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이란 감독의 이름을 종종 접해봤던 나는 그와 접할 기회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야 파란대문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그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의 영화에 빠짐없이 나오는 창녀라는 인물은 이 영화에도 등장한다. 창녀는 공공연히 그 존재를 알면서도 없는 것처럼 애써 부정하는 우리 사회의 위선의 표상이자 이 사회의 일반인들에게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 되는, 소외된 자들의 은유이기도 하다.
이 창녀(이지은)는 새장 여인숙이라는 곳에서 말 그대로 새장에 갇힌 채 수많은 남자들의 소유와 집착, 그리고 때로는 쾌락의 대상으로 살고 있다. 항상 그녀의 뒤를 쫓아 다니며 돈을 뜯어대는 백수건달이 그렇고 여인숙의 주인 아저씨(장항선)와 심지어 그의 아들(안재모)이 또한 그렇다.

그리고 이 여인숙 주인 딸인 동갑내기 여대생(이혜은)은 이 창녀를 남들에게 도저히 보여줄 수 없는 자신의 치부로 생각하고 마음의 문을 닫고 경멸하고 무시한다.
이렇게 도무지 소통할 곳이 없는 갑갑한 새장 속에서라면 누구나 끊임없이 자기 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가 문을 닫아버리고 나올 생각을 않겠지만 이 창녀는 어딘가 특별한 구석이 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동갑내기 여대생에게 문을 열어보이는가 하면 파렴치한 건달녀석도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 그녀는, 어쩌면 감독이 말하려는 바를 그래도 체현하는 페르소나인지도 모른다.

이혜은이 이지은의 뒤를 밟으며 점차 그녀를 닮아가는 모습이나, 창녀를 창녀로만 보지 않았던 해변 안전요원과 그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소외된 이들의 바깥 세상에 대한 소통의 강렬한 소망과 그 소통의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 같다.
어쨌든 이 영화를 통해서 나는 김기덕이라는 사람이 소외된 이들과 소통의 문제, 그리고 소유와 집착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는 감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주인공을 뒷골목의 창녀나 남자들의 소유욕에 대한 피해자로 설정하는 점이나 윤리적인 잣대로는 생각할 수 없는 상황 설정들(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통해 성병을 얻는다는가 하는 것들)이 이 감독을 주류에서는 좀 빗겨난 컬트 감독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이지은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이 오고가는 길 한가운데에서 헤매고 있는 거북이 한 마리, 그리고 어항 속에 갇혀 있던 붕어 한 마리를 물 속으로 놓아 준다. 타인에게 소유된 존재로서의 자신을 해방시키고, 인간으로서 타인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그녀의 강한 의욕을 느낄 수 있었던 이 장면들이 가장 기억에 남으며 여운을 남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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