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넘어, 월장 그 이후를 이야기하자

변희재 (edit@jabo.co.kr)

나의 경솔한 비판에 대한 사과

대자보에 첫 번째로 올린 글은 월장의 기사 파동 사건을 본 직후였다. 그때 당시의 감정은 월장의 대학생들에 대한 “그 멍청함. 그 경솔함”그 자체였다 그 이후 24시간 동안 우리모두 쟁점 게시판에서 진중권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진중권님과 미둥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을 순화할 수 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물론 앞으로 인용을 할 정문순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혹시라도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지 모르는 월장의 멤버들에게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내가 갖고 있던 답답한 생각은 군가산점제 논란 이후부터였다. 그 당시 나는 2개월 동안 흔히 말하는 사이버마쵸들에 대한 비판글을 써댔다. 그건 대자보에도 게시되어 있을 것이다. 그 사이버 마쵸들에 대한 나의 감정 역시 “그 멍청함, 그 경솔함”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이다. 그 사이버 마쵸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들이 아닌 이상 진보진영이 애지중지하는 평범한 일반 소시민이 아니겠는가? 그럼 일단 사이버 마쵸들의 천박한 행태에 대해 비판을 했다면 그 이후부터는 “저들이 왜 저럴까?” 이런 분석적 사고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건 그들의 잘못에 대한 단죄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어떤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다면 그는 당연히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지식인들이나 운동가라면 그와 비슷한 환경에 처한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을 때, “이것 구조적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야?” 이 정도의 생각은 해줘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군가산점제 논쟁에 대한 여성주의 쪽의 사후토론 글을 봐도 그런 것은 없었다. 여전히 사이버 마쵸들에 대한 두들겨패기만을 강조하고 있었다. 내가 월장의 기사에 대해 갖고 있던 불만도 이것이었다. 처음도 아니고 이미 다 같이 국가주의의 억압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저항세력 혹은 소시민들끼리 치고받으며 큰 홍역을 치룬 이후에 왜 또 다시 그와 똑같은 수준의 기사를 올려대냔 말이다. 뭐라도 좀 배웠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군필자에 대해 진솔된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모두 게시판에서 여러 사람들과 토론을 한 끝에 그건 내가 너무 무리한 기대를 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에 대해 제대로 토론을 해본 적은 없었다. 군가산점제 토론에서 수많은 네티즌들이 올린 폭력성 글의 행간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라고 요구하는 건 최소한 그 문제에 관해선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여성주의자들에겐 무리였다. 그렇다면 군필자들의 의식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나라도 나서서 더 친절하고 성실하게 그들의 생각을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나의 첫 번째 글은 그 점에서 부족했던 것이다.

여성들이 군대에 대해 제대로 들을 수 없다는 건 군필자들의 자업자득이나 마찬가지이다. 군대에 대해서 똑바로 이야기를 안 하니까 자꾸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나만 해도 같은 군필자들끼리 이야기해보면 거의 다 공수특전부대 출신인양 떠들어대는 말을 듣는 게 전부이다. 물론 나야 그 말을 죄다 행간으로 읽어낸다.

“내가 설악산을 10번을 오르내리고, 상륙작전을 20번 정도 해봤어.” 이런 말을 하는 군필자가 있다면 여성들은 “되게 잘난 척하네.” 이렇게 생각하는 반면 나 같은 경우는 “뭔가 많이 잃어버렸구나.” 이렇게 돌려 생각해준다. 또한 “나는 조국을 위해 충성을 다했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군필자가 있다면 여성들은, “저런 국가주의의 화신.”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국가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못했구나.” 이렇게 반대로 생각하게 된다. 그건 내 자신부터 그렇기 때문이다.

“왜 이걸 이해 못해줄까?” 투덜거리기 전에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부터 미리 파악했어야 했다. 그래서 이미 사이버 테러가 벌어졌고, 여러 사람들이 그에 대한 응징을 하고 있으니 나는 앞으로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군대와 군필자에 대한 솔직한 내 생각을 적어볼까 한다. 다음부터 군필자에 대해 패러디를 하든 뭘 하든 이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이 글에서 정문순씨의 글을 비판하려는 건 아니지만 정문순씨가 갖고 있는 군필자들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필요한 경우 그의 글을 직접 인용해보겠다.

군필자들은 사회적 기득권 세력이 아니다.

가장 많은 오해가 빚어지고 있는 건 군필자들이 사회적 기득권 세력 혹은 국가의 대리인이라는 생각이다. 그건 다시 말하지만 정치인, 언론사 사주, 재벌 아들일수록 군면제 비율이 높다는 말로 대신하겠다. 군대가 기득권을 보장해준다면 왜 사회 기득권층일수록 군대를 더 기피하려 할까? 서울대 기득권이 있다는 증거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서울대에 가고 싶어 한다는 데에서 증명된다. [조선일보」 기득권이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선일보」에 글을 쓰고 싶어하는 데서 증명된다. 그런데 군대는 그런 게 아니지 않는가? 대학에서만 해도 군대에 빠지려는 사람이 가려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고, 심지어 편법적으로 군대를 기피하는 자에 대해서도 어떠한 비난도 가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많은 예비역들이 바로 이런 점에서 분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자신들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했는데 오히려 그 의무를 저버린 사람 보다 더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없냐는 말이다. 그러니 정문순씨의 이런 오해도 이제 그만되었으면 좋겠다.

“마초 예비역들이 자신들을 군사문화의 피해자라고 명명하는 것도 모순이다. 그들이 피해자라고 자각하는 순간, 군사문화의 부정적인 면모를 인정하는 셈이 되며, 여성 등 군대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모습이 부정적으로 비쳐왔음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죄 없는 자신들을 매도하지 말라고 난리를 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건 모순이 아니다. 군필자들이 자기 자신들을 피해자로 느끼는 결정적인 이유는 군사문화의 피해자라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왜 2년 2개월 동안 죽도록 노가다 뛰고 왔는데 한 달에 만 원 정도의 보상밖에 받을 수 없는지, 그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강제로 끌려갔다는 것에 대한 불만도 빼놓을 수는 없다. 그건 내 자신의 경험으로 간단하게 증명할 수 있다. 나는 매우 합리적인 시스템에서 군생활을 할 수 있었다. 오히려 배째라 문화에 집단 떼거리 문화가 팽배한 대학보다도 훨씬 더 선진적인 문화였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 2년 동안 노동한 대가가 없다는 점에서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니 앞으론 이런 것도 좀 조심해주면 좋겠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주었으니 군에도 가지 못한 허약한 자들을 상대로 독점적 권력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식이 있다. 군 복무는 건강한 남성들이 제대 후에 사회에서 누릴 특권을 보장받기 위해 치르는 한시적인 희생 제의이자, 분단을 빌미로 병영적 사회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는 국가와 정치적 다수자 남성들의 소극적 공모라는 측면도 살펴야 한다.”

