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고려대 교수, 아세아문제연구소장)

파국적 결정으로서의 탄핵

국회에서의 대통령탄핵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정치위기를 몰고 왔다. 현재 한국민주주의는 탄핵을 결행한 야당과 이를 지지하는 정치권 밖의 보수적 동맹세력들의 전략적 개입가능성을 한편으로 하고, 탄핵이라는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에 저항하는 시민적 공분과 운동의 동원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두 힘 간의 불안한 균형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이 균형이 깨어진다면 국면적 위기로부터 시작된 사태는 사회의 모든 갈등들을 불러내고 극대화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무정부적 상태로 빠져들른지 모른다.
현실로 나타난 탄핵이 대통령의 문제를 반영하기보다 당내문제와 리더십위기에 직면한 두 야당의 전략적 선택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시켜온 헌정체제의 취약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현재의 사태를 헌정체제의 중단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의회다수파가 민주화의 결과로 성립한 헌정체제의 가장 핵심부분을 공격하고 마비시킴으로써 헌정체제에 중대한 손상을 가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퇴출위기에 몰린 보수적 야당의 지도부와 의회 밖의 극우적 세력의 동맹이 이러한 사태를 빚어냈다는 사실은 한국민주주의의 커다란 비극이다.

한국민주주의의 위기구조

탄핵이라는 정치위기가 갑작스럽게 도래했지만 그러나 큰 사건은 언제나 그러하듯 긴 과정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크게 보면 민주화이후 기득이익에 기초한 보수파들은 대통령선거의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 그 중심적 지지 세력을 한국사회의 기득이익 외부에 두었던 김대중, 노무현정부에 이르러 더욱 그러했다. 이번 탄핵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자해적인 방법도 불사하는 결사항전식 투쟁은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구세력들의 이런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이번 탄핵위기로 드러난 보다 중요한 사실은, 한국의 민주주의도 이제 제도의 문제로부터 구체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데 있다. 그간 대통령의 정당과 의회의 다수당이 상이한 분할정부적 상황은 민주화이후 한국정치의 패턴이 되었고, 정부 對 의회의 대결구조는 거의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정부의 개혁은 그만두고라도 정부의 작동 그 자체를 매우 어렵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통령과 의회가 모두 국민주권을 대표하게 되는 이러한 이중대표성의 문제는 대통령중심제에 내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두 부문 이 충돌할 때 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이며,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한 3권분립은 또 어떻게 작동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대통령제를 모델로 한 한국의 대통령제가 미국의 제도디자인과 정반대의 내용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세 개의 정부부문 가운데서 의회를 가장 강한 권력의 중심으로 보았던 미국의 헌법제정자들은, 의회의 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에 제도디자인의 초점을 두었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의 현행 헌법은 대통령을 견제할 초강력한 권한을 의회에 부여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체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는 대통령의 권력제한 가능성은 경시되었다.
정당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이를 더욱 악화시켰다. 한국정치가 직면한 문제의 중심에는 정당이 있다. 민주주의란 사회의 갈등과 균열이 정당으로 조직되고 그것이 정치경쟁의 중심적 단위가 되는 체제를 말한다. 그러나 민주화이후에도 지속되어온 보수독점적 정당체제는 민주화이후의 사회변화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들이 사회의 중요한 갈등과 균열, 그리고 기능적이고 계층적인 이익에 뿌리내리지 못함으로써, 사회의 대표기능과 유권자에 대한 책임의 고리는 더더욱 허약하다. 민주주의의 핵심원리인 대중의 참여, 대표, 책임의 원리가 정당을 통해 구현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정당체제는 기본적으로 사회로부터 괴리된 엘리트간 균열과 단기적 손익계산에 의한 이합집산의 결과물 이상이 아니다. 당 지도부가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당내개혁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파국적 전략선택을 결행할 수 있었던 것도 사회로부터 괴리된 당의 자율성과 당내민주주의 결여에 의한 당지도부의 폐쇄성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정당체제가 현재와 같이 보수독점적 엘리트카르텔 구조로서의 성격을 지속하는 한 파국적 정치위기의 가능성은 일상적인 위험요인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제도문제로서 사법부의 역할

