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 서울강남·경기새도시 과외비 전국평균 2배

과외비의 양극화 현상이 깊어지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3일 발표한 사교육비 실태조사 결과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선 과외비 지출이 줄어들거나 소폭 증가했지만 서울 강남·서초·송파 등 이른바 특`가’지역과 경기도 분당·일산 신도시에서는 도리어 큰 폭으로 늘어났다.

◇ 과외비 부익부 빈익빈 심화=서울의 강남 서초 송파 등 특가'지역은 읍·면지역과 도서지역 가구에 비해 과외비를 3배 이상이나 쓰고 있으며 과외액수의 증가폭도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대구 등 광역시의 중심지도 과외비가 20% 가량 늘어났다. 그러나 서울 강남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오히려 15% 줄어들었다. 특히 대표적인 고액과외로 꼽히는 개인·그룹과외를 받는 학생이 서울 특가’지역에서는 전체 학생의 25.3%, 분당 24.6%에 이르러 다른 지역 평균 11.8%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또한 가구당 과외비 역시 서울 특`가’지역 438만원, 신도시 441만원으로 전체 평균 192만원의 2배를 넘는다.

◇ 과외비 인플레=연간 30만원 이하 과외는 99년 27.3%에서 16.5%로 줄었다. 그러나 연간 151만원 이상 과외는 24.3%에서 28.7%로 늘었다. 101만원 이상도 13.1%에서 16.9%로 상승했다. 이에 따라 연간 과외비 총액이 125만7천원에서 133만5천원으로 6.2% 증가했다. 지난해 물가상승률 2.3%의 3배 가깝게 오른 것이다.

특히 입시준비를 위한 과외비가 큰 폭으로 올랐다. 개인·그룹과외비가 연간 113만1천원에서 128만8천원으로 올랐고, 입시 및 보습학원비도 115만2천원에서 122만8천원으로 상승했다. 대학입시를 위한 고등학생의 개인·그룹과외비는 1인당 192만4천원에 달했다.

◇ 초등학생 과외비 증가=지난해와 비교할 때 초등학생 과외는 70.1%에서 70.7%로 증가했다. 중학생 62.8%에서 59.5%로, 고등학생 47.2%에서 35.6%로 감소한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초등학생 연간 과외비도 114만7천원으로 12만원 올랐다.

초등학생 과외증가의 주된 요인은 특기·적성교육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특기 재능학원을 다니는 초등학생이 42.4%에 이르고 특기·적성교육비도 연간 77만9천원에서 91만3천원으로 급증했다. 초등학생의 경우 특기·재능학원을 다니거나 학습지 등으로 과외를 하는 기간이 연간 10개월로 중·고등학생보다 긴 것도 한몫을 했다.

◇ 학부모 허리 휜다= 전체소득 가운데 과외비 비중이 20% 이상을 차지하는 가구가 31.8%에서 34.5%로 높아져 `체감과외비’가 크게 높아졌다. 50% 이상을 투입하는 가구도 1.4%에서 1.7%로 높아졌다. 전년보다 과외비 지출이 늘어난 가구는 전체의 38.0%에 이른 반면 줄었다는 가구는 9.5%에 지나지 않았다. 직종별로는 관리·전문직 46.1%, 전문직 42.6%, 사무직 47.9% 등 주로 화이트칼라의 과외비 지출이 늘어났다. 이 때문에 과외비 지출이 가정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가구가 54.9%로 전체의 절반이 넘었다.
학부모 58% 교사 72% “보충수업 폐지로 과외비 늘어”

정부가 강조하는 `교육개혁’이 과외비를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릴 것으로 지적됐다.

학부모 설문조사 결과 교육부가 추진하는 △대입특별전형도 확대 △수행평가 △보충수업 폐지 △특기적성교육 확대 등 주요 교육개혁 과제의 대부분이 과외비를 증가시킬 것이라는 응답이 우세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쉽게 출제함에 따라 과외비가 증가할 것이라고 대답한 학부모는 22.3%인데 비해 감소할 것으로 내다본 학부모는 32.5%로 더 많았다.

