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 문화에 대한 한 단상
김동훈(국민대 법학과 교수) dohookim@kmu.kookmin.ac.krI.

들어가는 말

‘고시’하면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아마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신림동 고시촌의 닭장같은 공부방에서 또는 한적한 산사에서 사과궤짝을 책상삼아 도를 닦는 수험생들, ‘합격’이라고 쓰여진 머리띠를 두르고 핏발선 눈으로 수험서에 밑줄을 긋는 모습, 시험합격을 알리는 고시 잡지사의 전화벨소리 그리고 눈물과 감격, 수없는 도전에도 실패를 거듭하고 고시낭인이 되어버린 중년의 아저씨, 드디어 고시에 합격하여 검사가 되어 왕년의 집안의 원수를 갚는 드라마의 단골소재 등등.
그러나 외양상으로는 고시문화도 정보화시대에 부응하여 화려한 변신을 보여주고 있다. 며칠 전 조선일보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재미있는 배너를 보았다. 이른바 ‘인터넷 사법시험’이란 것이었다. 클릭하였더니 조선일보사가 어느 고시관련회사와 손잡고 참가비를 내는 회원을 모집하여 인터넷 상으로 사법시험 1차의 모의고사를 주관한다는 것이었다. 여러 참가비 할인제도와, 또 무슨 해외여행권 등 각종 경품까지 걸려있었고 내로라 하는 법과대학의 교수들이 그 시험의 출제위원으로 임명되어 있었다. 이를 보면서 조선일보의 발빠른 상업성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이제 정보화 시대의 총아인 인터넷에까지 떠돌게 된 사법시험이라는 고물단지의 그 부조화에 실소를 지었다.
그러나 우리의 고시문화를 문제삼는 핵심은 고시제도의 기층에 봉건적이고 신분적인 사회의 가치관이 침전되어 있다는 데 있다. 고시준비의 유일한 목적은 그 사회체제가 마련해 놓은 간판을 따는 것이다. 그 간판은 그 사회가 생산하는 한정된 재화와 권력을 노력없이 누릴 수 있다는 정당화된 수탈의 면허증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소수의 지배계급이 다수를 억누르는 체제를 존속시키는 억압과 수탈의 기제인 것이다. 또 이것은 시험제도의 준비과정을 거친 사회의 엘리트에게 그 사회의 체제를 옹호하는 기득권층의 가치관을 체화시키고 모든 변혁의 동력을 질식시킨다. 이를 위하여 수많은 선발방법의 하나에 불과한 ‘제한된’ 시험제도와 그 결과물에 대한 신화화의 작업이 덧붙여진다. 장원급제한 이도령의 금의환향의 신화가 참으로 오랫동안 우리 문화에 그늘을 드리워오지 않았던가.
오늘날 고시제도는 학벌과 함께 우리 사회의 봉건적 가치관을 지탱해주는 마지막 보루가 되고 있다. 대학입시나 고시공부 모두 그 기본적인 평가의 메커니즘은 동일선상에 있기 때문에 양자는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오직 명문대 합격만을 목표로 곁눈질 한번 안하고 달려온 시험기계들은 다시 휴식을 취할 시간도 없이 이 고시의 대열에 합류한다. 명문대 학벌취득자는 그 학벌의 기득권에 더욱 확실한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해, 비명문대생들은 마지막 패자부활전에서의 화려한 재기를 위해. 이들이 책상 앞에서 흘리는 땀방울만큼 이 땅의 민중의 눈물은 깊어가고 이들의 합격의 기쁨과 환호 뒤에 우리 사회의 퇴락의 그림자도 깊어간다.

II. 고시제도의 뿌리를 찾아

흔히 고시라 하면 단순히 시험의 동의어로서의 고시(考試)와 고등고시(高等考試)의 줄임말로서의 고시(高試)가 있는데 주로 후자의 뜻으로 쓰인다. 주로 법조인의 선발시험인 사법시험을 선두주자로 행정부의 중견공무원을 뽑는 행정고등고시, 외교관 즉 외무공무원을 선발하는 외무고등고시, 국회사무처의 간부공무원을 뽑는 입법고등고시, 법원의 중견행정공무원을 뽑는 법원행정고등고시, 지방자치 시행 이후 지방행정청의 중견공무원을 뽑는 지방행정고등고시, 그 외 기술고등고시 나아가 공인회계사시험, 변리사시험, 감정평가사시험 등 합격 후 높은 과실이 기대되는 여러 시험도 열거되고 있다. 중견공무원이라면 5급직급인 사무관을 뜻하는데 대졸자도 9급 서기보로 들어가서 평생 근무해야 6급 주사로 끝나기가 보통인 철저한 계급사회인 공무원사회에서 사무관으로 첫 출발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사법시험은 전통적으로 공무원 임용을 위한 고시보다도 조금 더 격이 높은 것으로 인식되어 왔고 그 실제적인 처우에 있어서도 – 예컨대 판·검사의 경우 별정직이기는 하지만 – 초임이 국장급이고 검찰에만도 차관급이라는 검사장이 40여명이나 우글거린다고 한다.
이러한 고시제도는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유교국가에서 천여년 동안 국가관리의 충원체제였던 과거시험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고려 광종대에 처음으로 도입되어 조선왕조가 망할 때까지 천여년 동안 그 근본골격은 거의 바뀌지 않은 채 유지되어 왔다. 과거제도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과거제도는 사회질서를 고착화시켜 사회발전의 역동성을 저해하고 기존의 가치관과 권력의 세습에 기여하는 면이 더 컸다. 그 시대의 지식인층에 있어서는 어린 시절부터 지식 습득의 목적이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험제도만으로는 정말로 정치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얻을 수 없고, 곪을 대로 곪은 기득권체제에 봉사하는 자들만을 얻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하에 중종대의 개혁가인 조광조는 과거제도를 조금 보완하는 선에서 별시(別試)의 형태로 현량과(賢良科)라고 하는 천거제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기득권층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그만 딱 한번 이 제도를 시행해보고 조광조는 역적으로 몰려 사약을 받았고 첫 현량과 합격자들은 모두 파방을 당하였다. 이후로는 과거제에 대한 어떠한 개혁도 이루어지지 못했고 조선시대는 아무런 자기혁신의 에너지를 갖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는 일제시대에 고등문관시험으로 대치되었다. 식민지 시대의 관리를 뽑는 이 시험에 출세욕에 불타는 많은 식민지 청년이 응시하였고 합격한 소수의 인재들은 판검사나 군수가 되어 영화를 누리고 일제지배의 충실한 하수인이 되었다. 이러한 제도는 해방후 그대로 이어져 50여년간 이 땅의 속칭 엘리트의 충원코스가 되었다.

III. 고시합격자들의 초라한 초상

고시합격 또는 고시패스라는 단어는 이 땅의 야망있는 젊은이들에게 꿈의 단어가 되었다. 고시합격증서는 이 사회의 유한한 권력과 재화를 놓고 다투는 현실에서 힘들이지 않고 이를 누릴 수 있는 권력 정당화의 근원이 되었다. 또 이것은 자연스럽게 고시합격과 지적 능력을 동일시하는 허구적 신화가 정착되게 하였다. 이러한 왜곡되고 허황된 엘리티즘에 빠져버린 고시합격자들이 사법부와 행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게 됨으로써 우리 사법과 행정은 비슷한 수준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매우 경직화되고 권위적으로 되고 방자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검사들은 옛날 고을의 원님처럼 피조사인에게 함부로 반말과 욕설, 때로는 폭행까지 해대기 일쑤였고 힘쓰는 부서의 고급공무원들의 목은 전부 기브스를 한 것같이 뻣뻣하였다. 판검사로서 한창 대접 받다가 40대쯤에 변호사로 개업하여 전관예우(前官禮遇)도 받고, 때로는 엄청난 성공보수도 받으며 경제적 부도 누릴 수 있었다. 공무원도 힘쓰다가 유관기업체에 이사 등으로 스카웃되어 고액의 연봉을 수령하는 등 비슷한 행태를 걸어왔다. 이런 기득권 층의 행태는 의정부 사건, 대전법조비리 사건 등 법조계 비리와 무능하고 부패한 경제관료로부터 빚어진 IMF 사태로 나타난다. 다 선량한 이 땅의 민중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사건이다.
고시에 합격하여 일단 그 신분의 매력을 느낀 자들은 평생 양지를 좇아 다니는 해바라기 성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며칠 전에는 텔레비전에서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주인공은 장애인으로서 헌법재판소장까지 역임한 김용준씨였다. 여러 존경할 만한 일화가 많이 소개되었지만 필자의 눈을 찌푸리게 한 것은 우리나라 최고의 영예로운 관직인 헌법재판소장을 역임한 사람으로서 퇴임하자마자 모 로펌의 법률고문이 되어 그리로 출근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정도로 국가에서 혜택을 입은 사람이라면 굶어죽을지라도 그런 일은 피해야 한다고 믿는다. 연금으로 생활하면서 보다 공익적인 활동을 모색해보는 사회의 지도층으로서의 품위같은 것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법조인의 말년이라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 하기는 그 이전에 역시 존경받는다던 전 대법원장도 물러나자마자 모 법률회사에 취직하지 않았던가. 어느 판사는 이러한 현상을 비꼬아 초등학교에서 정년퇴임하신 교장선생님이 그 학교 앞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구멍가게를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는데 정곡을 찌르는 비유다. 평생을 고시합격증이 가져다주는 특권에 젖어 살던 몸이라 잊혀지고, 낮고, 봉사하는 자리에 처하는 것을 모른다. 일신의 안락을 위해서라면 명예나 사회적 책무같은 것에는 아무런 가치도 두지 않는다.
또한 고시출신들은 고시출신자들끼리 여러 징표를 가지고 소그룹을 만들어 결속을 도모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고시 기수이다. 마치 군대문화를 연상케 하는 이 후진적인 문화를 볼 때마다 한없이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고시에 한번 붙으면 고시 몇 회라는 것은 마치 계급장처럼 평생을 따라다닌다. 가끔씩 인사철이 되면 언론에 보도되는 코미디같은 한바탕 어수선이 있다. 법조계에서 사시 몇 회가 검찰총장이나 대법관에 임명되면 그 기수 이전의 사람들은 다 옷을 벗는 것이다. 뭐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나. 그 중에는 계속해서 법관직을 천직으로 알고 근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적잖은데도 주위의 무언의 압력에 떠밀려 옷을 벗고 변호사의 길로 나서게 된다. 그것이 결국에는 후배판사들의 재판에 더 많은 심적 부담을 지우는 길인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봉사하는 자세로 시골의 시·군 법원에 내려가겠다는 자도 없다. 원로법조인을 임용하려던 시·군 법원은 지원자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이렇게 법조인이나 고시출신자들은 고시 몇 회니 또는 사법연수원 몇 기니 하는 각종 소모임을 만들어 수시로 만나 우의를 다지고 업무에 협력을 도모한다. 변호사, 판사, 검사 등 접촉의 통제가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할 사람들 사이에 연수원동기라는 끈이 생기고 이는 최근의 의정부나 대전의 법조비리로 나타났다. 이래저래 희생당하는 것은 학연없고 지연없는 억울한 국민들이다. 나아가 법조계 전체 또는 고시합격자들이 집단적 이기주의의 모습을 보이는 현상도 적지 않다. 어제까지만도 고시합격자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던 자들도 시험에 합격한 다음 날부터 자기의 고시합격의 간판가치의 하락을 염려해서 합격자 수를 줄여야 한다며 보수·반동으로 돌아서는 일이 다반사다. 이는 결국 간판에 대해 특권이 주어지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그 간판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의 형성과 그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맹목적이고 감정적인 집단이기주의가 발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최근에 언론에 보도된 우스운 기사를 보았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법조인 대관(大觀)’이라는 초호화양장의 사진첩이 있다. 사법시험 합격자를 기수별로 정리해 약력을 소개해 놓은 것이다. 어느 사기꾼이 이 법조인 대관에다 자기 사진을 감쪽같이 붙여놓고 사무실에 비치해 놓고 돈많은 유부녀들을 유혹해 농락했다는 3류주간지에나 나올 듯한 이야기이다. 이 두툼한 법조인 대관이라는 책자가 바로 고시제도의 신분성을 잘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이 신분의 족보에 들고자 하는 전쟁이 고시제도이고 이 족보 안에 든 자들끼리 서로서로 도와주면서 그 이익을 독점하는 것이 고시제도의 사회적 결과물이다.