이번 사태에 새로운 면이 있다면 사법부의 역할과 관련된 것이다. 한국민주주의의 운명은 이제 헌법재판소 판사들의 양식 즉 “법리적 판단”에 의존하게 되었다. 절차의 순서로 볼 때, 탄핵의 첫출발은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한 선관위가 대통령의 정치행위를 선거법 위반으로 결정한 것으로부터 왔다. 그들은 “대통령은 공무원”이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한다고 판결하였다. 이와 같은 협애한 해석은, 그 자체가 합법적이냐 아니냐를 떠나 현행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직의 역할과도, 그리고 파당성을 그 본질로 하고 있는 정당정치의 원리와도, 그럼으로써 민주주의의 원리와도 상치한다.
탄핵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탄핵을 정당화하는 헌재의 평결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헌재의 결정에 우리는 어느 정도의 권위를 부여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헌재가 의회의 결정을 번복하는 결정을 내린다고 해서 사태가 종결될 수 있을까? 헌재에 의해 ‘구제된’ 대통령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한국민주주의의 운명이 9인의 판사들의 평결에 맡겨지게 되기 이전까지 많은 국민들은 헌재가 이런 권한을 갖는지에 대해 알지 못했다. 또한 헌재 위원들은 누구인지, 얼마나 민주주의가치를 준봉하는지도 이제야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었다. 하나의 법과 그 평결이 민주적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형식적 절차적 정당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와 규범, 원리에 부응하는 내용적이고 실질적인 정당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사법부의 역할이 증대하는 것에 비례하여, 사법부의 구조가 민주화되고, 민주적 내용을 갖추어야 할 필요는 절실하게 제기되고 있다

운동과 제도

오늘의 정치위기 상황에서 한국민주주의를 위해 그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총선이 한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제도적인 차원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만약 국회의 탄핵에 의해 국민주권을 대표하는 대통령직의 운명이 사법부의 법률적 결정에만 의존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주지하듯이 우리의 경우 서유럽의 민주주의국가들처럼 의회의 내각불신임에 대해 정부가 의회해산 및 총선거 실시를 통해 주권자로서 국민의 의사를 물을 수 있는 제도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사법부의 판결만으로 해소될 수 없는 현재와 같은 정치위기에서, 위기가 악화되기 전에 대통령 탄핵에 대하여 직접 국민의 의사가 무엇인지를 물을 수 있다는 천혜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탄핵이 만들어낸 위기의 해결은 무엇이 진정한 국민의 의지인가에 대한 판단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은 한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투표라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을 통하여 국민들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다른 어떤 결정도 이보다 민주적으로 우월할 수 없다.
탄핵을 주도한 의회다수파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게임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이러저러한 제도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오늘의 위기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가장 부정적인 요인이다. 최근 보수적 언론들이 앞장서 생산해내고 있는 담론들이 보여주듯이, ‘대통령없는 체제’를 미화하거나 혹은 아예 제도적으로 대통령제를 부정하는 경향 역시 정당화될 수 없다. 현재 이러한 가능성을 억제하면서 정치위기의 악화를 막아주고 있는 것은 광범한 시민적 공분에 기초를 둔 운동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탄핵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공격한 순간 시민적 공분과 운동의 힘은 16대 국회에 대해 해체를 선언해버렸고 이로써 16대 국회의 권능은 도덕적으로 종식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는 입법권의 행사를 통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국회의 권한과 자격이 그 힘의 원천으로부터 부정된 상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민주화이후 그동안 정치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가치와 관점은 보수적인 주류언론이 주도하는 반정치주의 내지는 탈정치화의 담론에 의해 주도되어왔다. ‘정치가 문제다, 정치는 무능하고 썩었다’ 라는 인식의 확장은 모든 정치적 문제에 대한 해결자를 정치의 영역 밖으로부터 찾고자 하는 사회심리를 부추겼다. 그간 시민운동이 이러한 지배적 가치를 선봉에서 강조하고 실천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시민운동의 입장에서 말할 때 이번 탄핵위기를 기존 운동의 한계를 벗어나는 전기로 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오늘날의 탄핵위기는 단순히 야당의 무모한 선택에 기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제도의 결함과도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총선이후 새로운 국회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에 부합하고 시민적 합의에 기초한 대안들을 만들어내는데 진력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일정한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새로운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수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대의정치의 가장 추악한 측면을 지금 목도하고 있다.
친구가 우스갯소리로 한 말처럼 나치가 민주적인 절차로 정권을 획득한 그것과 이 곳의 현재 모습이 어찌 다르다 할 수 있겠는가?
현대 민주주의 속에 숨은 히스테리가 폭발하는 것만 같다.
이 상황에 정상적일 수 있는가?

