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정치학과 김세균 교수 홈페이지에서 퍼옴
HISTORY AND INTERACTION: ON THE STRUCTURALIST INTERPRETATION OF HISTORICAL MATERIALISM
– by Axel Honneth –
정치학과 박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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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이후로 루이스 알튀세 주변에 모여들었던 맑스주의 이론가 집단은 이론적, 정치적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맑스에 대한 새로운 독해 방식에 열중해 왔다. 그들은 노동운동과 관련된 전략적 문제들을 맑스 이론의 중심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에 의지하면서 명확하게 하려 했다. 고로 알튀세는 맑스 이론의 재해석을 통하여 실제의 정치적 문제들을 처리하려는데 충실했으며 이러한 알튀세의 비판적 독해 방식은 광범위하고 위력적인 것이었다. 알튀세 학파에 의해서 주어진 맑시즘은 그러므로 전통적인 맑스 이론에 대항하는 획기적 독해방식이었다. (알튀세의) 구조주의적 맑시즘은 경제주의적 맑시즘과 실천 철학적 비판이라는 상식적인 가정들을 대체하는 것이었다. 알튀세적 프로그램의 정치적 구성요소는 맑시즘 이론의 이론적, 전략적 실패를 지시하는 것이었으며, 그럼으로써 간접적으로는 그들을 현대의 전략적 토론에 적절하게 만든는 것이었다. 알튀세는 맑시즘의 역사적 실패의 핵심이 되는 이론적 실수가 항상 노동운동의 전략적 조직적 실수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확신했다. 결과적으로 알튀세주의자들은 정통 레닌주의적 정치와 연계를 형성하려고 시도했는데, 그것은 노동운동의 좌파도 우파도 아니며, 다시말해 그것은 사회민주주의의 정치관과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사이에 놓였있는 어떤 것이었다.
알튀세주의자들의 정치관은 맑시즘에 대한 그들 해석의 전제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나는 이하의 논의를 그들의 자기관(self-conception)에 대한 이론적 측면에 국한시키고자 한다. 나의 관심은 주로 {자본론 독해(Reading Capital)}에 있어서 역사이론(the theroy of history)의 체계적 발달에 있는데, 그속에서 알튀세 학파는 사적 유물론에 대한 구조주의적 재해석에 기초한 구조주의적 맑시즘의 프로그램을 인식하고 실행하려 한다.
I
알튀세의 서구 유럽 맑시즘 논의에 대한 구조주의적 재해석의 중요성은 그것의 주된 목적, 즉 구조주의적 사고 모델의 도움을 받아서 맑스주의자들의 핵심적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던 사실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알튀세 학파에 의해서 주어진 맑시즘의 재해석은 두가지의 길을 형성하면서 나타나는데, 그것은 구조주의적 이론 영역의 확장과 전통적 맑스에 있어서 일부분에 대한 자기 성찰이다.
구조주의적 맑시즘(structural Marxism)을 사회과학적 구조주의(social-scientific structuralism)과 떼어놓으려는 잦은 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둘은 기본적인 방법론적 자세를 공유하는데, 이는 구조주의 언어학의 모델로부터 연유된 것이다. 언어에 대한 구조주의적 분석이 그것의 방법론적 참고점들을 실제적 언어 발화(parole)와 언어학적 규칙 체계(langue)를 구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듯이 사회과학적 구조주의 역시 사건들의 경험적 맥락과 그 맥락을 결정하는 심층구조의 구별에 기반하고 있다. 알튀세에 의해서 기초된 구조주의적 맑스주의는 이런식으로 확립된 기존의 방법론적 개념에 대담하고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알튀세는 구조주의의 대상영역(object-domain)을 문화 상징적 매개의 영역을 넘어서서, 즉 언어학적으로 구조화된 표현들을 넘어서서 그것을 확장시킨다. 이제 그는 사회 체계내 여러 형태의 조직들 그 자체또한 심층구조들로부터 연유된다고 본다.