IV. 고시제도와 학벌의 함수관계

결국 고시제도란 경제학적으로 보면 독점적인 지대추구(rent-seeking)행위를 가능케하는 온상이요, 사회학적으로 보면 실질보다는 간판에 의하여 지배되는 간판주의 사회를 고착화시키는 기제이다. 이런 점에서 고시는 대학입시와 매우 유사한 구조와 기능을 담당한다.
물론 고시합격간판과 학벌간판 사이에는 다소의 기능적 차이가 있기는 하다. 우선 학벌간판은 우리사회의 전 계층과 전 영역에 걸치는 포괄성을 띠고 있다. 학벌간판은 그가 우리 사회의 어느 영역에서 활동하든지 거대한 동문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의 각종 유무형의 이익을 안겨다주며 개인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부심을 한껏 고양시켜준다. 이에 비해 고시간판은 그 합격자체가 임용시험이므로 직접적인 사회적 보상으로 이어지고 주로 자기의 업무영역과 관련되어 있다. 학벌간판자들이 다시 고시간판으로 몰려드는 것도 고시간판의 직접적이고 확실한 환금성의 매력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이러한 고시제도는 보다 광범위한 학력 내지 학벌이라는 간판과 통합되어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옛날에는 고시제도가 학력과는 별도로 능력과 야망을 가진 자의 입지전적 출세의 가교역할을 해주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지금 차세대 대권후보주자로 항시 물망에 오르는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도 그 이력이 거론될 때마다 상고출신으로 고시에 합격한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사실 상고를 나와 잘 되어봐야 말단 은행원으로서 돈다발이나 세고 있어야 할 사람에게 사법시험의 존재와 그 합격은 그 인생의 웅비의 발판이 된 것이다. 또 옛날에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으나 고시패스로 변호사의 길을 걸어온 김모 변호사의 자서전은 많은 이들에게 꿈을 주었다.
또한 비록 대졸의 딱지를 달았으나 이른바 명문대, 대충 거명해서 서울대, 고·연대라는 빅쓰리에 들지 못하는 학벌을 가지고서 좌절하기 쉬운 능력있는 젊은이들에게 고시제도는 새로운 패자부활전을 치를 수 있는 희망이 되었다. 그래서 적지 않은 비명문대생들이 고시합격으로 학벌의 한계를 극복하고 공직이나 법조 등의 분야에서 자기 성취를 맛보며 살아가고 있으니 이런 점에서 고시제도가 의의가 있다고나 할까. 어느 사회저명인사는 가난한 시절의 희망없는 자신에게 대학입시의 존재는 밝은 미래의 보장을 의미했다고 말하며 그에 대한 예찬의 글을 썼다.
이것은 고시옹호론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논리일 터이다.

우리가 대학입시를 치르던 53년은 한국전의 와중이었다. 병역 보류라는 특전 때문에 의과대학은 경쟁이 더 치열했다. 거길 뚫은 것이 이른바 ‘출세’를 가능케 한 밑바탕이 되어 준 것이다. 난 이점에서 한국의 수험 경쟁이 많은 젊은이에게 코리안 드림을 이룰 수 있는 관문을 열었다고 확신하고 있다. 수험 경쟁이 없었던들 시골 두메에서 보리죽으로 겨우 연명이나 하던 나에게 어떻게 예일 대학 유학의 문이 열릴 수 있었겠나! 따지고 보면 오늘의 나의 모든 영광은 — 남들이 보기에 하찮은 것일지라도 — 수험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 코리안 드림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리 높지도 않은 곳에 있다. 조금만 열심히 뛰면 잡을 수 있다. 수험 공부가 우리에게 코리안 드림의 실현을 약속해 주고 있다.
(이시형, 『그래도 대학은 보내야지』(1997.1) 중에서)

게다가 고시제도의 문이 다소 넓어지면서 – 특히 사법시험의 경우 합격인원이 몇 년전의 300명에서 현재 700명 선을 유지하고 있음 – 고시간판과 학벌의 결합현상은 더욱 심화되어 가고있다. 즉 고시에 붙으면 그 고시자격증이 보장하는 최소한의 혜택을 누리지만 – 물론 그것도 상당한 프리미엄이지만 – 정작 그 분야의 핵심권력에 접근하기 위하여는 학벌이라는 그 내부의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서울대 출신의 독식이다. 예컨대 사법시험에 붙어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어도 일정한 고위직급에 – 법원의 경우라면 지방법원장급, 검찰이라면 검사장급 등 – 오르려면 학벌의 울타리안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년 법원이나 검찰의 인사발표 때마다 반드시 언급되는 출신학교를 분석해보라. 대략 60-70%는 서울법대출신이고 고·연대가 10-20% 차지하고 어쩌다가 기타대학출신이 하나 둘씩 끼는 형국이다. 행정부서로 가도 독점비율이 조금 떨어지기는 하지만 대동소이하다. 가장 최근의 개각발표시 장관급인사를 출신학교별로 보니 서울대, 고대, 연대의 이른바 빅쓰리 출신이 22명 장관급중 18명을 차지하고 있다. 비율로 따지면 81.8%, 이 정도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시장지배력을 남용할 위험이 있다하여 시정명령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독점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는 듯하다.
즉 고시에 붙어 법조계나 공무원사회에 발을 들여놔도 학벌이 나쁘면 일정한 선에서 좌절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예컨대 법조계에서 내로라하는 몇몇 빅 로펌에서는 오로지 서울법대 출신만으로 충원하는 것을 불문율로 하고 있다. 좋은 학벌을 가지고 고시에 붙으면 그 수재성의 재확인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저 어쩌다 고시 하나 붙었다가 되는 것이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근래에 700명선을 돌파했고 1,000명선을 향해서 가파르게 돌진하면서 그 합격증의 위세에 대한 우려가 생김에 따라 벌써부터 학벌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마담뚜들도 이제는 서울대 출신의 사법고시 합격자만 찾는다고 한다.
이 고시제도와 학벌과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제 각 대학이 고시지원사업의 최일선에 발벗고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전부터 몇몇 비명문대학에서 고시지원에 거교적인 투자를 하여 상당한 실적을 쌓아온 것은 잘 알려져있다. 그래서 명문대의 학벌을 얻을 만한 성적의 학생들이 명문의 학벌을 포기하고 바로 고시합격이라는 지름길을 택하여 성취를 이루고 학교의 명예와 사회적 영향력의 확대에 기여한 사례도 적지 않다. 사실 원색적으로 이야기하여 서울대의 비인기학과의 졸업장과 비명문대생의 사법시험합격증 중 어느 것이 간판의 시장에서 더 값이 나가는가를 생각해보라.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명문대학들도 이 고시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거대한 고시기숙사를 짓고 대규모의 특별회계를 운용하고 그 외 각종 고시지원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동문회에서 상당한 재원을 마련하여 이 고시사업을 지원한다고 한다.
이 고시지원사업으로 인하여 많은 대학들이 대학의 존재이유에 모순을 빚는 파행성에 직면하고 있다. 예컨대 1차시험에만 붙으면 학점을 그냥 줄터이니 신림동 고시촌으로 들어가라고 한다든가, 1차시험 합격자에게 상당한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든가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특히 대학예산의 상당부분이 이 고시지원사업에 투자됨에 따라 일반학생들이 실질적인 희생자가 된다고 할 수도 있다. 최근 어느 명문대에서 기숙사를 새로 완공했는데 그 중의 3분의 1 가량을 고시준비생들을 위해 배정했다고 한다. 특히 서울대의 경우에는 상당학생이 입학시 전공을 불문하고 고시공부에 투신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서울대출신 사법시험 합격자의 3분의 1 이상이 비법대생이다. 서울대생=고시생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온 캠퍼스가 고시열풍에 휩싸여 있고 중앙도서관에는 수험서와 법전이 판을 치고 있고 특히 인근의 신림동 고시촌과 상응하여 고시의 메카가 되어 있다. 서울법대도 그간 사법시험의 합격자 수에 초연한 듯 해왔으나 갈수록 서울법대 졸업생의 합격자비율이 낮아지자 지난 학기부터 학부에 아예 ‘사법시험공부방법론’이라는 강좌를 개설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어차피 고시합격이나 대학졸업장이나 단지 간판장사인 바에야 양자가 이처럼 찰떡같이 결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사법시험의 합격자수가 늘어날수록 이 고시열풍은 더욱 광범위하게 번져갈 것이고 고시준비에 있어서 학원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학은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그래서 대학은 그저 졸업장이나 따가는 형식적 기관으로 남게되고 고시준비에 몰두하는 학생들은 신림동으로 몰려간다. 이래저래 고시와 학벌의 결합은 가속화되고 있고 대학은 졸업장이나 팔아먹는 가련한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V. 고시제도를 무덤속으로 – 전망과 대안

고시제도의 개혁은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의 변환과 맞물려 있다. 이는 우리사회가 기득권자를 위한 체제유지 중심으로 가는가 아니면 개개인의 폭발적인 자기실현에 기반한 사회변혁의 길을 택하는가의 문제이다. 시험제도란 기본적으로 체제순응적인 인물을 길러내어 체제의 유지에 봉사케 하는 수단이다. 그것은 일정한 스테레오타이프 형의 인간을 만들어내고 사회를 동질화시킨다. 그것은 사회체제의 형식적·절차적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처럼 보이나 한 사회의 역동성을 갉아먹고 퇴화시키는 메커니즘이다. 동아시아 유교국가에서의 과거제도가 많은 능력있는 젊은이들의 에너지를 바늘구멍같은 과거시험준비에 소진케 함으로써 역으로 사회체제의 안정에 기여했다는 역설적인 견해도 있다. 그것이 모순에 찬 당대의 사회체제의 현상유지에는 기여했는지 모르나 결국은 시대변화의 흐름을 읽는 능력을 박탈하여 중국이 근대화의 물결에서 낙오되어 숱한 수모를 겪게된 원인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오히려 실력위주의 역동적인 체제를 유지했던 일본이 근대화의 물결에 빨리 적응하여 선두주자로 나서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일본도 근대화를 시작하면서 동경대학, 고등문관시험 등의 체제유지의 메커니즘을 도입함으로써 경직된 군국주의사회를 거쳐 경제적인 능력에 걸맞지 않는 폐쇄적인 사회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고시제도는 어떻게 변하여야 할까? 고시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사법시험제도는 한마디로 장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교육부는 당초 방침을 바꿔 법학전문대학원의 도입을 1년 늦추어 2003년부터 도입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한편에서는 이른바 사법시험법의 제정안이 국회상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것은 사법시험의 정원제 선발시험으로서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시키는 것을 골간으로 하고 약간의 말단의 것들을 조정하는 내용을 담음으로써 사실상으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무력화시키게 될 공산이 크다. 개혁에 따른 이익집단의 반발에 대하여 한 법대 교수의 비판을 들어보자.

그러나 혜택이나 이익이 국민 다수에게 돌아가지만 전략적인 위치의 소수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개혁은 전략적인 위치를 활용한 소수의 반대 때문에 실패하는 일이 많다. ….법학교육 개혁이 어려운 것은 바로 소수 법조계 인사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저항 때문이다…..
소수 법조인들이 여러가지 구실을 내세워 반대하는 진정한 이유는 법학전문대학원 체제와 함께 변호사의 수가 늘어나 종래 그들이 누려오던 엄청난 정치 경제 사회적 특권을 더이상 누릴 수 없게 되는 상황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법학대학원 체제가 변호사 수의 증가를 가져온다면 그만큼 소송수임료가 싸질 것이다. 그동안 변호사의 조력을 얻기 어려웠던 영역에서도 그들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는 혜택을 일반 국민은 누리게 될 것이다.
(최대권, <법학전문대학원제 효과 크다>, 《동아일보》, 1999.9.28)

이처럼 개혁은 어렵다. 사법시험 외에 행정·외무·지방고등고시 등도 지금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앙인사위원회는 지금 2003년 내지 2004년 도입예정으로 국가고시제도개편안을 준비하고 있는데 핵심적인 것은 1차시험과목에 이른바 공직적격성테스트(PSAT:Public Service Aptitude Test)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기본소양분야, 직무관련분야, 지식분야로 구분되어 실시되는 이 시험은 그나마 진부한 오지선다형의 객관식시험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될 수 있겠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역시 선발에 너무 비중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큰 변화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고시제도를 전면적으로 폐지하고 하급공무원에서부터 시작하여 업무능력을 보이는 자를 과감하게 발탁하여 승진시키는 제도가 바람직할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능력이 있는 자는 말직에 있을지라도 몇 달만에 요직으로 중용되기도 했다. 즉 우리 사회에 평생에 걸쳐 경쟁하고 평가받고 보상받는, 평가와 보상의 시스템과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는 우리도 퇴행적이고 소모적인 고시의 문화에 조종을 울릴 때가 되었다. 이 사회에 더 이상 ‘출세’란 없다. 오직 성실한 직업인, 능력있는 전문인, 사회에 봉사하는 품위있는 시민만이 있을 뿐이다. 최근에 교육부가 교육인적자원부로 바뀌는데 맞추어 필자가 쓴 칼럼의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사회가 다양화되고 있다고 아무리 외쳐도 고시응시율이 살인적인 것은 여전히 고시합격이 가져다주는 반대급부가 턱없이 높기 때문이다. 경제학적 용어로 합격을 통한 지대추구행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합격자수를 다소 늘리는 정도가 아니라 시험의 성격을 기본자격시험으로 바꾸어야 한다. 해당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자라면 상당수가 통과할 수 있는 시험으로서 기나긴 전문가적 수련의 출발선의 의미를 갖는 것이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선발보다 교육에 중점이 주어지는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 선발에 과도한 부담이 주어지는, 즉 합격여부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시스템은 아무리 선발방법을 개선하여도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시험을 위한 피상적인 정보다발의 암기와 답안작성기술의 습득이라는 소모적인 활동이 그 주종을 이룰 것이며 그에 따른 사교육의 번성 등 선발의 본래취지와는 전혀 다른 결과로 치닫게 된다. 이제 전문대학원의 도입이든 무엇이든, 국가의 인력관리의 차원에서 집단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획기적인 해결책의 모색이 요청된다. 인적 자원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나라에서 이러한 소모적이고 퇴행적인 인적 자원의 낭비를 방치하고서는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없다.
(<인적자원 낭비하는 고시제도>, 《중앙일보》, 2000.6.30)

