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중 인물에 대한 동일시, 또는 몰입은 어떤 효과를 가질까? 그것은 극의 내부에서 작동하는 법칙, 극이 전제하고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를 관객에게 각인하는 역할을 한다. 관객은 몰입을 통해 극이 체택한 이데올로기의 폐쇄회로 안에 갇혀, 그 안에서만 합당한 질문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주고 받는다. 이데올로기는 말 그대로 폐쇄회로이다. 예술이 하나의 통일적 체계라는 생각은, 예술이 이데올로기적 완결체로 구성된다는 말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할 때 예술은 하나의 세계를 이루면서 인간의 세계와 같이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극을 예술이게끔 하는 것은 우리가 그 폐쇄회로의 형상을 감지하도록 구성하는 것이다. 작품의 폐쇄회로가 우리 몸에 기입되는 것을 억제하는 – 왜냐하면 관객은 언제나 현실 세계의 폐쇄회로를 외투삼아 살아가기 때문에 쉽사리 그것을 떨쳐내지 못하므로 – 견제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현실의 폐쇄회로와 정면대결하는 것을 그 자신이 갖추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그 극은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에서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허위 의식이 자명하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주는 악의적인 교육 장치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누군가 인생은 연극과 같다고 했던가. 그렇다. 인생은 멜로 드라마가 열어주는 맹목적인 사랑 열병 만큼이나 가상적인 이데올로기 안의 미리 짜여진 시나리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착하게 살기, 성실하게 살기, 이성과의 사랑에 충실하기라는 지침이 부와 명예, 인생의 성공을 담보해 준다는 환상은 영악하고 술수에 밝으며 언제나 상대방과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만이 돈뭉치와 성공의 권좌에 오르는 현실과 얼마나 대비되는가. 돈 아래 만인은 야만의 정글을 만들고 있는 현실에 얼마나 기만적인가. 우리는 이처럼 이데올로기의 무대 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무대 위의 배우가 연극을 구성해 가듯이 우리 삶을 우리 방식대로 구성해 갈 수도 있지 않은가. 그 때 무대는, 각본은 말 그대로의 현실과 부딪치는 충돌 작용 속에서 생성되는 새로움으로 가득찬 의식이 새겨져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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