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고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읽은 감흥이 아직 남아 있어서일까. 도넛의 구멍이 아니라 도넛을 보라던 데이빗 린치의 말이 새삼 내 어리석음을 성찰하게 만든다. 어쩌면 삶의 지침이 되어야 할 간명한 지혜의 말이다.
상태
사랑할 대상
오디오북으로 듣는 김초엽의 소설에 빠져 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들으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순수한 것 그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에 잠시 빠졌다. 순수한 평화, 순수한 평등, 순수한 자유가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을’ 안에서 데이지는 사랑할 것이 없다. 데이지는 불평등과 억압의 공간 ‘시초지’, 지구에 사랑할 것이 있다고 믿는다. 상처 받고, 문제라고 느끼고, 저항하는 존재가 그 안에서 태어난다. 오직 지옥 안에서만 사랑할 대상이 태어난다.
점잔빼는 문장
지난 주 토요일 영화 비평 읽기 수업에서는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 중 단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유운성의 블로그 포스트에서 떠오른 분개 어린 문구다. ‘점잔빼는 문장.’ 거장 감독의 권위 앞에서 자기가 품은 비판의 날을 솔직하게 벼르지 못하고 비껴 가는 평가를 비겁하다 말하는 이 표현이 단도직입적이어서 통쾌하다. 그런데 돌아서니 이 문구가 다르게도 들린다. 얼마간 이 점잔 빼는 문장에서 자유롭지 않은 비평이 있을까. 현실로 눈을 돌리면 “이게 다 무언가” 허망함에 무너질지도 모를 이 취약한 진리를 지탱하기 위해 모두가 점잖으려 노력하고 있지는 않은가. 잠시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반대로 저 신랄한 비판이, 어떤 견고한 자기 확신이 위태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점잖음을 드러낸다. 진리의 취약함에 대한 불안을 감추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