일단 제대 후에 누릴 특권은 없다는 점을 제발 좀 인정하자. 그런 특권을 놔두고 이회창 아들이 군대를 왜 안 갔겠는가? 대통령의 아들이 될 사람들인데. 100번 이야기해도 안 들어주니까 답답하다는 거다. 그리고 군필자들이 갖고 있는 도덕적 우월감은 다른 게 아니다. 샐러리맨은 자신들이 자영업자에 비해 세금을 더 많이 낸다는 것에 대한 피해의식과 함께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있다. “너희는 치사하게 세금 다 떼어 먹지만 우리는 정정당당히 다 낸다.” 이런 것 말이다.

군필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예비역 병장이다.” 이런 말을 하는 건 군대를 가지 않는 여성들이나 장애인에 대한 우월감이 아니라 온갖 편법을 동원해 다 빠져나가는 사회 기득권층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이 더 크다. 설사 이런 도덕적 우월감이 일부 군필자들이나 갖고 있는 생각이라 할지라도 앞으로의 문제해결을 위해선 이런 점을 강조해줘야 한다. 그래야 정작 우리가 화살을 날려야 할 병역비리 문제로 군필자들의 분노를 돌려놓을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 병역비리가 터져나오는 시점에서 군필자들이 월장의 여대생들과 한판 하는 게 무슨 꼴인가? 자꾸 최악의 군필자를 상정해서 두들겨 패버리면 병역비리자에 대한 도덕적 판단 잣대를 잃어버리게 된다. 벌써 대학에서는 편법적 불법자가 군기피자가 정당한 군필자보다 더 대접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런 편법적 불법적 군기피자가 “군대는 마쵸들의 집단이다.” 이렇게 호통을 치기도 한다. 이런 엿같은 경우가 다 있는가? 그러니까 역시 이 말도 수정되어야 하다.

“만약 그들이 진정 군대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병역을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서는 안된다. ‘신성한 의무’를 수행했다는 사람이, “나는 피해자란 말이야.” 라고 항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런 게 역시나 답답하다. 군가산점 논쟁 때,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강조한 네티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다, “내 2년 돌리도.” 이 수준의 한탄을 하곤 했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한 사람이 ‘나는 피해자란 말이야.’ 이런 말하는 것 당연히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이 수준에서는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은가? 한 샐러리맨이 “나는 납세의 의무를 다했다.”. 그렇지만 탈세한 놈들에 비하면 피해자다. ‘신성한’이라는 형용사만 빼주면 되지 않냐는 거다.

이 정도면 최소한 군필자가 사회 기득권 세력이라는 어이없는 오해는 많이 풀렸을 줄 안다. 또한 제대로 이야기가 안 되어서 끊임없이 돌고 있는 군필자들의 의식에 대한 오해도 많이 풀렸을 줄 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이런 거다. 지금 사이버에서 폭력을 저지르든 글발을 날리든 하는 네티즌들은 군필자들 내에서조차 약자라는 거다. 사회적 강자들은 어차피 알아서 빠지든 편한 곳을 가든 군대에 대한 별다른 불만이 없다. 그 약자들을 끌어안아 사회 저항세력의 힘을 키우는 게 목적이지 그들을 정적으로 간주하여 내려치는 게 진보진영의 임무란 말인가? 또 한 가지. 군필자들은 조직화된 세력이 아니다. 의제설정 권력이 없다. 그 점에서는 오히려 여성주의자들을 비롯한 진보진영이 더 사회적 강자에 가깝다. 생각해보라. 군가산점제를 비롯해 문제를 제기하는 쪽은 여성주의 진영이지 군필자들이 아니다. 그럼 사회를 이끌어보겠다는 변혁세력 입장에서 군필자들의 흩어진 분노를 하나의 정당한 힘으로 모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야 워낙에 군필자에 대한 오해가 많았기 때문에 힘들었다 해도 앞으로는 좀 신경을 써달라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위에서 열거한 군필자상을 좀 참고해주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여성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군필자상은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는 최악의 인물을 상정해 놓았다. 이런 건 논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는 군필자도 월장의 기사에 불만을 갖고 있고 나 같이 상식적은 군필자도 월장의 기사에 불만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그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사람을 골라서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여성주의자들이 말하는 군필자상을 보면 “과연 저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최소한 여성주의자들과 논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정신을 갖고 있는 군필자를 상정해서 비판해야지 무언가 생산적인 것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아무리 이야기해줘도 왜 가장 쓰레기 같은 군필자를 하나의 모델로 상정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예비역 문화와 저급 문화

어쩌면 주제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으나 이것도 한번 짚어볼 만한 화두이다. 여성주의자들을 비롯해 진보진영에서 예비역 문화를 도마 위로 올린 이유는 바로 예비역 문화의 천박함 때문일 것이다. 그건 내가 보기엔 하류계층의 저급 문화와 무척이나 닮아있다. 스파이크리 감독의 이란 영화를 보면 흑인들의 저급한 문화를 많이 소개해놓았다. 자신의 새 구두만 밟아도 욕설을 퍼부우며 폭력을 일삼는다.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대학생들이 군대에 가면 이제껏 대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저 밑바닥 계층 사람들의 그 천박한 의식에 학을 띠고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건 그 사람이 진보 운동가로 활동했던 경우에 더욱 더 심했다. 평소에 주장하던 민중해방은 어디로 가고 “저런 쓰레기 같은 놈들” 이런 혐오감을 표출하더란 말이다.

솔직히 이런 건 인정했으면 좋겠다. 대학생들이 특별히 저급한 최하층 문화를 접하지 못했다면 그런 저차원적인 하층민에 대한 혐오는 어쩔 수가 없을 거란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군대에서 접하는 문화가 그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왜? 군대에 끌려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 밑바닥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밑바닥 사람들의 문화는 힘차게 일어설 민중적 의식을 담보한 것으로 보인기 보다는 정말 때려잡아야 할 쓰레기 같은 부류로 보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역시 내 경험상으로 보면 상류계급 학생들이 많은 서울대 내에서는 복학생들의 저급 문화라는 게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얻은 천박한 현실주의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서울대 학생들은 군대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있고 제대한 이후에도 이에 대해 별다른 좋은 기억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내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지금 사회적 악으로 규정하려 하는 군대문화라는 것이 실제로 이태원 양아치들의 문화와 뭐 크게 다르겠냐는 거다. 자기 한번 노려봤다고 병을 깨서 찔러 버린 다거나, 여자 친구가 바람피웠다고 개패듯이 패던 양아치 문화와 내가 한국군 해병대에서 2달 파견근무하며 체험한 군대문화는 거의 유사했다.

