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빛과 그늘/ 박노자

현재 한국의 월드컵 열기를 생각하면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한편으로는 분명히 긍정적인 측면이 많은 일이다. 여러 ‘플러스’ 중에서 몇 개라도 열거하면, 고용 창출, 한국 알리기, 외국 손님의 폭발적 증가를 통한 ‘세계와의 만남’ 등의 효과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 효과들마저 이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용 창출’이라고 하지만, 월드컵의 영향으로 만들어지는 절대 다수의 직장이 ‘파리목숨’ 비정규직이라는 사실부터 머리에 떠오른다. 곧, 외국인에게 귀엽게 웃어주면서 한국 토산물을 파는 ‘민간 외교관’ 아가씨들이, 사실상 시간당 1500~2000원을 받으면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착취의 희생자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토산품을 사는 외국인이 만약 스칸디나비아처럼 비정규직이 법으로 금지된 지역 출신이라면, 그 사실을 알 경우에 한국 지배층의 ‘아이엠에프 극복’이라는 허풍을 어떻게 볼까?

그러나 ‘국위 선양’의 애호가들이여, 걱정하지 마시기를! 절대 다수의 월드컵 손님들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 그들을 위해서 준비된 각종의 ‘한국 알리기’ 프로그램에서 살아 숨쉬는 ‘민중의 한국’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동대문·남대문에 가서 놀라울 정도의 싼 가격으로 양질의 상품을 사도, 그 ‘가격 경쟁력’의 원천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월드컵 기간 동안, 그렇지 않아도 탄압을 받는 외국인·비정규직 노동자의 집회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정부에 감사를 보내시기를! ‘모처럼 오신’ 외국의 ‘귀빈’들이 이미 박제화·박물관화되어버린 ‘전통 문화’만 약간 구경하고 그걸 ‘진짜 한국’으로 알 것이다. 불의와 착취에 맞서는 민중의 정신이야말로 한국의 가장 고귀한, 지금도 살아 숨쉬는 전통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설명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바깥세상’과의 자유로운 왕래가 매우 어려웠고, 병역 미필자 남성이 여권을 쉽게 받을 수 없는 부끄러운 현실을 청산하지 못한 한국에 ‘세계와의 만남’은 분명 아주 귀한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을 계기로 하여 어떤 종류의 ‘세계’가 올지 생각해보자. 비행기·호텔·경기장 입장권의 값을 감안해 축구공과 운동복을 만드는 중국·인도·파키스탄·동남아의 노동자들이 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게 돈만의 문제인가? 한국인이 미국 비자를 받는 것이 어렵고 번거로운 만큼 그들로서 한국 비자를 받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비자를 잘 받아도 한국 공항에서 이유도 없이 입국을 거부당하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물론, 월드컵 기간이라고 특별히 한국의 관련 기관이 ‘자비’를 베풀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주된 ‘고객’은, 돈이나 입국 절차에 문제없는 서구·미국·일본 등의 ‘특권 지역’ 출신일 것이다. 그들과의 만남도 소중하지만, 일산·안산·인천의 공단들에서 욕설·구타가 없는 한국인과의 동등한 만남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런 고언(苦言)은, 월드컵 의미의 전면적인 부정을 뜻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광기에 휩쓸린 극단적 자본주의 사회라는 일그러진 배경을 두고서도, 잔치는 어디까지나 잔치다. 비록 국가주의·상업주의의 상징인 ‘빅 스포츠’의 논리에 의한 일이지만, 세계의 시선이 잠시나마 한국에 집중된다는 사실은, 나에게도 큰 경사이자 자랑이다. 다만, 그 잔치의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88올림픽이 노태우 정권 시절의 권위주의 사회를 민주 사회로 만들지는 않았듯이, 2002월드컵도 권위주의 잔재에 신자유주의 모순이 복잡하게 겹친, 상처 입은 사회를 치료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

2002.05.29 / 이효인(영화평론가, 경희대 교수)

<랜드 앤 프리덤>의 스페인, <칼라송>의 니카라과, <빵과 장미>의 로스앤젤레스에선 혁명이 있었다. 켄 로치는 억압적 권력과 부당한 자본에 맞서 혁명을 옹호하고 카메라를 들이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의 시선은 혁명의 거죽을 뚫고 들어가 그 속내에 담긴 사람 사는 이야기에 맞춰진다. 이 고집불통 사회주의자가 걸어온 길 속엔 영화의 바깥으로 불거져나온 현실, 그리고 현실의 표면을 뚫고 고개를 드는 인간이 있다.