그러나 대입특별전형의 활성화가 과외비를 증가시킬 것으로 보는 학부모는 42.6%로 감소를 전망하는 학부모 17.1%보다 훨씬 많았다. 교사 역시 증가전망이 41.4%로 감소전망 17.6%를 크게 웃돌았다.

200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선 역시 과외비 증가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대답이 학부모 49.5%, 교사 42.9%로 높게 나타났다. 과외비 감소를 기대하는 비율은 학부모 10.6%, 교사 9.3%에 불과했다.

보충수업 폐지의 효과에 대해서는 특히 부정적인 시각이 압도적이었다. 학부모의 57.9%, 교사의 71.6%가 보충수업을 폐지하면 과외비가 증가할 것이라고 응답한 데 반해 감소할 것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학부모 6.0%, 교사 3.4%에 그쳤다.

수행평가제도에 관해서도 학부모 46.9%, 교사 35.2%가 증가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는 학부모 7.8%, 교사 5.6%보다 훨씬 많았다.

특기적성교육 확대에 따른 과외비에 대해서는 학부모의 경우 증가 30.5%, 감소 24.1%로 나타난 반면 교사는 증가 13.6%, 감소 31.8%로 집계돼 다소 엇갈린 시각을 내보였다.

차기태 기자folium@hani.co.kr

『우스개 게시판-우스개 (go HUMOR)』 99871번
제  목:♨불기둥♨ 선문답.
올린이:baddnews(안중호  ) 01/03/09 14:18  읽음:1344 추천:100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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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도 대학원에 다녔었고

이 특유의 반사회적 꼴통적 성격으로 인하여

지도교수의 많은 구박-_-을 받았던 바 있다.

단체 생활에서, 자기 위의 직책에 있는 사람이 잘못된 생각을 하더라도

결코 그것을 지적하면 안되고

(물론 그들은 ‘난 개방적인 사람이야. 언제든지 지적해줘. 환영이라구!’

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대들이여, 속지 말지니 -_-+

좆 되구 나서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다.

상명 하복 중심의 이 대한민국 특유의 군대식 단체생활에서…

웃 사람이 맘 먹으면 아랫사람 좆 만드는건 일두 아니다.-_-)

회의때에는 항상 말석에 앉아서

의견이 결정날때까지 가만히…얌전히 있다가

“넌 어떻게 생각하니?” 라고 물을때

“..아 좋은데요 뭐 ^^;” 라고 해야 할 것이고

이럴때 당신이

“아 제 생각으로는 (이 팀의 대장인 당신이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듣고

그 후에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신-_-) 그 것 보다는

이렇게 이렇게 하는것이 더 좋을꺼같은데요?”

라고 말하실 생각이라면

그것을 이른바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철없다!’ 라고 표현하며

그래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뜻을 펼쳐 조직을 바꾸고 싶다! 라는 뜻있는 분들께는

1. 모니터를 든다.

2. 그것으로 힘차게 자기의 머리를 내리친-_-다.

3. 1의 과정을 반복한다.

라는 간단한 프로그래밍을 돌리는거 밖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

아! 군대 갔다오면 되겠구나? ^o^

한때는 자신도 이 사회의 말단으로, 무력한 자신을 통감하며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입장에서 토론할수 있는 사회를 꿈꾸고

…씨발거리면서 군대에 갔던 사람이

이병때는 좆뺑이 까면서 그러한 자신의 꿈을 확고히 다지다가

…..일병이 되자마자 후임을 존나 갈구게되는것은;;;

“인간이기에, 너무나 인간이기에!”

– 최인호 –

우리는 모두 숙연히 이해 해야만 한다.

누가 그 남자를 비난할 것인가! (-_-;)

그 사람은 말년병장-_-이 되어, 모든것이 자기 꼴리는대로-_-돌아가는

그러한 조직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지고-_-

제대 후 자기가 시키는 것에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복종하는 사람.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

‘저 봐. 아새끼가 철이 없어. 군대 갔다와야 인간이 되지 쯧..’