그렇다면 이 문제도 계급적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겠다. 군대문화가 개판이라면 왜 그런가? 그게 국방부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인가? 김정란 선생의 말처럼 국방부 장관이 결단만 내리면 군대문화가 그대로 바뀔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미 국방부에선 할 만큼 다했다. 군대에서 구타에 사라진 것 국방부의 노력이 크다. 그러므로 군대문화가 하류층의 저급문화의 특성을 갖고 있다면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저급 문화는 경제적 뒷받침이 따라주지 않으면 간디가 설교하러 와도 바뀌지 않을 거다. 아무리 지식인들이, “군대 파쇼 문화 개혁하라.” 이렇게 해봐야 거의 소용없다는 거다. 동네 양아치들만 고스란히 모아 한 달에 만 원만 주고 12시간 이상 죽노동시키는 곳에서 무슨 얼어죽을 선진 문화 창달이란 말인가?

그러나 정말 여성주의자들을 비롯한 진보진영 운동가라면 이 문제를 두들겨 패서 해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냥 일개 개인이라면 그런 문화에 대해 극단적 혐오감을 갖는게 정상이겠지만 남에게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말하는 사회적 리더의 역할을 자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을 더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사태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설교를 해도 정작 듣는 당사자들은 다 흘려듣게 되어있다. 언제 스파리크 리가 흑인들 문화 개같다고 두들겨 패기만 했던가?

예비역 문화가 대학문화 위기의 주범인가?

이제부터는 예비역 복학생 문화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겠다. 사회는 이미 권력변환기에 접어들었다. 대통령의 권력보다 조선일보의 권력이 더 막강해보이기도 한다. 그 정도로 크게 변한 것이다. 그런데 월장의 기사를 비롯한 여성주의자들의 복학생에 대한 시각은 아직도 10년 전의 그것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복학생들이 고개를 가로젓는 것은 월장의 기사가 말해주는 복학생의 상과 자신들의 실제 삶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월장의 기사를 쓴 사람은 자신의 체험담을 적은 것일 게다. 그렇지만 그 체험이 보편적인 동의를 얻기 힘들다면 보다 더 세밀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모든 글을 다 그렇게 힘들게 써야 하느냐는 항변을 할 수 있을 거다. 나는 예비역 문화를 한번 다루어보겠다는 전위세력 여성주의자들에게 요구를 한 것이다. 이왕 할 바에야 좀 제대로 해서 무언가 발전을 꾀하는 방향으로 해보자고. 실제로 나는 복학생 문화를 포함한 대학 문화 전반을 다뤄볼 기획을 하고 있었다. 졸업 때문에 할 수 없었지만 그 문제의식엔 변함이 없다.

대학문화 자체가 문제이다.

오히려 지금 대학은 복학생의 참여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건 80년대에 비해 크게 변한 대학사회에 관한 사실이자 팩트이다. 활동가들은 군대만 가면 모든 활동을 다 뒤로 하고 도서관에 숨어버리기 때문에 대학은 언제나 어린 학생들만이 담당한다. 그러면서 지적 문화적 인프라는 상실된다. 나는 심지어 현재의 대학문화를 “학예회 문화”라 혹평한 적도 있었다. 예비역 문화가 대학문화를 망치는 게 아니다. 문화의 인프라가 축적되는 것을 막는 저학번 중심의 단절된 문화가 대학문화를 죽이고 있다.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대학의 중심에서 거의 사라진 복학생들 때문에 대학문화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어차피 지금 대학문화는 창의성은커녕 기본 상식조차 지켜지지 않을 정도로 유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학회 시간 하나 맞추는 사람이 드물 정도이다. 또한 시대는 변했는데 오로지 인적 동원만 신경쓰는 학생정치의 수준도 엉망이긴 마찬가지이다. 이게 지금 예비역 문화의 문제인가?

예비역 문화나 여성주의자들이 중심이 된 학생회 문화나 다 거기서 거기다. 누가 누구를 날려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물론 이제 여성비하나 성폭력에 관해서라면 복학생들이 우선적으로 주범을 찍힐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통계적으로 보면 복학생들이 성폭력에 걸리는 게 아니라 학생회 간부들이 주로 걸리고 있다. 복학생의 성폭력은 공론화가 잘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경험으로 보면 복학생들은 원천적으로 대학문화에 거의 참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대학문화의 중심에 있는 학생회 활동가들이 더 많은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본다. 복학생이 완전히 사라진 나의 과 학생회에서 왜 성폭력이 발생하는가? 이것도 복학생의 책임이란 말인가? 나는 성폭력 또한 집단주의의 폐해라 판단한다. 대학에서 집단적으로 술쳐마시고 자취방에서 혼숙하다 벌어지는 성폭력이 과연 누구의 책임이냔 말이다. 그 집단주의도 군사주의의 폐단이 아니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역시 나의 경험으로 보면 군사문화와 담을 쌓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여성주의자들의 모임에서도 똑같은 집단주의적 폐단이 나타난다고 했을 때 이걸 복학생 문화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현재의 대학문화 자체가 이미 80년대부터 회일적인 집단성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다 같이 반성을 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대학문화의 중심에 서 있는 미필자 활동가들의 책임이 더 크다.

여성주의자들은 10년 전의 복학생의 모습을 상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럼 왜 여성주의자들이 복학생에 대한 이런 잘못된 스테레오타입을 갖게 되었는지 적어보기로 하겠다. 나는 이것을 강준만이 인용한 푸코의 에피스테메 지체현상으로 보고 있다. 이미 사회의 중심권력은 변했는데도 항상 진보진영은 그 변화에 뒤지는 너무나 관습화된 현상이다. 그래서 「조선일보」를 놔두고 대통령만 죽도록 패는 현상도 벌어진다. 이미 대학은 학번의 권위부터 선배의 권위가 거의 무너졌다. 그리고 군대의 의무를 다했다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도 없다. 이 상황에서 복학생들이 무슨 권력을 휘두르겠는가? 오히려 저학번들과의 세대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또한 취업준비에 치여 다들 도서관에 짱박혀 있는 게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예전의 복학생 상을 고수한다. 나는 그걸 이렇게 생각한다.