우리는 많은 로맨티스트들을 기억한다. 혁명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있었던 체 게바라, 스페인 전쟁에 참여했던 외인부대들,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가 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온 외국 전사들, 알제리 전투에 직접 참여하여 전사한 영화학자 집안의 아들(‘영국 노동자 계급의 형성 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의 저자인 E.P. 톰슨의 친형), 민족혁명과 공산혁명을 위해 싸운 후 억울하게 처형당한 김산 등, 이 로맨티스트들은 좌파 연합을 지지하면서도 때로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사고와 행동은 언제나 반제와 반자본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영국의 감독 켄 로치 역시 그런 점에서는 로맨티스트다. 1936년에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노동자였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평생 노동자를 위한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TV 방송국에서 일하며 1964년부터 최근까지 약 서른 편이 넘는 드라마를 만들었다. 1965년에 만든
<캐시 집에 오다>는 BBC가 방영한 드라마 중 현재의 사회와 생활환경을 가장 효과적으로 그린 드라마로 평가받고 있다. 이것은 16mm 흑백 필름으로 만든 것인데,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으며, 연기자들도 대부분 비전문적인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즉흥 연기가 많고 의도적인 극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했으며, 이것도 모자라 극의 흐름을 끊는 편집을 도입하여 마치 뉴스 릴처럼 화면이 거칠었다. 또 인터뷰 등 내레이션을 활용한 올 로케이션 촬영 등으로 인해 실제 현장의 긴박성과 감동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 드라마는 영국 전역에서 충격을 불러일으키면서 홈리스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토론을 이끌어냈다. 6백만 명의 시청자가 보았다는 이 드라마는 지금도 프로파간다의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이 드라마에 대해 시네마 베리테(조금도 인위적인 요소를 개입시키지 않으려고 철두철미하게 노력했던 프랑스 다큐멘터리 운동의 미학)의 영향도 받았지만 그보다는 뉴스 릴, 다큐멘터리, 뉴스 프로그램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의도는 시청자가 드라마를 뉴스처럼 받아들여서 그것을 현실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후 그가 만든 영화로는 <불쌍한 암소>(1967), <케스>(1969), <가족생활>(1972), <블랙 잭>(1979), <외모와 미소>(1981), <조국>(1986), <숨겨진 아젠다>(1990), <하층민들>(1990), <레이닝 스톤>(1993),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1994), <랜드 앤 프리덤>(1995), <칼라송>(1996), <내 이름은 조>(1998) 그리고 <빵과 장미>(2000)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필모그래피를 한숨에 읽어내려가면 저절로 한숨과 감탄이 튀어나온다. 이 음험한 배신의 계절과 얄팍한 변절의 시절에도, 켄 로치는 정말 한결같다!