1968년 1월 21일 북한에서 남파한 무장공비 31명은 청와대근처까지 접근했다가 단 한 명을 남기고 전원 몰살당했다. 살아남은 무장공비 김신조는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나는 북조선 1240부대 소속이며,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 모든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중앙 정보부는 북한에 “이 치욕을 갚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북한에서 내려보낸 것과 똑같은 숫자의 31명을 선발해서 ‘김일성 주석궁에 침투시켜 모가지를 따오는’ 계획을 세웠다.

공식 부대명은 공군 7069부대 소속 2325전대 209파견대, 하지만 1968년 4월에 만들어져 ‘684부대’라고 알려진 특수부대를 만들었다. 이 부대는 사형수와 무기수, 혹은 중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로 구성해 그들에게 “작전 성공 시 모든 형벌 및 전과기록을 말소하고 새로운 삶을 정부가 보장한다”고 약속하였다. 그들의 훈련은 실미도에서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그리고 끔찍한 훈련은 그들을 고작 3개월만에 ‘김일성 목을 따올 수 있는’ 부대로 변모시켰다. 그러나 작전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박정희 정부는 평화통일을 내세웠고, 이제 684부대는 무의미해졌다. 그렇게 3년 4개월을 기다렸다.

김일성 모가지 따러간다던 그들

정부는 부담스러워진 684부대를 ‘말소’시키려고 했고, 684부대원들은 그 결정이 부당하다는 것을 하소연하기 위해서 실미도를 벗어나 전원 청와대로 향했다. 그들은 인천에 내리자마자 버스를 탈취해서 청와대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을 가로  막고 나선 군부대에 의해서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대낮 총격교전 끝에 전원 자폭하였다. 1971년 오후 2시 25분의 일이다. 그리고 여기서 살아남은 4명도 그 이듬해 3월 10일 사형집행 하였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실미도 사건이다.

강우석의 열 번째 영화 「실미도」는 그냥 거두절미하고 북한의 1240부대가 청와대를 눈 앞 에 두고 전멸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남한의 684부대가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대낮에 자폭하는 것으로 끝난다. 거의 기록이 남겨져있지 않은 이 묻혀진 역사 속의 사건을 다루면서 인물들은 모두들 하나의 결론만을 향하여 달려간다. 그들은 집단의 결론을 따르고, 그 결론에 의해 운명을 결정한다. 아무도 여기서 피해가지 못한다. 거기서 선택은 운명을 받아들이고 죽을 것인지, 아니면 운명에 저항하며 죽을 것인지 사이의 차이뿐이다. 그 선택은 신기하게도 31명의 684대원들도 그러하지만, 악역을 떠맡고 역사의 그 자리에서 그들의 운명을 관장한 것처럼 보이는 중앙정보부의 간부들도 마치 사후적으로 역사를 승인하듯이 오직 그들의 죽음에만 몰두한다. 여기에는 그 어떤 협상도 없으며, 마치 역사를 받아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저 상투적으로 말한다면 강우석은 여기에 또 다른 드라마가 개입하기를 원치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그 목표는 결국 허망한 전원 자폭이다.

