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진중권의 디빠들에 대한 비판의 시작점은 적절했다, 하지만 진중권은 그들의 비평적 담론이라는 대타자에 대한 냉소를 막아 서서 깨 부수고 난 다음 다시 대타자의 권위를 세우려 했다, 디빠라는 냉소주의적 주체가 하고 있는 비평이라는 대타자 부수기가 디워와 심형래가 전파하는 민족주의, 애국주의, 한국적 버전의 세계 패권주의, 기술중심주의 권위로 폭력적으로 회귀하고 있다면 이 경로를 차단하고, 대신 그들이 하고 있는 비평 권위 부수기의 종착지로 안내해 줘야 한다, (그 종착지는 비평 담론의 無의 지점, 사실 비평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라는 말?
그렇다면 김규항으로 가야 한다는 건데…하지만 김규항은 진중권의 최초의 행위을 놓친 것이고…

출처 : http://www.jabo.co.kr/sub_read.html?uid=21592&section=section4&section2=

‘디 워’라는 숭고한 대상과 진중권의 역할
‘디 워’를 둘러싼 망측한 상황에 대한 지젝적 재론

 

레비나스

진중권의 행위는 옳다

인터넷이 요지경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저는 많은 담론가들이 온전히 인터넷 요지경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음을, 이 결정적인 간극과 파열의 상태를 뒷골목이야기 처럼 취급하고 있는게 아닌지 한탄만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 이 경황들을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네요. 황우석 아니 더 소급해보면 ‘안티 오노’라는 단락과 맞닿아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분명 하나의 재앙처럼 계보적으로 다가가는걸 차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론적 난맥상들이 곤란해지는 것은 그런 이유지요. 인터넷이란 공간은 뚝 떨어진 재앙 그 자체가 아닌지..

 

그런 의미에서 디워에 대한 진중권씨의 개입은 적절해 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중권씨는 분명한 의미로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을 꼬집어 냈지요. 그렇지만 그는 이런 문제들을 역사적 계몽의식으로 풀어냄으로서 그의 본능을 침잠시키고 있는게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즉 일련의 상황들의 간극을 역사주의적, 연속성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렇다고 하기에 이 상황들이 너무나 특수하다는 점에서  그의 이론 도구들과 문제의식들은 낡았다고 생각합니다.

지젝은 ‘신체없는 기관’에서 이렇게 주장했지요.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철학적 가치 쓰레기다. 그러나 레닌의 정치적 본능 그것은 진짜다’라고요. 같은 방식으로 진중권씨를 치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중권의 정치적 해석 쓰레기다. 그러나 진중권의 정치적 본능은 진짜다라고 말입니다.

권력에게 보내는 혁명적이지 못한 냉소들

황우석 또는 디워같은 일련의 사태들에 대해서 당혹스러운건 이겁니다. 그들은 분명 권력에 대한 냉소를 보내고 있다는점 말입니다. 예를들어 보면, 노조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노조의 권력에 대해서 냉소를 보냅니다. 민노당을 비난하는 논리들을 보면 민노당에게 적실시되는 또는 균열지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지요. 대기업 노조에 대한 애매한 관계에서 부터 노동자를 위한 당이라는 주장이 가식이라는 말까지.. 많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디워도 그랬지요. 비평가들의 비평에 대해서 많은 디워 옹호논자들은 어쩌면 세련된 담론일지 모르는 것들로 비평가들의 권위를 단두대에 올리는 일을 했습니다. 황우석 때도 그들은 모든 윤리적 반대를 우숩게 여기고 그것들을 의문에 부치는 일을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상황은 어떻게보면 포스트모던적이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이런 냉소들은 포스트모던의 이론적 파열상과 다르게 전혀 혁명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한나라당을 뽑을 것이고, 민족주의에 열광할 것이며, 국가주의에 함몰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포스트모던의 실패를 예견한 지젝은 탁월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은 여전히 숭고한 대상을 만들어 내고 있지요.