복학생이란 존재는 현재 대학에서 어둠의 그림자에 가깝다. 그건 한창 꿈과 이상을 위해 돌진하고 있는 여성주의자 대학생이나 운동권 학생들에게는 두려움에 가깝다. 별로 보고 싶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은 존재이다. 취업 같은 개인적 안위를 위해서만 노력하고 천박한 문화나 즐기고 이상과 정의감도 없는 3류 대학생. “우리가 아무리 운동을 해봐야 나중에 졸업할 때쯤 되면 저렇게 되겠지.”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거다. 또 하나, 복학생들이 정말 그렇게만 살아주면 그냥 개무시하듯 넘어가면 되는데 가끔가다 1학년 학생과의 술자리에 끼게 되면 그들이 가장 두려운 말을 쉽게 내뱉어 버린다. “야. 나도 한 때 운동 좀 해봤는데 그거 다 어릴 때 하는 장난이야. 너도 내 나이 되보면 알아.” 특히 아직 여성주의를 제대로 접하지 못한 복학생이라면 자기보다 한참 어린 여성주의자 과 후배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들이 성폭력을 저지른다거나 예쁜 여자 후배에게 술을 따르게 한다거나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요즘에 그런 짓은 하라고 시켜도 못한다. 그냥 “에이. 여성주의, 열심히 해봐. 세상 살다보면 그게 아니란 거 알 거야.” 이런 정도의 말만 해도 그 복학생의 천박한 현실주의와 여성주의자 대학생과의 갈등은 이미 잠복하게 된다. 역시 나의 경험이지만 월장에서 말한 그런 복학생이 없었던 우리 과에서도 이런 방식의 여성주의자와 복학생간의 갈등은 매우 심각했었다. 그래서 우리 과 복학생들은 과에서 완전히 철수하여 종강파티와 개강파티까지 따로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내가 파악하고 있는 여성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복학생에 대한 불만은 바로 이것이다. 거기다 이미 10년 전에 쓰여진 교재를 들고 군대와 복학생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예전의 잘못된 복학생 상을 머리에 넣고 복학생을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에 편견이 개입 안 되겠는가? 물론 복학생들의 천박한 문화가 없다는 게 아니다. 내가 강조하는 건 그게 핵심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잘못된 스테레오타입의 복학생을 상정하고 있는 이상 똑같이 행동해도 복학생만 잘못하고 있다는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월장의 여대생이 과연 몇 명의 복학생과 생활을 해봤는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우리 과 여자 후배들도 성폭력 노트를 쓰며 “복학생 선배가 내 몸을 훑어봤다.”, “고학번 선배가 쭉쭉빵빵이라 그랬다.” 이런 글을 쭉 게시했는데 내가 알아본 결과 구 복학생 고학번 선배는 딱 한 명이었다. 딱 한 명이 실수하고 있는 걸 여대생들은 “복학생이 실수하고 있다.” 이렇게 세뇌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딱 한 명은 군대에 가기 전부터 그랬다는 걸 알려둔다. 여성주의자들과 복학생들이 대학에서 거의 물과 기름의 관계에 가깝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마도 월장의 여대생이 체험한 복학생 수는 극히 적었을 거라 짐작해본다. 어쩌면 그 복학생의 특징은 단 한 명의 특징일 수도 있다.

내 진단이 맞다면 이미 대학의 중심에서 사라진 복학생들을 두들겨 팬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부작용만 난무할 뿐이다. 지금부터 여성주의자들을 포함한 대학의 리더들이 해야할 일은 구조적으로 필연일 수밖에 없는 천박한 현실주의자 복학생들을 어떻게 대학에서 수용할 것인가를 고민해하는 것이다. 나는 나 나름대로의 대안을 갖고 아직까지고 계속 대학에서 이를 실험하고 있다. 최소한 나보다 더 큰 세력을 갖고 있고 이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여성주의자들 쪽에서는 보다 더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군필자들의 국가에 대한 군복무 보상요구와 여성주의자들의 국가에 대한 모성보호법 제정 요구가 다른 성격의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모두다 국가주의에 대한 저항성을 담보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자꾸 둘이 싸우려 하는가?

마지막으로 한 개인이 체험을 바탕으로 한 패러디글 갖고 뭘 그러냐는 논리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려 한다. 대자보 독투에 올라와 있듯이, 한 경상도인이 전라도 사람에 대한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전라도 개새기들, 천박하고, 품위없고 유치한 놈들.” 이런 글을 올렸다고 치자. 그에 대해 전라도인들이 “이럴 수가 있는가?” 이렇게 항변했다고 해서 그게 전라도인에 대한 비판을 성역화하는 발상이라 볼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패러디를 그냥 재미로 보자고 용납해줄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물론 군필자를 사회적 약자로 보는가 강자로 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이미 별 추잡한 짓을 다해대는 군필자들의 반응만으로도 그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게 증명되었다고 본다. 공적 소통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강자가 그런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겠는가?

왜 약자들끼리 싸우는가?

대학에서 가부장제 문화나 군대문화 퍼뜨리는 주범이 과연 누구던가? 복학생인가? 이것 모두가 다 아는 거다. 대학교수로부터 시작되는 정점의 피라미드 조직이다. 이게 대학의 가부장제 문화의 주범이다. 그런데 운동권이든 대학교수든 복학생이든 이 권력에 대한 저항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 과 학과장과 싸움판 벌인다는 건 목숨을 내거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는 복학생에 대한 불만은 그 위에다 기어대는 비열함이다. 천박한 현실주의를 넘어서 기지 않아도 되는데 가서 기어버리는 노예근성을 군대에서 체득해 온다. 나는 왜 월장의 기사에서 이런 복학생의 가장 비열한 특성을 무시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찾아본 다른 글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이다. 권위적이고 게으르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비판 다 때려치우고 나보고 하나 잡아내라면 그 비열함인데도 말이다. 그 여대생에겐 왜 비열함은 하나도 안 보였냐는 거다.

나보고 대학문화가 엉망진창으로 되버린 원흉을 찾으라 그러면 자신의 과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폭압을 그대로 지켜보면서 어느새 힘 앞에 익숙해지는 대학생들의 자신감 상실을 꼽고 싶다. 그런데 이게 복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생들은 자신의 교수가 걸려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정도 이상으로 비굴해진다. 월장이든 누구든 대학사회의 가부장제 문화나 군대문화를 다루려 한다면 1차적으로 대학교수들의 권위적 문화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을 거다. 그 와중에서 그런 교수에게 비굴하게 기어대는 복학생들을 비판했더라도 이런 반발을 사게 되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군가산점제 파동의 문제점은 군필자들이 정작 칼을 겨누어야 할 곳은 피해가고 상대적 약자인 여성들에게 달려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대학사회의 가부장제 문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이런 문제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핵심이 보이는데 그 핵심을 피해가고 상대적으로 약자에 불과한 복학생에게 화살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언제끼리 약자들끼리 치고 받고 싸울 건가?