하는, 조직의 효율성을 추구할 뿐인 박정희스러운-_- 시선이

그렇게 이 사회에서 찾기가 존나게 힘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_-

“역사는 그 자체가 반복한다.”

– 기번, ‘로마 제국 쇠망사’ –

그리고

“내 인권은 어디 간거지?”

– 후미무라 쇼 –

이 ♥사랑과 평화의 출장전문 안마사♥가 이런 말을 할때마다,

역시나 아주 진부하게도

“넌 군대를 가야 인간이 돼!” 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그럴때면 본좌는

“저 4급인데요 ^^a” 라는 말을 돌려준다.

그 사람이, 정말 사람은 단체생활에 적응해야 하고

나의 이런 성격은 사회를 사는데 다소간 문제가 있기에

어느정도 조직생활을 해 가면서 그걸 받아들여야 하며

그것이 내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그 사람은

“그래? 잘됐네. 다녀와라.” 라고 할 것이지만

그 사람이, “난 애국심을 빙자하여 니가 좆되는걸 보고싶을 뿐이야.”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뭐야? 군대는 편한데 가면 안돼. 그거 얼마든지 취소 가능해.

지원해서 현역으로 가. 전방에서 고생하면서 많이 생각을 해보라고.”

…라고 말할것이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하며

…..별반, 내 예측은 ‘너무나 인간본성적’ 이기에 (난 단순한새끼다;;)

그다지 크게 빗나가지는 않아왔다는 것이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느낀 결론이다 -_-;

개인적으로, 나에게 욕 메모를 남기는 사람들에게 불만이 많다.

왜 나는 남자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잔디세대, 베레베레, 쿠키 등 그동안 유머란에 회자된

수많은 여자들이 들었던

“너 걸레지? 개같은년. 나랑 한번 하자. 죽여줄께.”

라는 건전한비난-_-이 가해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ToT

(그런 메모 온적 없다면 잔디양-_-은 중호오빠 에게 항변의 메모를 남기길♥)

왜 나는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십새끼 너 담배두 피냐? 아예 개 걸레구만.”

이란 비판-_-을 들어본적이 한번도 없단 말인가!! ToT

그 교수는 나를 불러 연구실로 들어갔다.

그분은 이렇게 진지하게 얘기하셨다.

“아무리 어떤 개인이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한국 사회에서는 살아 남을수가 없어 중호야.

자, 중호야. 생각을 한번 해보라고. 니가 포철에 들어갔다고 생각해봐.

너랑 같은 입사 동기가 있는데… 걔는 별로 일은 잘 못하고

영어실력도 뛰어난 편이 아니야. 하지만 그녀석은 정말

선배들, 상사들 말을 아주 잘 들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야.

조금 부당한 일이 있더라도,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서 웃으며 참는다고.

하지만 너는 반면에 웃사람들이 뭘 시킬때마다 꼭 이유 달고…

웃사람들이 개인적인 심부름같은거 가끔 바빠서 (-_-;)시킬때가 있는데

그럴때는 꼭 바락바락 나서면서 말 안듣는다구.

…니가 상사라봐. 넌 어떤 녀석을 빨리 승진시키겠니?”

“…말 잘듣는 놈이요-_-;”

교수님은 환히 웃으시며 나한테 물으셨다.

“잘 아네? 그럼 중호야. 니가 그 회사에서 출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니? ^^”

“회장의 딸을 꼬십니다.”

