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승연님의 홈페이지에서 무단으로 퍼왔습니다.

엘레강스하게 <01.4.7> 그는 마치 조폭 같았다. 듬직한 체구, 색안경 너머의 눈매와 중저음의 걸걸한 목소리는 카리스마란 이런거다,의 표준이라 할 정도다. 그는 자신을 서울대에서 미학을 공부한 박사출신이라 했고 또 제3세계 국가에서 사업을 해 번 돈으로 가족과 프랑스에서 10여년을 지냈다 귀국한 거라 했다. 그는 영어가 없으면 의사표현 하는 것이 버거운 사람인 듯 싶었다. 언제나 명사와 형용사는 대부분 영어나 학술용어로 대체했다. 그의 수업은 항상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는데,

첫째로, ‘공산당 선언’과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으라. 2, 동양화는 위기이며 동양화 전공학생과 토론하고 싶다. 3, 한국대학교육은 문제가 많다. 4, 조선시대의 연애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5, 소비에트 블록 해체에 충격 먹었다. 등이 그것이다. 그 외에는 대부분이 영어와 학술용어이기 때문에 별로 기억나는게 없고 실지로도 그의 수업은 진도나 교재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결국 위의 몇가지 화두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는 없다. 두 시간동안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다보면 내가 도대체 지금 뭐하고 있는건가,하는 회의가 절로 들 때가 많다.(캔슬을 하지 않는 이유는 리포트와 시험이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서이다.) 수업을 듣고 있노라면 내내 궁금증이 떠나지 않는다. 우선, 1에 대한것. 나는 ‘공산당 선언’을 읽었지만 막스베버를 궂이 읽지 않아도 자본주의를 이해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 자체가 자본주의니까.(물론 베버가 말하는 자본주의와 우리의 자본주의는 전혀 별개의 것이겠지만……) 그리고 그는 사회를 알아야 마스터베이션인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난 맑스와 베버를 읽어야만 사회를 아는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2, 7~80년대 한국화 융성기 이후 상대적으로 한국화라는 장르가 많이 쇠퇴했다는 건 고등학생도 아는 사실이다. 그에 관한 논의는 내가 알기로 적어도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10년이 넘도록 같은 이야기만 반복된다는 거다. 그 지겨운 논의를 앵무새처럼 또 다시 하자고? 3, 이해한다. 프랑스처럼 교육의 질이 좋은나라에서 살다와보니 참 여러 가지로 한심했을거다. 문득 만리장성에서 만났던 한국인 관광객 아저씨들이 생각난다. 박사출신인 그 지식인과 그 오만한 관광객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길래?…… 4, 그렇다. 하지만 내가 만일 교수가 된다면 수업때마다 “원시시대에는 수렵이 주된 일과였다.”는 말을 되풀이하진 않을 것이다. 5, 아는 분은 “100년의 노력이 물거품되는 광경을 우리는 보고 있다.”라고 한 적이 있다. 그로 인한 쇼크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좌파지식이라면 쇼크먹고 끝날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에게 홍세화처럼 행동해 주길 바랄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말이다. (홍세화라니……홍세화는 파리에서 택시기사였지만 그는 문화생활을 하는 은퇴한 자본가였다.) 결론으로 들어가서,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계몽하자는 건가? 다른 길을 찾자는 건가? 어떻게? 연구실에 앉아서? 휴가때면 종종 파리에 가 포도주를 마시면서?…” 이건 아주 중요한 거다. 왜 이 지식인은 사회와 동떨어진 자세로 세상을 대할까? 그가 이야기하던 “~엘레강스하게”란 것은 그만의(그들만의) 성채에 존재하는 것 아닐까? 그는 어떻게 자본을 토대로 제 3세계에서 사업을 하면서도(착취를 하면서도) 자신이 맑시스트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번 돈으로 프랑스에서 책과 포도주와 함께한 삶에 대해 조금의 회의나 부끄러움도 없었던 걸까? 강준만이 “늘 행동은 궁색하고 초라하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의 ‘엘레강스한’품위와 ‘엘레강스한 ‘예술텍스트, 그리고 ‘엘레강스한’ 지식의 파편들은 어쩌면 그의 담론속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가 이야기하던 마르크스는 죽어있는 마르크스였고 사회주의는  한갓 가상 롤플레이션 게임에 불과했다.

