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는 가끔 느낄 때가 있다
옛적에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서 정다운 반가움을 나눌라치면
그들이 지나온 삶의 궤적과 꼬마의 그것이 심하게 어긋나 있음을 느낄 때
그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 서글프고도 자연스러운 일 중에 가장 끔찍한 것은
친구의 궤적이 그려내는 조감도가 꼬마의 그것과 너무나도 어긋나
이제는 같은 말을 하여도 서로 다른 언어가 되어 상대의 귓전에서 튕겨나는 것이다
불과 몇 년의 간극만 빼고는 비슷한 궤적을 그려왔던 친구들은 그 몇 년 사이에 꼬마의 행보와 많이 달랐던지 꼬마의 말문을 막히게 하였다
친구들은 어느덧 꼬마가 싫어하는 어른의 독특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생존을 위해 제 모습을 바꾸고 세상의 발밑에서 순한 양이 되기를 요구하는 현실을 괴롭게 의식해 보려는 얼치기에게는 일찍 현실 원칙에 얽메인 친구들에게서 적지않은 불쾌감과 실망을 느끼며 자신의 정당성을 웅변하려 하지만 이내 자신에 대한 조소로 그 비겁함을 억누른다
누구는 꼬마를 아직 순진한 철부지라 하며 누구는 요상한 개똥철학을 지닌 희극인으로 바라본다
꼬마가 그것을 얼마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짊어온 삶의 무게와 앞으로 짊어질 삶의 무게 앞에서는 겸손하거나 적어도 담담할 줄 알아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육중함 앞에서 힘없이 족쇄를 차라고 함은 아무래도 탐탁치 못하다
그 족쇄는 철들어 어른으로 가는 의례이며 그 앞에서 꼬마는 순종해야 어른이 된다고 한다
꼬마는 그들 앞에서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아직 제대로 된 쓴맛을 보지 못한 꼬마가 현실에 대해 하는 말은 고단함을 체감했거나 예감하는 이들에게는 희극일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삶의 무게는 담담한 것이되 족쇄는 분연해야 할 것임을 말할 방도를 모르는 꼬마는 어른의 문턱 앞에서 얼르거나 반기는 부모와 친구들을 보면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다
그래서 꼬마는 꼬마다
친구와의 불편함을 느끼는만큼 꼬마는 어른의 길과 멀리 떨어져 있던 것이다
* CARLITO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4-24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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