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게시판에서 퍼왔습니다.
언제까지 나는 남의 글 퍼오기만 할지…
[년도:] 2001년
remember
오늘 4.18이라고 학교에서는 모두들 달떠 있었다. 집회도 아닌 것이 집회 분위기를 내고 한 편에서는 축제 분위기를 내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4.18 마라톤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 집회에도 참여해 본 적이 없다. 그렇게 벌써 3년째 학교를 다니고 있다.
4.19보다 하루 앞선 18일에 굳이 이넘의 학교가 기념을 하고 수유리까지 미친 척 달리는 것은 4.19 또는 4.18이라 불리는 1960년의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지식사회학 시간에 – 이넘의 김교수는 오늘이 4.18인지도 몰랐다며 미안하다면서 30분 동안 4.18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더니, ‘재미있지?’하고는 나머지 45분간 빡새게 수업을 진행시킨다…독한 사람…- 김문조 교수가 그 ‘사건’을 기억하는 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4월 18일이면 민주광장에 많은 사람이 모인다. 학관 계단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그 행사를 이끄는 주체이며 대체로 고학번이다. 그리고 아래쪽에서 달떠 있는 이들은, 김교수의 말에 따르면 떨거지들이다. 고학번들은 무언가를 아는 듯이 마주보고 있는 이들에게 혁명을 기념하고 저항정신을 기억하고 깨어있자고 강변한다. 마냥 즐거운 듯 몸풀기를 하고 있는 그 떨거지들 – 비하하는 뜻은 아니다 – 은 그 말을 듣는지 안 듣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게 그 행사를 치른다. 시간이 흐르면 그 떨거지들은 이제 주축이 되어 학관 계단 앞에서 새로운 떨거지들과 그 기억을 이야기한다. 대개 역사에 있어서 행사나 의식을 통해 상기시키려는 기억은 그렇게 그 역사를 기억하려 하는 성원들이 바뀐다.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다양하게 조직되면서 그 기억은 계속되거나 없어지거나 한다. 그러면서 김교수는 기억의 뜻을 담고 있는 영어 ‘Remember’에 대해서 말한다. 개인의 자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이 아니라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 – 이것은 경우에 따라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 의 경우에 있어서 그 기억이라는 것은 상기하고 지니려 하는 성원이 지속적으로 물갈이되는 과정이란다. Re(다시)+성원(Member)=Remember(기억)… 재미있군…
아무튼 4.18은 오늘 친구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한국사 수업 시간에 들었다나) 고대 부근 고교생들이 먼저 시위를 시작했고, 고대생이 ‘쟤네들도 하는데 우리도 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에서 동기화되었고 정치깡패들의 폭행에서 ‘터져 버렸다.’ 그렇게 한편으로는 우습게 시작한 일이지만, 4.18이 촉발요인이 되어 4.19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김교수는 나름의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연 지금 우리 사회에 그같은 뜨거움이 있는가, 그 때의 그것을 지닐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 김교수의 말대로 지금은 변화의 시대가 아니라 안정적이고 관리되는 시대라 좀처럼 그때와 같이 너도나도 거리로 뛰쳐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 다 식어서 축 늘어진 상태, 어쩌면 물이 끓다가 끓다가 다 쫄아서 더이상 끓을 게 없이 말라버린 상태는 아닌가…나만 봐도 그렇잖나…
학문을 위하여 – 한겨레 '손석춘의 여론읽기'