-_-;;;;;;;;;;;;;;;;;;;;;;;;;;;;;;;;;;;;;

그분은

더이상의 대화를 포기 하셨다 -_-;

남자 인터넷 –  불기둥닷컴 -_-++

* CARLITO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11-24 17:02)

[기획특집] 대학, 새로운 이념형의 모색

 

 [3] 담장 밖에서 본 대학

 

사회적 관점에서 대학이라는 제도의 기능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대학을 바라보는 내 관점은 아직까지도 개인적인 성격의 것이다. 즉 나는 그저 공부가 재미있었고, 공부로 밥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대학이기에 가능하면 그곳에 머무르고 싶었다. 나름대로 제도권에 편입되기 위해서 무던히 애도 썼다. 하지만 제도권은 이 처절한 노력을 몰라준다. 제도권이 얼마 안 되는 내 자존심마저 포기하기를 요구했을 때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후 대학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요즘은 ‘공부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대학’이라는 선입관을 반박해주는 가능성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 생활이 불안정하기는 해도 훨씬 더 많은 정신적 자유과 생활의 여유가 있다. 요즘 나는 ‘일체유심조’라는 원효대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몸뚱이로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인문학은 위기여야 한다.

한때 “인문학의 위기”라는 아우성이 있었다. 솔직히 그때 나는 쌤통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내가 보기에 한국의 대학제도는 너무 비효율적이다. 그러니 자본주의 논리를 도입해서라도 상업적 경쟁이라도 강요하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인문학의 위기”는 사회에서 존재가치를 입증하지 못한 인문학자들이 자초한 위기이다. 물론 인문학에 경제적의 가치를 생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인문학이 사회적 현실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제 고민을 발전시켜 왔다면, 지금처럼 ‘통폐합을 해도 문제없다’는 식의 모욕은 듣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의 인문학은 제 존재가치를 입증하는 데에 실패했다.

나 역시 시도 때도 없이 ‘경쟁력’ 운운하는 신자유주의적 천박함에는 역겨움이 난다. 하지만 상아탑에도 ‘경쟁’은 필요하다. 공정한 학적 경쟁의 시스템 말이다. 내가 보기에 우리의 상아탑에는 이 경쟁의 메카니즘이 없다.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허탈하게 만드는가. 열심히 공부해 봤자, 승부는 엉뚱하게 결정난다. 그런 것을 바라보면서 학생들은 일찍부터 학적 능력보다는 외교력, 지적 성실보다는 인간관계의 성실에 모든 것을 걸게 된다. 학문이란 이전 세대의 한계를 깨고 나아갈 때 발전할 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상아탑에서 그런 것은 어차피 금기다. 그 결과 지식의 시장에서 묘한 독과점의 지배가 형성된다. 여기에서는 당연히 새로운 것이 나올 수가 없다. 지적 도전을 할 시기에 한국의 대학은 순응의 지혜부터 가르친다.
한국의 대학은 현실과 별 관계가 없다. 그곳의 논의는 현실에서 올라온 고민들이 이론으로 결정화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지식은 현실의 문제해결을 위한 노우하우라기보다는 지식인의 신분을 사회적으로 구별짓는 기호일 뿐이다. 현실에 조회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히 지식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된다. 왜? 현실에서 검증될 기회가 없는 지식에는 발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과 매치되지 못한 개념은 추상성을 벗을 수가 없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쉽게 표현할 능력이 없는 것은, 그들이 정말로 고차원적으로 사고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실은 자기가 말하는 개념이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반증의 위험이 없는 추상의 높은 수준에서 발언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구름위의 대학

경쟁도 없고, 현실과의 연계도 없기에 한국의 대학에는 프로젝트라는 게 없다. ‘프로젝트’라는 말은 단지 기업과 연결된 몇몇 이공계열에서나 사용되는 단어로 여겨진다. 사실 대학원을 다니면서 내가 가장 놀라웠던 것은 도대체 ‘교수든, 학생이든, 도대체 궁금해하는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학이라는 것이 일단 궁금증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해결하는 프로젝트의 형태를 띄는 것일텐데, 세상에 대해 전혀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이 학을 한다는 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단 경쟁이 없으니 굳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 제시할 의무도 없고, 현실과의 연계도 없으니 그런 프로젝트가 애초에 필요하지 않다. 프로젝트란 작든 크든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 그것을 설명하는 새로운 틀, 그 속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식의 체계를 의미한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대학에는 이 프로젝트라는 관점 자체가 없다.

