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대한 애증(愛憎)
추억담긴 정든 대구, ‘보수의 아성’ 이미지로 멀게만 느껴져

김동춘 기자 ohmynews@ohmynews.com  

이 글은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모교인 대구 계성고 문학동인지 <계성문학>에 기고한 것으로, 계성고 64회 동기생 사이트(http://64.keisung.or.kr) ‘모교방문’ 코너에도 실려 있습니다. 진보적 사회학자로 평가되고 있는 김 교수는 학창시절을 대구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고향같은 대구를 떠올리면 마음이 답답하다는 김 교수의 글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김 교수의 양해를 얻어 ‘전문’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경상도, 그리고 대구만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사랑하지만 껴안을 수 없는 상대, 마음으로는 언제나 그리워하지만 선뜻 달려갈 수 없는 고향과 같다고나 할까.

대구를 생각하면 감정과 이성이 서로 충돌하고, 이성이 감정을 억누르는 고통을 맛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여 년 동안 대구는 나에게 그런 곳이었고, 나는 고향을 가지 못하는, 고향에서 따돌림받는 주변인이었다. 그것은 바로 지난 30년 동안 우리사회를 찢어놓은 지역주의라는 두터운 벽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지역주의는 단순히 내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내 고장 출신 정치가들을 옹호하고 다른 지역출신자들을 배척하는 정치적 태도이다.

대구 경북지역의 입장에서 보면 80년대에는 주로 내 지역사람을 감싸고 지지하는 태도로 표현되었지만, 이제 내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적 상징이 사라진 90년대 중반 이후에 와서는 다른 지역 출신 정치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변질하였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서 그러한 경향이 더욱 심각해졌다. 서울에 살고 있어서 잘 알 수는 없지만, 대구 사람들을 가끔 만나거나 대구에서 들려오는 소문을 들으면 정말 말도 안되는 소문들이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실을 접하고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대중은 거의 ‘악’의 원천이 되었고, 유화적인 대북정책, 언론사 세무조사, 의약분업 등 나름대로의 개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 정부의 실수나 문제점은 물론 시민단체의 낙선낙천 운동까지도 모두 김대중의 탓으로 돌려지는 것을 보았다.

‘전라도 음모론’은 대구 사람들의 모든 정치적 판단력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미움’과 ‘증오’는 물론 현정부 들어선 이후 대구 경제의 침체, 대구 경북 출신자들의 각종 인사 과정에서의 상대적 소외라는 현실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이해해주기에 대구사람들의 김대중 증오는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증오의 공간을 누가 가장 잘 활용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그 답은 명백하다.

김대중 정부가 대구 경북 지역사람뿐 아니라 전라도 사람들에게조차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현 정부가 인사정책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 동안의 고위 공직자 발탁과정이나 각종 부패스캔들을 보면 해도 너무했다고 생각할 때도 많다.

옷로비 사건, 진승현 게이트, 윤태식 게이트, 아태재단 비리, 최근의 김대중 두 아들 문제에 이르기까지 권력 장악 이후 발생한 썩은 냄새나는 돈 잔치에는 모두 김대중의 사람들이 개입되었다. 전라도에서는 민주당이 실제 여당이므로, 각종 부패한 인물들이 민주당 간판을 내걸고 공천을 받았으며 지역사회의 지배자로 군림하였다. 오죽하면 광주의 시민단체가 민주당 공천과정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겠는가?

그러나 돌이켜보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으로 이어진 30년 동안의 ‘경상도 지배’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단지 그때는 무시무시한 군사통치 시절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비리와 부패가 있더라도 지금과 달리 그것이 제대로 밝혀진 적이 없었고, 반대세력도 지금처럼 제대로 조직화되지 않았으며, 또 감히 비판의 목소리를 제기하기도 어려웠다.