진중권씨가 맞닥드린 그 파시스트적인 주체들은 실은 자유주의적인 주체이며, 그 자신의 이론적 논리의 외형적 모습이 아닐지요. 물론 진중권씨는 그 뒤의 무엇인가 더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진정한 자유주의같은 판본들 또는 보편주의로의 회귀같은, 이 이론적 후퇴들이 진중권씨 또는 자유주의자들이 겪고있는 끔찍한 곤긍이 아닐지요.

마르크스를 거대 담론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던 많은 사상가들이 그 즉시 거대 담론화 될 수 밖에 없었던 사장된 이론들의 슬픈 장송곡들에 대해서 지젝은 이런 말로 위로했을 겁니다. ‘안티오이디푸스는 그 자체로 탁월한 오이디푸스라네 친구.’ 여기서 지젝은 자유주의의 적실성에 테클을 걸고말겁니다.

‘디 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악무한적인 상황. 지젝적 돌파를 위해서 이론적으로 지젝에게 충실해야한다고 전 생각합니다. 주체가 환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상징계의 권력에 발목이 잡혀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지젝의 주장일테지요. 권력에 냉소를 보내는 사람들이 권력적이라는 아이러니.

칸트로 거론되는 물자체에 대해서, 지젝은 물자체와 관련없는 어떤 영역을 산출해냅니다. 그건 데카트르가 걸었던 근대적 주체의 탄생과 관련이 있는 절대적 부정성의 산출이지요.

물자체에 대한 감각과 이성의 개념적 종합은 칸트가 예견했듯이 근본적으로 삐딱하고 왜상적이라는 것, 그런 왜상적 경험들과 종합을 모두 부정하는 데카트르의 의심, 행위에 대해서 지젝은 주체의 새로운 탄생이라고 말합니다. 절대적 부정성의 영역, 유령이 침몰하는 어두운 전조. 세계의 밤.

‘세계는, 대상은 그 자체로 無이다. 그렇지만 주체는 이것들을 삐딱하게 봄으로서 이데올로기(신, 법)를 창조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혁명성은 이것들이 모두 부정되는 절대적 부정성의 영역을 가로지르며, 실재(대상, 물자체)의 텅빈 지점을 승인한 그 이후의 주체의 자리, 無의 영역을 경험한 후의 주체이다.’

헤겔의 변증법을 읽으면서 지젝은 디 워를 옹호해내는 냉소적인 탈근대적 주체들에게 이렇게 묻고있는 겁니다. 왜 여전히 아무것도가 아닌이 아닌, 무엇인가.

‘디 워’라는 숭고한 대상

저는 디 워라는 대상에 숭고한 이미지를 덧칠하는 것을 보면서 여전히 그들이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이런 상황은 냉소주의적 주체라는 지젝의 주장을 더 상보하는 것이지요. ‘나는 디 워가 쓰레기인걸 잘 알고 있어,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양 행위할거야’ ‘나는 자본주의가 착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양 행위할거야’ 라는..

지젝이 거론한 현대의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판본인 냉소주의적 주체. 어떤 부류들은 그들의 냉소주의를 포스트모던이나 권력 비판의 새로운 돌파구로 찬양하고 있지만, 지젝이 보기에 그들은 여전히 충분히 이데올로기적일 겁니다. 진중권씨의 자유주의적 곤긍은 그 대표적 사례가 아니겠습니까.

예컨데 진중권씨의 자유주의는 자유라기보다 그것을 적당히 중용하는, 쾌락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차원에 머물러있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진중권씨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이름 없는’ 자유의 심연, 그 뒤의 파괴적 실재 그 자체와의 대면이 아닐지. 그는 완벽한 자유를 부정하면서  그것과 대면하면서 이렇게 목놓아 외쳤던 겁니다. ‘저것은 파시즘이다!’

