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연의 영화음악에서 이상용이 재미있는 얘기를 해 줬다. 영화 초기 필름을 영사해서 단체 관람을 가능케 한 뤼미에르의 시네마토그래프가 산업의 기반이 되었는데, 현대에는 움직이는 영상을 혼자 즐기는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가 다시 각광 받고 있다는.

암실에서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영상을 즐기는 경험의 황홀함을 영화의 본령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이 변화는 영화의 본질을 훼손하는 흐름으로 받아들여질지도.

영화의 집단성은 집단 관람이라는 행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테다. (당연히 창작의 과정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영화 관람의 집단성은 매체의 무한한 복제 가능성에 기반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영화를 함께 관람하고 있다.

기술은 점점 더 우리의 관람 행위를 파편화시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사회적이라 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영화는 파편화된 채 총체를 이루는 예술이라는 거다.

 

이 블로그가 2001년에 제로보드로 만든 홈페이지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13년이 흘렀다.

아카이브 페이지(https://www.calitosway.net/all-archive/)를 들춰 보니 학생 시절에 섭취한 정보의 양과 사고의 폭이 적지 않았는데, 지금은 기껏해야 시덥잖은 영화 감상 글이나 사진 몇 개 올리고, 그마저도 시들시들해지는 트위터 아카이브 포스트만 늘고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모든 일에 둔감해지지.

내가 생각하는 세계의 원리와 전혀 다른 질서로 움직인다고 느꼈던 이 이상한 회사라는 늪에서 처음에 느꼈던 고립감이 줄어들고 있는 만큼 나는 서서히 통나무가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번에 파수꾼 보고 들었던 어떤 상실감 또는 열패감이 다시 살아 난다. 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