사회과학적 구조주의와 구조주의적 맑시즘이 공유하는 두 번째 특징은 ‘주체의 탈중심성(the decentering of the subject)’이다. 대상 영역은 이제 우선 특정 형태의 주관성(subjectivity)을 구성하는 규칙-체계(rule-system)가 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기초적인 이론적 입장들은 본래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인식론적 주체의 오만에 대항해서 형성되었다. 즉 본래의 의도는 전체 사회의 연결관계를 객관화(objectivation)된 것, 즉 그안에서 초월적 의식이 그 자신을 외부화시킨 것으로 보는 현상학적 시도를 비판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구조주의자들식 비판의 철저함은 그 자신의 자신감과는 반비례하는 것이었다. 구조주의적 맑시즘에 있어서 주체의 탈중심성은 현상학적 초월주의를 채용하려는 맑스주의자들에 대항해서 제시되었을 뿐만아니라 싫든 좋든 실존주의적, 인류학적 그리고 실천-철학적(parxis-philosophical) 맑시즘 형태에 대항해서도 제시되었다.
마지막으로 구조주의적 맑시즘은 사회과학적 구조주의로부터 역사(history)의 개념을 채용하는데, 그 개념은 필연적으로 ‘주체의 탈중심화’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구조주의가 상징적 형태라는 역사적 연속성, 혹은 헤게모니적 구조를 불변하는 규칙체계의 연속으로 환원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역사적 맥락은 더 이상 주체의 단일적인 업적으로서 보증될 수 없는 것이다. 역사 그 자체의 범주는 이제 불연속적으로, 그렇지만 통합적으로 구조화되고, 단지 서로서로를 뒤따르는 규칙체계들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이것은 구조주의적 맑시즘이 맑스의 고전적인 해석을 비판함으로써 옹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알튀세와 그의 동료들은 이러한 구조주의적 역사 개념을 가지고서 역사적 유물론의 전통적 개념들의 약점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역사주의(historicism)’ 비판에서 그들은 ‘역사’의 잘못된 개념에 기초한 맑스 해석들을 예증하고 있다.
역사적 유물론의 구조주의적 해석에서 상당히 결정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역사주의’라는 범주는 역사 개념에 대한 결과물들과 더불어 구조주의적 ‘주체의 탈중심화’를 사고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역사주의에서는 ‘사회 구조의 총체성에 있어서의 각기 다른 수준들, 그들간의 관계와 사회라는 창조적 주체, 역사의 일직선적인 원칙들에 의한 그들의 생물학적인 구성에 의해서 설명되어진다. (발제자주: 역사주의 -사회를 단순히 순환적인 ‘표현적 총체성’으로 간주하게 하고, 역사를 동질적인 일직선적 시간의 흐름으로 생각하게 하며, 철학을 역사과정에 대한 하나의 자의식으로 여기게 하고, 계급투쟁을 집단적 ‘주체’의 싸움으로, 또한 자본주의를 본질적으로 소외에 의해 규정되는 세계로 만들고, 그리고 공산주의를 소외를 극복한 진정한 휴머니즘의 상태로 쉽사리 생각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 루이 알튀세, Reading Capital, p.119-43: 여기서는 페리 앤더슨, {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인용을 재인용함)
알튀세는 두가지의 가장 두드러진 형태의 전통적 맑시주의를 이런식으로 재구성하는데, 그것은 ‘인간주의’와 ‘경제주의’다. 경제주의와 인간주의, 또는 알튀세의 정치적 공식화를 빌어서 말하자면 스탈린주의와 그에대한 비판자들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실체(reality)에 대한 다른 영역들을 중심의 ‘표현들’로 해석하기 위해서 그들은 역사적 과정을 도구적 혹은 인류학적 중심으로 환원시키려는 이론적 야망을 공유한다. 그렇다면 이제 알튀세가 말하는 역사주의의 암묵적인 전제들에 대해서 간단히 재구성해 보도록 하겠다.