복학생들은 90년대 중반 이후 자신들이 대학에 약자라 생각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훨씬 저학번인 여대생들이 과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이 강자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대학에서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런데 강자로 인식되던 여성주의자들이 안 그래도 피해의식에 젖어 숨어 있는 자신들을 두들겨 팼다. 지금의 복학생들의 반발은 이런 성격을 갖고 있다. 내가 그래서 무리한 요구인지 알지만 정말 대학사회의 가부장 문화의 철퇴를 가하기 위해서라면 이걸 꼭 해달라는 거다. 진짜 강자와 싸워주면 그 앞에선 거의 다 고개를 숙일 거다. 설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입은 함부로 열지 못할 거다. 여성주의자들이 대학문화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교수사회의 비판을 첨가해달라는 거다. 그런 식으로 최강자와의 싸움을 준비해줘야지만 약자들끼리 물어뜯는 일이 없어진다. 하기야 내가 아는 한 과에서는 교수의 불법적 강제노동 지시에 여성주의자와 복학생이 나란히 힘을 합쳐 노가다를 뛰어주었으니 그것도 약자들끼리 물어뜯지 않은 건 마찬가지겠다. 아무리 여성주의자라도 대학원만 가면 커피노동에 잔심부름 다해야 되는 상황 아니던가? 이걸 학부시절부터 고쳐나가려 할 때 과연 복학생이 문제가 된다면 그건 그들의 비굴함 때문이다. 정말 복학생을 욕하고 싶으면 이런 걸 지적하라는 거다. 내가 아는 어떤 과처럼 교수의 불법적 강제노동 지시에 여성주의자와 복학생이 합심해서 열심히 노가다 뛰어주는 약자들의 비굴한 모습을 보여주지 말고.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여기서 정문순씨를 비롯한 여성주의자들을 비판할 의도가 없다. 어차피 그들이 이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할 주체들이다. 다시 한번 이런 문제에 접근할 때에는 이런 의견을 버리지 말고 섬세하게 검토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이다. 누가 이기고 지고의 싸움이 아닌 이상 서로의 논리 중에서 가장 타당하고 합리적인 것을 골라 비판하든 수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한번 겪은 군가산점 토론처럼 또 다시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볼 기회를 “사이버 폭력 퇴치 작전” 정도로 희석시키며 끝내고 아마 조만간 또다시 이런 문제가 터지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준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이 긴 글을 마칠까 한다.

앞의 두 글은 아마도 안티월장 측인듯…

 

지금 여성주의를 자칭하는 월장의 반어거지성 답변글들에 대해 가슴이 갑갑해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월장의 작은 아우성 -작은 아우성이라고 보기엔 좀 비약이 크다. 여하튼 성격 급하신 예비역들은 정신적으로나마 타격을 받지 아니했는가?-을
비롯한 허덥한 여성주의자들의 인권운동.


 


  지구의 역사는 남성중심이다. 여성은 단지 보조적인 역활만을 해왔을뿐. 하지만 양방의 노력여하에 따라 이 비중은 폭이 큰 변수가 된다.
완전히 평등해질수도 있다는 말이야. 아직 물리적인 힘이 우월성에 기여하는 바가 큰 현대사회에선 결국 팔뚝 굵은 남자가 중심이 된다. 그런데
말이다. 꼭 이런것도 아니다. 남성들의 사고방식은 여성보단 훨씬 이성에 기인하고 있거든. 여자들이 훨씬 감수성이 풍부한것에 비해서.


 


 그러니까 역사가 남성들 중심으로 돌아간거야.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 직전에 칼로 아내와 자식들의 목을 쳤다. 그냥 단지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맹세였을까? 그게 아니다. 자신의 액션이 영향을 줄 부하병사들의 사기와 결과적으로 그것이 전쟁의 승패에 끼치는 요소. 이 모두가
완벽하게 이성적으로 계산되어 행하여진 칼부림이다. 여자라면 그렇게 못한다. 독한것이 여자라고 누가 그랬냐? 그 사람 또한 여자일것이야. 남자인
내가 뱉고 싶은 말. “여자보다 더 독한 것이 남자다.”

 


 월장님들. 결국 너희들을 도와주는 진중권님이란 철필도 남자잖아. 밑에 리나님이란 분. 올리신 글로 볼땐아주 흥분한 상태같은데 진정하시길
바랍니다. 그게 여자랑 남자의 생물학적인 차이점이 아닌 정신적인 차이점이죠. 남자들. 예비역들 게시판에 좌르르 육두문자 쓰면서 흥분한것 같이
보여도 지극히 이성적이란 동물인 이유로 입가에 미소를 띄우면서 답글을 타이핑하지. 하지만 여자들은 그게 안돼. 이런 게시판 글보고도
흥분한다니까.


 


 결국 이런 질 떨어지는 여성주의 운동. 어쩌다가 예비역이란 불쌍한 사냥감이 그물에 걸리셨나. 이런식의 운동이라면 아마두 394329년후에
완벽한 남녀평등이 이루어질꺼다. 그러니까 앞으로 영원히 여성은 남성들의 권력행사에 피해보는 존재가 되는거지. 꺾일줄 모르는 고집. 무섭다.
여자들이.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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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우연히 학교 게시판에서 이곳에서 올린 글을 보았다. 군대를 제대하고 이번학기 복학 헸는데…


나 나름대로 군대에 대하여 긍지와 자부심을 부여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당신들의 글은 나의 2년이라는 시간을 쓰레기통속으로 넣어버린듯 하다.


 


공무원 시험에서의 군대를 마친 남자의 가산점 부여 말이 많았다. 형평성에 기여하기 위해 여성단체들의 많은 반발로 인해…가산점 부여
폐지된걸로 안다. 대세가 그렇게 흘러 가고 있고 다 지나간 문제니 그다지 할말은 없다. 하지만 여자들의 그런 주장들을 든고 있으면 마치 그들이
군대에 갔다왔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느껴질때가 많다. 2년 2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대부분의 남자들 이 격는 생활은 당신들이 생각하고 말로 들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경험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그렇게 아무런 생각없이 자신들만의 아주 이기적인 생각으로 인터넷에-진정한 토론?을
위해-올렸다는 이 사이트의 여성단체들…..과연 그 글이 진정한 토론을 위한 부제로써 적절했는지 묻고 싶다. 비판과 비꼼을 통해 말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당신들은 도대체 무엇을 비판하고 비꼬고 싶었는지 묻고 싶다. 군대에서의 유격훈련을 똥개 훈련이라….쯧쯧…아무런
성의 없이…그저 미안하다는 뜻만을 무책임하게 게시판에 올려놓으면 되는것 인가? 자기 본인들의 일 조차 깊이 생각 할줄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어려운 사안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대한민국 모든 예비역들이 알게끔 했을까?


역시 겸손할줄 모르는 -흔희들 신세대라고 하지- 이들은 정말이지 한심하다. 당신들의 아버지 아님 오빠,그리고 동생들또한 그렇게 평가받길
원하고…그저 군대에서 똥개 훈련만을 받고 왔다고 당신들은 생각하고 싶은지….진정한 군에관한 토론을 하고 싶다면…군대에가길 권한다.
어차피 가봤자 편하게 할테니….공평한 토론은 힘이들듯 하군…..그러니…당신네들에게 바라는데 제발이지 알지 못하는것에 대해…마치
모든것을 다 알듯 말하지 않는 겸손하고 자신에대해 떳떳할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내가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게…그래도 당신네 같은 사람들보다는 생각이 깊고 넓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다.


