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화해하지 않는 시대…
죄책감을 거세당한 시대,
자신의 죄를 돌아보지 않는 인간.
이창동은 지금껏 우리의 죄에 천착해 왔나 보다.
먹여 살리고 먹고 살기 위해 짓밟고 배신하는 생존형 죄,
군대가 시민을 학살하는 국가적 죄,
편견이 진심을 망가뜨리는 사회적 죄,
유괴하고 성폭행하는 범죄,
그리고 신이 자신을 용서했다고 여기는 오만한 죄…
백발의 젤 소미나 양미자는 이 죄들에 대해 몸을 한껏 낮추고 정중히 용서를 구하는 것이야말로 시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작년에 간 부산영화제, 올라오기 전 나는 일행들과 해운대 어디쯤에서 복국을 먹었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복국이라는 음식을 먹었다.

그 식당에서 나는 문소리 장준환 부부가 복국을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작년 부산영화제에 내려가서 보게 된 첫번째이자 유일한 영화인들이었다.
그리고 어제 밤 본 하하하에서 문소리와 인물들은 또 복국을 먹고 있었다.
홍상수의 여느 영화처럼 온갖 사건과 인물, 장소와 시간이 반복되는 가운데 나는 현실과 영화가 내 앞에서 반복되고 겹치는 걸 경험하면서 벌벌 떨었다.
그리고 김상경과 문소리가 모텔 방으로 들어간 후에도 이어지던 모텔 복도의 빈자리 숏, 느닷없이 옆 호실 문이 덜컥 열렸다 닫히던 그 장면이 생각나 더욱 ㅎㄷㄷ하다.
그 아무도 드나들지 않고 말없이 닫혔던 문 사이로 유령이라도 오고 간 것일까?
ㄷㄷㄷ
“그 장면요 잘 보면 열린 문 아래로 수박껍질만 슬쩍 내놓고 다시 닫히는 거예요. 옆방이 예지원 유준상 방이라는 거죠. (하하하)” – satii / @ramooh
이랬던 거였군 ㅡ.ㅡ;

추가 : 더욱 ㄷㄷㄷ한 것은 위로 받으러 간 통영에서 엄마한테 종아리나 맞고 울면서 돌아왔다는 것. 세상은 찌질한 인간들을 위로하지 않는다…

오늘은 메이데이.

19세기 말 미국에서 벌어진 5월 1일 노동자 총파업을 기념하고 세계 노동자의 연대를 다진다는 그 날이다.
노동절이 가장 자본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미국에서 있었던 노동자의 절규를 기린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오늘 세계 곳곳에서는 노동자들이 모여 갈수록 팍팍해져 가는 현실을 개선하자는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만큼 팍팍한 한국에서는 모든 것이 교묘하게 불허당하고 있지만 말이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상처, 사람들은 저마다 이를 떳떳하게 드러내고 하소연하고 해소할 권리가 있다.
사람은 상처를 둘러싸고 변화해 가는 존재다.
나는 비록 지금껏 온갖 상처를 숨기고 티 내지 않으려 노심초사하는 미련하고 비루한 인간이지만, 적어도 한국이라는 땅에서 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겪는 집단적 상처 만큼은 지금 당장 표출하고 위로받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낀다.
자본가는 갈수록 여유롭고 온화하며 세련된 인간이 되어 가고 노동자는 갈수록 불안하고 날카로울 뿐만 아니라 좁은 시야에 갇혀 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상처들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발랄함과 세련됨, 그리고 우주를 보듬어 안을 만큼의 아량이 필요하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상처를 하소연하고 행복을 상상할 수 있는 노동절이 되기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잠시 짬을 내서라도 콘서트 하나 구경하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