이 영화를 그저 주어진 대로 보면 별다른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너무 명백해 보인다. 31명은 범죄자들이었고, 사면을 대가로 지옥과 같은 훈련을 견뎌낸다. 하지만 그들은 역사의 결정에 따라 ‘모두 죽는다’. 실미도 사건은 그 이야기만으로도 듣는 사람을 슬프게 만든다. 그건 박정희 시대의 모든 사건이 그러한 것처럼, 혹은 전두환이나 노태우 정권의 저 비도덕적이고 반인간적인 대부분의 사건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냉전 이데올로기 아래 분단의 이름으로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희생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31명의 무의미한 죽음을 다룬 것만으로도 감동적일 것이다. 별다른 감상적인 드라마를 끌어들이지 않은 이 영화는 역사에 대한 고발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는 그 반대로 역사를 끌어들인 스펙터클처럼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누가 찍어도 슬픈 것은 영화 때문이 아니라 역사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영화는 생각할수록 괴이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이 영화가 어설프게도 그 모든 인물들이 피와 살을 얻지 못한 채 그저 역사의 인형처럼 움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적으로만 말한다면 그 누구도 역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그저 사건 주변만을 빙빙 맴돈다는 생각을 마지막 순간까지 버리지 못하게 만든다. 그것은 강우석의 잘못이다. 하지만 정말 괴이한 점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실미도」는 이미 벌어진 사건을 다시 구성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를 사후적으로 승인해야만 한다. 그런데 여기서 역사를 올바르게 구성했냐고 물어보는 것은 사이비 논쟁이다. 올바른 질문은 그 역사를 성립시키기 위해서 만들어낸 허구가 정당하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사건주변만을 맴도는 역사의 주인공들

강우석은 처음에는 단도직입적으로 사건을 찍으면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보는 것은 훈련과 배신, 그리고 죽음이다. 수많은 등장인물에도 불구하고 신기할 정도로 이야기는 단순하고, 대부분의 인물들은 그 배경을 알 수가 없다. 잘못은 저질러졌으며, 그것은 결국 잘못 수습되어진다. 그걸 다루면 된다. 그러나 아무리 단순해져도 피할 수 없는 함정이 생겨난다. 자기가 만들어낸 인물과 자기가 다루어야 할 사건을 주어진 역사 안에서 통일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역사 안의 사건은 언제나 매우 불균질하며, 현실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은 복합적인 모순을 끌어들인다. 그걸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건이 벌어질 때 거기에는 언제나 이데올로기가 스며들기 마련이며, 그것을 사건으로 성립시키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 환상이라는 버팀목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첫 장면. 깡패로 살아가는 강인찬(설경구)는 청와대에 김신조의 1240부대가 침투하던 날 횟칼로 상대편 조폭 두목의 배를 쑤신다. 이 장면은 김신조의 부대와 강인찬의 칼질을 교차 편집해서 마치 김신조의 부대가 청와대에 들이닥쳐 박정희의 ‘배떼기를 쑤시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니까 영화적으로는 이미 죽인 것이기 때문에 강인찬의 목적은 이미 달성되었거나, 처음부터 달성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강인찬은 사형 선고를 받고, 그런 다음 684부대장 최재현 준위(안성기)가 찾아와 “나를 위해서 다시 한번 칼을 잡지 않겠냐”고 묻는다. 강인찬은 왜 다시 칼을 잡고 북한에 올라가 김일성의 목을 따려는 것일까? 단지 사면 받고 잘 살기 위해서? 여기에 여전히 우리 시대를 맴돌고 있는 저 뿌리깊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기괴한 설득이 개입한다.