고대인의 피는 시칠리아 섬에서 김진환(고대문화 편집위원) verhoyansky@hanmail.net

1. 이름값 없는 학교의 서러움

한려대학교라는 곳이 있다. 순수한 의도에 의하여 설립된 학교가 아닌지라 시설과 인원을 제대로 갖추었을 리 만무하다. 설립자는 겨우 몇 년만에 종합대학 4개와 고등학교 3개, 종합병원 2개를 일구어낸 초사이어인의 능력을 가진 이홍하라는 사람이다. 그가 지속적으로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건립하는 도중에 그가 이미 설립했던 학교의 학생과 교직원들은 실험기구 없는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강의를 해야했고 교수들은 심지어 화장실 청소까지 도맡아 해야했다. 엽기적인 일이 별로 엽기적인 것으로 인식되지 않은 것이 비일비재한 한국사회이지만 대학관련 소재에 민감한 한국사람들이 해당 학교 교수들이 자비를 들여 상경하여 거리에서 피켓시위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까닭은 나름대로 있을 터이다. 그것은 바로 ‘한려대학교’라는 이름이 한국사회에서 이름값이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이홍하 사단 휘하의 한 대학이 폐교_2 라는, 학교명령권 제도 도입 이후 처음 일어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한려대학교라는 곳이 이름값이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언론으로부터 차별을 받고 일반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부분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대학 관련 보도도 서울 중심, 그 중에서도 소위 ‘주요 대학’이라는 연원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단어로써 치장되는 몇몇 대학에 치중될 뿐이며, 기획 단계에서부터 기사의 가치 또한 예측되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딴지일보’에 한려대학교 교수협의회 측에서 지속적인 글 기고를 하여 관심을 촉구했고 몇몇 방송사에서도 이홍하와 그 똘마니들에 대한 비리를 보도하였으나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도리어 대한민국에 소재하는 수백 곳의 대학 가운데 한 곳인 서울대의 변화한 입시제도가 한 대학의 존망여부보다 더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곳이 이땅이다. 얼마 전에 일간지 중에 그래도 가장 볼만하다고 느껴지는 한겨레를 읽다가 어이가 없어 벌린 입 때문에 턱이 빠질 뻔한 일이 있었다. 9면에는 ‘명문대병 언론이 키운다’는 제하의 독자칼럼을 실어놓고서는 12면에는 2001학년도 대입전형 주요내용을 실으면서 표제로 ‘서울·연·고대 논술이 중요’라는 문구를 뽑아 둔 것이다! 독자칼럼은 독자가 자기 생각을 실은 것이니 한겨레신문사와의 편집방향과 어긋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보수 진보 가리지 않고 학력은 중요하다라는 변치 않는 진리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한려대학교가 이름값이 없다라는 이유만으로 패대기를 당하고 있는 것과 달리 고려대학교에서 벌어지는 행사나 인사 동정 등은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다 보도가 나간다. 민족고대의 자매지이자 알코올 중독자를 그 오야붕으로 모시고 있는 동아일보는 갖가지 기교와 술수를 다 부려 고대 내외에서 고대인들이 벌이는 소소한 일들을 모조리 지면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맥진하고 있으며 홍보실이 돈 몇 푼 쥐어줬는지_3 몇몇 시사주간지는 고대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읊조리고 있다. 외부의 더넘스러운 추켜세움에 상기되어서 그런 것일까. 고대생들은 자신을 찬양·고무하는 이들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도로 위에서의 광란의 질주를 불사하며 하늘을 나는 비둘기 굶어죽을까봐 살신성인과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토악질도 수시로 감행하고 있다. 보자.

2. 고연전과 4.18 뜀박질

고연전의 마지막 날 참살이길. 지나친 음주로 인하여 옴팡해진 눈을 가진 한 고대생이 썩 나서서 뭐라고 외쳐댄다. “아, 꽃뙈!” 가는 개소리 있으니 어찌 오는 쇠소리 없을손가. 즉시 주위에 있던 몇몇 놈들의 추임새가 이어진다. “어이!” 이어지는 응원 퍼레이드. 반주도 음악도 아무 것도 없는데 어쩌면 이리도 일사불란할 수 있는건지. 응원단을 방불케한다. 그런데 이 날은 응원단원이 수백명이다. 아니 참살이길에 모인 고대생들 전부가 응원단원이다. 동이족은 음주와 가무를 즐겼노라는 선인들의 말씀을 받들어 모시고자 화통 삶아먹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군무를 행하고 옵션으로 토악질과 난도질마저 보여준다. 때와 장소가 바뀌어서 여기는 미아삼거리. 날짜는 4월 18일이다. 5천명이나 되는 고대생들이 빽빽한 깃발 아래에 정연하게 줄지어 서 있다. 깃돌이들은 육교만 보일라치면 암캐를 발견한 발정난 수캐처럼 헐떡거리며 육교로 돌진하여 깃발을 휘둘러대고 자신들의 깃발을 보며 고대생들은 환호작약한다. 여기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고대생들은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하여 행사에 참여한다기보다는 그저 달리기를 통하여 많은 사람에게 자신이 고대생임을 알리고 싶어할 따름이다. 통계적으로만 보아도 고대생은 입학 가능성과 장래 가능성을 볼 때 일 퍼센트 내외에 속하는 엘리트_4 라고 하지 않는가. 물론 나는 4.18 자체를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4.18 관련 세미나나 강연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가 당일만 되면 유니폼을 정갈하게 맞춰입고 방정맞게 웃음을 흘리며 희희낙락하면서도 입으로는 4.18정신이 어쩌구 저쩌구하는 고대생들의 이율배반적 꼬라지가 시뻐보일 뿐이고,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이고 정당한 행위를 하고 있어도 그 개인이 집단에 소속되었을 때 집단의 성격이 결코 개인들의 총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부도덕적이고 퇴행적일 수 있음을 니부어의 입을 빌어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고연전에 대한 판단은 이 문구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고대와 연대. 안암골 호랑이와 신촌 독수리는 매년 고연전이라는 큰 잔치판을 벌이고 같이 어깨동무도 하고 막걸리도 먹고 우리는 영원한 맞수라고 하면서 서로의 동일신분을 재확인 한다. 그리고 위로는 서울대 신분을 공부는 조금 잘하는지 모르지만 이기적인 것들이라고 욕해가며 대항의식을 새기고, 아래로는 기타의 대학들이 감히 고연대의 반열에 들어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전의를 불태운다. – 김동훈,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중에서

이렇게 전혀 생산적이지도 못하고 의미부여의 여지도 없는 행사가 매년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고대생들의 희생정신(?) 때문이다. 참여했던 고대생들이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4.18달리기와 고연전은 고대의 홍보수단으로서 기능하며 고대생들은 홍보도우미로서 그 임무를 수행한다. 신촌 일대와 안암동과 미아리 일대에서 그렇게 오랜시간 동안 도로까지 점거하면서 고대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게다가 빨간색의 깃발을 쓰기 때문에 시각 효과가 탁월할 것이며 모두들 ‘고대’가 들어가거나 고대에 관련한 구호와 노래를 집단적으로 외치고 부르기 때문에_5 그 메아리의 반경이 또 무릇 기하이겠는가. 고대의 인지도를 높이면서 자신들이 고대에 다니고 있음을 만방에 과시하는 계기로는 그만이다. 육체적으로 피로하고 땡전 한푼 나오는 것 아님에도 만족해하며 다음을 기약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학교 측은 4.18과 고연전으로 인하여 파생하는 홍보효과를 어서 계량화하여 발표하기 바란다.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홍보실에서 ‘고대 투데이’를 발행하거나 교문 앞에 멀티비젼을 설치하여 상영하기보다는 고연전을 한번 더 하거나 4.18달리기를 상설화하는 것이 더욱 경제적이며 효과도 탁월할 것이다._6

3. 행사가 지속되는 두 가지 의미

엘리트의식의 발산 코스로 혹은 고려대학교 홍보수단으로서의 성격 외에는 어떠한 창발적인 내용을 내포하고 있지 못하는 4.18달리기와 고연전이 지속되는 양상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아직도 우리 사회가 지독한 학력·학연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요원하다는 점이다. ‘고대’라는 이름의 형식이 ‘실력’이라는 내용을 보증해줄 수 있다는 하등의 근거도 찾아낼 수 없으나 학적인 내력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고대 출신의 인사들이 정관계를 비롯한 요직에 분포하고 있어 그들의 네트워크에서 비롯되는 점성 짙은 힘은 지금 캠퍼스를 다니는 한 학부생에게까지 엘리트라는 아우라를 덧입히도록 명령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좋은 대학, 명문대라는 단어는 시설과 교육이 우수하며 훌륭한 학풍이 조성된 대학을 일컫지 않는다. 힘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 힘을 유지할 수 있는가의 여부만이 중요할 따름이다. 여염 사람들이 아무리 고대생들이 개떼와 같이 몰려다니며 민폐를 끼쳐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힘을 가질 수 있는 잠재적인 권력자이며 지배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장삼이사들은 명문대생들의 집단 움직임을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려드는, 자기최면 상태에 빠져든다. 마가레트 호텔이 퀸스 나이트 클럽을 홍보하고자 트럭에 확성기를 장착하여 요란한 뿅뿅뿅 음악을 들려주는 것과 사뭇 차이점이 없는 고대생들의 집단 달리기를 ‘이유있는 항변’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이 해학과 골계의 모습들은 고연전의 결과가 스포츠 뉴스 끝자락에 언급되는 것으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둘째는 학력·학연주의를 공고히 하는 현실태로서의 4.18달리기와 고연전을 도와주는 스폰서의 막강함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스폰서는 크게 총학생회, 학교당국, 교우회로 나눌 수 있다.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조직은 4.18달리기와 고연전을 대학의 본래적 존재의미를 재구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고하여 이름도 ‘고연 민중해방제’, ‘4.18구국대장정’ 따위로 부르면서 학우들에게 ‘놀지만 말고 생각도 해봐’라며 의식을 아우르는 장으로 이용하고자 한다. 물론 말도 안되는 일에 의미부여를 해가며 어떻게 하든 학우들의 관심을 추동해보려는 그 노력 하나는 가상하지만 실효성이 없음이 그간 다 드러난 것 아닌가. 게다가 매학기 나에게 학생회비란 명목으로 8천원을 걷어가서 그런 뜀박질 행사와 잘난척 퍼레이드에 사용한다_7 는 것을 나는 용납할 수 없으며 따라서 무궁한 분노의 에네르기로 가득한 학생회비 반환청구서를 보내도록 하겠다. 내 8천원이면 학관 라면이 무릇 몇 그릇인가. 학교 당국과 교우회는 차원이 다르다. 아마 교우회의 수뇌부들은 교우회관 누각에 올라앉아 흐뭇하게 고대생들의 집단 뜀박질을 굽어보며 호기로운 웃음마저 지어 보일 것이다. 학교당국이 형식적인 배후라면 교우회는 실질적인 스폰서로서 ‘고연전 공식 파트너’답게 돈으로 승부한다. 세기가 바뀌어 처음 치르는 고연전에 교우회는 9900여만원을 운동부와 응원단 총학생회 등에 지급하였다고 한다. 내가 의아해하는 것은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조직과 학교당국의 행동은 그나마 이해해줄 수 있겠는데 왜 교우회란 단체는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서서 매년 1억원 가까운 거액을 쥐어주고 더 못 줘서 안절부절하는가 하는 점이다. 모교와 후배들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의 발로라고 하기엔 왠지 귀가 간지럽지 않은가?