마르크스가 이미 탁월하게 증명했듯이 화폐의 가치는 물화의 영역에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주체에게 가장 두려운 대면은 화페의 무가치성 그 자체입니다. 그런 은폐된 영역과의 충돌은 모든 상징적 조건을 파괴하는 카오스 그 자체지요.

지젝의 논의는 이렇습니다. 주체는 궁극적으로 이런 파괴적, 실재라는 無의 영역을 빗겨가기 위해서 온갖짓을 꾸며낸다는 겁니다. 냉소적 주체들은 이미  ‘까지말아’라는 권력에 대해서 냉소를 보내고 있지만, 그 잠정적 내용속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의 실재적 차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려 하나의 벌충으로 권위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지요. 인터넷의 우익화는 어떻습니까. 또는 가까이에는 일본의 우익화는.. 민주주의 사회라는 하나의 가치가 생기면서 더이상 우익들을 옹호할 이유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그렇게 하지요. 탈근대 이론들의 곤긍은 그것들은 적절하게 설명할 이론적 개념이 없다는 겁니다.

‘너는 섹스를 즐겨야 한다. 너에게는 이제 더이상 섹스를 하지 않을 변명거리는 없다. 그럼에도 섹스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의 결함이다!’

비아그라가 대중화되는 시대에 성의 차원은 즐겨라!라는 초자아의 명령에 가깝습니다. 이제 더이상 섹스는 억압된 것의 회귀로 읽히기보다 억압의 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는 세계가 된것이지요(무엇이든 안되겠습니까. 환락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이처럼 냉소주의의 사회, 새로운 사회는 무너진 권위를 벌충하기 위해 어떤 것이라도 집어먹고 있습니다. 진중권씨가 보편주의를 집어 먹었듯이. 그러므로 냉소와 믿음이 같은 무게로 주체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 도래하게 되었다는 지젝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임금님은 벌어 벗었다

지젝은 이데올로기를 가로지를 수 있는 방법은 앎의 영역이 아니라, ‘행위’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똘레랑스같은 것들도 거부하지요.

이미 우리 교육에서 많은 부분 타자에 대한 관용정신을 강조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비례하게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는 타자를 더욱 억압하는 세상과 맞닿아 있지요. 학교라는 공간도 저는 오히려 군부독재시절이 더더욱 인간 냄새나는 교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아이러니.. 물론 지젝에게도 앎의 영역은 중요하지만, 이데올로기를 돌파하는 것은 앎이 아닌 ‘행위’에 있다는 겁니다. 이타적 윤리보다는 실재의 윤리. 횡단하는 윤리. 모두가 왕따를 했을때 꿋꿋이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행위’.

계몽주의적인 진중권씨는 이 지점에서 요점을 그저 놓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디 워가 쓰레기인걸 모르고 있는게 아닙니다. 그들은 알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 ‘행위’하지요.  ‘벌거 벗은 임금님’이라는 우화에서의 어른들처럼..

‘행위’의 차원에서 진중권씨의 ‘행위’는 분명 하나의 분열 지점을 열어놓고, 주체의 환상을 횡단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봉합지점에서 그는 또 다른 보수적인 ‘행위’를 했지요. 디 워에 대해서 보편주의같은, 똘레랑스같은 것들에 대해서 그 자신도 논리적인 모순들을 발견하고 있으리라 봅니다.

실재를 견디기

라캉은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횡단하기 위해서 실재를 명중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실재는 텅비어있다는 것. 그 비밀을 감추기위해 상징계는 여러 장치와 트랩을 설치하지요. 그러므로 라캉은 실재의 명중 과정을 탐정의 사건 해결 과정과 유사하다고 주장합니다. 탐정은 남들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어떤 것을 의문에 부치며 진실에 다가가지요. 범인들이 만든 트랩을 넘어서면서..

데카르트의 광기, 새로운 주체의 출현 혹은 혁명은 이런 광기의 영역을 반드시 넘어야한다는게 지젝의 주장일겁니다. 데카르트가 해야했던 모든 것의 철회는 절대적 부정성의 영역으로 실재를 맨 몸으로 겪어야 했던 충돌의 영역, 세계가 무너져내리는 세계의 밤..