 


내가 느낀 여자의 한계


스스로의 한계를 그들은 만들어 버린다. 여자니까~라는 이유 하나로. 노력조차 하지 안으면서 왜이리 바라는건 많을까? 아직도 대부분의
여자들-적어도 내가 아는 여자들-중 열심히 노력하면서 인정받는 친구들 보다는 여전히 현실에 안주 하면서 그들만의 특권?을 누리길 원한다-나약하기
그지 없다. 예를 들자면, 흔히들 말하는 성차별중 술따르기를 요구한다고 하는데….참…어이가 없다. 벌써 그들은 한계를 만들어 놓고 똑같이
대우 받기를 원한다. 인식의 문제다. 한국 유교문화로 인한 인식의 틀이 쉽게 변할수 없겠지만..참 이상하게도 다른 서구 문며들은 아무
꺼리낌없이-지각없이-다 받아들이면서..그런 생각들은 왜 변함이 없는지.  세상은 변한다. 언제까지 우물안 개구리에서 살고 싶은가? 자꾸 등장하는
그런 유치한 말들은 논제거리 조차 될수 없는데…신문이나 tv를 통해 정말이지 그런 것만이 전부인지 그런 생각 조차 들 정도다..


중요한것은 인식구조의 변화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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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장측의 글

마지막 입장글이 되길 바라며.. – 당신에게 내민 우리들의 손

안녕하세요? 부산대학교 여성주의 웹진 ‘월장’입니다. 월장이 오픈하고 3주 남짓 되는 시간동안 월장에 관하여 참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특히 월장 1호의 특집이었던 ‘도마위의 예비역’ 글과 관련해서 학내의 예비역 분들, 전국 각지의 예비역 분들이 많은 비판과 비난을
해주셨고, 최근에는 이 글들과 관련하여 월장을 반대하는 ‘안티월장’이라는 모임이 꾸려질 정도였습니다. ‘특정·일부 예비역의 경우를 지나치게
일반화시킨 것이다’라는 의견부터 ‘예비역과 군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글이다’, ‘내용에는 공감하지만 표현방식이 지나치다’, ‘여성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예비역문화에 대하여 귀를 기울여야 한다’등까지 월장의 ‘예비역’글에 대하여 많은 분들이 의견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간 몇 번의
월장의 공식입장이 나왔었지만, 예비역문화와 관련된 논쟁이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간의 논의에 대하여 월장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매일 글을 올리며 월장의 답변을 기다리셨던 분들에게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기에 그간 월장의 말을 기다리셨던
분들께는 많이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우선 드리고 싶습니다.


 월장은 부산대학교 여성주의 웹진입니다. 저희는 여학생으로 부산대학교와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여성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장으로서 월장을 만들었습니다.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치 못한 여성의 현실을 토대로, 페미니즘이라는 커다란
이야기로 다 풀어낼 수 없는 우리 현장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마음껏 이야기하고 부산대학교 내 성원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인 월장 1호에서 부산대학 내 예비역문화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로 하였습니다. 따라서 ‘예비역 문화’라는 단어로 호명되어 왔던 이 문화의 실체에
대해 여성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의 기획의도였습니다. 이미 많은 매체들에서 (대학내 언론매체, 인터넷 매체 등) ‘예비역 문화’를 다룬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내리까시 문화’와 같이 대표적인 일부 사례로서만 설명되는가 하면, 군사문화와 관련하여 추상적인 수준에서만
이야기되었습니다. 우리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예비역문화는 참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공간에서 현상되고 있는데, 여태까지 그러한
부분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부족하였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또한 예비역문화의 폐단을 직접적으로 느끼며 억압을 당해왔던 여성의 입장에서
예비역문화를 비판하는 경우가 없었다는 데도 문제의식을 같이 했습니다. 예비역문화에 대해 우리 여성들이 느끼는 불쾌감, 모욕감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분들께서는 월장의 문제제기에 관하여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라고 말씀을 하시고, 그 연장선상에서 예비역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에 대하여 사과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비역과 관련된 글에서 모든 예비역분들이 우리가 말하는 경우(음담패설,
내리까시등 집단폭력, 술자리에서의 성폭력, 권위적인 태도, 국가방위를 일부남성만이 맡고 있다는 생각)에 반드시 속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을
뿐더러 예비역 개인개인이 아니라 문화로서 존재하는 ‘예비역 문화’와 그것의 실례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는 많은 여성이 느끼고 공감하는
예비역문화에 대해 여성의 입장에서 비판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대학사회 내에서 ‘예비역 문화’라는 것은 많은 분들이 지적해주시는 것처럼 ‘일부’
잘못된 예비역들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엄연히 ‘문화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급한 일반화를 한 적이 없으며 이 부분에
대해서 사과를 요구하시는 분들의 의견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또한 명예훼손의 문제로 다가간다면 정당한 비판과 그것이 논의될 수 있는 영역의
존재 자체가 유의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월장이 예비역문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점은 ‘예비역이 싫은 몇가지 이유’뿐만이 아니라 ‘예비역이 본
군대와 예비역 문화’, ‘KBS’신고합니다’를 신고합니다’, ‘당신은 진정 군인이 아닌가’등 ‘도마위의 예비역’기획을 이루는 다른 글들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였고, ‘예비역이 싫은 몇가지 이유’라는 글은 이러한 다른 글들과의 맥락 속에서 전체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예비역문화의 문제가 예비역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남성과 여성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여 여성의
입장에서 예비역분과 이야기해 보는 코너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예비역 분들과, 예비역 문화 속에서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우리의 ‘말걸기’였습니다. 예비역문화에 대한 책임은 예비역분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비역문화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거나 예비역문화를 느끼면서도 그냥 넘어가거나 침묵해왔던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말걸기가
모두에게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월장 오픈 후의 감정적인 대응이나 과격한 언설들을 보면서 ‘예비역 문화’가 왜 그동안 성역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가를 몸소 느꼈습니다. 우리는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여성이지만 군대에서의 인간성의 왜곡과 뒤틀림에 대하여 꼬집고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였는데, 한국사회에서의 군복무 경험이 많은 남성들에게 보상심리와 피해의식을 심어주기 때문에 예비역문화에 대한 비판이 군복무 경험
자체에 대한 모욕으로, 예비역분들의 고생스런 경험에 대한 무시로 읽혀질 수도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군대문화를 접하고 자신
역시 그러한 문화의 피해자인 분들에게 어조나 문체에 있어서 세심한 배려를 하지 못한 점을 이미 사과드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직도 월장의
공개사과를 요구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불특정 다수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야기를 드렸고, 저희는 더 이상 사과할
부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월장 글의 수정이나 삭제에 대한 요구는 그것이 ‘언론에 대한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특정 개인을
근거없이 비방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한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나 말할 권리가 있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글의 어조나 문체에서
미흡했던 부분은 저희가 인정을 하였고, 글을 쓰는 주체의 입장에서 앞으로 글을 써나갈 때 고려해야 할 점임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글 자체의
삭제, 또는 월장의 폐쇄에 대한 요구를 하면서 말하는 행위 자체를 막으려는 것은 ‘언로’를 막으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여러 과나 학내 모임에서 예비역 분들께서 ‘월장 때문에 여자 후배들과 무서워서 말을 못하겠다’는 말씀들도 하시고 ‘우리가 진짜
그랬냐?’라는 질문을 조심스레 던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움직임과 대화의 시작이 긍정적이라고 판단합니다. 예비역분들에게
겁을 주어서가 아니라(안티월장 등의 오프라인에서의 행동들을 볼 때 겁먹어서 말씀을 못하실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동안 현상으로서만
존재하고 이름붙여지지 않았던 여러 문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야말로 모두가 느껴왔지만 항상 이야기될 수 없는
성역으로서 존재해왔던 예비역문화에 대해 (감정싸움이 아닌) 상호간의 대화로 나아갈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학사회를 건강하고
모두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내민 손을 용기있게 받아들이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모두는
부산대학교라는 공동체 속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말걸기가 한쪽의 외침으로 끝나지 않고 상호소통으로 나아가려는 지점에
우리는 함께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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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오님 힘드시다구요..저희는 이것보다 더했습니다.