4. 교우회, 그곳을 찾아

학부생은 내재된 엘리트의식과 집단의식을 4.18달리기와 고연전 등을 계기로 하여 거리점거, 집단가무, 일탈행동의 형태로 만방에 과시했다. 그러나 졸업생들은 사회에 진출하여 있는 만큼 그런 과격한 행동은 용납받지 못할 것이며 파급반경도 한계가 있는 만큼 좀 더 세련되면서도 조직적으로 고대인의 결속과 유대를 공고히 할 연대체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 결과 교우회라는 것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교우라 불리는 졸업생들의 정신적 물질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이즈음이면 웬만한 모든 학교에 다 존재하는 동문회 중에서 왜 고대 교우회가 타겟이 되어야 하느냐는 볼멘 목소리가 나의 귀청을 울릴 법도 하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나라를 걱정하는 이들이 읽고 위안을 얻는’ 잡지인 월간조선 작년 5월호, 「대한민국의 4대 결속력 연구」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도록 하자. 고대의 연회비 납부자는 4만명이고 연세대는 1900명이라고 한다. 또한 납부자 수로만 보았을 때 고대 교우회가 가장 결속력이 강한 집단이라고 한다. 고대인들은 학부생일 때부터 엘리트의식과 학연의식으로 뇌와 가슴을 재벌질해온 사람들이 아닌가. 그리고 학부생 때의 의식을 고착화하기 위한 기관이 바로 교우회가 아니던가. 따라서 가장 심한 것부터 하나씩 잡는다는 나의 신조에 따라_8 가장 징후가 심각한 고대 교우회를 메스대에 올리게 된 것이다. 교우회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참여하는 교우회, 긍지를 갖는 교우회, 봉사하는 교우회, 모교를 돕는 교우회 이 네 가지 모토를 바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실 그렇지 못하다. 차라리 내가 앞으로 제시하는 네 가지 모토가 더 어울릴 것이다. 독자 제위께서는 다 보시고 어느 것이 더 설득력을 지니는가를 스스로 헤아려 보시기 바란다.

(1)후배들에게 해악으로 다가가는 교우회

10월 7일 토요일 본관 잔디광장. 70학번들이 입학 30주년이 되었다고 모교방문축제를 한다고 모였다. 추억이 서린 교정을 밟아가며 그리운 은사님을 뵙고 정다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미사여구로서 금박을 뿌려댄다. 행사는 천천히 그리고 식순대로 지속되었고 해가 뉘엿뉘엿 지는 그 순간 갑작스럽게 선배와 후배간의 공동 사발식을 가진다는 이야기가 사회자의 마이크를 타고 나온다. 과연 어떤 할 일 없는 것들이 토요일에 학교 나와서 저 꼰대들의 비위를 맞춰주나 싶어 재학생이라고 호명된 이들을 째려보았으나 누군지 알 수 없었다. 투덜대며 스스로의 취재능력과 짧은 인맥 풀에 대하여 개탄해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사회자가 응원단의 응원이 있겠다고 한다. 아까 술을 먹었던 애들 사이에서 천하장사 복장을 한 응원단장과 후레쉬맨 복장을 한 응원단원 몇몇이 단상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놀랄 겨를도 없이 응원이 시작되었고 단상에 오르지 못한 대부분의 응원단원들은 잔디에서 같이 흐느적거린다. 사실 고무신을 신은 응원단장과 배불뚝이 교우회 임원들이 어깨 동무를 하고 뱃노래를 부르고 있는 장면이 고대신문에 실릴 때만 하더라도 별 심각성을 가지지 못했던 나는 이번 응원단의 우정출연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귀에 맴돌기만 하던 응원단에 대한 비판_9 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응원단이 존립하는 것은 응원단 자체의 역량에 의한 것도 있지만 가장 강력한 스폰서인 교우회의 덕 때문이 아니던가. 따라서 나는 응원단을 비판하는 것도 좋지만 교우회에 대한 비판 또한 동행되어야 더 적절할 것이라고 파악한다. 결국 능구렁이같은 교우회가 어리버리한 젊은 후배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셈이다. 이 잔치에서 일부 70학번 아저씨들은 어찌 졸업생들이 재학생에 질쏘냐면서 기차를 만들어 본관 앞을 돌아다녀 주위에서 구경나온 사람들의 눈총을 샀으며 약주를 과하게 하신 몇몇 꼰대들은 1옥타브를 내리내리는 탁월한 음악성을 과시하며 애니멀 사운드를 발사하여 본관 옆의 대학원과 중도관의 재학생들을 일찍 귀가케 하는 혁혁한 전과를 기록하여 후배를 돕는다는 그들의 기상을 널리널리 드높였다.

(2)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교우회

현재 19만명에 달한다는 고대 교우들은 모두 교우회의 일원으로서 진지전과 기동전을 무리없이 수행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다음의 기사를 보도록 하자.

모교 특수대학원생 중심의 벤처동아리인 벤처타이거가 발족된 데 이어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한 벤처사업자 및 재직 교우들을 중심으로 하는 ‘고대벤처클럽’이 창립됐다..(중략)..고대벤처클럽은 벤처를 창업하거나 벤처기업에 들어가 활동하는 교우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법률자문과 투자자문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포럼을 상설화하고 해외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교우기업인과의 정보교류, 모교 산학협동프로그램 개설, 모교 발전기금 적립 등의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중략)..이와 때를 맞추어 모교는 벤처창업보육사업단을 모교 부속기관으로 설립해 창단식을 가졌다..(후략).. – 2000년 7월호 고대교우회보(360호)

이 기사를 인용한 교우회보에 대해서는 뒤에 언급을 하겠고 먼저 기사를 논평해보자. 벤처동아리라는 이름이 가당키나 한가? 벤처타이거 홈페이지를 보면 스스로를 ‘고대벤처교우회’라고 칭하고 있다. 벤처기업인의 대부 격이라 할 수 있는 안철수 대표에 따르면 벤처기업의 생명은 끊임없는 새로운 기술 개발이며 벤처기업의 성공의 여부는 정책이나 지원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 있다. 따라서 벤처업계의 이합집산은 아이디어와 기술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것이지, 학적인 연고를 함께 한 사람과 벤처를 운영하겠다는 것은 벤처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초심을 망각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고대벤처클럽_10 이란 곳은 고대 출신 벤처인들의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겠다는 야욕을 직접 대외에 드러내며 출범한 단체로, 말로는 투자전략수집과 인큐베이팅을 논하고 있지만 속내는 회장이 직접 말했듯이 추잡하고 폐쇄적이다. “조직력과 추진력을 겸비한 고대인들이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창의력, 돌파력, 인내력으로 국내 벤처산업에 기여하자”_11 120여명이 참석했다는 이 모임에는 허울이나마 벤처클럽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정관계 인사들도 참여하여 배째라로 대표되는 고대정신을 전면적으로 내보이기로 했음을 방증했다. 김광수 경기도 중소기업청장, 이상진 정보통신부 서기관, 허인회 민주당 지구당 위원장, 남궁석 국회의원 등도 참석하여 그 자리가 비단 벤처기업인의 모임이 아님을 증명해 준 것이다. 한겨레신문의 한 기자에 따르면 카이스트, 연세대, 서강대 등지에도 설립되어 있는 벤처클럽들과 비교해서 고대벤처클럽이 특이한 점은 바로 이 정관계 인사들의 대거 포진에 있다고 한다. 사실 이번 벤처타이거나 고대벤처클럽은 벤처라는, 신종업종에서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부각되었을 뿐 고대 출신의 기업인들의 조우는 흔히 있어왔던 것이기에 이제 별로 놀라울 것도 아니다.

고려대 출신 재벌 2세 경영인들이 주축이 돼..(중략)..이들 30~40대 오너 회장들은 고려대 재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로 김영삼 전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 YPO(Young President Organization)라는 조직을 결성, 교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후략).. -2000년 7월 7일 한국일보

(3)교우 제조 능력이 탁월한 교우회

먼저 고려대학교 교우회 회칙의 일부를 소개한다.

제2장 회의 제6조 (구성) 본회는 정회원, 준회원 및 특별회원으로 구성한다. 제7조 (정회원) 정회원은 다음 회원으로 한다. 1. 모교의 학부 또는 전문부 졸업자 2. 모교의 대학원이나 특수대학원에서 석사 또는 박사학위를 받은 자 3. 모교의 대학원이나 특수대학원의 정규과정 또는 연구과정 수료자 제8조 (준회원) 준회원은 다음의 회원으로 한다. 1. 모교를 중퇴한 자. 다만, 본회 산하조직의 추천과 상임이사회의 승인을 얻은 자에 한한다. 2. 모교 특수대학원의 최고경영자과정 수료자 (후략)

보이느냐? 보이느냐? 부채표가 아니면 활명수가 아니니라는 광고문구는 고대 교우가 아니면 기득권이라 부를 수 없노라는 말에 빗대어 사용할 수 있겠다. 무슨 소린고 하니 교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는 이야기이며 그 가능성에 포섭될 수 있는 사람들은 기득권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보통 교우라고 한다면 학부 졸업생이나 일반대학원 졸업생을 생각하겠지만 교우회는 그렇게 배타적이지 않은(?) 집단이다. 어찌 학부와 일반대학원 출신에 만족할쏘냐? 팍스 고대를 위해서는 고대학부나 일반대학원출신이 아닌 사람들도 흡입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특수대학원 출신과 특수대학원 최고위과정 출신 역시 교우로 포함시키기로 거국적인 용단을 내린 것이다. 특수대학원과 최고위과정이란 단어가 생소할 것 같아 하나하나 뜯어서 설명을 해주겠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석사와 박사는 일반대학원의 학위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와 달리 특수대학원은 처음에 대학을 졸업한 사회인에게 학부과정 이후의 교육과정을 제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학부시절에 배운 이론과 사회에서 익힌 실무를 결합시키고 이를 더 가시화하기 위한 교육의 장이 특수대학원이며 직장인이 많이 다니는 특성상 대체로 야간제이다. 특수대학원은 보통 석사과정과 연구과정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를 통하여 특수대학원생들은 석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특수대학원의 입학정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00년도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특수대학원 입학정원은 2만9920명으로 98년에 비해 2978명이 늘어났고 내년에는 1800명이 늘어난다._12 사립대학이 특수대학원 신설에 열을 올리는 이유를 한겨레에서는 교육부가 평생교육기관이라는 이유로 설립을 남발한다는 점과 대학의 돈벌이 혈안으로 짚으려 하지만 본질을 벗어나는 결론이다. 사실 대학에게 투입한 비용에 비하여 많은 등록금을 받아낼 수 있는 특수대학원이란 존재는 매우 소중할 것이다. 그러나 대학이 특수대학원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은 특수대학원 교육과정을 이수하면서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교우들의 인맥이다. 즉 특수대학원을 이수하면 그 대학의 교우가 되므로 자연히 인맥의 폭은 넓어지고 그 깊이는 더욱 심오해지리라는 판단이다. 게다가 고려대학교는 1907년 보성전문학교 1회 졸업생이 배출되던 해부터 지금까지 93년의 연혁을 지닌 교우회를 보유한 학교가 아니던가. 특수대학원과 최고위과정의 고위 인사들을 교우로 포함시키고자 한 교우회의 전략적인 선택은 갑작스런 결정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축적된 노하우의 산물이다. 다음 기사를 보고 계속 넘어가자. 교우회 광의적 적용이 사회에서 어떠한 역기능을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적절한 기사이다. 숨이 멎을지도 모르니 노약자와 어린이들은 보호자를 대동하고 보도록.

