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트릭스 리로디드를 보고 이건 라깡의 이야기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시온은 실재계, 네오는 실재의 작은 조각, 매트릭스는 상징계…
뭐 이런 식으로 구도는 명백한 듯 했다.
하지만 지젝의 글을 보고 아차했다.
나는 내 이데올로기에 젖은 채 그 환상을 충족시키려, 시온과 네오 역시 주체의 영역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시온은 타자의 타자다.
맑시즘이 그런 것처럼, 신에 대한 인간의 매혹이 그런 것처럼 상징계 내에서 인간은 타자에 대한 이중적 두려움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상징계의 큰타자를 기획하거나 조종하는 배후 조종 인물로서 타자의 타자는 인간의 편집증적 환상인 것이다.
벤야민이 언급한 장기 두는 기계의 우화와 같이, 우리는 지지 않는 장기 기계 속에 숨어있는 난장이 천재야말로 이 세상의 진정한 음모라는 환상 때문에 매트릭스에 매혹된다.
시온은 실재계가 아니라 또하나의 상징적 질서이며 모피어스가 말하는 실재의 사막은 실재가 아니라 상징계의 황폐한 이면일 것이다.

당신이 어떠한 관점을 갖고 있든 그 관점에 부합하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지젝의 말에 유념하자면, 나는 어쩌면 몇 천 년 동안이나 나를 기다렸을 영화 ‘매트릭스’로부터 기어코 받아야 할 편지를 받아내려 한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마지막 편이 나와 봐야 영화 ‘매트릭스’가 진정으로 “미쳤는가” 하는 문제가 명백해질 것 같다. 그래서 기다려진다.

세상이 명확하고 내가 확고할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모든 것이 자신할 수가 없게 됐다.
이런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된 것 같은데
내 환상이 막 부서지기 시작할 때의 충격과는 다른,
어떤 것도 새롭게 구축되지 않는 때의 불안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물질과 정신 모두 나를 지탱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나 할까.

이 세상에 난다는 것은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다.
온갖 착각 속에서 살고 난 후 얻을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하니, 누구든 세상에 난 것을 축하하기보다는 위로해 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