II
알튀세는 그의 연구에서 ‘역사주의’라는 개념을 매우 광범위하게 확장시킴으로써 그것은 결국 모든 역사 철학을 포함하는 것이 되었다. 따라서 맑시주의적 역사주의라는 표제는 역사의 자기 발전적 중심의 가정으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종류의 맑시즘에 전치된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어느정도 역사 철학의 기초에 대한 서독인들의 논의와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가지의 이론적으로 구분되는 도전들이 현대의 역사 개념이 가지고 있는 범주적 함의에 대해 제기되었다. 동시에 이러한 함의들은 알튀세에 의해 도전받았던 맑스주의자들의 것과 유사한 것이다. 첫 번째의 도전은 Reinhart Koselleck의 개념적 역사를 뒤따라서 제기되었는데, 그것은 단일한 역사 범주(the category of ‘history’ in the singular)의 사회-역사적 전제조건들을 추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의 도전은 분석적 역사철학(Danto)으로부터 온 것으로 그것은 연속성이 역사의 현대적 이해로 돌려지는 방식에 대한 인식론적 탐구로 구성된다. 이러한 종류의 주장들은 역시 알튀세에게서도 발견된다.
Koselleck: 프랑스 혁명 시기까지 개별 역사들의 집합체로서의 역사적 사건들로 언급되었던 Geschichte(stories/ histories)라는 복수 형태의 단어는 현대의 역사적 경험에서 Geschichte(story/ history)라는 집합적 단일 명사라는 형태로 대치되었다. 왜냐하면 혁명 시기동안 진보와 역사의 유일성(uniqueness)에 대한 잠재력이 쉽게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용어상의 변이는 행동의 실질적 통일이라는 이론적 허구를 초래하게 되며, 이것은 역사 과정에서 역사적 사건들간의 관계를 보증하게 된다. 이러한 부르조아적 역사 철학의 기본적 가정은 역사적 거시-주체(macro-subject: 예를들어 민중, 국가. 혹은 종 species)를 차용한 것이다. 역사는 이제 이러한 거시 주체들의 자기 발전 과정으로서 이해될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가 진보로서 제시될수 있는 배경적 조건을 제공하는 것은 역사 과정의 추상적 경험이라기 보다는 생산성의 영원한 증가를 겨냥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체제인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알튀세가 역사주의적 맑스주의는 역사철학과 반드시 조화롭게 어울린다는 것을 보여주려 할 때 나타난다. 존 루이스와의 논쟁에 있어서 그는 역사를 통제하는 거시 주체를 상정하는데 있어서 혁명적 부르조아지들은 행동의 이성적 주체로서의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재주조한다고 주장한다. 알튀세는 부르조아 혁명의 정치적 군집이 해산됨에 따라 그것의 역사 개념의 이론적 토대(즉, 행동의 보편적 중심)또한 사라진다고 결론짓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계급의식으로서 혹은 실질적으로 생산력으로서 거시 주체를 전제로한 현대의 역사 개념을 가지고 있는 역사적 유물론들은 전통적 맑시즘에서 부르조아 취향을 가진것으로서만 간주될 수 있을뿐이다. 알튀세는 ‘경제주의’와 ‘인간주의’가 정치적으로 권위적인 행동의 통일을 각각의 역사가 할당되는 중심에서 찾으려하는 이데올로기적 야심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H.M. Baumgartner’s work of A.C. Danto: 바움가트너는 단토의 연구에 비추어, 역사 철학에 있어서 연속성의 개념에대한 철학적 재구성을 산출했다. 그는 인식 주체의 통일적 성취로서 역사의 연속성을 사고하려는 후기 헤겔주의자들의 시도가 역사는 의미의 객관적 맥락을 제공한다는 존재론적 전제에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한다. 바움가트너는 그의 분석으로부터 약간 급진적인 결론을 이끌어낸다: ‘만약 역사의 연속성이란 것이 계속적(continual)인 변화의 차분한 확실성도 아니고 사건들의 연결을 만드는 작업도 아니라면 역사 일반은 과정으로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오직 의식들의 현상으로서만 이해되어져야 한다.’ 바움가트너는 더이상 연속성을 역사적 대상 영역의 특징으로 평가하지 않고, 모든 역사적 명제들의 단순한 형식적 원칙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바움가트너의 주장과 알튀세의 역사주의 비판의 직접적인 연결(path)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구조주의적 맑스주의는 역사적 연속성의 개념을 거부하고 있다면, 또한 그것이 바움가트너의 초월적인 철학적 해결을 피하려 하고 있다면, 그(바움가트너)의 존재론적 연속성 비판으로부터 우리는 어떠한 이론적 통로가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에 의해 취해질수 있는가를 보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바움가트너와 같이 알튀세는 존재론적 전제로서 역사적 연속성 개념을 가지고 있는 역사 개념들을 비판하고 있다. 