..(전략)..코스닥 열풍을 통해 막대한 투자를 유치한 벤처들의 다음 과제는 사업을 거침없이 전개할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줄’과 ‘빽’ 없이는 장벽 투성이인 현실을 헤쳐나가기 위해 선택한 탈출구의 하나가 ‘피나누기’였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어떻게 피를 나눌 대상을 찾았을까. 가장 널리 쓰인 방법은 동방상호신용금고 이경자 부회장처럼 유명대학원의 최고위과정을 수강하는 것이다. 최고위과정은 원래 최고경영자(CEO)들의 ‘주경야독’을 위해 만들어진 경영학 과정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대기업의 이사급과 정부부처의 심의관급 이상 그리고 정치인이나 정치지망생들의 사교장과 같다..(중략)..코스닥 열풍 이후 벤처 주식을 통한 일확천금이 너무도 강한 유혹거리가 돼 버렸다. 벤처인들은 주식을 푼 덕에 하루아침에 스타로 포장되기도 했고, 작전이 적발되면 당국에 봐 달라고 할 수도 있게 됐다. 사업을 위해 정치인을 활용할 수도 있게 됐다..(후략) -2000년 10월 28일 ‘장막의 커넥션’ 든든한 나눠먹기, 한겨레

이 기사, 최근에 벤처업계과 코스닥 시장을 강타한 ‘정현준 게이트’에 관련한 기사이다. 이경자라는 탐욕스런 아줌마가 정현준이라는 돈에 핏발을 세우는 젊은 줄리앙 소렐_13 과 함께 고려대학교 교우회관 앞에서 도원결의, 아니 교우결의_14 를 하고 드넓은 테헤란로로 나아가 파죽지세로 사기행각을 벌이다가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는 교우회의 포효에 부합하려는 듯 나란히 쇠고랑을 찼다는 아름다운 교우애를 볼 수 있는 희대의 코미디다. 기사가 웅변해주듯 최고위 과정이라는 것이 사교장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주중에 오후 6시쯤 과도관이나 정경대 혹은 경영대 앞에 서있어 보라. 영구차로 보이는 시커먼 차들이 줄지어 교문을 통과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층부터 아직은 기름이 잘잘 흐르는 청장년층까지 모두들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윽고 강의시간이 되면 대기실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던 이들은 쭐래쭐래 교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강사로부터 강의를 듣는데 그 내용은 바로 컴퓨터 끄는 법과 켜는 법과 윈도 기본 용법을 익히는 일이란다._15 2시간정도 수업을 듣고 이들은 다시 나온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담소를 나누기에 바쁘고 급기야는 원우회_16 를 구성하자는 이야기가 도출된다. 최고위과정의 경우 한 기수제(보통 6개월)로 운영되고 기장이 선출되면 그가 기수 성원들을 통솔한다. 그리고 기수 모임을 자연스럽게(!) 갖는다. 그리고 고려대학교의 교우로서 열과 성을 다하여 인맥 구축과 자기 일신의 영달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며 이를 위하여 교우회와 학교 측 역시 모든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고대 출신들을 중용해주기 때문이다. 사족을 달자면 사람을 고문하고도 뻔뻔스럽게 활보하고 다니는 반인륜인사 정형근 따위의 치도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을 거친 엄연한 교우로 등재되어 있고 과도관에 나타났다 하여 한때 애기능 학우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탤런트 고소영 씨와 100주년 기념사업 출범식에 나와 노래를 부른 가수 현숙 씨도 컴퓨터과학기술 대학원 최고위 과정을 이수했거나 이수 중인 우리의 교우이다. 6개월의 단기 교육기간 동안 같이 보낸 사람조차 교우라고 부르며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사해동포의 정신을 몸으로 실현하는 사람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도 열심히 활약을 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장소가 파악된 10만여의 교우에게 매월 보내지는 고대교우회보가 있으며 온라인에는 첨단 분야에서의 교우들의 야합에 자극을 받은 교우회 본부의 노작, 교우회 홈페이지가 있다. 얼마 전에 졸업한 한 교우에 따르면 교우회보를 받기 싫어 죽겠는데 이사를 간 뒤에도 어떻게 알았는지 교우회보가 또 날아왔다고 한다. 교우회보는 보통 교우(회)소식, 모교 소식, 교우회비 납부자 명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의 어디 지부의 소식 아니면 어디의 누구 인사 동정에 대한 것 아니면 결속력을 호소하거나 과시하는 기사들로 채워져 있어서 한쪽만 읽어도 졸음이 오고 엔트로피가 증가하여 면역체계가 약화된다. 요긴하게 사용하려면 타블로이드 판임을 적절히 이용하여 중국집 음식 시킬 때 밑에 깔면 아주 그만이다. 홈페이지는 현재 구성의 조악함과 내용의 미비함으로 인하여 교우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_17 교우 인맥을 만들고 관리하자는 취지에서 교우찾기, 초대하기, 교우파도타기라는 매뉴얼을 구성하는 등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노정을 끊임없이 경주하고 있어 뜻있는 인사들로 하여금 흰머리를 더하게 하고 있다. 이외에도 2000년 현재 교우회는 근 19만에 달하는 교우 중 10만의 교우의 주소와 연락처를 파악하여 5년마다 교우명부를 업데이트 시키고 있으며 해외지부 50여개, 직장별 분회 680여개 학과별 학번별 조직 2천여개를 방계에 두어 조직력을 확대하고자 하며 팍스 고대라는 일관된 목표를 위해 오늘도 교우회관에서 두문불출하며 노심초사한다고 한다.

(4)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교우회

학창시절을 지나고 보니 고대는 하나의 큰 용광로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버지도 고대를 나왔는데 거기서 6개월만 지나면 그 용광로에 녹아 버려요. 그게 전통의 힘인 것 같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석주회도 그런 전통의 연장선에서 만나는 거고, 전혀 정치적인 건 없습니다. 두 달에 한 번씩 모이는데 매번 회원의 절반 정도가 참석해요._18

솔직히 별로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말이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힘들다. 얼마 전에 국회에서 고대 교우회 국회 분회 모임이 있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당에서 모여든 교우들은 어느때 보다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선배와 후배의 화합과 교우애를 꽃피웠다는데 맨날 민생현안은 내팽개쳐두고 정쟁이나 일삼으며 개원시에는 잘 나오지도 않다가 나오기만 하면 서로에게 욕지거리와 삿대질을 예사로 하는 그 인간들이 어쩌면 저렇게 모두들 한결같이 출석하여 지고지순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위무해주는 꼬락서니를 부릴 수 있는지. 고대 출신 국회의원들은 변신의 마술사 ‘괴도 루팡’인가 아니면 자기의 토사물을 다시 주워먹는 엽기 사이트의 주인공인가? 비위도 좋소 그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그렇다고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문 앞에서 가로막혀 자동차 안에서 우유곽에다 쉬를 보고 있을 때 문 앞에서는 학생들과 김영삼 측근들과의 논쟁이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한 학생과 어떤 아저씨는 얼굴이 시뻘개질 정도로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결론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게 났다. 그 장년의 사내는 급기야 자신이 고대 출신이며 자기 아들도 고대 재학 중이란 이야기를 했고 그러자 그동안 현하구변의 세치 혀를 놀리던 이 학생 순식간에 꼬리를 내리고 이 ‘선배님’의 훈계를 듣는 처지가 되었다. 고대는 정말 용광로 맞나보다. 그러면 우리는 고로(高爐)일까 전기로(電氣爐)일까?

5. 고대인과 마피아와의 비교

‘고대 그 이름에 내일을 건다’ 라는 말은 작년 어느 선본의 모토이기도 했지만 수험생들이 입학원서를 넣으러 왔을 때 접수처인 국제관에 걸려있던 프래카드의 문구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고대 그 이름에만 내일이 없다’가 정확하다고 우기지만 나는 이 문구를 좀 다르게 생각을 했다. ‘내일’이란 단어가 來日이란 의미의 tomorrow가 아니라 내 일(my job)이라는 해석이다. 정리하자면 고대 교우회 그 이름에 내 일자리와 승진을 건다는 말이 된다. 별로 재미있지도 않고 탁월하지도 않은 발상이지만 고대 교우회가 고대 출신들의 일자리 하나는 확실히 보장해준다는 점에 착안하여 억지로 머리를 굴리다보니 이렇게 됐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고대인들은 특출난 단결력과 이로 인하여 파생되는 배타성으로 말미암아 마피아로 통칭된다. 최고 경영자가 고대 출신일 경우 곧바로 고대 라인이 형성된다는 말은 정석으로 통하며 고대 법대 출신 법조인이 고위직에 오르자 신문에서는 그의 프로필의 한 구석에 ‘고대 인맥의 대부’라는 표현마저 사용한 적도 있다. 시칠리아 섬에서 태동한 마피아도 고대인들과 비슷한 점이 있긴 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마피아의 경우 보스의 자격으로 이탈리아인의 피를 이어받은 자라야 한다는 조항을 두어 그들만이 수장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고대인들에게 마피아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도리어 마피아를 모욕하는 소치라고 생각하며 마피아가 잔존세력을 모두 모아 총궐기를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대인의 행동거지는 훨씬 마피아보다 잔혹하며 그 상처의 치유방책은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연이 없다는 이유로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으면 어디에 호소할 곳도 없고 그저 혼자 미쳐버린다. 겉으로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지만 상처는 두고두고 남으며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다니지 않은 연줄이 약하거나 없는 사람들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간다. 또한 같이 ‘배타적’이어도 마피아는 내부의 혈통성을 보전하기 위한 배타성인데 반하여 고대인들은 기득권 층에서는 그 세를 끊임없이 확장시켜 나가고자 있는 아량 없는 아량 다 베풀면서 비기득권 층에게만 배타적인 이중의 모션을 취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영역에 놓여 있지 않은 대부분의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싸늘한 육혈포를 겨누고 있다. 누가 더 야멸찬 행동을 하는 집단인가? 외람되지만 나는 고대인을 마피아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마피아에게 사죄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건 마피아를 욕되게 하는 소리다. 위악적으로 하는 말이지만 교우회를 통하여 모이는 고대인들보다 마피아들이 더 솔직하고 뒤끝도 없다.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 명문대를 나왔다는 건 지성이 높다든가 전문지식이 많다는 뜻이 아닙니다 못배웠다는 말의 반대말이 아닌 것입니다 줄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나라 각계 권력 상층부로 깔려 있는 출세 고속도로 여야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서로 밀어주고 키워주는 연줄, 실력을 넘어선 숨은 신분 계급제의 작위를 얻는 것입니다 – 박노해, 「눈은 상식을 뚫는다」, 『사람만이 희망이다』중에서

각주 1_고대인이란 단어는 현재 고대에 재학 중인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이미 사회에 진출한 교우 모두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2_1999년 12월 22일 교육부는 광주예술대학교와 한려대학교에 대한 조치방안을 발표하며 광주예술대학교를 폐쇄하도록 명령하고 한려대학교에 대해서는 판정을 유보하였다.

3_최근에 이상할 정도로 언론에 대학관련 기사가 넘치고 있다. 미디어오늘 265호에 따르면 대학이 언론사에 광고를 실어주거나 협찬을 하면 언론이 입금확인 후 그 대학의 소개기사를 써주는 공생관계가 성립되어 있다고 한다.

4_염재호 행정학과 교수, <탁류세평, 풀을 안먹는 호랑이>, 《고대신문》 2000년 7월 18일자

5_아마도 에프엠과 애니멀 사운드 발사 등을 통하여 절차탁마했기 때문에 성대의 질 하나는 보증할 수 있다. 따라서 고대인의 성대를 타대인의 성대와 비교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단호히 거부하는 바이다. 6_고연전에 대한 비판을 더 알고 싶다면 장백서원조합소식지 문화테러단 『雜』 통권 3호를 읽어보거나 게릴라 언론 까탈(www.kkatal.net)로 접속하면 된다.

7_2000년 하반기 고려대학교 전학대회 자료집에 따르면 4.18 뜀박질 대회 예산은 1280만원에 이르고 고연전에 대한 예산은 4600만원에 육박한다.

8_난 한 놈만 팬다. 죽을 때까지

9_응원단이 엘리트의식과 남근주의 등등 많은 해악을 유포하는 집단이라는 입장으로서 그 입장을 대표하는 『雜』편집위원회 측은 응원단이 없어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삼일 밤낮을 떠들어댈 수 있다고 공언한 바 있으니 궁금한 사람은 직접 방문하시라.

10_미디어오늘 265호(11월 2일-11월 8일)에 따르면 고대벤처클럽에는 28명의 현직기자가 특별회원으로 등재되어 있고 그 중에는 주필급 인사와 부장급 인사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벤처-언론 유착의 의혹을 사고 있다. 11_고대벤처클럽 초대 회장 박기석(시공테크 대표), (inews24.com 2000년 6월 18일)

12_《한겨레》 2000년 10월 30일자

13_스탕달의 적과 흑의 주인공으로, 권력욕의 화신으로 그려진다. 14_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은 정책대학원 최고위과정을 이수했으며 정현준 한국디지털라인 사장은 고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15_컴퓨터과학기술 대학원 최고위 과정의 수업 과정을 몰래 본 적이 있는 내 친구의 목격담을 토대로 내가 재구성한 것이다. 16_이 명칭은 학부를 함께 나왔다는 의미인 ‘교우’와의 호명에서의 차별을 두기 위함이지만 결국 흰말 궁둥이와 백마 히프와의 차이를 따지는 것 뿐이다. 17_사실 계속 지탄의 대상만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계속 홈페이지가 구리면 하나 둘 입 소문이 퍼져 발길이 줄어들테고 그러면 적으나마 교우회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는 반가운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18_《월간조선》 1999년 5월호.