이런 혼란한 시대에 지젝이 호출하는 주체는 안티고네일 겁니다. 그녀의 고집스럽고 영웅적인 몸짓은 그 자체로 상징계의 분열을 알리는 몸짓이 됩니다. 그녀는 오빠의 장례를 방해하는 왕의 상징적 명령에 의해서 법의 부당함을, 그것의 부정성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죽임을 당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오빠의 장례를 치루게 되지요. 법의 부정성을 겪고 그것을 넘어섰던 안티고네..

디시인사이드나 웃대같은 가벼운 냉소들이 흘러넘치는 곳에서 진정한 혁명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진정한 혁명은 상징계가 덧칠해 놓은 그 페인트를 벗겨내는 ‘행위’에서 시작 된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해 보입니다.

그 모든 상징적 장치를 의문에 부치면서 그것을 가로지를 수 있는 ‘행위’말로 지젝이 속한 슬로베니아 학파의 실재의 윤리가 아닐까요. 설사 그 ‘행위’가 파멸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해도. 인터넷 냉소주의는 그 덧칠을 알면서도 스스로 자발적으로 그것에 갇히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벗겨내자는 주장들에 냉소를 보내면서.. 그러므로 진중권씨의 ‘행위’는 어쩌면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중권씨는 그것들을 벗겨내자는 디오게네스가 했던 ‘행위’를 하고 있지요. 최초의 ‘행위’로서 진중권은 옮았다. 그렇지만 그의 정치적 비평과 포지션, 그것은 처분 되어야할 쓰레기다!

‘디워’, 거대한 소란의 속살
강준만, 김규항, 김정란 비판 그리고 ‘군중과 다중’

 

이 글은 <문예중앙> 가을호에 ‘군중이냐, 다중이냐’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으로 해당 출판사와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전재합니다. <편집자 주>

 

                                                               * * *

 

영화 한 편으로 벌어진 거대한 소란. 얘기할 가치도 없는 해프닝. 그럼에도 그것에 대해 논해야 한다면, 그것은 이와 비슷한 일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이쯤에서 그 영화의 옹호자들이 쏟아놓은 주장들을 점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학적으로 논할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다. 옹호론은 대부분 궤변에 불과하다. 그 궤변들에도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 가치는 임상학적 성격의 것이리라. 즉 그 궤변들은 한국 사회가 앓는 정신질환의 실체를 보게 해준다.

보르헤스가 말했던가? 케네디의 머리를 관통한 총탄은 링컨의 가슴을 관통한 총알이었고, 그 이전에는 예수를 십자가에 달았던 못이었고, 시저의 가슴을 꿰뚫은 브루투스의 칼이었고, 소크라테스가 들이마신 독배였고, 아벨에게 던진 카인의 돌이었다고.

 

동일자의 영겁회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며 계속 반복되는 어떤 원형 같은 게 있는 듯하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이 이미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주는 건 그 때문일 게다.

칼 마르크스도 어디선가 역사의 ‘반복’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모든 역사적 사건은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반복된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문자문화의 합리성으로 뒷받침되지 못한 영상문화의 공습이 언젠가 다른 곳에서 이미 벌어졌던 것과 너무나 비슷한 별자리를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 한국의 인터넷 문화에서 점점 뚜렷해지는 이 현상은 과거에 이미 있었던 일의 반복, 하지만 ‘희극’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우울한 패러디다.

대중의 환상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대결하겠다던 이 영화를, 이제는 그 열광자들마저 “방학 특선 어린이용” “B급 괴수영화”라 부른다. 전 세계에서 8조를 벌어들이고, 중소기업 4만 5천 개를 먹여 살리겠다는 경제적 야심,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를 따라잡겠다던 예술적 야심은 상식을 가진 사람의 귀에는 허황하게 들린다.