부정과 비리의 규모도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었으며 그 방법도 훨씬 은밀하였다. 각종 고위직 인사에서의 경상도 독점은 청와대나 고급관료사회에서 30년 동안 경상도 말이 표준말이 될 정도로 심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지난 30년의 ‘경상도 지배’는 서울의 부자동네인 강남지역 거주자들 중 다수를 경상도 사람으로 채울 정도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권력이 부를 가져다주는 세상에서 권력에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이 각종 이권과 특혜를 독점하게 되었고, 일단 확보된 이권은 흔들리지 않고 그들에게 안정적인 부를 보장해 주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서 경상도는 권력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정부 들어서 전라도 사람들 중 고위직에 5사람 중 4사람이 진출해서 그들은 모두 출세한 것처럼 보이지만 경상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인재의 풀이 많기 때문에 10사람 중 반수인 5 사람이 진출해도 절대숫자에서는 전라도 사람들을 능가한다.

그런데 전라도 사람들이 이렇게 갑자기 권력을 차지하다 보니 옥석이 구분되지 않은 채 엉터리같은 인물들이 권력자의 위치에 올라서게 된 것도 사실이다. 김대중씨가 진정으로 지역주의를 철폐하는 정책을 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지만, 자신의 권력 기반이자 정치자금의 기반인 전라도 출신 후배 정치가나 지인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것이 결국 김대중 정부의 덫이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김대중이 전라도 사람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30년 동안 우리 정치를 지배해온 돈 정치, 즉 고비용 정치에 상당부분 기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돈 정치의 씨앗은 실제로는 박정희와 전두환이 뿌린 것이라는 점이다. 박정희를 비판해온 김대중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는 박정희와 같은 방식을 쓸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결국 오늘의 김대중의 족쇄가 된 것이다.

즉 김대중의 실패는 개발독재 시절의 잔재인 셈이며, 김대중 정부의 부패사건들은 바로 개발독재의 유산이 마지막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라도건 경상도건 30년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문화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었고, 따라서 그들이 저지른 비리를 ‘전라도’ 정권의 문제로 볼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이 지적되어 온 것이지만 지역주의는 경상도나 전라도 양 쪽 모두에서 양심적이고 소신있는 인재의 등장을 가로막아왔다. 전라도에서는 민주당이라면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되고, 경상도에서는 한나라당 아니, 김대중을 공격하면 고양이를 갖다 놓아도 당선된다는 이 자조적인 이야기들이 왜 나오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너무나 분명하다. 막대기와 고양이는 결코 국회가 가서는 안될 존재들이다. 그런데 지역주의에 편승해서 난세에 광대가 영웅이 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역주의에 편승해서 3공 시대의 낡은 인물이 2000년에도 버젓이 국민의 대표로 행세하고 있으며, 군사정권 하에서 학생과 양심적인 인사를 사찰하고 고문한 반민주적이고 반인권 인사들이 이 밝은 세상에서 변신하여 출세하고 있다. 지역주의의 사시(斜視)는 합리적 정치적 토론을 봉쇄하며, 건강한 여론의 형성을 가로막는다. 의료대란은 의사들의 집단적 반발에 의해 초래된 것이지만, 그 잘못은 모두 정부에게 돌려지며, 탈세의 주범인 언론사 사주들이 세무조사가 정치공세라고 반격하면서 면죄부를 받게 된다.

냉정하게 보면 대다수의 대구, 경북 사람들은 지난 ‘경상도 정권’ 시절에도 별로 혜택을 입지 않았으며, 대다수의 전라도 사람들은 ‘전라도 정권’ 하에서도 별로 이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군사정권이 대구의 서민들에게 별다른 혜택을 주지 못했다는 것은 각종 통계로도 확인된다.