교육, 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학력주의
-계급적 관점으로 바라본 학력주의의 본질
심인호(고대 교육학과 95) redyippie@hanmail.net

Ⅰ. 들어가며

성인식이라는 통과의례는 이제 향수나 장미다발, 또는 연인들과 친구들의 한바탕 축제로만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조금 더 합리적이고 진지한 통과의례를 만들어 냈다. 당당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고대인들의 매몰찬 생존투쟁과 축복의 장이었던 원형적인 성인식을 대입시험이 대체하고 만 것이다. 대입시험이라는 성인식은 우리에게 생존경쟁의 장이고, 그것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 또는 무의식적 일탈에도 불구하고 마침내는 그것을 하나의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입이라는 생존투쟁의 장에서 승리한 자들이며, 현실에 대한 자긍과 미래의 비젼을 꿈꿀 수 있는 권리는 하나의 전리품인 셈이다. 여전히 고려대학교 학사학위가 나름의 사회적 기득권과 인간으로서 우리들의 품질까지 보증해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음은 명백하다. 고려대학교가 ‘마음의 고향’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20대의 젊음’을 회고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삶의 태도로서 ‘자유·정의·진리’를 확인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고려대학교를 둘러싼 권력망들의 인사이더로서의 우리 자신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우리가 학력주의를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행위는 명문대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자기부정’일 수도 있으며, 공고한 권력집단인 서울대출신들에 대한 ‘권리투쟁’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합리적인 경쟁구도를 창출함으로써 학력주의 사회가 아닌 능력본위의 사회를 만들자는 자유주의적 주장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과연 학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이것으로 충분한 것인가? 자신이 기반하고 있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행동을 촉발시키고, 사유와 행동의 합일은 곧 우리들 자유의 표현이다. 그러나 분석의 틀과 방법론에 따라서 지향점과 행동의 지침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력주의에 대한 체계적인 논문이 아닌 이글은 학력주의라는 매개를 통해서 ‘계급’적 관점의 중요성을 논거하는 학력에 대한 ‘정치적 문건’이다.

Ⅱ. ‘학력주의’와 학력-물신성, 그리고 얽힌 관계들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입학 수능시험은 치뤄졌고, 의례적으로 교육현실에 대한 훈계는 매스컴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조기유학이나 고액과외 등에 대한 다소 도덕적인 비판에서부터 ‘자립형 사립고등학교’허용에 대한 전문적인 논의까지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듯 하다. 이렇듯 누구나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지리멸렬한 한국의 교육문제는 학력주의라는 개념틀로 수렴될 수 있다.

▶ 합리성을 가장한 학력주의
‘학력주의’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학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주로 가정의 사회적 배경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귀속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이며, 근대사회로 이행하면서 사회계층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지표로 작용하게 된다. 학력주의 사회는 신분에 의해서 사회적인 지위가 조건지워지거나 결정되는 것과는 달리 학력이라는 ‘국가공인자격증’과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재화와의 교환 ‘가능성’이 높은 사회를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학력주의는 단연코 귀속주의보다 우월한 사회적 제도이다.
근대 이전의 시기, 언제나 한줌의 지배계급이 그들의 사회적 특권을 지켜내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한 것은 역사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신라시대에는 특권계층 내에서도 진골, 성골, 육두품 따위의 계층구조가 선명했으며, 조선시대에도 신분상승의 결정적 수단이었던 과거제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요건은 사실상 양반계층에 한정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개인의 능력을 여타와 다른, 학력이라는 단일한 요소로 평가하고 사회적 분업의 효율을 제고하는 것은 제도적 우월성을 담보하고 있다. 인간의 능력을 검증하는 기준이 학력이라는 단일기준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능력에 대한 정보가 제한된 상태에서 선발과 인력배치의 주요수단이 근대 공교육제도하에서 학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베버가 갈파한 ‘권력과 폭력의 합법적 독점체’라는 국가에 의해서 관리되는 공교육제도는 기회의 균등과 구성원에 대한 교육을 합리적으로 해결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시대마다 지배계급은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보편성이라는 허상을 덧씌워왔으며 학력주의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분석은 피상적인 것을 돌파해내어 근본에서부터 파악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추동된 권력관계나 사회적 작동방식에 대한 분석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런 분석방법의 핵심은 사회를 고정된 것이 아닌 변화하는 것으로, 그리고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인식하는 것이다. 법앞에서의 자유라는 정치적 근대성이 경제적으로 시장의 자율과 사적소유를 강제하기 위한 것이라면 근대의 산물인 학력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음이 분명하다. 근대성의 문헌적 어원이 ‘여기 지금’이라면 ‘여기 지금’ 자본주의체제 하에서의 학력주의의 작동방식을 고찰해보자.

▶자본주의체제에서의 ‘학력-물신성’_1
현실적으로 학력으로 기능하고 있는 고등교육은 개인적 차원에서 볼 때 교육에 대한 ‘투자’행위의 결과이다. 공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초·중등교육과는 달리 고등교육은 등록금이라는 훈련비를 내는 것이며, 기회비용을 감수하는 것이다. 이는 교육을 통해 형성된 개인의 지식이나 인지력은 업무수행의 수월성을 보증할 수 있으며, 그 외에도 가치관이나 태도 및 문화적 감각 등도 동일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개인의 행위가 역사와 구조라는 조건 없이 단순히 개인들의 합리적 선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고등교육이 개인의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능력까지 담보한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따라서 개인의 선택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분석이 선행해야만 한다.
학력주의를 분석할 때 집중해야 할 대상 중의 하나가 학력과 노동시장과의 관계이다. 학력을 획득하기 위한 교육경쟁은 교육 그 자체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에로의 편입과 임금 및 승진에서의 기회보장 때문임이 명백하다. 즉 노동시장에서 노동력 상품은 학력이라는 잣대로 평가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노동력 상품의 객관적 보증서인 학력(學歷)은 ‘개인이 거쳐간 학교교육의 이력’이며, 이것은 업무수행의 수월성을 담당할 수 있는 인지능력, 가치, 태도가 학교교육을 통해 개인에게 내면화된 학력(學力)과는 분명히 다르다. 상품의 이중적 성격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면 학력(學力)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함께 담지하고 있는 것이지만, 졸업장을 나타내는 학력(學歷)은 교환가치만을 지니기 때문이다. 노동력이 상품생산과정에서 잉여가치의 생산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교환가치의 측면만이 부각된 학력만이 단일 기준으로 작용해야 한다.
인간의 신체에 갖추어져 있는 정신적, 물질적 능력 등의 성격이 간과되고 다만 ‘학력’이라는 양적 기준만이 사회적 제 관계에서 작용함을 감안한다면 이를 ‘상품 물신성’과 마찬가지로 ‘학력 물신성’으로 파악할 수 있겠다. 즉 “상품형태가 인간 자신의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노동생산물 자체의 물적 성격으로 보이게 하며, 따라서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 즉 물건들의 사회적 관계로 보이게 한다”라고 한 ‘상품 물신성’에 대한 맑스의 정의는 학력에 대한 분석에서도 타당하다.
인간의 활동은 육체적·정신적 실존의 실현을 위한 능동성이며, 유적 인간의 본질에 어우러진 실현이다. 교육적 행위도 하나의 활동이며, 그런 면에서 자신의 실현과 함께 사회적 실현을 동시에 담당하는 사회적 행위이다. 그렇다면 학력의 상품화는 인간들 사이의 투명한 관계가 상품관계의 추상으로 나타나게 하며, 자신의 능동성과 생활활동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 학력주의의 일반적 작동 방식
‘학력-물신성’은 학력주의가 현실의 교육활동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학력이 상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면 상품생산관계의 적나라한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학력-물신성과 얽혀있으면서 교육의 모순을 상호 강화하는 요인들은 크게 네 가지로 분석될 수 있다.
첫째, 학력주의는 교육의 기능을 파괴시킨다.
‘학력 물신성’으로 규정되는 학력주의는 곧 선발에 있어서의 양적이고 물리적인 기준만이 중요해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시험이라는 객관적인 기준하에 모든 교육과정이 재편되고, 궁극적으로 대학입시로 귀결되는 한국의 현실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이 학력주의 공고화의 원인이 되었다. 자신의 소질을 계발하여 자신의 지향과 취향에 맞는 학력수준을 결정하며, 또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것은 학력주의 사회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교사는 국가에서 정해 준 교육과정을 학생에게 주입시키는 사람이었으며, 교수법 역시 인지발달만이 중시된다. 평가위주의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미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 대한 고려는 예체능과 윤리라는 교과목의 창설로 나타났으나 이들 과목의 평가 역시 시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지식과 기술을 도야하는 교육은 개인능력의 계발과 보편적 문화의 발전을 예비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학력획득을 위한 도구로만 이용된 것이다. 평가에서의 높은 점수를 위한 효과적인 교수전략은 폭력과 억압이었으며, 어쩌면 교사에 의한 폭력은 효율성을 담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교실환경에서 왜곡된 성향은 왕따를 통해 욕구를 해소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학생들을 만들어 온 것이 아닐까.
둘째, 학력주의는 경쟁을 강화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현실에서의 경쟁이 자극을 통한 개인능력의 계발과 사회적 풍요로움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사적 소유제 하에서의 경쟁은 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자극하고 타자를 배제하며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또한 경쟁에서의 승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게임의 룰을 강제하고 자신의 독점지위를 확대시켜 나갈 수 있다. 이미 게임을 주도하고 있는 권력이 강요하는 경쟁이데올로기는 착취의 다른 이름이다. 작금의 취업전쟁은 대학을 경쟁의 논리가 판치는 곳으로 만들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우리의 삶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질서’가 관철되는 경제논리와 교육의 가치는 분명히 다르며, 달라야 한다. 교육적 가치는 공동체적 가치이며 창조적인 개인의 자율성과 직접민주주의의 원리가 보장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 하에서만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소통과 연대가 가능한 공동체적인 경쟁체제가 성립될 수 있고 개인의 전면적인 발전이 사회의 발전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학력주의는 국가주도적 교육을 낳게된다.
학력은 국가에 의해 보증되는 자격증이라는 측면에서 여타의 자격증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국가에 의해 보장되는 학력은 결과적으로 국가에 의한 교육통제를 낳게된다. 흔히 정치로부터 교육의 독자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학력이 국가에 의해서 보증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국가는 교육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교육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따라서 교육은 곧 국가정책의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국가의 성격에 대한 논의는 교육에 대한 가치판단의 문제이며 공교육제도 자체에 대한 논의로 나아갈 수 있다. 체제재생산을 설명함에 있어 국가의 성격을 특화시켜 설명하려한 알튀세르의 논의는 경제적 토대의 강력한 힘을 감안한다면 여전히 타당하다. 최대한 양보해서, 국가의 정책은 본질적으로 계급간의 힘 관계로 관철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의 오랜 우익독점적인 정치구조, 특히 국가권력의 과부하는 교육 현실을 지배계급을 위한 교육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국정교과서’로 공식적인 ‘대학입학시험’에서 정답을 찍어온 이들에게는 정답만이 진실이다. 공식적인 진실을 교육과정에서 강요하는 것은 비공식적인 것들의 배제를 통해서 가능해진다. 초·중등교육을 통해 각인된 지식이 공권력을 통해 강제된 체제이데올로기임은 명백하다. 국가주의적이고 체제옹호적인 교육과정 속에서 수시로 실시되는 평가는 우리의 모든 것을 물리적으로 양화하여 성적표로 세분화하고, 궁극적으로는 ‘대학입학시험’으로 나타난다.
넷째, 학력주의는 결과적으로 학력의 인플레 현상을 낳는다.
개인이 학습을 계속해 나간다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가 보장되는 것 또한 정당하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학개혁의 양상, 특히 대학원 중심대학으로의 변화 전략은 학력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제 학사학위만으로 학력에 대해 말하는다는 것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 입학인원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가 이를 방증한다_2. 학력의 인플레이션 현상은 상대적 과잉인구(산업예비군)의 생산과 함께 분석이 가능하다. 자본은 노동시장에서의 분단구조강화를 위하여 노동자 사이의 경쟁조장과 분할통치를 기도한다. 자본의 입장에서 남아도는 고학력인구는 유리한 조건이며 이윤창출에 기여한다. 물론 현재 진행되는 고학력화는 생산기술의 발전에 의해 노동생산성의 발전이 급격히 이루어지는 정보-기술혁명에 의한 산업예비군의 창출과정으로 파악할 수도 있고, 고도로 전문화된 숙련노동자의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학력인플레이션은 학력-물신성에 의한 경쟁구조로 파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타당할 것 같다. 노동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이것은 결과적으로 고학력 노동력의 구조적인 실업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학력인플레이션이 구조적 실업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면 ‘사회적 노동권’에 대한 요구로 취업문제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Ⅲ. 학력주의의 태동과 역사적 전개과정

학력주의라는 교육적 현상은 자본주의적 교육제도의 한 현상이며, 교육 또한 사회적 제도로서 당시 사회구성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학력-물신성’의 관점으로 정리해 보았다. 학력주의가 자본주의체제의 일반적인 현상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과잉교육열’의 문제나 대학의 서열화 등 특수한 국면들을 노정하고 있다.
이것은 ‘식민지 경험’과 ‘한국전쟁’, 그리고 권위적인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보편화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교육문제는 역사 속의 갈등축을 중심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모순의 ‘응축체’이며 국가제도의 권력작용을 통해 구체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역사 속에서 학력주의의 태동과 전개과정을 고찰하면서 학력주의 문제를 심화시켜 보자.

