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여호와의 증인’에게

 

그러니까 딱 30년 전이었다. 스물네 살 나이에 기약도 없는 옥살이를 예약해 놓고 서대문 구치소에 들어간 나는 그곳에서 난생 처음으로 여호와의 증인'을 만났다. 병역을 거부하고 감옥에 와 있던 그는 매일 약상자를 들고 의무과 교도관과 함께 미결사동을 방문하는간병부’였다. 틀림없이 나에게 씌워진 어마어마한 죄명' 때문에, 그리고 아마도 박해로 가득 찬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그 자신의 슬픔 때문에 나를 보는 그의 눈이 때로는 차갑고 때로는 따뜻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곱상하게 생긴 그의 이름을 나는김중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형.

그동안 잘 지냈는지요? 얼마 전 어떤 텔레비전 프로를 보다가 갑자기 기억의 아스라한 밑바닥에서 당신이 떠올라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문제를 다룬 그 르포의 주인공은 김세정씨라는 `여호와의 증인’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병역거부로 옥살이를 해야 했던 그는 아들 둘을 교도소에 두고 있었고, 셋째 아들의 감옥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 클로즈업된 김세정씨 얼굴을 보면서 문득 그만한 연배가 됐을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당신도 지금 아들 하나쯤 교도소에 보내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상념으로 저의 가슴은 아팠습니다.

30개 교도소에서 1600명이나 되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복역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세상에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햇빛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온갖 미신에 사로잡힌 집단 히스테리가 사람들을 침묵시키고 어떠한 평화운동도 반전운동도 성장하기 어려웠던 우리 사회에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바로 당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고난으로 열린 시대입니다.

생각하면 당신이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고생하던 그 시절에 이미 동·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널리 법으로 인정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드는 법률이란 결코 `신성한 것’이 아니라는 너무도 당연한 상식, 민주주의는 그 국민에게 제도와 법률, 그리고 습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믿음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 겪은 고난의 성과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998년에 유엔 인권위원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박해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구체적인 결의안을 채택하기에 이릅니다. 즉 양심적 병역거부자 보호원칙은 이제 우리나라도 당연히 준수해야 할 국제법입니다.

몇 년 전 저는 영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저의 오랜 감옥생활 기간을 통해 꾸준히 저를 도와준 국제사면위원회의 한 회원을 만났습니다. 젊어서 사회주의에 호감을 가졌다는 그 노인은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장 극악한 파괴행위는 법'을 준수하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져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도 젊어서 옥살이를 했었지”하면서 빙그레 웃는 그 노인을 알고보니 2차대전 때 병역거부로 두 달 동안 감옥살이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에는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와의 모든 협력을 거부하면서 투옥된 3500명 가량의절대적 병역거부자’가 있었습니다. 그 노인도 그 중 한 사람이었던 셈입니다.

저는 지금 빛 바랜 흑백사진을 꺼내 보듯이 당신이 가졌던 맑은 표정을 생각합니다. 그 표정에 영국에서 만났던 노인의 선량한 표정이 겹쳐옵니다. 당신의 양심적 병역거부는 오로지 신앙에서 나왔겠지만, 그것은 동시에 인류가 살아온 시대마다 각자의 처지에서 폭력에 굴복하지 않으려 고민하고 노력했던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비폭력은 서서히 자라는 식물이다. 그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성장한다.”

부끄럽게도 30년 동안 잊고 지낸 당신의 고난을 이제야 생각하며 저는 이런 말을 실감해봅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그 고난의 감옥에서 고립무원했던 젊은 공안사범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따뜻한 시선을 보내준 그 유물론자, 폭력의 구조를 떠받치는 그 어떤 법'도 어기면서 당신들과 함께 가고 싶어했던 그양심적 반전주의자’를 가끔은 생각해주기 바랍니다.

 

서준식/인권운동사랑방 대표





상관주의 [ 相關主義, relationalism ]  




























분류
· 사회과학 > 사회 > 사회일반




요약
K.만하임이 발전시킨 지식사회학의 기본입장을 가리키는 용어.









본문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지식의 존재구속성(Seinsverbundenheit)을 강조한다. 존재구속성이 의미하는 것은 과학적 지식을 포함하여 모든 지식이 성립하는 장(場)으로서 역사적 상황과 조건에 밀접하게 결부되어 나타나고 또한 이들과 엇물려 기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공을 초월하여 성립하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는 부정된다. 그러나 상관주의가 바로 인식론적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상대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진리의 문제를 처음부터 포기하는 입장도 아니다.


이에 관해 상관주의의 입장은 ①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고, ② 역사적 상황에 침전되어 있는 가치들이 인간의 모든 인식과 지식에 스며 있음을 인정하면서, ③ 주어진 역사적 상황에 부합되는, 그리고 그 안에서 올바른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진리를 규명할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따라서, 이 입장은 단순한 상대주의와 구별되어야 한다. 인간존재를 철저히 역사화시키는 상관주의의 입장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이해하는 데 적용될 뿐 아니라, 사회과학·인문과학·예술 분야 및 자연과학의 이해에도 불가결하다고 만하임은 보았다. 아울러 이 입장에는 독일 특유의 역사주의적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사회적 조건들이 다름에 따라 이에 상응하여 다른 의식들이 나오게 된다는 관점은 만하임 이전에 이미 마르크스에 의해 발전되었다. 즉, 마르크스는 인간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사회현실을 설명하고자 했던 관념철학에 대항하여, 의식을 사회적으로 규정된 것, 또는 사회적으로 생산된 일종의 종속변수와 같은 것으로 취급하였다. 다시 말해, 인간존재의 사회적 조건들이 어떠한가에 따라 상이한 의식구조가 나온다는 것이다.


만하임은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마르크스의 관점을 더욱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지식에 관한 상관주의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만하임존재구속성마르크스존재구속성과 2가지 면에서 크게 다르다.


하나는 마르크스가 지식의 사회적 성격을 규정해 주는 주요변수로서 경제적 생산관계와 계급을 강조한 데 반해, 만하임은 이에 못지않게 또한 지역이나 연령·세대·성 등과 같은 요인들도 중요하게 보았다는 점이다.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이 계급에 따라 현저히 다르듯이, 또한 농촌이냐 도시냐에 따라, 또는 어떤 세계냐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만하임마르크스주의 이론 그 자체를 지식의 존재구속성에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에 예속되는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많은 지식체계들을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규정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객관적으로 타당한 과학적 지식인 것처럼 대변해 왔는데, 유심히 살펴보면 이 특권이 마르크스주의에 부여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르크스주의도 넓은 의미의 이데올로기에 속한다는 것이다.


상관주의는 개념적으로 상대주의와 구별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상대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입장에 따라 관점이 달라짐을 강조하는 상대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맥락에 맞는 진리의 기준을 비상대적(非相對的)으로 규정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만하임이 제시한 것이 바로 자유로운 지식인의 역할이다. 지식인은 다른 어느 집단보다 기득권에의 집착이 약하고 객관적 진리에의 추구가 강하기 때문에 다양한 입장들을 자유롭게 택해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주어진 맥락 안에서 무엇이 가장 합리적이고 올바른 길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하임에 의하면, 상관주의가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고 제한된 범위에서 진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식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