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침체기다. 심신이 모두 피로하고 생활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다. 멀리 떠나거나 취하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온다. 내가 원하는 변화를 맞고 싶지만 그러지 못함에 답답하다. 이 상황에서 별 위로도 없는 토요일을 타이드랜드와 마무리한다. 테리 길리엄은 여전한 망상의 감독이다. 타이드랜드에 대해 잔혹한 어른들의 세계에 빠진 소녀의 망상 같이 설명하는 것은 진부해 보인다. 테리 길리엄의 망상은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반응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마약중독 부모에게 방치된 소녀가 고립과 기아 사이에서 허덕이다 정상적인 보살핌의 기회를 얻게 되는 이야기로만 보기에는 마지막 전환이 느닷없는 수습처럼 보일 뿐더러 영화가 끝난 후에는 질라이자 로즈의 망상만이 아련하다. 테리 길리엄의 주체할 수 없는 망상과 환영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는 근본적으로 인간 질서에 대해 불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테리 길리엄의 영화에 나오는 광기들은 그 영화가 제시하는 구체적 현실에 대한 도피나 풍자 그 이상이다. 브라질의 망상은 빅 브라더 사회에 대한 도피 이상이고 피셔 킹의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을 잊기 위한 것 이상, 12 몽키즈의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공포 이상이었다. 길리엄의 광기 내지 망상은 현실이 원인이 될지언정 그것의 결과에 머물지 않고 압도한다. 상처의 치유와 구원의 여지는 남겨둘 지언정 망상과 광기는 선명하다. 그래서 길리엄의 망상은 팀 버튼의 경쾌한 흑마술의 망상과 구분된다. 질라이자 로즈의 슬프고 숭고한 망상을 위해 건배.

질라이자 로즈 - 조델 펄랜드
질라이자 로즈 - 조델 펄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