 

 

   
 
 

 

그런데 누가 들어도 이 허황한 얘기가 졸지에 대중의 열망이 되고, 또 대중의 확신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제작비가 모두 2000억이 들었다’, ‘100% 미국 투자로 만들어질 것이다’,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와 계약을 했다’, ‘유수한 외신과 회견을 할 것이다’ 등등. 학력에 관한 언급은 접어두고라도, 심형래 감독이 제 영화에 대해 늘어놓은 거짓말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대중은 그를 변함없이 신뢰한다. 바이트 할란 감독의 말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무언가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말한 자가 ‘그’였기 때문에 그것은 진실이 되었다.”

자신이 겪은 좌절을 심감독에 투사하는 대중을 따뜻하게 이해하자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고 보니 대중의 마음을 이해해주었던 한 사내의 말이 떠오른다. “대중은 환상을 필요로 한다. 그들에게는 극장과 영화관 밖의 환상이 필요하다. 인생의 고통에 대해 그들은 겪을 만큼 겪었다.”

 

이 다감한 사내가 대중과 더불어 썼던 민족의 서사시는, 베를린의 벙커에서 애인과 함께 자살을 하는 극적 장면으로 끝났다. ‘그’가 말했기에 거짓도 진실이 되었다던, 그 사내의 얘기다.

 

영화와 전쟁

할리우드에 대한 열등의식도 이미 오래 전에도 있었다. 연합군 함대로부터 노획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고나서, 괴벨스는 독일 영화의 뒤떨어지는 색채효과에 치욕을 느꼈다. 덕분에 Agfa 컬러 기법이 획기적으로 향상되긴 했다.

 

패망의 그 순간까지도 괴벨스는 “그 화려함에서 미국의 호화판 초대작을 능가하는 서사시”를 꿈꾸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 제6사단이 궤멸당한 상황에서도 히틀러는 전선의 병력을 빼내어 영화 촬영에 동원하려 했다.

영국군의 기습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영화 촬영에 전함과 항공기, 공수부대를 동원하려던 이 계획은 “영화를 위해 죽는 것보다는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병사들의 반발로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콜베르크>(1945)라는 영화의 제작을 위해 히틀러는 장비부족으로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말 6만 마리와 20만 명의 사람을 촬영에 동원한다. 1945년 영화가 드디어 개봉 준비를 마쳤을 때, 폭격을 맞은 베를린에는 더 이상 상영관이 존재하지 않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전략이 한국영화의 일반적 전략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을, 대중은 “사대주의자”라 부른다. 한국 영화의 도약을 방해하는 “매국노”라고 부르기도 한다. 100억의 자본 규모를 갖고 있어 300~700억짜리 영화를 찍는 데에 부담을 느끼는 충무로의 일상에 대중은 환멸을 느낀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 정복의 환상이다. <위대한 승리>를 찍은 레니 리펜슈탈의 말이다. “갑자기 평범한 일상을 끔찍하게 느끼면서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난 유혹에 매혹되는 인민들…”

대중의 반란

“이건 전쟁이다. 처음은 몇몇 평론가와 네티즌 사이의 작은 설전으로 시작되었다. (…) 언론이라는 이름의 표지를 건 군수업자들이 이송희일, 김조광수씨의 숨어있는 개인 블로그를 귀신같이 찾아내어 광장에 모여든 군중들 앞에 전시하고 외쳐댔던 것이다.

 

‘보라! 여기 너희들이 타격해야 할 적이 있다’고. (…) 이제 전쟁은 충무로와 일부 언론 대 전체 대중들 사이의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김동렬, <디워 전쟁이 시작되었다. 충무로를 타격하라> 데일리서프라이즈 08/07/2007)

대중은 급기야 <디 워>를 “충무로와 전체 대중들 사이의 전쟁”으로 만들어 버렸다. 평론가는 권위주의에 찌든 권력자로 폭로되고, 대중은 권력의 특권을 철폐하는 디지털의 전사로 상찬된다. 이 반지성주의 슬로건도 새로운 게 아니다.