영국 노동자와 니카라과 전사들

하지만 켄 로치의 로맨티시즘은 단순과격형이 아니다. 그의 좌파적 입장은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로맨틱한 면모는 삶의 복잡다단함 속에 감추어져 있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것이다. 그의 로맨티시즘의 뿌리에는 아나키즘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특히 <칼라송>에서 그의 복잡한 사고는 잘 드러난다. <칼라송>은 니카라와 해방 투쟁을 위해 유럽으로 왔다가 혼자 영국으로 건너와 거리 공연을 하며 겨우 살아가는 칼라와 영국인 버스 노동자 조지의 이야기다. 장난처럼 시작된 칼라를 향한 조지의 사랑은 결국 둘을 니카라과로 가게 만든다. 1987년의 일이었다. 1979년 소모사 정권을 축출하고 정권을 잡은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가 2년 만에 자유선거를 실시하여 실패한 지 약 10년이 지난 시기였다. 미국이 지원하는 반군(콘트라)과의 유혈전쟁을 니카라와 민중들이 더이상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자살 기도를 했던 칼라의 정신분열증의 배후에는 조국과 죽은 애인 안토니오에 대한 채무감이 있었다. 지도자였던 안토니오는 반군들에게 잡혀 먼저 혀를 잘렸고, 개머리판으로 허리가 부러졌으며, 그 다음에는 얼굴에 염산 세례를 당했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조지가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분개하자, 브래들리는 더 화난 얼굴로 수정해준다. “그게 아냐, 미국이 시킨 짓이야”라고. 브래들리는 니카라과에 파견될 CIA 요원들을 훈련시킨 간부로서 3년간이나 공작을 했던 인물이었지만, 이제는 니카라과 해방을 위해 싸우는 미국인이다.
그렇다고 조지가 니카라과 해방전선에서 바로 싸우지도 않았고 둘의 사랑이 성립되는 것도 아니었다. 미 제국주의에 대해 투쟁하다 지쳐버린 니카라과 여성과 ‘적당히 저항하는 영국 노동자’ 조지 사이에 놓인 건널 수 없는 계곡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켄 로치는 이런 점에 대해 직접적이며 즉각적인 결론을 맺지 않고 브래들리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말할 뿐이다. 조지의 분노와 칼라를 향한 사랑이 질적 변화를 일으키며 쉽사리 국제적 연대의 정치의식과 분노로 뻗어나가게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영국보다 ‘연대’가 중요했고, 계급적 권익을 위한 프로그램보다 아나키즘적 저항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조지의 칼라에 대한 사랑은 동정적이지만 강렬했다. 그러나 칼라가 자신도 모르게 가슴 깊이 품고 있었던 것은 피로 맺은 전사끼리의 사랑이 훨씬 더 강렬하다는 사실이었다. <하층민들>에서 노동자들의 어떤 탈선과 비상식적인 행위에도 계급적 처지를 말하면서 그들을 옹호했던 켄 로치지만 <칼라송>에서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 영국 노동자를 본다. <칼라송>에서 조지가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은, 켄 로치가 쉽사리 혁명적 낙관에 빠지지 않고 문제를 단순하게 보지 않으며, 무엇보다 근본적인 모순에 대해 성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니카라과의 입장에서 본다면, 조지라는 영국 노동자, 영국이라는 강국, 그리고 우리 모두는 얼마나 비겁하며 소시민적인가?
켄 로치가 정작 하고 싶었던 것은 니카라과의 실상과 그것에 아무것도 보태지 못하는 우리들의 뺀질뺀질한 지성에 대해 따귀를 올려붙이는 것이 아니었을까?

아나키즘, 국제적 연대, 그리고 영화의 힘

켄 로치의 아나키즘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억압적 권력에 저항하는 움직이는 전략일 뿐이다. 고정된 권력 체계를 부정하고 순간순간 모든 부정의와 모순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 그럼으로써 혁명은 단련되고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그가 취하고 있는 아나키즘적인 전략이다. 그것은 당연히 국제적 연대와 관련을 맺고 있다. 그 연대란 모든 억압과 침탈에 대한 투쟁을 위한 것이다. <랜드 앤 프리덤>에서 켄 로치는 스탈린의 야심이 스페인에서 어떻게 민중을 배반했는가를 밝히며, 또 1936, 37년에 이상주의자들을 괴롭힌 것은 파시즘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공산당의 공식 노선이 공동의 적에 대항하기보다는 좌파 내부의 이단을 뿌리뽑는 데 있었다는 사실을 고발한다. 영국 사회당 지지자인 데이비드는 스페인에 내전이 벌어지자 연인 키티와 헤어지면서까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간다. 하지만 민병대에 배치된 데이비드가 처음 마주친 것은 격렬한 전투가 아니라 소극적인 대치 전선과 시가전, 지역 마을의 집단 농장 건설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 등이었다. 이후 데이비드는 또다른 몇 가지 일을 겪고 마지막 전투를 치른다. 그 전투에서 데이비드가 속한 민병대는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사수 명령에 의해 고립되어 있다가 결국 후퇴 명령을 받고 철수한다. 늦게 도착한 지원부대는 민병대 해산을 종용한다. 그들은 혁명적인 스페인 노동자당 품(POUM)의 지도부가 파시스트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품 소속 대원 몇 명을 체포하겠다고까지 공언한다. 스탈린이 스페인의 권력 관계 속에서 품을 제거한 것이었다. 이에 격렬히 저항하던 여자 민병대원이 사살되고, 데이비드는 붉은 머플러에 그곳의 흙을 담아 영국으로 돌아온다. 데이비드의 손녀가 그의 유물을 정리하면서 편지를 읽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 흙을 관에 붓는 것으로 끝맺는 이 영화는 전쟁 대작의 스펙터클 대신에 심란한 게릴라전과 언제나 난감한 정치적 태도에 대해 말한다.