알튀세는 적절하게 이러한 경향을 가지고 있는 전통적 맑시즘의 특징적인 약점들을 이해하고 있다. 역사에 대한 형이상학적 취향은 헤겔적 맑스주의 전통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 개념의 몰역사화(dehistoricization)의 형태를 가정하고 있다. 제2 인터내셔널의 전통에 있어서 역사에 대한 형이상학적 취향은 역사에 대한 경제주의적 이데올로기 형태를 가정하고 있다. 요컨대 역사는 자율적인 진보로서 이해될 수 있으며, 그것의 추동력은 생산기술의 발전인 것이다. 구조주의적 맑스주의는 이러한 이론적 전제들에 대하여 반대한다. 그러나 바움가트너가 역사의 연속성을 방법론적 경향으로서 독해하고 있는 반면, 알튀세는 그것을 존재론적으로 불연선속성의 개념으로 대치시킨다. 이때 역사는 복수가 되며, 복잡한 일련의 완전한, 그러나 내부적으로 구별되는 동시성인들인 것이다.
그러나 알튀세의 두 개념들(불연속성과 복수성)은 모두 명백히 단일한 전제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즉, 그들은 역사적 연속성이라는 개념이 역사 과정에 대해 내부적으로 옹호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연속성은 항상 모든 역사적 사건들의 존재론적 연결관계로서 전제될 필요는 없으며, 역사적 연속선상에서 배태된(embedded) 역사적 사건들의 사회적 실천 맥락에서 객관적으로 토대가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역사의 과정이란 사건들의 혼란의 장이나 규칙체계들의 불연속적인 흐름이 아니라 그보다는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노출되는 구속력있는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구성은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에서 성취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역사주의’의 한계들은 또한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의 한계들인 것이다.
III
맑스는 다른 많은 역사들의 단일한 세계사(world-history)로의 통합을 그 자체로서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했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세계사는 지방의 생산적 공동체들이 서로서로 맞물려 들어가는 과정의 결과로서 주장되며, 그들의 증가하는 시장 의존에 의하여, 그리고 마침내는 실제적인 관계의 복합체로서 세계 시장안에서 통합되는 것이다. 역사의 세계사로의 이러한 변형은 전적으로 물질적인 것이다. 역사의 통일성은 역사적 거시주체가 되는 것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개별 역사들의 역사적 관계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러나 알튀세는 이러한 계통의 맑스적 사고를 추구할 수조차 없었는데, 그것은 그 자신의 역사주의의 비판에 대한 이론적 전제조건들(세계사의 연속성 개념은 오직 형이상학적 역사의 허구로서만 이해될수 있으므로)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알튀세는 맑스의 작업을 전과학적인 단계와 과학적으로 성숙한 단계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알튀세는 맑스 이론의 후기-역사주의 단계로부터 역사주의를 구별해 내야만 했다. 알튀세에게 있어서 맑스 주장의 역사주의적 요소들은 정치적 영역들과 사회-경제적 현상들을 인간 본질의 소외로서 취급하기 위해 다시 인류학적 특징으로 언급하게 되는 것들이다.
{자본론 독해}에서 알튀세는 헤겔적 전통의 맑시즘에서 사용하는 총체성의 개념(표현적 총체성)에 반대한다. 이러한 지적 전통에서는 모든 사회적 외양들이 집중적으로 역사적인 기질로 보여질수 있는 반면,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에서는 탈중심화된 통일로서의 사회적 총체성(구조적 총체성)을 생각한다. 즉, 알튀세는 이러한 구조적 총체성 이론으로서 역사적 유물론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는 이러한 구조적 총체성의 기본적 형태를 맑스의 생산양식 범주에서 발견한다. 이러한 개념은 알튀세의 자본론 독해와 역사 이론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된다. 알튀세의 역사 유물론은 사회학적으로는 개념을 풍부하게, 그리고 역사적으로는 맑스가 이미 정치경제 비판에서 발전시켰던 개념을 일반화기키고자 하는 것이다. 알튀세 학파의 작업은 대체로 {자본}의 개념적 틀과 방법론적 정교함으로부터 일반적 역사 이론을 추정하려는 시도에 해당하는 것이다.