 

“1789년 이래로 혁명은 본질적으로 지식인의 작품이었다. 지식인은 국가의 단합에 반대하는 썩어빠진 목적으로 갖고 있기 마련이다. 반면 영웅적인, 전민족적인 나치혁명은 그것의 결정적인 국면마다 지식인의 지배력에 대항하여 이루어졌다.”

재미있는 것은 이 거대한 해프닝이 감독의 말 한 마디에서 비롯됐다는 사실. 도대체 충무로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 감독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충무로’라는 게 대체 실체가 있는 집단일까? 하지만 그가 손가락으로 충무로를 가리키자, 한국 영화계 전체가 그 이름에 묶인 채 타격해야 할 공공의 적이 되었다.

 

자신의 실패를 변명하는 개인의 이데올로기가 곧 대중의 세계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의 표상이 곧 너희의 세계다.” 벙커에서 자살한 망상증 환자의 말이다.

영웅담의 시대

33조를 벌어다 주겠다던 황우석의 약속. 8조를 벌어다 주겠다던 심형래의 약속. 언젠가 심감독은 황박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선진국의 국민들은 영웅이 나오면 격려와 함께 제도적으로 밀어주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영웅이 나오려 하면 비난하거나 짓밟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대중도 다르지 않아, 인터넷 여기저기에 “개비씨(MBC)의 심형래 죽이기는 황우석 죽이기의 복제판“이라는 주장이 떠돈다. 청동기의 영웅시대로 몰입하는 것이 게임 세대의 일상. 대중은 영웅과 더불어 신화를 쓰려 한다.

33조나 8조라는 약속은 결코 ‘현실적인’ 액수가 아니다. 어떻게 이 허황한 액수가 대중의 확신이 되었을까?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과장법을 남발하는 이를 외려 불신할 것이다. 하지만 대중이 원하는 것은 구차한 ‘현실’이 아니라 화려한 ‘환상’.

 

약속은 작을수록 현실적으로 되나, 환상은 크게 부풀릴수록 더 현실적으로 된다. 히틀러의 말대로 “대중은 큰 거짓말일수록 더 쉽게 속기 마련”이다. 대중은 믿고 싶어 한다. 거짓말이 클수록 믿고 싶은 마음도 더 커진다.

영웅이 위대해질수록 대중은 왜소해진다. 대중은 위대해지는 유일한 길은 자신을 영웅과 동일시하는 것. 그리하여 대중은 그의 성공을 나의 성공처럼 기뻐하고, 그의 좌절을 나의 좌절로 슬퍼하며, ‘그’에 대한 찬양을 ‘나’에 대한 칭찬으로 여기고, ‘그’에 대한 비판을 ‘나’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어느 심감독 지지자가 나를 비난한다. “저 잘난 맛에 사는 놈.” 남 잘난 맛에 사는 이들에게 저 잘난 맛에 사는 것은 치욕인가 보다. 대중의 자기소외. 이 역시 1930년대의 패러디다.

대지와 혈통의 신화

<디워>를 둘러싼 벌어진 해프닝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점점 더 뚜렷해지는 어떤 일반적 경향의 한 예로 봐야 한다. 황우석 사건 때에도 대중은 이번과 거의 똑같은 패턴으로 반응했다.

 

앞으로 또 다른 몽상가가 또 다른 ‘기술’로 세계를 정복하겠노라고 ‘자극’을 주면, 대중은 아마 지금과 똑같은 열역학적 에너지를 가지고 뜨겁게 ‘반응’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워>는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보편적 정신질환의 특수한 예에 불과하다.

얼마 전 유엔에서 한국 순혈주의의 인종차별적 측면을 지적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방송 토론에 참여했을 때의 일. 패널로 나온 교수가 한반도에서 출토된 구석기인과 현대 한국인의 두개골의 유사성을 지적하며, 이를 ‘민족적 정체성’의 근거로 제시한다.