▶ 일제 ‘식민지’ 경험과 미군정의 교육정책
한국의 ‘과잉’학력주의는 과거제도에서부터 그 뿌리를 찾을 수가 있다. 조선조는 교육을 중시하는 사회이며, 과거를 통해서만 관료로 선출될 수 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백성들의 교육에 대한 열망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교육은 가문의 존속과 발전에 효과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는 가족주의적 교육이라는 특징을 낳는다. 혈연에 바탕을 둔 가족주의는 신뢰에 바탕을 둔 사회적 친화의 가교로서 혈연, 지연 등에 의존하는 연줄의식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출신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연고주의의 뿌리가 된다. 학력주의의 또다른 유인 요인들로 불리우는 ‘숭문주의’나 ‘입신양명적 교육관’, ‘서열의식’ 등도 일제시대 및 해방후 국가권위의 강화로 인하여 더욱 공고화되었으며 이 시기의 출세는 곧 ‘국가관료로의 임용’을 의미하였다.
구한말에는 학력의 사회적 활용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면서 학력주의적 교육의식이 싹트기 시작한다. 이런 흐름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체계화되기 시작하는데 신분제의 붕괴와 함께 근대적 학제가 성립되면서 학력이 구체적으로 지위와 연관을 맺게 되었다. 1918년 공포된 ‘고등시험령 제7조, 제8조에 관한 건’은 고등시험에서 학력규정의 원칙을 시도한 것이었다. 당시, 국가운영의 주체인 일제 식민권력은 형식적으로는 교육의 평등을 말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식민지의 인민들에 대한 교육 ‘배제’를 위한 전략을 취했으며, 그 결과 식민지 인민들 사이의 경쟁과 분열이 나타나게 되었다. 최소한의 학력을 갖추기 위한 경제적 조건의 불평등은 물론이요, 권력획득을 위한 ‘그들’ 사이의 경쟁은 고스란히 학력 취득을 위한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해방 이후 미군정에 의해 의무교육제도(1948년 1월 17일)가 실시되어 당년도에 18억원의 예산이 배정되었다. 이는 형식적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교육제도의 정착이라고 판단할 수 있으며 미군정에 의한 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서구의 교육 모델이 본격적으로 제도화되는 계기가 된다. 1948년 7월 대한민국의 헌법은 미군정에 의해 기초된 교육정책을 계승하는 법률을 통과시킨다. 그리고 원칙상 지방자치교육을 법령화함으로써 보통교육실시와 더불어 교육자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적 조건을 고려한다면 위에서부터 주어진 교육제도는 명분과는 달리 필연적으로 교육의 국가독점과 고등교육의 양적 팽창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해방이후에 한국의 교육기관 및 학생수는 전반적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장기적으로는 고등교육의 교육팽창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공교육제도의 설립에 따른 교육기회의 평등화를 설명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과잉교육열이 고등교육에 집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것은 교육팽창과 함께 학력주의에 대한 분석의 중요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은 입안과정에서부터 내용과 관철에 이르기까지 최고학력에 대한 관료적이고 집권적인 관리의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정부 수립후 발표된 교육법은 교육기회의 균등이나 의무교육제도의 실시라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육기관은 국가의 간섭을 받으며”를 명기하였으며, 특히 주목할 점은 1972년 공무원 임용시험에서 학력철폐가 있기까지 학력요건이 국가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는 측면이다.
신분제에서부터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 교육에 의한 신분의 이동이 철저하게 배제되었던 인민들에게 군정이후의 교육제도는 자신의 기회에 있어서의 ‘박탈감’을 해소하는 도구가 된다. 따라서 국가의 요구에 의한 교육기관의 증설과 인민들의 교육열은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되어 급격한 교육팽창을 불러온다._3

▶개발독재와 노동통제
미국의 원조에 의한 한국의 경제개발로 시작된 1960년대 이후 경제발전 과정에서 국가는 점차 독자적인 재생산기반을 지닌 사회구성체의 정치적 상부구조로서 자신의 지위를 확립해 나간다. 5.16쿠데타 이후 군사정부는 본격적인 자본축적을 위해 ‘반공이데올로기’의 강화와 함께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게 되며 노동인력의 수급을 위해 체계적인 인력관리를 시작한다. 1968년 선포된 ‘국민교육헌장’은 경제발전과 정권의 안정적 유지 및 재생산을 위하여 학력에 대한 국가관리를 정당화하고 학력을 통한 인력의 배치 및 경제개발을 위한 노동인력수급의 합리화를 꾀하였다. 이 시기에는 중등 학력인구가 급속히 팽창하였고 대학인구 억제정책이 실시되었다. 중등교육의 팽창의 경우 전후 베이비붐으로 ———-인한 교육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당시 산업구조에 적합한 대다수 노동인력의 숙련정도를 반영한 것이었다. 대학인구의 억제정책 역시 당시 고학력 실업자문제에서 볼 수 있듯이, 해방후 고등교육팽창에 따른 적절한 고급노동인력의 수급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즉 적절한 수의 학력인구는 경제개발 도구화의 산물이며, 이 역시 권위적 국가권력에 의한 통제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계급, 성별 등에 따른 실질적 ‘기회 불평등’의 문제 및 당시 정치권력, 자본가계급의 사회적 재생산에 복무하게 되는 기본적인 문제 등과 더불어 학력간 격차의 문제가 고졸자와 대졸 학력자간의 문제로 집약되어 나타남으로써 대학 학력에 대한 사회적 열망이 강하게 존재하게 된다. 이는 한국사회의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대졸자와 비대졸자와의 임금격차등의 문제를 낳는 토대가 되었으며, 학력주의를 심화시키는 주요한 결정기제로 작용한다.
전두환정권은 집권과정에서 드러난 정당성의 취약함으로 인해 강압적인 통치방식을 구사하는 한편, 형식적인 복지정책 또한 실시하게 된다. 1980년 발표된 7·30 교육개혁조치 중 과외금지, 대학본고사 폐지와 고교성적 내신제의 실시, 대학입학인원의 확대 등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지만 폭발적인 고등교육의 팽창을 야기시킨다. 이때부터 고등교육에 의한 ‘차별적 학력주의’가 대학의 서열화로 구체화되는 ‘세밀화된 학력주의’로 전화하게 된다.
이 시기의 고등교육의 급격한 팽창은 고학력 인플레이션을 야기했지만 한편으로 재수생의 급격한 증가를 수반하기도 했다. 이는 학력인플레로 인한 고등학력의 가치저하가 두드러졌음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에 대한 욕구가 해소되고 있지 않음을 말하며,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가 소위 명문대에 대한 수요로 ‘협소하게’ 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의 구조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변화하는 세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명분은 다양한 슬로건과 함께 국가정책 및 각 대학의 발전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다. 1994년에 발표된 정부의 ‘교육개혁방안’은 당시 대학선발인원의 자율권 강화 및 각 대학의 ‘대학원중심대학’으로의 변화방향을 낳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김대중정권 들어 제기된 정보화 및 지식사회라는 화두는 신지식인이라는 유행어의 창출과 더불어 ‘특성화대학’ 및 ‘BK21’로 구체화 되고 있다. 학력주의를 고찰함에 있어 우리가 주의할 점은 ‘대학원중심대학’ 및 ‘대학 및 학문의 특화’전략이 오히려 학력주의의 강화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된 대학팽창으로 인한 고등교육인플레이션 현상은 이제 대학 학부수준을 넘어서 대학원까지로 변화되었음을 나타낸다. 교육열과 학력주의는 이제 대입경쟁에서 취업경쟁으로 상승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한국의 학력주의는 사회제도가 상당정도 합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Ⅳ. 한국사회의 학력주의에서 나타나는 특징들

학력주의가 전개되는 과정을 정치적 변화와 교육제도의 변화를 중심으로, 몇가지 특징적인 사건들과 함께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았다. 그러나 학력주의가 인민 ‘주체’들에게 현실적으로 수용되는 과정 및 효과에 대한 분석은 미흡하다. 능력에 대한 검증의 기준이 학력에 ‘근거’하는 것을 넘어 지나치리 만큼 학력에 ‘의존’하고 있고, 수용 주체들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 학력주의의 특징이다. 이는 한국의 권위적 국가의 성격을 통해 학력주의의 계급성을 짚어봄으로써 더욱 더 명확히 할 수 있다. 한국의 권위적인 국가성격은 학력주의를 추동해낸 가장 중요한 원인이고, 이로인해 대학의 서열화와 계급재생산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국가에 의한 교육 통제로의 귀결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 한국에서의 학력주의는 그 부정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인민들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내면화 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식민지 규율권력에 찌든 인민의 정서구조가 군정시기 확립된 교육제도의 상대적 우월성을 자발적으로 수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맥락에서 교육제도의 급격한 변화가 수용되었으며, 개발독재시대의 교육과정에까지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해 보는 것이 중요해진다.
일제시대의 교육은 한마디로 식민지 지배체제의 강화를 위한 ‘수단’이었다. 지배체제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한 지적 헤게모니 창출의 노력은 교육을 통한 군국주의 이데올로기 주입이란 형식으로 나타났다. 교육과정 내에서 보여지는 단순한 산술과 일본어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수신(修身)이나 일본사가 중시되는 것은 식민지 동화정책의 일환이었다. 알튀세르가 말하듯 ‘교회-가족’의 이데올로기적 지배형태가 ‘학교-가족’으로 전화됨에 따라 교육제도는 체제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 자리 매김한다. 이런 자본주의적 교육제도의 보편성은 식민지체제의 특수성과 결합하여 기형적인 교육제도를 만들어 내었다. 이런 상황은 해방 이후 미국식의 교육제도가 저항없이 안전하게 정착하는 근거가 된다. 식민지 교육제도에 비하면 미국식 교육제도는 민주적이며 자율적이며, 형식적으로나마 기회의 균등을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한국교육과정에서 군사독재시기의 ‘국민교육헌장’으로 대표되는 국가주도적인 교육제도가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것은 일제시대 교육제도를 겪은 인민들에게는 무리없이 다가왔을 것이다. 최근 국가기조가 남북화해로 바뀌면서 교육과정 중에서 통일에 관한 부분이 강조되는 것은 교육과정의 고유한 독자적인 측면이 부정되어 왔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단 몇 달만에 교육과정이 바뀐다는 것은 교육의 장기적이고 독자적인 성격은 허구일 뿐이며, 교육제도는 언제든지 국가에 의해 변경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 복종의 미덕과 교육구조의 권위성
일제시대의 식민지 권력은 인민들에게 ‘복종의 미덕’ 및 ‘자발적 동의’를 내면화시켰다. 일제 식민지 권력은 교육목표를 훈육에 맞추었는데 이는 군국주의에 대한 인민의 자발적 동의를 촉발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제국주의 전쟁과 자본의 축적을 위한 노동력의 양성과 피식민지 일반계급에게의 노동자형 인간관과 병사형 인간형 제시는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인간형의 주물은 권위와 규제에 대한 복종을 하나의 미덕으로 여기게 하였다. 공장 운영원리는 학교로 고스란히 이동하여, 매일의 출근은 ‘등교’로, 일괄작업방식은 ‘시간표’, 성과급은 ‘상장’으로, 해고나 징계는 ‘처벌’로 나타났다. 공장 감독관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공장의 규율에 순응하는 노동자상과 황국신민의 자랑스런 개가 되어 출전하는 병사상은 우리의 근본적인 정서구조를 아직도 지배하고 있다. 서구에서의 근대성이 지난한 권리투쟁을 통해 내면화된 주체성이라면 한국의 근대성은 복종의 내면화라 할 수 있다.
권위와 지배에 복종하는 인간형은 결과적으로 학력주의의 강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명령과 순종, 지배와 피지배의 분열 구도는, 유리한 조건에서 학력을 취득한 지배계급이 사회적 권리를 획득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만들고, 소외된 인민들의 교육열을 자극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배-피지배의 구도, 즉 계급관계의 공고화가 학력주의의 강화로 나타나게 된 것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식민지 규율권력이 가져온 문제점은 권위의 일상화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학력주의의 보편화에 순기능을 한다는데 있다. 합리적 권위에 대한 존중과 효율성을 위한 조직의 위계적 구조는 자율적인 개인과 합리적인 소통구조를 전제로 할 때만이 가능하다. 식민지 규율권력은 자율보다는 타율, 소통보다는 명령과 복종을 내면화시킨 것이다. 현실의 교육문제를 고민할 때 간과되는 측면이 학교 내의 권위주의적인 구조의 문제이다. 특히 고등교육은 분명 초·중등교육과 차별을 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은 아직도 정책결정의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다. 대학 내에서의 권력관계에서 학생권력은 분명 당당한 힘을 발휘해야만 하며, 그것을 통해서만이 대학 내의 합리적인 구조를 창출할 수 있다. 대학이 궁극적으로 체제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유포시키며, 중간관리자나 기술자를 양성하는 현실적 기능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능을 제어하고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할 수 있기 위해서도 대학 내에서의 학생권력 강화는 필요하다. 학생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바로 식민지와 개발독재를 겪으면서 왜곡된 근대적 합리성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경험요소로 기능할 수 있다_4.