천진한 웃음이 무서워!

컴퓨터 게임 – 뽑기 게임

<DDR>로 시작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 댄스 게임기들은 오락실의 새 장을 얼었다. 전에는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까지의 남자들만 득실댔지만 이제 연인끼리, 아니면 여자들끼리도 자주 오락실을 찾는다. 지하의 어두운 공간은 1층에 당당히 자리잡은 밝고 깨끗한 곳으로 바뀌었고, 더이상 오락실에서 학생주임 선생이 불길한 그림자로 군림하지도 않는다. 이제는 더이상 오락실을 ‘비행 소년들의 칙칙한 공간’이라고 부를 수 없다. 하지만 댄스 게임기 열풍은 시작되었던 것만큼이나 갑작스럽게 식어버렸다. 무리해서 너도나도 들여놓았던 게임기들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값비싼 기계를 여러 대씩 사들이랴, 덩치 큰 것들을 들여놓느라 공간 확장하랴, 이래저래 출혈이 컸던 오락실들은 궁지에 몰렸다. 우울한 오락실에 그나마 희망이 되어준 게 뽑기 기계들이다. 금속 집게를 조절해서 인형을 뽑아내는 단순한 게임은 의외로 수많은 중독자를 양산했다. 게다가 이 게임에 열광하는 사람들 중에는 청소년뿐 아니라 구매력이 있는 성인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들이 그 자리에서 1만원, 2만원씩 써가며 인형 뽑기에 열을 올리는 광경은 별로 신기한 일이 아니다. 인기에 힘입어 인형 뽑기는 오락실이 아닌 팬시점이나 문방구 등에도 많이 설치되었고, 몇몇 오락실에서는 현금을 은밀하게 경품으로 내거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인형 뽑기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돼 나온 게 <가재 뽑기>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가만히 누워 얌전하게 뽑아주기만 기다리는 곰인형이나 오리인형은 시시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봤자 살아 움직이는 가재 한 마리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보여줄 수는 없다. 더 구미가 당기는 건 가재가 헝겊인형보다 훨씬 더 비싼 ‘물건’이라는 점이다. 가재요리를 먹어보려면 적어도 2만∼3만원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조금의 노력과 재능, 운만 있으면 몇푼 안 되는 돈으로 횡재수를 낚을 수 있다. 집에 가져가서 요리하느라 익숙지 않은 집게발과 씨름을 벌일 필요도 없다. ‘잡은 가재는 즉석에서 매운탕을 끓여 드립니다’란 팻말이 친절하게 붙어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의 상품으로서, <가재 뽑기> 기계에는 약점이 있다. 바로 단가가 높다는 점이다. 값비싼 가재로는 생각보다 영 수지가 안 맞는다. 그래서 등장한 게 햄스터, 병아리, 토끼들이다. 원가가 몇백원에 불과한데다가, 크고 힘센 가재보다 뽑기도 편리하고, 작고 귀여운 동물들이니 일종의 캐릭터성도 있는 셈이다. 조준을 잘못하면 연약한 피부가 찢어지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직접 피를 보니 스릴이 한층 더한다. 내가 지배자란 느낌이 더 많이 든다. 동물 뽑기는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인기다. 아이들은 대개 동물을 좋아한다. 제발 강아지 한 마리만 주면 정말 예쁘게 잘 키우겠다는 읍소가 인터넷에 넘쳐나고, 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자리를 펴고 병아리를 파는 할머니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풍경이다. 버둥거리는 병아리에게 차가운 금속 집게를 겨누는 건 놀라운 경험이다. 그냥 돈 내고 사오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노란색 학교 체육복을 똑같이 입은 아이들이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한 구석에 던져놓고 뽑기 기계를 둘러싼다. 고사리손으로 꼭 쥐고 와 따뜻해진 동전을 한명이 내민다. 정작 당사자보다는 구경하는 여러 명이 더 침이 마른다. 연약한 어린 생명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다. 몇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성공이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린다. 티 하나없이 맑고 깨끗한 웃음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sugulman@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