학문을 위하여 대학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인가. 4월혁명 기념일 앞에 옷깃을 여미며 던지는 물음이다. 흔히 대학은 진리와 자유의 상징으로 불린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그랬다. 대학이 없었다면 과연 대한민국이 민주화되었을까. 학살극을 벌인 전두환 육군소장이 10년도 안 돼 백담사로 쫓겨간 것도 대학이 살아있어서였다. 하지만 예서 묻고싶다. 이때 대학이란 무엇을 이르는가. 젊은 학생들이다. 유감스럽게도 대다수 교수들은 침묵했다. 아니 되레 학생운동을 `통제’했다. 언론권력의 추악한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한가지 의문을 끝내 떨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언론이 추한 보도를 일삼았을 때 언론학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분명히 증언한다. 추악은 언론인들의 고유한 상표가 아니었다. 비금비금한, 아니 한술 더 뜬 학자들이 즐비하다. 젊은 꽃들이 목숨을 던지며 민주주의를 외칠 때 유신체제와 전두환 정권에 찬가를 불러댄 교수들은 오늘도 건재하다. 비판적 후학들에겐 교수자리를 주지 않는 행태로 그들은 학계에서 권력을 휘둘러왔다. 뿐만인가.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며 `명성’을 얻고 서부렁섭적 장차관·국회의원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교수들에게 신문이 지니는 매력도 거기에 있다. `출세’는 물론 원고료도 쏠쏠하다. 진보적 교수들조차 극히 일부는 원고료가 많은 신문을 위해 <한겨레> 기고를 사양하는 서글픈 풍경마저 일어나고 있다. 비단 과거만이 아니다. 보라. 오늘을 서슴지 않고 `내전상태’라 부르대는 언론을. 그리고 그 언론에 꾀는 학자들을 보라. 그나마 현장 언론인들의 투쟁이 끊어지지 않았기에 언론개혁 운동이 예까지 올 수 있었다. 과문한 탓인가. 언론이 군부독재에 재갈 물릴 때 언론학자들이 언론 자유를 주창한 글을 본 기억이 감감하다. 오히려 독재권력에 부닐던 교수들의 추태는 지금도 생생하다. 언론의 한 모퉁이에서 현장을 20여 년 지켜온 기자로서 묻는다. 우리 언론과 사회가 이 정도나마 민주화하기까지 이 땅의 학자들은 얼마나 기여했는가. 겸허하게 성찰하기 바란다. 젊은 언론학자들의 비판적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의 대다수 언론학자들은 언론인들의 언론개혁 운동을 외면해왔다. 오해 없기 바란다. 외면한 과거를 들어 굳이 교수들을 타박할 뜻은 없다. 그러나 언론개혁 여론이 퍼져가자 곰비임비 글을 쓰며 진실을 왜곡하는 야바윗속마저 눈감아주기란 역겹다. 현장 언론인들이 망라된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기자협회가 추진하는 언론개혁을 `상아탑’에 앉아 타율이라 사박스레 주장하는 것은 기실 얼마나 큰 오만인가. 심지어 어떤 교수는 언론개혁 운동을 비난하며 언론학 교육만이 개혁의 길이라고 강변한다. 과연 그럴까. 언론개혁 운동을 타율과 헐뜯기로 왜곡하는 언론학 교수들이 강단에 `주류’로 자리잡고 있는 현실은 현장 언론인들에겐 절망이다. 하여 왜 언론개혁이 절실한지를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단순하다. 이 땅의 민중들이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다. 아주 작게는 기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참으로 언론자유를 마련해주고 싶어서다. 신문사를 세습한 언론권력의 틀에 갇혀 기자로서 쓰고 싶은 대로 못 쓰는 좌절과 아픔은 오늘의 언론인들로 충분하다. 언론개혁을 호도하는 언론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변변한 연구물조차 내놓지 못하면서 `존경’받는 것까지 이의를 제기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권력이 정말 언론탄압에 나설 때 투쟁에 나설 이들은 누구일까. 과거에 그러했듯이 바로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기자협회다. 제발 언론인들의 언론개혁 운동을 근거 없이 훼손하거나 방해하지 말기 바란다. 언론현장도 제대로 모르면서 현장 언론인들이 애면글면 진전시켜온 언론개혁 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수고는 아껴달라. 그럴 `열정’이 있다면 일선 언론인들이 그러하듯 스스로 몸담고 있는 학계의 썩은 곳에 칼을 들이미는 용기를 보여주길 권한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부디 학문을 닦는 데 정진할 일이다. 호사스런 학문의 전당, 그러나 가난한 우리 시대의 학문을 위하여. 손석춘/ 여론매체부장son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