즉흥 연기와 배우들의 자발성, 그리고 손녀를 통해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듦으로써 과거에 대한 향수를 배제하고 지금 여기의 이야기임을 환기시킨다. 그것은 패배주의가 아니라 미래에 관한 뜨거운 의지와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스페인 내전은 신자유주의와 새로운 팍스아메리카와 팍스유로파를 지향하는 서구 국가에 대항하는 3대륙의 대안은 무엇인가, 그리고 현재 노동자 계급의 새로운 과제는 무엇인가에 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스페인 내전이란 사회주의 정당이 결코 노동계급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함축적인 소재였던 셈이다. 60년 전의 스페인 역사가 현재진행형으로 살아난 것이었다.

켄 로치의 미학 혹은 영화 전략

“민중들이 그들의 두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화란 시나리오와 영화 속 인물들 사이의 변증법이다. 시나리오 속 인물들이 사실적이라면 영화 속 인물들도 사실적이어야 한다.” 켄 로치의 이 말은 그의 미학을 명징하게 함축한다. 그에게 다큐멘터리는 빠른 기간 내에 만들 수 있는 팸플릿이며, 극영화는 소설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의 영화가 단순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또 촬영이나 편집에서 특별한 스타일을 구사하지도 않는다. 그는 오히려 스타일에 신경을 쓰는 순간 주제를 놓친다고까지 강변한다. 그야말로 강변에 불과하지만 그가 처한 직간접의 탄압적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그는 촬영장에서 실제 장면들을 리허설하지 않는다. 공유해야 할 기본 사항만 리허설하고 대개는 촬영하면서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조금씩 준다. 그리고 가능하면 실제 시퀀스 순서대로 촬영하며 스토리보드도 만들지 않는다. 카메라 위치, 렌즈의 종류, 배우의 움직임 등은 그의 머릿속에 있으며, 주로 로케이션 촬영을 하기 때문에 조명 또한 필요에 따라 약간만 사용된다. 그의 최고 작품으로 꼽히는 <하층민들>은 즉흥 연기와 기록영화적인 촬영의 대표적인 예다. 그는 어떻게 정치적으로 관객을 움직일 것인가를 대중주의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실천하기 때문에, 그의 영화미학은 철저하게 다큐멘터리적이며 단순명쾌한 것이다.

오히려 그의 과제는 복잡하게 영화적인 미학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현실과 싸우는 것이었다. 노조 지도자들이 대처에 대항하여 싸우지만 결국 실패하는 이야기인 <지도력에 관한 질문>에서 그는 1980년대 영국 철강산업의 파업 효과를 분석하는 동시에 정치인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다큐멘터리 감독이 지녀야 할 균형감각이 결핍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조합 지도자들을 편파적으로 다뤘다고 형평성과 책임감의 결핍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결국 BBC의 채널 4에서도 방영되지 못했다. 그는 이것을 고도의 검열이라고 보았다. 그가 만든 유일한 정치 스릴러 <숨겨진 아젠다>는 IRA를 옹호하는 영화라는 엄청난 비난을 받으면서 일부 상업 극장에서도 상영을 거부당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북아일랜드에서 실제로 자행된 영국의 공작 사건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당신은 어느 편인가> 역시 정치적 반대파들과 평론가들과 문화이론가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가 “나이브하고 낡은 방식”에 매달린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비판 요지였다. 이후 그의 영화 작업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조국>의 제작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여러 나라와의 합작으로서만 가능할 수 있었다. 켄 로치에게 검열과의 투쟁이란 곧 지배권력과의 투쟁이었다. 그에게 영화평론가들은 정부와 관점을 공유하는 ‘교묘한 검열관’이었다. 그는 모든 것이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영국이야말로 민중들을 교묘하게 통제하는 사회라고 보았다.

<빵과 장미> 혹은 단순한 진리와 복잡한 허위

하지만 그는 결코 희생정신으로 일그러지거나 심각한 예술가의 표정으로 대중들에게 나서지 않는다. 그는 <빵과 장미>에서도 서두르지 않으며 아주 단순하면서도 난처한 질문을 던질 뿐이다. “세상에 불의가 횡행하고 있다. 이것을 인정할 것인가?” 또는 “행동할 것인가, 말 것인가?” 제목은 영화 종반에 나오는 플래카드 “We Need Bread But Roses Too”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영화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월경한 사람들을 쫓는 거친 핸드헬드 카메라로 시작한다. 자칫 팔려갈 뻔했던 마야는 기지를 발휘하여 언니 로사를 만나고, 또 힘겹게 한 건물의 일용 청소부로 고용된다. 어느 날 마야는 그 건물에 침입했다가 도망치는 노동운동가 샘을 돕게 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자기 직장의 부당 노동 행위와 억압을 해결할 길을 모색한다. 건물 관리인들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시위, 집회 참석, 파티장 급습 시위 등을 통하여 결국엔 자신들의 행위를 보호하게 된다. 하지만 파티장 급습 시위 등을 통하여 결국엔 자신들의 행위를 보호하게 된다. 하지만 파티장 급습 시위에서 경찰서로 끌려온 마야는 돈을 훔친 불법 체류자라는 것이 들통나서 강제 송환되고 만다. 이민국 버스를 타고 가는 그녀를 향해 사람들은 안타깝게 연대의 손을 흔든다. 버스를 향해 달려오는 로사를 향해 마야는 “조심해”라고 말하고, 로사는 “사랑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는 조용히 자막이 오른다.

