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은 파리와 변화하는 서울이 각각 영화와 연결되어 있는 방식

파리시는 영화와 파리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돌아보는 전시회를 선보였다. 파리 자체는 유럽의 다른 도시보다 더 아름다운 도시는 아니다. 파리의 독특한 매력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파리를 승화시킨 예술가에 의해 지속되어왔다. 파리는 각각의 영화가 새로운 보석으로 아름답게 치장하는 궁중의 귀부인이다. 사람들은 그곳을 마치 영화 속 풍경처럼 거닌다. 예를 들어 생 마르탱 운하를 건널 때면 사람들은 마르셀 카르네 감독의 1938년작 <북 호텔>을 떠올린다. 이 작품은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지만, 실제 모델인 북 호텔은 어쨌거나 역사적 유물로 지정되어 있듯이 파리는 현실과 허구를 결합한다. 비르 하켐 다리 위를 지날 때면, 사람들은 눈을 들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지하철교 위 아파트를 바라본다. 여러 해 동안 그 아파트를 세놓는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마치 말론 브랜도와 마리아 슈라이더의 귀신에 사로잡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도 그 집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뮌헨>에서 이 다리를 이용했다. 그곳에 시장을 배치했는데, 너무나 엉뚱해서 프랑스 극장에선 관객이 자지러졌다. 필자가 사는 구역은 오랫동안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특별한 왕국이었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 앙투완 드와넬은 몽마르트르 언덕을 아멜리 풀랭과 함께 공유하게 됐다. 마치 아멜리가 실제 존재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아멜리의 식료품 가게를 보러 오고, 그녀가 일 한 바에서 커피 한잔을 마신다. 이처럼 파리는 우리 영화광들의 꿈을 충족시켜준다.

서울 또한 파리처럼 영화의 도시지만, 근본적으로 대조적인 방식으로 그렇다. <하류인생>이나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영화에서, 감동은 허구 세계와 동일한 현실이 부딪침으로써가 아니라 관객에게 보여진 차이에서 비롯된다. 1950년대 혹은 60년대의 종로 거리를 보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인데,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이 거리가 영화에서 봤던 것과는 하나도 같은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은 고고학자가 되어 발굴 작업을 통해 영원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과거를 다시금 눈앞에 떠오르게 한다. 우리가 좀더 오래된 작품을 볼 때 효과는 좀더 강력하다. 1960년작 <오발탄>이나 1980년작 <바람불어 좋은 날>은 서울에 관한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며 또한 기록이다. 판잣집이나 공사 중인 아파트에서, 보는 사람은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큰 파도와 같이 나아가는 한 도시의 강력한 힘을 느낀다. 영화는 이 급격한 변화의 증인이 된다. 유현목 감독과 이장호 감독은 각각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역사의 일시적인 순간을 살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교차로 빨간 신호의 혼잡함 속에 길 잃은 남자나 공사 중인 아파트 숲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젊은 안성기의 모습 또한 덧없는 풍경의 증인들이다. 처절한 저항의 행동으로 필름은 사라질 운명에 처한 지형을 찍어놓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화는 이 잃어버린 과거로 풍요로워진다.

서울은 모든 것이 순간적이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모하지만 한국영화는 도시의 역사를 써가며 연속성을 부여한다. 반면 파리는 한결같은 도시이다. 파리는 마치 각각의 작품이 이 변함없는 풍경을 새로운 시각과 인물로 채워놓는 것처럼 고정되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버섯이 땅에 연결된 것처럼 이 두 수도는 각각의 방식으로 영화에 연결됐다.

Paris et Seoul, deux cine-villes.

La mairie de Paris propose une exposition qui explore les rapports intimes de Paris et du cinema. Paris n’est pas en soi plus belle qu’une autre capitale europeenne. Son charme unique tient dans les artistes qui la subliment depuis tant d’annees. Elle est une courtisane que chaque film vient embellir d’un nouveau bijou. On s’y promene comme dans un paysage filme : par exemple, on ne peut pas passer sur le Canal St. Martin sans songer au chef-d’œuvre de Marcel Carne ” Hotel du Nord ” (1938). Paris marie la fiction et la realite : le film fut tourne en decor mais le veritable Hotel du Nord est tout de meme classe ” monument historique “. En passant sur le pont de Bir Hakeim, on leve les yeux vers le metro et l’appartement du ” Dernier Tango a Paris “. Pendant des annees, j’y ai vu une pancarte signalant qu’il etait a louer. Personne ne voulait l’habiter, comme s’il etait hante par Marlon Brando et Maria Schneider. Recemment, Steven Spielberg a utilise ce meme pont dans ” Munich “, il y a installe un marche si incongru qu’il fait se tordre de rire les salles francaises. Mon quartier fut longtemps le royaume privilegie de Francois Truffaut. Cependant, depuis quelques annees, Antoine Doinel partage la butte Montmartre avec Amelie Poulain. On vient voir l’epicerie d’Amelie, on prend un cafe au bar ou elle travaille … comme si Amelie existait. Paris peut ainsi authentifier nos reves cinephiles.

Seoul est comme Paris une cine-ville, mais de facon radicalement opposee. Dans des films comme ” La Pegre ” ou ” Taegukki “, l’emotion ne provient pas d’une collision entre un monde de fiction et une realite identique, mais du decalage propose au spectateur. Il est bouleversant de voir l’avenue de Chongno dans les annees 50 ou 60, justement car cette avenue, qui existe toujours, n’a plus rien a voir celle qui nous est montree a l’ecran. Le cineaste devient l’archeologue qui, d’un coup de pioche, fait ressurgir un passe qu’on croyait enfoui a jamais. L’effet est plus fort encore lorsque nous voyons des œuvres plus anciennes. ” Une balle perdue ” (1960) ou ” Un beau jour de grand vent ” (1980) sont a la fois de tres beaux films et des documents sur Seoul. Devant ces bidonvilles ou ces tours en construction, on percoit la puissance d’une ville qui avance comme une lame de fond, rasant tout sur son passage. Le cinema devient temoin de ce raz-de-maree. Yu Hyonmok et Lee Chang-ho, chacun a leur epoque, sentaient qu’ils vivaient un moment fugitif de l’histoire de leur cite. L’homme perdu dans un chaos de phares et de feux rouges, le jeune An Songgi courant a travers une foret d’immeubles en chantier, sont aussi les temoins d’un paysage ephemere. Dans un acte de resistance desespere, la pellicule a fixe une topographie vouee a disparaitre. Avec le temps, les films s’enrichissent de ce passe perdu.

A Seoul tout est precaire. La ville est en constante modification, mais le cinema coreen, en ecrivant son histoire, lui offre une continuite. Paris est au contraire monolithique. Elle se figerait si chaque film ne venait peupler ces paysages immuables de personnages et de visions neuves. Chacune a leur facon, ces deux capitales sont donc attachees au cinema comme un champignon a sa terre, se nourrissant l’un de l’autre.
글: 아드리앙공보 포지티브 기자. 영화평론가
번역 진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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