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 : 각색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광 3법칙’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14)

“영화를 두 번 보고, 글을 쓰고, 직접 만든다”는 내용의 ‘시네필 3법칙’을 프랑수아 트뤼포가 직접 말한 적은 없다. 이 ‘3법칙’은 트뤼포의 책 내용 일부가 그의 삶에 대한 해석과 섞이면서 각색된 말이다. 각색의 주인공인 정성일 평론가는 평생 영화에 순정을 바쳐온 시네필로 1995년 영화잡지 <키노>를 창간한 평론가이자 2010년 영화 <카페 느와르>로 입봉한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누구보다도 ‘시네필 3법칙’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이 ‘시네필 3법칙’은 프랑수아 트뤼포의 법칙보다 정성일의 법칙으로 헌정되는 쪽이 마땅해 보인다.

출처 : 뉴스톱(http://www.newstof.com)

일대종사, 청춘과의 결별 – 허지웅의 블로그(http://ozzyz.egloos.com/4826102)

허지웅은 일대종사에 대해 과거를 추억하고 후회할 수는 있지만 되돌릴 수 없음을 알고 마음을 내려 놓는 이야기로, 이전의 왕가위 영화에서 보여 준 태도에서 한 발 나아갔다고 평가한다. 나는 엽문과 궁이의 앞만 본다는 말 뒤에 여전히 궁대인이 말한 무예의 마지막 진수, ‘뒤돌아 본다’는 가르침이 강한 자장으로 남아 있으며 내려 놓은 마음이 끝내 미결감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선택이 야기하는 미완의 상실감을 후회 없이 받아 들인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후회하지는 않지만 완성할 수도 없는 이야기인 셈이다.

[전영객잔] 크라이스트 세계의 그 텅 빈 공허! – 안시환, 씨네21

여전히 크라이스트의 세계는 전체를 알지 못한다. 그것이 세상의 구원을 이야기하는 오만함을 뽐내면서도, 단 한명의 여성도 구원하지 못한 이유이자, 남성-크라이스트-이성의 궁극적 한계다. 궁극적으로 <안티크라이스트>가 단죄하는 것은 여성이 아닌, 자신의 무능(본성과 원죄까지도)에 눈감고 있는 크라이스트의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