‘순진한 너무나도 순진한, 고집불통의 사회주의자’. 언제나 켄 로치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무도 자주 이 수식어에 전제되어야 할 말을 잊음으로써 냉소하거나 그를 무시하려고 든다. ‘지속적으로 너무나도 지독한, 부당한 자본의 억압’이 존속되는 이 세상이 변하지 않았는데 그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불의에 눈감고 같이 안락하게 살자는 꼬드김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켄 로치에 대해 적의를 드러낼 용기가 없거나 교묘한 사람들은 ‘단순한 형식’을 문제 삼는다. 하지만 그 역시 한때는 대안적 형식에 매료되었으며 그것을 극복한 후 이러한 스타일이 나왔다는 것은 간과되곤 한다. 즉 스타일이 카메라 앞에 있는 대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험하다. 정치영화를 대표하는 코스타 가브라스의 드라마틱하고 크고 무거운 영화에 비해 그의 영화는 승리와 낙관보다는 패배하고 비관하는 인물 설정이 우선된다. 그리고 영웅적이며 독보적인 인물보다는 평범한 패배자, 집단적인 인물이 선호되는 것이다. 즉 가브라스가 현실을 영화라는 괄호 속에 넣는다면, 켄 로치는 영화로부터 현실을 끄집어내어 본문 속에 드러내는 것이다. <빵과 장미>의 플롯 속에는 그런 것들이 전략적으로 빼곡히 들어 있다. 피상적으로 보면 그것은 단순한 것이지만, 실은 켄 로치의 일관된 미학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로사의 남편은 몇 년째 병석에 누워 있고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로사는 작은 배신을 했으며, 대학생이 되려는 친구를 위하여 마야는 도둑질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의 승리는 결코 장엄하지도 드라마틱하지도 않으며, 자주 주위에서 일어나지만 우리에게는 그냥 스쳐가는 일일 뿐이다. 켄 로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발을 걸고 넘어진다. “세상에 불의가 횡행하고 있다. 이것을 인정할 것인가?” 또는 “행동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고 말이다. 미국에서 작은 소재로 작업하는 것은 그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랜드 앤 프리덤>의 마지막 대사처럼 여전히 지속된다. “혁명은 전염병과 같다.
이곳에서 우리가 성공했다면 우리는 세계를 변화시켰을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건물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

 

이효인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유기자님 소설의 몫일 것 같은데요. 운명의 힘과 맞서는 사랑의 힘이 초점이 되겠지요. 유기자님은 어떤 쪽을 택하실 겁니까? 대부분의 작가들은 사랑의 승리 쪽을 택하더군요.”
그의 입가에 실 같은 미소가 어리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상상이 갖고 있는 미덕인지도 모르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상상 속에서 위안을 얻고 있으니까요. 왜 작가들의 상상은 대부분 사랑의 승리를 택할까요? 저 자욱한 안개를 보십시오. 안개는 저렇게 사람들 사이로 흘러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손에 쥘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작가들은 손에 쥘 수 있지요. 상상으로서 말입니다. 구레츠키는 슬픔의 강 너머 빛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강을 어떻게 건너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강을 건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지요. 배를 타는 것과 스스로 강이 되는 것. 대부분의 작가들은 배를 타더군요. 작고 가볍고 날렵한 상상의 배를.”
그는 돌아서서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뭉클한 안개는 이내 그를 가렸고, 나는 멍하니 서서 그가 사라진 쪽으로 시선을 놓고 있었다. 귓속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일어서고 있었다. 현악기의 한없이 낮은 소리였다. 그 소리에 이어 깊은 슬픔의 노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아름답게 우는 신의 새여
그 아이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오

신의 작은 꽃이여
내 아이가 행복히 잠들 수 있도록 활짝 꽃을 피워주오

정찬의 ‘슬픔의 노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