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서문 영한대역본

 




서문 Introduction

이 책은 아마 이 책 속에 표현된 사고들을-또는 어쨋든 비슷한 사고들을-스스로 이미 언젠가 해본 사람만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이 책의 목적은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어떤 한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달성될 것이다.

Perhaps this book will be understood only by someone who has himself already had the thoughts that are expressed in it–or at least similar thoughts.–So it is not a textbook.–Its purpose would be achieved if it gave pleasure to one person who read and understood it.

이 책은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내가 믿기로는-이러한 문제들의 문제 제기가 우리의 언어 논리(言語論理)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다는 점이 보이고 있다. 이 책의 전체적인 뜻은 대략 다음의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좌우간 말해 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The book deals with the problems of philosophy, and shows, I believe, that the reason why these problems are posed is that the logic of our language is misunderstood. The whole sense of the book might be summed up the following words: what can be said at all can be said clearly, and what we cannot talk about we must pass over in silence.

이 책은 그러므로 생각에 한계를 그으려 한다. 또는 차라리, 생각이 아니라 사고의 표현에 한계를 그으려 한다. 왜냐하면 생각에 한계를 그으려면 우리는 이 한계의 양 측면을 다 생각할 수 있어야-따라서 우리는 생각될 수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Thus the aim of the book is to draw a limit to thought, or rather–not to thought, but to the expression of thoughts: for in order to be able to draw a limit to thought, we should have to find both sides of the limit thinkable (i.e. we should have to be able to think what cannot be thought).

그러므로 한계는 오직 언어에서만 그어질 수 있을 것이며, 그 한계 건너편에 놓여있는 것은 단순히 무의미가 될 것이다.

It will therefore only be in language that the limit can be drawn, and what lies on the other side of the limit will simply be nonsense.

나는 나의 노력이 다른 철학자들의 노력과 어느만큼 합치하는지는 판정하지 않겠다. 사실, 내가 여기에 쓴 것은 개별적으로는 결코 참신성을 주장할 게 없다. 그리고 나로서는 내가 생각한 것을 나 이전에 이미 다른 어떤 사람이 생각했는지 여부는 아무래도 상관없기 때문에, 나는 또한 전거를 제시하지도 않았다.

I do not wish to judge how far my efforts coincide with those of other philosophers. Indeed, what I have written here makes no claim to novelty in detail, and the reason why I give no sources is that it is a matter of indifference to me whether the thoughts that I have had have been anticipated by someone else.

나는 단지 , 나의 사고는 프레게의 위대한 저작들과 나의 친구 버틀란드 러셀씨의 작업 덕택에 커다랗게 자극받았다는 점만을 언급해 두고자 한다.

I will only mention that I am indebted to Frege’s great works and of the writings of my friend Mr Bertrand Russell for much of the stimulation of my thoughts.

만이 이 작업이 어떤 가치를 지닌다면, 그것은 두 가지 점에 있다. 첫째로 , 이 작업 속에는 사고들이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가치는 그 사고들이 더 잘 표현되 있으면 있을 수록 더 커지게 된다. 여기서 나는 가능한 수준에서 훨씬 뒤처져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나의 능력이 그 과제를 성취해 내기에는 너무 빈약하기 때문이다.-다른 사람이 나와서 더 잘 해주기를!-

If this work has any value, it consists in two things: the first is that thoughts are expressed in it, and on this score the better the thoughts are expressed–the more the nail has been hit on the head–the greater will be its value.–Here I am conscious of having fallen a long way short of what is possible. Simply because my powers are too slight for the accomplishment of the task.–May others come and do it better.

반면에 나에겐 여기서 전달되 사고들의 진리성은 불가침적이며 결정적이라고 보인다. 따라서 나는 본질적인 점에서 문제들을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일 내가 이 점에서 틀리지 않는다면, 이 작업의 가치는 둘째로, 이 작업은 문제들이 해결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 얼마나 적으냐 하는 걸 보여 준다는 점에 있다.

On the other hand the truth of the thoughts that are here communicated seems to me unassailable and definitive. I therefore believe myself to have found, on all essential points, the final solution of the problems. And if I am not mistaken in this belief, then the second thing in which the of this work consists is that it shows how little is achieved when these problem are solved.

L.W.
1918년 비엔나에서 Vienna, 1918

아날학파 [ Annales School ]

분류


· 역사와 지리 > 역사 > 프랑스사 > 현대
· 지역 > 유럽 > 프랑스 > 프랑스일반

요약

1929년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L.페브르와 M.블로크에 의해 창간된 《사회경제사 연보》(1946년에는 ‘아날 ·경제 ·사회 ·문명’으로, 1994년에는 다시 ‘아날 ·역사와 사회과학’으로 제명 변경)를 중심으로 형성된 학파.

본문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랑케의 사실주의에 토대를 둔 근대 역사학은 역사철학이나 낭만주의적 역사서술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는 하였으나, 사료의 정확성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역사학의 폭과 깊이를 축소시키는, 그 부정적 측면을 노출하여, 결국 인문사회과학의 세계에서 자료제공자의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학의 위기 상황에서, 프랑스에서는 뒤르켐의 사회학, 비달 드 라 블라슈(Vidal de Blache)의 인문지리, 철학자인 H.베르의 역사적 종합 등이 인문사회과학을 주도하는 가운데, F.시미앙이 제기한 ‘역사가들의 3가지 우상(정치 ·개인 ·연대)’에 대한 논박, 그리고 이러한 도전에 대한 역사가로서의 수용은 새로운 역사학의 형태를 결정지었다. 정치보다는 사회, 개인보다는 집단, 연대보다는 구조를 역사인식의 기본 골격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이 학파의 정신이 된 것이다.

이렇게 출범한 이 학파가 역사학 안팎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한 것은 제2세대인 F.브로델에 의해서이다. 그가 1949년에 발표한 《지중해》는, 지중해세계라는 자연환경 속에서 ‘시간이 잘 마모시키지 못하는’ ‘장기지속(la longue duree)’적인 지리적인 삶, 그리고 그 위에서 완만하게 주기적으로 변하는 사회 경제적인 삶, 그리고 표면의 거품과 같은 정치적인 삶을 구조적이며 총체적으로 그린 아날학파의 교과서였다. 이후 G.뒤비, E.르 루아 라뒤리, J.르 고프 등의 제3세대는, 이러한 브로델의 역사학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집단심성(集團心性)에 대한 연구를 아날학파의 영토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 R.샤르티에는 문화현상에 대한 사회사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제4세대를 이끌고 있다.

이 학파는 역사에서의 개인의 역할, 변동에 대한 설명 등에서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였으나, 일상적인 사람들의 삶을 역사의 무대에 소생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사학사적인 공헌을 하였다. 이 학파는 1970년대에 특히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1970년대 말에는 한국에도 소개되었다. 최근에는 국내의 관심도 더욱 높아져, 브로델의 대작인 《지중해》(한길사, 1995)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까치, 1995)를 위시한 이 학파의 주요 연구업적들이 활발히 번역 소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