할 일이 없으니 당연히 뭔가를 할 의욕이라는 것도 존재할 수가 없다. 가끔 부산한 움직임도 있으나, 그건 대개 교수님이 어디서 받아잡수신 연구비의 명분을 제공해주기 위한 쓸 데 없는 작업일 뿐,  그나마도 대부분 대학원생들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교수님의 이력서를 화려하게 할 목적으로 프로젝트(?)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때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그 눈동자에는 총기가 없다. 어차피 자기의 일도 아니고, 그 일의 중요성을 정작 그 일을 맡긴 분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는 내가 번역해 드린 독일 사전의 서문이 두 페이지 가량 교수님의 새 책에 인용부호도 없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았다. 내게는 인용임을 안 밝힌 그 양심보다도 중간에 남의 글을 통채로 끼워놓고도 제 생각을 일관성있게 끌고 나갈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이 더 놀라웠다. 내용 이전에 문체론적으로라도 이게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더 큰 문제는 자기들만 공부를 안 하면 되지, 굳이 공부를 하겠다는 사람들까지 못하게 한다는 데에 있다. 뭐 좀 해보겠다고 하면, “튀지 말라”, “멀리 가지 말라”, “왜 허락도 없이 그런 일을 하느냐”는 둥 다양한 제재를 받게 된다. 나는 책을 번역하는 데에도 별도로 교수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관행이 있음을 책이 나오고 난 뒤에 욕을 먹는 가운데 배웠다. 내 문제의식을 적어 학회지에 제출한 글은, 어쩐 이유에선지 그게 편집위에 속하지도 않은 원로교수의 손에 들어가더니 결국 그 팔 힘을 동력으로 하여 훨훨 하늘을 날다 쓰레기통 속에 들어갔다. 다른 것은 다 이해해도 이건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 한 사람이 공부하는 게 왜 자기들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한국의 대학, 그곳은 나의 지성적 파악을 거부하는 숭고의 영역이다.

이상한 나라에서 빠져 나온 지금 경제적으로는 쪼달려도 여유가 있고, 자유가 있고, 무엇보다도 정치적, 철학적, 미학적 프로젝트가 있다. 정치적 프로젝트는 한국의 사상시장의 극심한 우경도를 바로잡기 위한 정치철학적 기획이다(<엑스 리브리스>). 철학적 프로젝트는 플라톤부터 데리다까지 서구의 철학사를 언어관의 관점에서 고찰해 보는 작업으로, 내 모든 작업의 인식론적 기초를 이루는 작업이다. 이는 박사과정의 논문과 별도의 작업으로 구체화될 것이다. 미학적 프로젝트는 탈근대적 사유들의 미학성을 드러내고, 기존의 미학사를 탈근대의 관점에서 다시 읽고, 탈근대의 관점에서 근대의 인식론적 미학을 뛰어넘는 탈근대의 ‘존재미학’을 수립하려는 기획이다 (<앙겔루스 노부스>). 이 세 가지 기획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한국의 시민사회를 위한 미학적 에토스의 형성에로 모아진다.

 

잡스런 논문 vs. 꿰뚫는 잡글

대학 밖에서 내가 누리는 또 하나의 자유는 문체의 자유다. 처음에 여기저기에 잡글을 쓸 때는 그저 생활의 한 방편으로 어쩔 수 없이 쓰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 다양한 주제로 산발적으로 쏘아댄 그 쪼가리 글들이 외려 높은 추상의 차원에서 노는 고상한 글들보다 어쩌면 더 현실을 더 잘 비추어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나의 잡글들은 그 하나 하나를 보면 현실의 파편에 불과하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논문이라는 형식의 평면성을 극복하고 현실의 입체성을 보여주는 큐비즘의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벤야민이 말하는 ‘분산된 지각’의 효과…. (요즘은 벤야민을 읽는다. 나는 그를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사유, 그것을 할 자유, 그리고 최소한의 자존심. 그것을 찾아 나는 대학 밖으로 나와야 했다. 내 잘못일까?

진중권(문화평론가)

* CARLITO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11-24 1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