전두환 정권이 끝날 무렵 노동자 평균 임금을 보면 광주가 94.7이었고, 대구는 76.5였다. 대구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저소득 계층이 많았다. 90년 당시 월 30만원 이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비율은 서울이 전체의 18.2%였으나 대구는 28%로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90년 당시 대구의 주택 보급률은 48.9%로서 전국 최하위였고 자가 보유율도 전국 최하위인 36.35였다. 문화생활은 더욱 열악하다. 문화시설 및 행사를 보면 대구는 서울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경상도 정권’ 이 대구의 서민, 그리고 보통의 대구사람들에게 가져다준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경상도 정권, 전라도 정권이라는 용어 자체는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라는 이야기다. 그것과 이해 관계가 밀접히 결부된 사람들이 만들어내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도록 유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오늘날 외국 농산물의 무차별인 도입, 중국과의 마늘 비밀 협상으로 인한 피해는 전라도 농민이나 경상도 농민이나 다를 바 없다. IMF 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칼날은 광주의 기업이나 울산, 대구의 기업에 동시에 불어닥쳤다. 대형 할인점 진입으로 생계의 터전을 잃어버린 동네 슈퍼, 동네 서점, 구멍가게 주인들의 한숨소리는 전라도나 경상도는 물론 전국의 중소도시에서 예외 없이 들려온다. 세계화된 경제질서 하에서 정부의 역할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고통이 정부의 잘못 때문에 초래된 것으로 생각한다.

대구 섬유산업의 몰락은 현정부의 대구, 경북 차별정책의 산물이 아니라 섬유산업 자체의 사양화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구, 경북지역의 고통을 현 정부의 탓으로 선동하는 정치가들은 지역주의에 기대어 자신의 입지를 찾으려 한다. 실제 핵심 권력권에 진출할 기회를 갖는 공직자, 정치가, 기업가들에게는 정권의 교체가 사활이 걸린 문제이지만 서민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 엘리트층이 만들어낸 지역주의 선동에 경상도의 보통 사람들이 동원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떤 보도를 보니 대구에서는 온 지역사회의 학교와 학부모가 서울대 몇 명 보내는가에 관심을 갖고서 전쟁과 같은 상태에 있다고 한다. 작년에 비해 대구지역에서 서울대 입학생 수가 몇 명이 줄었느니 하면서 학생들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을 다그친다고 한다. 도대체 대구 지역에서 서울대 가는 사람이 늘어나면, 대구지역이 더 좋아진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대구에서 서울대 간 사람들이 과연 대구를 위해 무슨 좋은 일을 했으며, 나라를 위해 이 사회를 위해 무슨 기여를 했다는 말인가?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지역주의의 분위기 하에서 사학비리 등 각종의 학교의 비리는 그대로 은폐되고, 그냥 평범하게 자신의 길을 갈 수도 있는 학생들을 열등의식으로 몰아넣는 비인간적인 입시교육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은 너무나 분명하기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도 좋은 일 하려고 몸부림치는 시민단체를 김대중 정부의 홍위병이라고 공격하면, 겉보기에는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처럼 들리고 지역사회의 공적이 되어버린 김대중씨를 공격함으로써 얻는 정신적 카타르시스는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세력, 양심적인 목소리는 이제 설자리를 잃게 되고 지역사회는 더욱 더 황폐화되고 ‘인물’은 사라질 것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의 소외가 이러한 지역주의에 불을 당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지방의 소외는 대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광주의 문제, 전주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가끔씩 경상도에 가보면 시장, 국회의원 등에 출마한 사람들의 면면을 듣게 되는데, 이렇게도 사람이 없는가 생각이 들어서 탄식이 절로 나온다. 정치가 지역주의에 좌우되니 참신하고 양심적인 인사가 힘 있는 자리에 올라설 길이 너무나 막연하고,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도 각종 비리사건에 연루되어 도중하차하게 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비이성적인 지역주의, 증오의 논리에 대구, 경북 지역이 지배되면서 대구의 시민문화, 지역에 대한 진정한 자긍심과 자부심은 더욱 쇠퇴하였다고 본다면 나의 판단이 과장된 것일까? 오늘 대구에서 의병운동, 국채보상운동, 4.19의 전통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면서 그것을 발전시키려는 사람이 있는가?

일찍이 대구 경북지역은 독립운동의 본산이었다. 안동을 비롯한 경북 지역은 전국에서 독립지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다. 적어도 해방 직후까지 민족주의 사회주의 계열 할 것 없이 경북지역과 대구는 민족의 양심, 사회의 양심을 대표하는 곳이었다. 그 전통이 60년 4.19까지 연결된다. 멋있는 문인, 예술가, 사상가, 지사, 학자들이 대구에서 배출되었다. 그들은 결코 대구와 경북 지역만을 운운하며 자신의 정신 세계를 구축하지 않았다.