 

한민족이 구석기시대 이래로 한반도의 터전을 지켜왔다는 얘기다. 이는 물론 과학이 아니라 신화에 속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30년대에 나치들도 아리아인종의 순수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골상학을 동원했었다.

토론 후에 시청자 게시판에 들어가니, 애국애족의 목소리가 아우성을 친다. “솔직히 히틀러 총통께서 인종청소를 안 해주셨으면 지금 유럽 열등 유태인들로 인해 온갖 악의 소굴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위대한 히틀러 총통의 정기와 근성을 지닌 위대한 독재자가 출현하여야 한다.”“단군 왕검이시여, 우리를 굽어 살펴 주소서. 민족주의 만세! 순혈주의 만세!!! 국제화 운운하는 민족의 반역자들은 동남아 열등 인종들과 함께 대량 멸절시켜야 한다. 배달민족 만세다.”

삼족오와 하켄크로이츠

 

작년에 있었던 ‘삼족오 소년소녀단’ 사건. 고구려의 얼을 되살리겠다고 만든 이 스카우트의 복장이 공교롭게도 히틀러 유겐트의 유니폼과 너무나 흡사했다. 논란이 일자, 주최 측에서는 ‘왜 자신들을 나치와 비교하느냐’고 항변했다.

 

 

   
 
 

 

그들이 모르는 것은, ‘나치’라 불리는 사람들이 실은 별종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 역시 일상에서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저 자신의 애국심을 유니폼으로 표현하는 독특한 취향이 있다는 게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까?

이것이야말로 이데올로기의 세례 없이 오로지 심정만으로 성립한 프로토파시즘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스카우트를 조직하게 된 계기. 그 단체의 홈페이지는 “KBS, MBC, SBS.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로 방문객을 맞는다.

 

한 마디로, 방송 3사가 방영한 고구려 관련 드라마를 본 감동에서 소년소녀단을 조직하게 됐다는 얘기다. 드라마는 ‘역사’가 아니라 ‘허구’다. 허구가 허구로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되려 할 때, 문자로 쓰는 역사는 종언을 고하고, 영상으로 그리는 신화가 부활한다.

문자문화가 저물어 가면서 그것의 역사적 성취였던 합리적, 이성적, 비판적 사유도 사라져 간다. 문자문화의 성취를 채 흡수하지 못한 영상문화는 영웅적 민족서사시를 쓰며 문자문화 이전의 신화적 사유를 강화한다.

 

과거 한국사회에서 우익은 국가주의, 좌익은 민족주의로 쪼개어져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진보와 보수의 구별을 모르는 새 세대의 의식 속에서 국가와 민족은 더 이상 갈등하지 않는다. 둘은 만나서 하나가 된다. 그 화합의 절망적 징후를 인터넷의 도처에서 어렵지 않게 본다.

군중이냐 다중이냐

대중을 능동적 주체로 만든 것은 미디어의 기술이 가져다 준 역사적 성취다. 모든 테크놀로지가 그렇듯이, 미디어 기술 속에서도 해방의 잠재성은 억압의 위험성과 한 몸으로 붙어 있다.

 

대중이 문화적 발언의 주체로 나서는 것 자체는 진보적이나, 대중이 그 힘을 소수의 견해를 억압하는 데에 사용하는 것은 반동적이다. 황우석 사태는 사이버 공간에서 대중독재의 순수한 형태를 보여주었다. 방송사 하나를 날릴 뻔했던 그 가공할 파괴력에 비하면, 심형래 사태(?)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대중은 엘리아스 카네티가 말한 ‘군중’이 될 수도 있고, 네그리가 말하는 ‘다중’이 될 수도 있다. 역사적 텔로스를 상실한 대중은 더 이상 민중이 될 수 없기에, 이제 파시스트적 군중이나 자율주의적 다중이 되어야 한다.

