿔왔던 그 세상의 바램에 가장 부합한다고, 우리는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권영길을 지지하는 것은 그가 소수문화의 발전, 문화적 복지, 문화의 권리 확대 등 문화정책에서 가장 진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문화예술에는 굳이 정치가라는 새로운 패트론이 필요하지 않다. 그가 약속하는 정치가 예술 속에 내포된 유토피아의 실현에 가장 가깝다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정치가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문화예술인의 권익의 옹호라기 보다, 예술 속에 내포된 유토피아의 꿈에 마땅히 보내는 존경의 정도다.

반복조차도 예술에서는 창조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창조 없이 5년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보수양당의 정치구도 속에서 우리 일하는 사람들, 세상을 창조하는 사람들의 꿈은 반복적으로 배반당해 왔다. 아무런 대안이 없었을 때 우리는 또 다시 배반당할 꿈을 위해 표를 던졌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행복해지기로 했다. 더 이상 우리는 행복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배반당할 대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배반당하지 않을 우리의 꿈을 위해, 우리는 오늘 권영길 후보에게 표를 던지기로 했다.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166인 선언 참가자 명단

< 문학계> 권혁소(시인) 공선옥(소설가) 김은경(시인) 김영산(시인) 김용만(시인) 김재영(소설가) 김중미(소설가) 김해자(시인) 류외향(시인) 맹문재(시인) 문동만(시인) 박관서(시인) 박연근(시인) 박영희(시인) 박흥식(시인) 방현석(소설가) 서정홍(시인) 송경동(시인) 송경아(소설가) 신현수(시인) 안상학(시인) 안재성(시인) 양혜원(시인) 오도엽(시인) 오철수(시인) 원명희(소설가) 윤동수(시인) 이철산(시인) 이인휘(소설가) 정세훈(시인) 정일근(시인) 조세희(소설가) 홍기돈(문학평론가)

< 미술계> 김신(만화가) 유민호(만화작가) 이은홍(만화가) 임옥상(화가) 장진영(만화가) 조문기(만화가) 홍성담(화가)

< 영화계> 김곡(독립극영화감독) 김영돈(비디오엑티비스트) 고안원석(다큐멘터리 감독) 김선(독립극영화감독) 김일권(독립영화피디) 박기호(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장) 박찬욱(영화감독) 변영주(영화감독) 원승환(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윤성호(독립극영화 감독) 윤재우(애니메이션 감독) 이마리오(다큐멘터리 감독) 이진우(한국독립영화협회 운영위원장) 이진필(다큐멘터리감독) 조성봉(하늬영상 대표) 조영각(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조지혜(다큐멘터리 감독) 조대희(비디오 엑티비스트) 정진탁(비디오엑티비스트) 정찬(영화배우) 최진성(다큐멘터리 감독)

< 평론계> 김세윤(필름2.0기자) 서동진(문화평론가) 이동연(문화평론가) 이명인(영화평론가) 이영미(음악평론가) 이인범(미술평론가) 변정수(문화평론가) 진중권(문화평론가)

< 공연예술계> 희망의 노래 꽃다지, 문진오(가수) 명인(가수) 박향미(가수) 서기상(가수) 유인혁 정윤경 박우진 (이상 유정고밴드,가수) 윤민석(송앤라이프 대표,작곡가) 신윤철(ZEN 대표) 이남가 편우혁 이혜영 김동환 (이상 젠 가수) 강상구(우리나라대표,가수) 김성수(화가, 무대기획) 지정환(우리나라 공연기획자) 백자 한선희 박일규 이광석 조상희 이혜진 (이상 우리나라 가수) 우위영(천명대표,가수) 한유진(환경조각) 서세진(영상제작) 이종민(풍물인) 김정주(공연기획) 이정혜(풍물인) 김상철(풍물인) 김기영(연주인) 나동아(희극인) 문미니(연극인) 서영택(연주인) 서정숙(안무가) 신현정(연주인) 원수자(무용인) 윤호섭(연주인) 이수영(연주인) 이순희(무용인) 이용갑(국악인) 이윤영(희극인) 장동선(연주인) 최광기(사회자)

< 문화관련단체> 고은(대중음악개혁을위한연대모임 활동가) 김선관(노동문화예술단 일터 대표) 박인배(민예총 기획실장) 선용진(정보사회운동가) 윤승문(연예인노조위원장) 이상헌(부산민예총 무대예술위원장) 이주훈(미디어센터 사무국장) 김성한 정은희 홍미진 (문화연대 활동가) 김두진(남산놀이마당 대표) 설태영(남산놀이마당 대중사업단장) 설영성(남산놀이마당 사무국장) 장재희(남산놀이마당 예술단장) 김호진 류재철 최권집 박정애 권철호 이우창 임채련(이상 남산놀이마당 단원) 윤순심(일터 기획실장,배우) 조기정(일터 연행단장,배우) 박영순(일터 사무국장.가수) 박성진(일터 예술감독) 최두진(일터 음악감독) 박민순(일터 극작가) 손영성(일터 안무가) 김미원(일터 작곡가) 이수옥(일터 가수) 박정순(일터 가수) 정영주(일터 가수) 홍승이(일터 배우) 민병일(일터 배우) 전민규(‘큰들’ 대표) 김혜정(큰들) 박덕자 최진(이상 큰들 영상) 진은주(큰들 기획자) 김영란 이은숙 윤정순 송병갑 김혜란 박세환 이진관 이명자 김주열 박춘우 임경희 정기용 최명희 하은희(이상 큰들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