강인찬의 아버지는 북한에 자진 월북하였으며, 그로 인한 연좌제로 강인찬의 인생은 망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강인찬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복수심이 도착된 상태로 “김일성의 목을 따서 남한에 자신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어머니와 떳떳하게 살고 싶다”는 동기라면 그 지옥을 버틸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드라마 전체를 밀고 나간다. (정말 놀랍다! 이 영화는 1970년대 영화가 아니라 2003년에 만들어진 영화이다) 강인찬은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고 사회적으로 이미 죽은 인물이다. 죽은 아들이 정부의 부름을 받고 그 임무의 수행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약속하는 ‘제도적’ 아버지 최재현의 약속에 따라 다시 태어나는 것이 이 영화의 사실상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강인찬에게는 두 명의 아버지가 있는 것이다. 하나는 북한에 자진 월북한 아버지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에 수시로 침투하면서 임무를 수행하는 아버지이다. 그러나 아들 강인찬은 두 명의 아버지 모두로부터 배신당한다. 그래서 결국 강인찬이 “김일성의 모가지를 따러” 북한에 침투하건, 그 반대로 “우리의 존재를 알려주기 위해‘” 청와대로 향하건 그에게는 결국 같은 행위이다. 그것은 그 자신이 아버지의 배신에 대해서 맞대면하는 상징적 자살의 몸짓이다.

그러나 그 몸짓은 역사의 무대에서 아버지의 연출 아래 펼쳐지는 아들의 쇼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진정한 비극이다. 아들 강인찬에게 남은 선택은 하나 뿐이다. 그는 그의 동료들을 대상으로 이제 아버지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강인찬의 아버지, 역사의 권력은 아버지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자리에 오르려는 그에게 벌이 내려지고, 강인찬은 그의 새로운 아들(들)과 함께 자살한다.

그들은 왜 교전하지 않고 자살했나

여기서 가장 이상한 것은 이미 벌어진 사건과 허구적으로 더해진 사건을 하나로 봉합시키기 위해서 북한에 보내지기 위한 특수부대의 주인공으로 북한에 의해 상처받은 아들을 필요로 하는 저 복수심에 불타는 냉전주의 이데올로기와 박정희 시대, 독재권력의 관료적 체제에 의한 희생으로 버림받은 아들을 같은 자리에 가져다 놓은 믿음이다. 거기에는 희생의 이름 아래 두 개의 역사적 결과를 동일한 수준으로 다시 재구성하는 기괴한 봉합이 있다.

강인찬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적인 괴물이다. 왜냐하면 두 명의 아버지는 전혀 다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실미도」는 거기에 권력과 역사의 희생 아래 죽음을 받아들인 비극적 숭고함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사실은 그 믿음이 괴물인 셈이다. 그것은 역사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잘못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할 때 생겨나는 거짓 비난이다. 그것이 어쩌면 여전히 박정희의 유령이 우리 사이를 배회하는 이유일 것이다. 같은 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31명의 684부대 대원들은 역사 속에서 죽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하소연하지 못한 그들도 함께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31명의 집단 자살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 “김일성의 모가지를 따올 수”도 있었던 그들은 교전하지 않고 자살한 것일까? 자살은 명백히 소멸이 아니라 메시지이다. 더 이상한 질문. 대통령이 시간 날 때마다 조건절을 달아 그만 두겠다고 공공연하게 약속하는 지금 왜 「실미도」와 같은 대중영화가 호소력을 갖고 있다는 믿음을 안고 만들어질까? 신문을 보다가 푸념을 했다. 사건이 안 생기는 날이 하루도 없군요. 옆에 앉은 낯선 분이 대답했다. 그게 남한에서 사는 재미지요. 나는 그 사람이 31명 중의 하나라고 믿는다. 이상한 나라에서 우리는 역사 속의 살아있는 시체들과 함께 이상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

—————————————————————

필자 : 정성일

월간말 2004년 2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