손병오님이 리포트와 학점때문에 더 이상 말씀하지 않
으시겠다구요..
그러십시오. 뭐! 개인의 사정이 더욱
중요하죠.

그렇지만, 한마디만 이야기하고 싶군요.
저희 4명은 3일동안 천건의
게시물을 읽어야 했고, 또
한 사이버 성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엄살이라구요. 저희는 학생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수업도
안들어간다고 생각하십니까?
님이 상대하신분은 몇분입니까?
몇분을 상대로 글을 쓰시고 읽었습니까?
저희는 전국에서 몰려온 사람들에
의해 테러를 당하
고 답변하고 글을 써야 했습니다.

그 많은 글들을 읽고 답하는 것이 쉬운일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저는
월장 창간하고 오늘 거의 처음으로 전
공수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님의 저의 게으름의
문제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폰섹 게시판에 저희 회원들의 명단이 올라가
고 난뒤에 일일이 회원분들의 정보를 다 검색해서 이
상하게 정보를 게시한
분들을 강퇴하는 작업을 했습니
다.
조금 정리가 되었죠. 그리고 난 다음 여성 전용게시판
의 글들을 누가 펴 올리더군요.

그래서 다시 이번에는 한분 한분에게 전화를 걸어 본
인의 의사로 월장에 가입했는지 그리고 그 분이 여성
인지 남성인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컴퓨터에 앉아서 20명의 명단만 확인해 보는 것도 얼
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인지 아십니까?

또 경찰청가고
성폭력 상담소에 가서 신고하고 대책
위 꾸리고, 총여분들 만나고 하면서 제가 받았던 그
많은 욕설과 협박에 대해 제 상처를 감싸
안으며 스스
로 치유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님은 벽을 보고 이야기하신다구요. 그것은 저희도 마
찬가지 입니다. 저희는
안 답답한 줄 아십니까?
그래도 님의 벽은 얼마나 됩니까?
저희 4명과 저희를 지지하신 몇몇분들 합해도 50명이

넘으십니까?

저희는 몇분을 글을 확인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제목만 보고 글의 내용을

단 할 수 없었습니다. 쓰레기 같은 글(욕설이 반 이상
인 글)도 확인해야 했으며, 그런 글 하나 하나 읽을때
마다 상처를
받아야 했으며, 실명공개하라고 대부분
의 안티월장 분들이 주장했을 때, 저희는 혹시 저의
아끼는 후배가 나쁜 못쓸놈에 의해 혹시나
강간 당하
지 않을까? 끌러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했습니
다. 혹시 그 친구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무슨일이 있
는 건 아닌지
아무런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초조하
게 그 친구가 다시 전화 올때까지 기다려야만 했어야
했습니다.

님이 저희와 이야기
한다고 지치셨다구요..
저희는 님의 그런 말들 그리고 그렇게 힘들고 어려움
을 조금씩 이겨나가기 위해 발버둥쳤던 저희들에게

변이 없다고 있지도 않은 싸이버 성폭력에 엄살부린다
는 님의 글을 보며 다시 상처받아야 했고, 그렇게 힘
들게 일어섰습니다.


엄살부리지 마십시오.

님의 이야기는 엄살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학점 중요하죠. 저는 제발 이번에 f만
없었으면 좋겠
습니다. 지금껏 못들어간 수업은 어떻해야 하는지, 필
기하나 없이 어떻게 시험을 처야 하는지, 대책위에서
하는
토론회와 앞으로 저희가 하기로 한 예비역 관련
토론회는 어떻해야 하는지등등.. 앞으로 3주 내에 해
야할 일이 수없이 많이 저희
앞에 남아있습니다.

님은 좋으시겠습니다. 그냥 말 몇마디 던지시고 그렇
게 이 논의에서 빠져 나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그렇게 할 수도 해서도 안되지요.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께 말씀드립니다.
저희가 너무한다구요. 이해하지 않고 한 발도
물러나
지 않고 사과를 받으려고 자게를 어지럽힌다구요.
저희는 물러서고 싶어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습니다.
네.. 저희는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왜냐면, 다시는 이런 일은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또 하나의 다른 여성이 이런 상처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성의 발언에 대해 조금도 거리두기
를 하지 않고 때거지로 몰려와서 욕하고 짓밟고 패
고.. 하는
짓거리들을 더이상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
니다.
저는 그래서 그런 일들이 더이상 없어야 하기 때문에
진중권씨가 님글과 그렇게
일대일로 싸우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손병오님 님이 저희에게 정중한 말걸기를 시도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그것에 대해 성실한 답변을 하지 않았
죠. 하지만, 님의 정중한 말걸기 만큼 사실 저희는 님
에 대해 기대했습니다.

최소한 저희가 사이버 성폭력의 충격에서 벗어날 때까
지를 기다려 주실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님의 말
걸기가 정중했기
때문에 님 정도라면 그렇게 몰지각
한 행태를 벌이는 사람들에 대해 다시 말걸기를 시작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정리하고 다시
이야기
를 시작할 줄 알았습니다.

