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작년 11월부터 신장이 급격히 나빠져 수차례 동물병원을 들락거렸는데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1월에 연두는 거의 열흘 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않고 수시로 토하기만 했다.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 혈액 검사를 해 보니 신장 관련 크레아틴 수치가 9.8까지 올라가 있었다. 신장은 손상되면 회복할 수 없고 크레아틴 정상 수치 범위가 0.6~1.8이라고 하니 사실 이 때부터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일들이 후회가 됐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혈액검사를 받아야 했고, 물을 더 많이 마실 수 있도록 내가 신경 써야 했고, 습식 사료를 더 자주 줘야 했고…

연두는 2005년 8월경 태어나 2016년 2월 9일에 사망했다. 10년 하고 6개월을 살았다. 길에서 사티를 거두어 온 후 사티의 친구로 삼기 위해 냥이네 카페에서 입양해 온 아이다. 어미는 길고양이였다. 수시로 밥을 주던 냥이네 카페의 한 회원 집에 새끼를 물고 들어왔다고 한다. 중모에 가까운 터키시 앙고라 4형제는 그렇게 세상에 살아 남았다. 냥이네 회원은 이 4형제에게 각자의 눈 색깔로 이름을 붙여 줬다. 연두는 당시 4형제 중 유일하게 이마에 검정 줄 무늬를 두르고 있었고 가장 길고 유려한 꼬리와 연두색 눈동자를 한 아이였다. 나는 연두를 입양해 와서 그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어미와 함께 했던 어릴적 기억을 이름으로 남겨 두고 싶었다. 그리고 연두의 눈은 이내 호박색이 되었다.

연두는 처음부터 병약한 아이였다. 어미가 앓던 장염이 옮은 채로 우리 집에 왔다. 오자마자 병원을 들락거렸고 사티의 텃세에도 시달렸다. 연두는 지극히 겁 많은 성격이 되었다. 죽기 전에는 검사 중 연두의 심장이 기형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오른쪽 심방과 심실 사이에 판막이 온전하지 않아 심장의 활력이 다른 아이들보다 떨어진다고 했다. 연두는 그래서 활기가 부족한 소심냥이로 살아 온 것이었다. 제 몸의 특성이 성격에 반영된 것이다.

연두는 다정한 아빠이기도 했다. 연두와 사티 사이에는 네 마리의 새끼가 있었다. 두 마리는 코숏, 두 마리는 터키시 앙고라였다. 수컷 고양이는 제 새끼를 전혀 돌보지 않는다고들 한다. 새끼에 대한 애정이 없고 심지어 물어 죽이기까지 한다고 한다. 그러나 연두는 예외였다. 제 새끼를 핥아 주고 화장실 교육까지 하는 연두를 지켜 보며 나는 고양이 연두의 예외성에 감탄했었다.

연두는 나와 10년 하고도 4개월을 같이 살았다. 그 동안 함께 산 친구가 넷 있지만 10년 동안 나와 함께 한 존재는 연두가 유일하다. 연두는 내 삼십 대를 고스란히 지켜 봤다. 그만이 오로지 혼자 있을 때의 내 삶을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내 부끄러운 모습도 연두에게는 경계를 풀고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흥미 거리였다. 그에게 나는 지켜 볼 수 있는 대상의 전부였고 먹고 살기 위해 의지해야 하는 전부였다. 동거인들은 활기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연두를 가구라고 놀렸지만 연두와 나는 가족이었다.

연두가 살아 있는 동안 더 아껴 주고 챙겨 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렇게 게으르고 무관심하며 불친절한 집사였던 나는 그러나 다시 연두가 돌아 와도 그리 할지 모른다. 미안함과 후회는 어떻게 해도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미안함과 후회의 감정이 밀려 드는 존재야말로 내게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연두야, 많이 미안하고 고맙다. 너가 아니었으면 나는 어떻게 불안의 터널 같은 삼십 대를 견딜 수 있었을까. 너는 내게 의지했겠지만 나도 너를 무척 의지했단다. 서로 의지하는 사이였던 너를 잊지 않을게. 너의 얼굴과 감촉과 소리가 그리울 거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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