알튀세의 ‘실천(practice)’ 범주에 대한 평가는 생산 양식 개념과 함께 중요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각 사회의 하위 체계들은 사회적으로 안정화된 형태의 실천으로 생각되어질 수 있으며, 사회적 실천이라는 일반적 규정하에 알튀세는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그리고 이론적 유형의 실천들을 구별한다. 사회체계에서 최종분석에 있어서는 주도권적 역할을 하는것은 언제나 경제적 instance이다. ‘구조적 인과성’이라는 개념은 역사주의의 형태로 상부구조에 대한 경제적 토대의 영향을 인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조주의적 형식으로서 경제적 토대는 단지 상부구조 기능을 제한할 뿐이라는 방법론적 목적을 유지하게 된다.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에서 사회체계들은 경제적 하위 체계들에 기초한 위계적 관계들의 매트릭스로 간주되는데, 그안에서 비경제적 하위 구획들은 그들의 영향력의 범위라는 조건에서만 결정되어질 뿐이다.
알튀세는 역사주의자들의 역사 개념에 대항하기 위한 또다른 예방조처로서 실천의 개념을 복수화 시키고 있다. 즉, 그는 여러 가지 형태의 독립적인 실천을 구분하는데, 이는 역사를 노동으로 환원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알튀세는 사회적 실천 그 자체를 도구적 행위, 즉 대상에 대한 체계적 노동행위로서 포착한다. 그러나 알튀세는 이점에서 더욱 심한 환원을 대가로 지불하면서 역사주의를 회피하고 있을뿐이다. 즉, 역사주의에서 사회 발전이 오직 노동을 통한 자기 객관화로서만 이해될수있다면, 알튀세에게 있어서는 모든 사회적 차원의 행위들은 도구적-객관적(instrumental-objective) 행위에 비추어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발리바르 역시 실천 범주에 대한 도구주의적 독해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의 중심적 증거를 확립하려할 때 잘 나타난다)
즉, 알튀세의 실천 개념은 환원주의를 만들고 있는데 여기서 행동 주체들은, 사회적 통합이 체계적 통합으로 다루어지도록 하기위해서, 비개인화(deindividualized)된 체계적 단위들이 된다. 알튀세가 생각하기에, 행동의 사회적 맥락은 단순히 체계적 노동 과정이 되기 때문에 그는 도구주의적 개념을 가지고서 다만 이데올로기적 실천의 기능을 설명할 수 있을뿐이다. 다소 조작 이론의 냄새를 풍기면서, 알튀세는 그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서 개인들이 정치적으로 순응주의자가 되고 기능적으로 체계의 유능한 성원으로 주조되는 사회적 재생산의 영역을 확립하고자 한다.
구조주의적 맑스주의는 그것이 {자본}의 범주적 문제틀을 만들고자 하면서, 동시에 {자본}을 역사 일반 이론이라는 원형(prototype)으로 정교화시키고자 하기때문에 이러한 개념적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원형적 역사 이론은 모든 개별적 맥락의 행동으로부터 이론적 추상화를 요구하게 된다. 맑스가 분석적으로 자본주의의 역사적 실체를 통하여 경제 체계의 내부구조까지 연구했던것과같이 역사 이론또한 ‘역사적 존재의 기본적 형태’, 즉 특정한 생산양식에 대한 구조적 총체성을 포착하고자 한다. 알튀세의 역사 이론은 맑스가 사회에 근본적인 자본의 관계로부터 자본주의의 ‘구체적 총체성’을 유추한 것과 정확히 똑같은 고찰의 형태를 그것의 방법론적 원형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역사적 기간들은 생산양식의 구조적 총체성에 대한 언급에 의하여 완전히 포착될 수는 없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통일된 역사이론이라는 분석적 문제틀로 인하여 이러한 역사이론은 소통적 과정을 주제화시킬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적 단점으로 말미암아 알튀세의 역사이론이 포착하려하는 역사적 실체는 빈궁한 실체로 남아있게 된다. 이러한 이론에서 역사적 실체는 집합적으로 경험되는 행위의 역사일뿐만아니라 오직 기능적으로 위계화된 체계의 역사로서만 존재한다.