님은 의도하시지 않았겠지만, 초기가 지나고 난 다음
힘겨운에 상처에 지쳐하고 있는
저희에 대해 님은 다
시 한번 상처를 주셨습니다. 왜 답변하지 않느냐고,
싸이버 성폭력을 핑계로 왜 숨냐고..
저는 님이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것이 남자이기 때문
이라고 생각합니다. 님은 여성에게 있어서 강간의 공
포가 어떠한 것인줄 모릅니다. 그
상상만 해도 소름끼
치는 공포 그것은 물론 저의 정조가 무너지는 것에 대
한 공포가 아닙니다. 그것은 제 몸이 저의 의지와

관없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짓밟히는 형태의 일이
며, 그것은 저는 개인적으로 살인보다 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인
당한 사람은 최소한 그 상처를 평
생 짐으로 가지고 살지 않으니까요

제가 님이 성을 착취하면서 살아갈꺼라고 한 이야기

별다른 이야기가 아닙니다. 님이 가정에서 한 여성
의 서비스를 당연하게 받으며 살아갈 것이라는 것도
아니고 님이 한 여성을 폭행하며
살거라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였습니다. 다만, 님은 여성이 한국에서 여
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에 대

평생 이해하실수 없거란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저의 이 모든 이야기에도 월장이 예비역을 씹었
으니 당연한거다. 왜 잘 있는
사람을 건드리느냐라는
리플이 올라 올것을 압니다.

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님의 ‘성폭력에
대한 여성의
공포에 대한 무지(이 표현에 너무 흥분하
지 마십시오.)’로 다시 한번 저희를 짓밟으셨고, 그렇
게 사람들을 흥분시키셨고 그렇게
논의를 끌어가신 분
입니다. 그 모든 일들이 저희에게는 너무나 분노스러
운 일이었고, 힘든 싸움이었으며,
아픔이었습니다.

그 아픔은 직접 저희에게 강간하겠다는 말을 하신분
과 별 다른 차이점이 없을 만큼 힘든
아픔이었습니다.

‘학점 잘 받아야하는 예비역이니까’라는 말 저희에게
비꼬는 말인지 압니다. 그렇지만, 서울에 가서 다른

학교에서 고생하시는 것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드립니
다. 한 학기 잘 마무리 하십시오.

저희는 계속해서 이 힘든 싸움을
견딜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저희에게 너무나 힘든 짐이지만, 그렇게 해야만 하니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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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단 ] 2001년05월15일 제359호

‘예비역’의 공포

군가산점 위헌 판결을 둘러싸고 인터넷 공간에서 보였던 한국 남성들의 마초적 언어폭력이 또다시 재연되고 있다. 부산대학교 여성주의 웹진인 ‘월장’이 기획기사에서 예비역 남학생들의 문화를 비판한 글을 둘러싸고 “XX를 찢어죽일 년들”, “지금 강간 때리러 간다”는 등 차마 끔찍해서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언어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글을 쓴 여학생들의 신상명세가 폰섹스 사이트에 공개되어, 그중 4명의 여학생들이 ‘폰섹스’ 요청전화를 받는 등 피해를 입었다. 문제가 되는 ‘월장’의 글이 어느 정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도 별로 효과적인 방법으로 쓰여진 글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방식의 끔찍한 언어테러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성들의 도착적 자기신비화

군가산점 위헌 판결 때 이화여대 홈페이지를 엉망으로 만들었던 남성들의 태도나 이번 월장 사태에서 나타난 태도를 보면서, 나는 한국사회의 군대문화가 정말 심각한 독소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젊은 남성들이 자신들의 군경험에 대해 커다란 상실감과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월장을 공격하는 예비역 남학생들의 주된 논리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자기들을 ‘감히’ 모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을 뒤집어보면, 가장 찬란한 젊은날에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저당잡혀야 했던 몇년간의 볼모 상황에 대한 불만과 그 불만을 과도한 신비화를 통해 보상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숨어 있다. 나는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가 요구하므로 하는 수 없이 갔다왔다. 그 몇년간의 억압을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 찬란한 젊은날에 뚫려 있는 검고 어두운 허공이다. 내가 그 상실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그것이 ‘신성한 사나이의 임무’였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이러한 도착적 자기신비화는 우리나라 남성들에게서 종종 발견된다. 사회 안에서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어떤 미숙한 남성들은, 자신으로 하여금 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결정권을 쥐고 있는 강자에게 항의하고, 상황의 수정을 요청하는 대신, 자신의 분노를 풀어낼 수 있는 약자를 사냥한다. 물리적으로 연약한 여성들이 이 사냥의 주된 희생자가 된다.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자신의 테러를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아내를 두들겨패는 남성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폭력의 이유는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뻔한 자기 합리화이다. 문제의 본질에는 해소되지 않은 공격성 하나밖에는 없다. 이러저러 늘어놓는 핑계는 순전히 폭력을 행사하기 위한 계기를 마련하는 데 종사할 뿐이다.

월장 사태에서 보이는 남성들의 언어폭력에서도 똑같은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그들이 스스로의 몸에 휘황하게 둘러놓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말은 실은 자신의 내면에 들끓고 있는 군복무에 대한 억울한 감정을 신비화하려는 노력이다. 국가권력에 의해 강탈당한 젊음의 몇년이 억울하다고 느끼는 만큼 더더욱 남성들은 자신의 안에 상실로 남아 있는 그 기억을 신비화하려고 한다. 상실을 메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안에 내재되어 있는 공격성을 풀어내야 하는데, 그 폭력성의 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절대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에 일체의 비판을 차단할 수 있는 최고 심급의 신화적 세팅이 필요해진다. 그들은 ‘국가’라는 심급에서 국가의 대리인으로 움직인다. 그렇게 일단 자기합리화를 하고 난 남성들은 그 절대적으로 우월한 자리에서 ‘응징’의 검을 들고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군대를 책임지고 있는 분들에게

요즈음 젊은이들은 욕망의 무한 발산이 허용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젊은이들은 전혀 억압에 대한 내성이 없다. 이런 분위기 안에서 살아가다가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군경험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이다. 군기를 잡는다는 이유로 행사되는 설명되지 않는 폭력을 참고 견뎌야 한다. 그 사이에 젊은이들의 부드러운 내면은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세상이 하도 빨리 변하므로, 제대 뒤에도 극심한 이질감에 시달려야 한다.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칙칙하던 전 시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상실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니 이들의 마음속에 대상을 알 수 없는 증오와 미움이 쌓이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군입대를 앞둔 아들을 기르는 어미의 한 사람으로서 군대를 책임지고 있는 분들에게 간절하게 당부하고 싶다. 전혀 다른 군문화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현 단계에서 군복무를 없앤다는 것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제안이므로 군복무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일이라면, 젊은 남성들이 사회에 나와 상실감과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의미있는 군복무 경험을 제공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대학에서도 예비역 학생들이 좀더 자연스럽게 캠퍼스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이들을 이대로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김정란/ 시인·상지대 인문사회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