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이 이제 2년을 채웠다.

이런, 벌써 2년이라니…라는 반응보다 이런, 아직 2년밖에…라는 반응이 온당하다.

아무튼 그 사이 내 신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 다시 기업 조직 생활을 하게 됐고 내가 타협할 수 없다고 여기던 많은 영역에 내 발을 들여 놓게 됐다.

그리고 많은 사회의 부조리와 코미디를 넘어선 비극에 대한 어떤 무감각 같은 것이 생기는 것 같다.

순간 마터스의 그것이 떠올랐다.

끊임없이 잔인한 학대를 당하면서 그 피로와 절망으로 인해 고통에 무감각해진 상태.

마터스의 여주인공의 마지막 눈빛은 내게 삶과 죽음의 비밀을 깨우친 해탈이라기보다 생명과 사물의 중간에 걸친 강요된 자아상실의 상태에 가깝게 느껴졌다.

내가 정말 공포스러웠던 것은 주체의 분열과 소멸이라는 종교적인 테마가 절대적으로 수동적인 강압에 의해 아무 의미도 없는 시도가 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외부에서 지속적인 고통이 가해짐으로써 그 고통을 인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망각하기 위해 점점 사물이 되어 가는 것이라면 그 주체를 과연 Martyr, 즉 순교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돌이켜 보면 지금 나도 그렇게 고통의 시기에 주체를 소멸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진다.

전보다 더 큰 고통의 시기를 지내면서 고통에 대한 감각을 줄여 가는 것, 나는 그것이 두렵고 고통스럽다.

누군가 내게 강릉에 가면 꼭 가 봐야 할 곳을 묻는다면 나는 초당과 보헤미안을 꼭 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커피하우스 보헤미안은 대학교 때 알게 된 커피 명가인데, 한국 커피 1세대라는 박이추 선생이 직접 볶고 내리는 드립 커피에는 어떤 고집과 자존심이 느껴진다.

예쁜 도구나 인테리어 같은 불필요한 꾸밈에 의존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제시하는 바로 그 커피 맛 때문에 나는 깊은 산 속을 찾게 된다.

그리고 초당.

나는 초당을 2004년부터 종종 찾아간다.

처음에 나는 강릉고에서 초당 허난설헌 생가로 가는 그 소박하고 조용하고 지붕 낮은 골목길이 좋아 찾았고 그 다음부터는 허난설헌의 재능의 못다함에 대한 안타까움과 우울이 자꾸 떠올라 찾게 됐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 나는 허균의 삶과 사상에 매료되어 찾는다.

그는 당대 문장가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 신분 제도와 빈부 격차 해소 등 사회 변혁을 꿈꾼 혁명가였다.

서자였지만 뛰어난 문인이었던 이달을 첫 스승으로 맞아 문제의식에 눈을 떴고 폭력형명마저도 불사할 정도로 변혁을 갈구했다.

평생을 서자들과 어울렸고 호민론을 주축으로 백성만이 주인이라는 사상을 일갈했다.

당연히 그의 삶은 창창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는 홍길동전 이상으로 제대로 평가되고 있지 않는 듯하다.

허균의 사상이 대중적으로도 온전하게 알려지고 평가할 수 있는 때가 온다면 그 때가 그나마 지금보다는 나아진 시대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나는 강릉에 갈 때마다 초당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에 들러 그의 갈구와 울분이 지금 역사에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느껴 본다.

어쩌면 허균과 허난설헌은 뜻한 바를 이룰 수 없는 시대의 멜랑콜리를 품은 남매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오랜만에 가 봐야지 항상 생각하던 두 곳을 지난 주말에 허겁지겁 갔다 왔다.

핑계만 만들면 언제든 기꺼이 갈 수 있는 나의 강릉 반복 코스.

어제 밤에 ‘셜록 홈즈’를 봤는데 어째 저번에 본 ‘락큰롤라’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스내치를 봤을 때처럼 짜릿한 카운터 펀치의 느낌이 없다는 거다.
아니면 이미 그 펀치에 내성이 생긴 걸지도.
관객을 정신 없이 코너로 몰아 넣는 복잡한 인물 관계와 이야기는 미스테리와 쉼 없는 컷 횟수에 흔적으로만 남은 느낌.
가이 리치의 영화는 항상 신나는 무언가를 기대하게 하지만 이제는 그 기대를 채워 주지 못하는구나.
그래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옆 좌석 아가씨들이 귀엽다를 연발할 정도로 제 2의 전성기를 활짝 열어 젖히고 있고,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거대한 교량 건설 현장 허공에 속임수 투성이 중세적 인물 블랙우드 경이 교수된 채 매달린 마지막 장면은 꽤 괜찮다.
그런데 맨 앞에서 봤더니 눈이 너무 아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