IV
역사주의적 개념들이 역사-구성적 주체를 상정하고 있는 반면에, 알튀세는, 역사 철학을 통해서가 아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역사적 총체성에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그의 구조주의적 전제들은 근본적 가정들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생산양식’이 구조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면, 모든 역사적 발전 과정들은 내부적으로 통제된 재생산 과정들의 연속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식으로 알튀세는 전체 역사를 역사적 거시주체와 연속성을 상정할 필요없는 이론의 대상으로 전환시킬수 있다. 이러한 역사이론에서는 다양한 역사들이 접근가능할 뿐이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생산양식들은 구조적으로 그들 자신을 재생산하게 된다.
알튀세는 오직 통일된 역사만을 말하는 맑스주의와 이미 이러한 통일을 전제로한 맑스주의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양쪽의 경우에 있어서 알튀세는 모든 역사적 과정들이 거시주체의 주변에 집중된다는 개념을 비판하지만, 이러한 비판이 타당한 맑스주의는 후자의 것에 해당한다. 전자의 경우 역사의 개념은 그것을 간주관성의 위계적 관계에서 정향시키고 있기 때문에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은 무의미해진다.
알튀세는 구조적 가능성에의한 역사의 실제 경로를 인실할수 있을뿐 역사적 실체로서 사건들의 구체적인 물질적 설명을 제공할 수는 없다. 알튀세의 역사 이론은 구조적으로 해석된 사회적 구조들의 기능적 경향들이 오직 알튀세가 배제하고 있는 상호작용적 역사적 주체들의 실천들을 통하여 실제적 역사적 발생으로 전활될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방법론적으로 상호적(interactive) 관계로부터 사회적 기능을 고립시키고 있기 때문에 구조주의적 역사이론은 구어의 실천적 맥락으로부터 언어학적 규칙체계를 구분했던 구조주의적 언어학이 직면했던것과 같이 분석적 제한들을 직면하게 된다.
구조주의적 역사이론의 체계적 개념들이 역사주의의 비판으로부터만 파생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알튀세는 자본에 대한 맑스의 과학적 분석 모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정치경제학의 구조주의적 독해는 알튀세로 하여금 구조주의의 기본적 교의들을 맑스의 역사이론 속으로 바꾸어 넣게된다. 이것은 자본 분석의 분석적 틀이 재생산이라는 자본주의 과정에 있어서의 초개인적이고 기능적인 매커니즘과 전체적으로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역사이론이 그 자신을 범주적으로 생산양식의 구조적 요소에 국한시킬수 있도록 제한한 것은 맑스의 자본 분석의 범주적 문제틀이 재생산의 기본 요소들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들어서면서, {자본}의 분석 방법을 명확하게 하려는 여러 다른 시도들이 맑스적 이론의 역사적 내용(content)에 주목해오고 있다. 알튀세의 독해방식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이러한 작업들은 그들의 관심을 맑스가 자본주의에대한 체계적 비판을 위해서 헤겔의 {논리학}을 이용했다는 이론적 전제조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알튀세와 그의 동료들은 전체적인 역사적 실체를 상호작용의 관계와는 독립적인 재생산의 과정으로서만 인식할 수 있을뿐이다. 맑스는 같은 용어로 역사적 실체를 묘사하고 있긴하지만, 그에 있어서 이것은 오직 자본주의적 조건하에있는 사호적 관계들의 묘사일뿐이다. 이러한 알튀세 학파의 암묵적인 이론의 변형은 그들로 하여금 구조주의 이론에 기초하여 역사적 유물론을 재구성하게 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한 이론은 무엇보다도 역사적 실체로서 관계들의 사회적 틀을 구성하는 행위의 소통적 차원을 차단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맑스의 추상화와 역사적으로 중립적인 이론적 전략으로서의 역사형성 맥락을 혼동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