▶ 학력주의를 통한 계급갈등의 편입과 소멸
학력주의를 주도한 계급이 어떤 계급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어떤 효과를 미쳤는지를 분석해 보면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명확히 할 수 있다. 더불어 국가의 계급적 성격이, 폭증하던 계급갈등의 소멸을 조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M. 카노이는 교육팽창을 노동자 계급에 대한 노동통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노동을 균질화하기 위한 자본의 전략과 경제발전의 성과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분배요구가 결합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교육제도의 변천과정을 분석하면서 계급갈등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국의 경우 학력주의 이데올로기가 폭발하는 계급투쟁을 무마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작용했다.
지배계급은 해방공간에서의 폭증하는 계급투쟁을 교육경쟁을 통해 체제내화시키려는 전략으로 노조에 대한 정치참여의 배제 및 좌익정치세력의 폭력적 소멸을 도모하면서 교육팽창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 더불어 한국전쟁과 분단을 거치면서 국가통제와 국가이념의 주입의 장이 필요했으며, 따라서 교육은 체제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주목을 받게 된다. 학력주의에 대한 설명에서 국가통합 전략은 중요한 것인데, 지배세력은 학력을 매개로 공정하게 거래되는 정치권력의 환상을 유포하고, 결과적으로 학교교육을 통해 계급갈등을 무마시킨다.
체제의 안정적 재생산을 위해서 노동력의 재생산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노동력 재생산은 가정과 학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재생산을 위한 물질적인 조건을 보장해주는 것과 더불어 노동력에 대한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 노동력으로서의 자격을 주는 것은 국가 공인의 공교육이며, 공교육에서 배우는 것은 일반적인 교과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은 법적, 제도적 규칙에 대한 존중과 노동의 사회-경제적 분할에 대한 인정과 계급지배의 원리를 내면화시키는 국가기구일 따름이다.
미군정에 의한 교육정책 입법에 관여한 주체의 계급적 기반은 지주 및 소자본가 출신의 고등학력 소지자인 학자와 정치가였다. 그들은 미군정과 결탁함으로써 국가 성립의 주체가 되는데 일제시대에도 식민지배의 관료로 군림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을 활용하여 일제시대 이후 축소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계급기반의 ‘갱생’을 도모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교육정책 수립시 계급적 의도가 녹아들어갔던 것도 우연만은 아니다. 기회균등이라는 형식적 평등 이면에는 ‘학력’과 ‘권력’의 교환 가능성이라는 그들의 안전장치가 존재했으며, 당시 인민들의 생활수준으로 미루어 학력획득은 지배계급에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형식적이나마 존재하는 교육기회의 부여는 인민들의 정치적 경험의 부재와 더불어 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저항의 토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과잉 교육열이라는 형태로 전화하여 드러난다.

▶ 대학 서열화와 패거리 문화의 심화
한국사회의 지나친 경쟁구조의 직접적 표현인 대학의 서열화는 ‘학벌(學閥)’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대학의 역사와 전통이 다르고 학부마다 고유한 대상이나 방법론 등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의 ‘사실’이다. ‘사실’은 그자체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사실의 이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와 사회적 파장이 문제가 된다. 현재의 서열화는 학부의 독특한 정체성이나 대학의 특성화가 아니며, 권력 패거리들의 재생산방식이며 독점의 방식이다. 한정된 명문대의 독점적 지위는 소위 ‘밀어주고 끌어주는’ 선후배, 동기들의 지난한 노력으로 유지할 수 있으며 독점지위의 구조는 견고해진다. 서열화는 패거리 문화를 부추기고 패거리 문화는 서열화를 강화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점의 형태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학력주의가 중등교육 이수자와 고등교육 이수자의 임금격차와 승진에 있어서의 불공정성의 문제를 넘어서 소수정치권력과 독점자본의 문제로 집중되고 있는 경향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특히 ‘고대 교우회’의 막강 파워는 줄줄이 터지는 권력형 비리에 고대 교우의 단골 출연이라는 해프닝을 낳고 있다. 대학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교수진도 아니고, 교육여건도 아니며, 이런 대학을 떠받치고 있는 공고한 교우들의 힘일 뿐이다. 그것은 전통을 낳고 학교의 명성을 낳으며 우수학생의 선발을 통해 다져진다. 선발과 배제를 통해 명문대에 진입한 이들은 또다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갈 것이다.
이런 패거리 문화에 균열을 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의 핵심논리는 간단하게 ‘공과 사의 구별’이라는 ‘상식’과 ‘합리성’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고한 권력의 담합집단에게 합리성의 잣대를 들이댄다고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는 않을 것 같으며, 또한 패거리 문화가 없어진다고 해도 학력사회의 폐지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합리적이라는 서구에서도 학벌이라는 특정대학의 독점적 지위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대학의 경우 선발에 있어서의 계급적 편향까지 보인다고 한다. 즉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계급관계가 교육을 통해서 재생산된다는 것은 실증적으로 검증되고 있는 사실이다. 이것은 학벌과 패거리 문화가 구체적인 권력독점과 권력투쟁의 문제라는 것을 암시한다.

▶학력주의를 통한 계급재생산의 공고화 경향
군정시기의 몇 안되는 합리적인 정책결정이었다고 평가되는 교육정책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50∼60년대 초기의 계급간 계층간 사회이동이 급격히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 당시 대기업가의 직업세습률이 73%로 나타난 연구에 비추어 보면 – 소수의 지배계급에 의한 계급적 세습은 철저한 것이었다. 결국 교육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는 일반적 인식을 넘어서 계급적 재생산도 담보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교육제도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학력에 의한 사회이동의 편향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표2>는 1988년의 통계치이다. 이 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세대간의 계급이 어느정도 세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80년대가 90년대 이후와 비교해서 사회변동이 심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놀라운 경향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2000년에 들어서는 완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2000년 11월 15일 한겨레 신문에 의하면, 서울대학교 2000학년도 신입생 구성비율은 놀라운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신입생중 고급관리직과 전문직 자녀가 49.8%를 차지하고 있으며, 생산직 노동자 9.3%, 농어업 종사자 3.5%, 판매직이 9.5%였다고 한다. 또한 지역별로는 서울지역 출신이 45.2%, 광역시가 31%, 읍·면출신이 3.3%였다. 그나마 읍·면 출신들이 농어촌 특별전형에 의한 것임을 감안한다면, 학력에 의한 계급재생산이 더욱 공고해질 것임을 예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교육제도의 재생산과정을 적나라하고 실증적으로 분석한 보울스와 진티스의 연구성과물들은 어느정도 안정된 축적구도에 진입한 한국사회에도 이제 적용시킬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역사적 뿌리가 깊고 문화적 전통이 중시되는 유럽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문화적 재생산’의 메커니즘도 아직 한국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보편화될 경향성을 보인다. 이는 학력주의가 단순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계급투쟁의 연결고리로 작용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나타낸다.

▶ 대학의 자본종속과 보수화
지속되어온 교육개혁논의가 이제는 ‘지식사회’라는 개념으로 정리된 듯하다. 대학의 생존은 산학협동에 의해 승패가 좌우되고, 인문학마저 ‘BK 21’프로젝트에 편입이 될 때에만 유효성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급변하는 정보-기술혁명과 문화산업의 도래속에서 대학은 이제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창조와 확산을 담당하던 점잖은 지위에서 산업-금융자본의 하청업체로 자신의 위치를 정리하고 있다. 특히 과거 구체화되던 산학협동의 문제가 벤처열풍과 맞물리면서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BK 21’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대학의 서열화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화폐가 대학의 목줄을 쥐고 있는 한 자유로운 학문 탐구는 이상일 뿐이다.
대학의 자본주의적 기능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공공적 성격은 사회의 기본적 가치와 지식, 기능을 구성원에게 전수할 수 있었다. 대학 공동체 안에서 대학인은 학문과 함께 자유로울 수 있었던 최소한의 공공적 성격이 바로 대학의 자율성이란 가치였다. 그러나 현재 대학은 최소한의 자율성마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체제에 싱싱한 영감을 제공하고, 행동의 근거를 제시해 주던 대학의 창조적 기능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으며, 화폐와 학문의 교환이 노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지식과 교육의 가치를 비판과 창조라고 규정내리고 싶다. 거대한 변혁운동의 역사 속에서 지식과 이론이 저항계급의 혁명적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해 왔던 역사를 돌이켜 보게 된다. 기독교 운동은 지난한 투쟁으로 노예제를 타파하고 1000년 왕국 봉건제를 건설해내고야 말았다. 루터의 문제의식은 종교개혁을 낳았으며, 과학혁명과 근대 철학은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광범위한 사회변혁을 정치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현실의 대학의 모습은 단편적이고 현상적일 뿐이며, 충분히 변화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다. 특히 근대성의 반성적이고 부정적 사유라는 또다른 모습은 현실의 역동성을 담보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지성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가 절박해진다. 대학은 아직도 변혁운동과 함께 할 수 있는 유효한 진지일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
대학내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집요하게 문제제기를 해나가며 체제와의 선을 명확히 긋는 대항헤게모니의 촉발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상승시켜야 할 것이다. 노동자 계급과 연대하는 대학은 우리가 부여잡아야할 마지막 희망이다.

Ⅴ. 활발한 논쟁과 행동을 기대하며

교육을 분석할 때 흔히 우리는 교육의 국가로부터의 상대적 자율성을 말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교육은 정책의 문제였으며, 그 정책에 대한 어떠한 조직적 저항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인민에 의해 그대로 수용되고 있다는 다소 비관적인 견해를 도출해 내고 말았다. 그러나 고정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판적 사유와 행동으로 현실의 견고함을 돌파해 내야만 한다.
먼저, 일상적인 차원에서 전근대적인 규율윤리를 타파하고 합리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식민지 교육과정에서 중시되는 규율권력에 대해 논했듯이 한국 교육제도에는 아직 전근대적인 잔재가 남아있으며, 현실의 비합리적인 행태의 모태가 되고 있다. 따라서 비판적 합리성을 견지해 나감으로써 대학사회의 구조를 혁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머무를 수는 없다. 일상적 차원에서 합리성의 확보가 중요할 지라도 근본적인 변혁적 행동이 수반되지 않고는 대학의 개혁이나 학력주의 타파 등의 교육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자본주의체제라는 ‘조건’에 기반해서, 한국의 역사적 ‘과정’을 통해 고민해본 학력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계급적 관점의 중요성과 조직적 투쟁의 필요성을 인식해야만 한다. 즉 국가와 교육의 관계는 ‘교육의 자율성’이란 이상으로도, ‘교육의 수단화’라는 비관으로 봐서도 안되며, 명확히 역사속에서 실증할 수 있는 계급투쟁의 생생한 전장으로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체제에서의 교육과 대학이라는 우리의 존재조건에 대한 고민을 통해 행동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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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맑스, 최인호역 「경제학-철학초고」,『맑스엥겔스 저작선집』,박종철 출판사, 1991.

각주
1_학력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논의의 경우 ‘학력-상품’과 ‘학력-화폐’의 틀로 분석하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 ‘학력-상품’의 방식의 경우 학력의 상품적 성격을 과도하게 비약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학력-화폐’의 분석틀은 유통이나 가정, 학교등의 재생산영역에서의 노동도 생산적일수 있다라는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아직은 고민해 보아야할 문제라 생각된다. 여기에서 필자는 학력의 상품적 성격을 ‘학력-물신성’으로 풀어나가겠다.
이상 이두휴, 『교육경쟁의 정치경제학』, 교육사회학연구, 제9권 1호, 1999.
홍월이, 「인민의 지성으로 학력화폐 개혁을」, 『고대문화 50호』,1999. 참조.

2_자본주의체제는 축적이 계속되면서 자본의 평균 증식구조를 초과하는 상대적인 과잉인구 즉 산업예비군을 필연적으로 생산해낸다. 호황시기 산업예비군은 안정적 노동력의 수급의 역할을 하게 되어 임금투쟁에서의 유리한 조건을 창출한다. 불황시기에는 노동자에게 노동권을 박탈하고, 취업부분에 압력을 가하여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노동일을 연장시키며 자본의 명령에의 굴종을 강요한다.

3_기존 연구의 경우 한국의 학력주의를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접근하거나, 콜린스식의 산업화에 따른 기술·직업적 요구로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회문화적 접근의 경우 국가 설립 당시의 경제구조로 인한 정치적 역관계에 대한 분석과 급격한 사회구조의 변화를 간과한다. 또한 콜린스식의 접근은 한국의 특이한 권위주의적 국가권력에 대한 분석이 미흡하다.

4_이런 견고한 벽에 도전하는 유효한 시도들이 있다. 교수-학생관계 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 학생회의 권위적 구조이외에도 일상에 횡행하는 비합리성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들이 그것이다. 계급적인 관점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의미심장한 활동들이라 보여진다.
* CARLITO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11-24 1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