오늘 대구의 젊은이들 중 대구, 경북 출신의 걸출한 문인, 예술가, 사상가, 운동가들 기억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대구와 경북은 보수적인 지역이지만 그 보수는 엄정한 원칙과 자존심으로 무장되어 있었으며, 결코 증오와 배타의 논리에 지배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시정의 아낙네에까지 침투되어 있는 이 지역주의라는 중병은 지역에 대한 자긍심과 자존심의 내용이 없는, 아무런 방향과 원칙이 없는 생각의 찌꺼기는 아닌가?

대구는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3년이라는 극히 중요한 시기를 보낸 고향과 다름없는 곳이다. 나는 청운의 꿈을 안고 대구에 와서 계성학교에 입학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곧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산 기간은 어언 25년이 되었지만, 대구에서의 3년은 그 이후 서울에서 살았던 기간의 1/8에 불과하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내 정신세계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10대말이라는 인생의 극히 중요하고 예민한 청소년 시기를 바로 대구에서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대구에 올 일이 있어서 옛날 하숙하던 서현교회 근처 남산동, 밤늦게 학교에서 내려와 데친 오징어 먹던 서문시장 골목입구, 유도복 체육복 옆에 끼고 지각하지 않기 위해 허겁지겁 뛰어들어가던 계성학교 정문, 아직도 변치 않은 중앙통 네거리, 한일극장 옆, 소풍갔던 화원 유원지 등을 차를 타고 지날 때면 자꾸 주변 거리를 살펴보면서 설레이는 가슴이 억누르고 한다.

그러나 이성을 가지고 정신을 차리면 다시 대구는 나에게 멀게만 느껴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나는 대구와 경상도를 잊어버렸다. 서울생활에 적응하기 바빠서 잊어버린 점도 있지만 이제 동년배의 대구, 경상도 사람들과 만나는 일보다는 타 지역 출신자들과 더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구에 대해 정신적 거리감을 가진 더욱 중요한 이유는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궤적이 ‘보수의 아성’으로 변해버린 대구의 그것과 점점 더 멀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경상도 사람이다. 경상도 출신이라는 사실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경상도의 옛 문화를 나름대로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지난 30년 동안 정착한 이 지역주의 정서와 문화는 싫어한다. 이 작은 나라에서 경상도, 전라도 가리는 것이 못마땅할 뿐더러 나라를 망칠 풍조라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계성학교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계성학교 출신끼리 뭉쳐서 우리끼리 뭐 좀 해보자고 제의하면 그를 만나지 않을 것이다. 서울에서도 학계의 계성학교 출신 선후배끼리 만나는 일이 가끔 있다. 나는 그러한 만남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 즐긴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간의 사귐은 얼마나 인생을 훈훈하고 풍요롭게 해주는가?

시민단체와 학계에서 활동하다 보니 여러 모임, 강연자리, 회의 등에 참석할 일이 많은데 어떤 때는 모임이 끝난 이후 누군가 조심스럽게 내가 다가와 “선생님 계성 나오셨지요. 제가 계성 00회 졸업생입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후배들을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은 내가 계성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소문으로 듣고 알지만, 내가 지역이나 출신학교 따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에 반가우면서도 그렇게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후배들을 만나면 정말 기분이 좋다. 그래서 다음에 만나자고 이야기한다.

나는 지금까지 25년간 서울에서 살면서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불이익과 불편함을 느낀 적도 있다. 내가 활동하는 범위 내에서 고등학교 선후배를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대구가 내 생활터전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대구를 그리워한다. 나이가 40줄에 들어온 이후 그리움은 점점 더해간다.

그러나 나는 오늘의 이 편협한 지역주의가 사라진 대구, 비리 사학재단 이사장, 부패한 시장, 악덕기업주가 더 이상 지역의 대표로 행세하지 않고, 양심적인 인사, 정의롭고 소신 있는 시민,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되는 대구, 그런 건강한 대구를 그리워한다. 그런 대구와 대구사람을 만나기 위해 달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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