 

자율적 개인으로 흩어져 지성의 연대를 구축할 때, 대중은 다중이 된다. 하지만 네트워크를 통해 감정의 에너지를 모아 폭력적으로 분출할 기회를 찾아 배회할 때, 대중은 군중이 된다. 이번 사태에서 대중이 보여준 양태는 과연 어디에 가까울까?

기사를 상품으로 팔아야 하는 몇몇 매체는 파시스트 군중의 행태를 외려 ‘대중지성’으로 축성하기에 바빴다. 놀라운 것은 이 군중의 폭력에 이른바 제법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들까지 편승했다는 사실.

 

대중이 다중이 되기 위해서는 문자문화의 성취인 합리성이 필요하나, 그들은 그 폭력적 사태를 버젓이 지켜보고도 군중과 지식인 사이에 그 허구적으로 설정된 전쟁에서 기꺼이 군중의 편을 들었다. 이론적 미련함의 소치일까? 아니면 정치적 영리함의 결과일까?

지성계의 영구들

시인 김정란은 <디워>에 대한 열광이 애국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디워>를 “용녀의 귀환과 모성성의 재발견”으로 읽는다. 이 페미니스트 수사학, 그 지지자들까지 “아동용 B급 괴수영화”라 부르는 영화에 붙이기에는 너무 거창하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 해석하자면, 거대한 뱀은 프로이트를 따라 남근의 상징으로, 또 이 뱀은 사라라는 여성을 삼켜야 용으로서 승천할 수 있으므로, <디워>야말로 남성성의 완성을 위해 여성을 희생시키는 울트라 마초 영화라 해야 할 게다.

강준만 교수 역시 대중의 분노에 슬쩍 편승해 <디워>에 대한 열광을 느닷없이 ‘캠프’로 읽는다. ‘캠프’가 뭔지 알고 하는 얘길까? ‘캠프’라는 말로써 나는 동성애자의 문화, 여자로 분장한 뒤샹의 사진, 피에르와 질의 과장된 키치, B급 취향을 예술로 끌어들인 앤디워홀 등등을 연상하나, 그는 그 말로써 다른 것을 의미하는 모양이다.

 

‘캠프’라는 개념 자체가 아무리 모호해도, 이송희일과 김조광수 감독을 “호모”라고 부르는 군중의 취향을 ‘캠프’라 부르는 것은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영구스럽다.

칼럼니스트 김규항은 ‘B급 좌파’라서 그런지 ‘B급 괴수영화’에서 연대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지식인의 교만을 탓하며 “대중의 취향을 존중하라”고 설교한다. 하지만 이 해프닝은 평론가가 대중의 취향을 무시함으로써가 아니라, 외려 대중이 평론가의 취향을 무시함으로써 발생했다.

 

‘무시’만 한 게 아니라 아예 온갖 욕설과 폭언을 동원해 집단으로 ‘공격’까지 했다. 그는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켜 놓는다. 왜 그는 힘들게 물구나무를 서서 글을 쓰는 걸까?

기생충으로서 비평가

예술의 최종 목적은 대중의 취향을 섬세하게 하는 데에 있다. 창작을 향해 피드백을 하면서 평론가는 동시에 수용을 향해 작품과 대중을 매개한다. 100년 전에 대중의 비난을 받던 현대예술을 오늘날 우리가 즐기게 된 것도 비평가들 덕이다.

 

대중은 한국의 평론가들이 쓰는 글이 어렵다고 불평하나, 외국 평론가들이 쓰는 글은 더 어렵다. 도대체 평론가들의 글이 어려우며, 그들의 평가가 자기와 다르다는 게 평론에 전쟁을 선포할 이유가 된단 말인가? 이 전쟁을 축성하는 B급 좌파의 글을 보자.

“평론가란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에 기생하는 사람’이다. 영화평론가란 대개 영화감독에의 꿈을 접은 사람들에게서, 음악평론가란 작곡이나 연주자의 꿈을 접은 사람들에게서, 문학평론가란 작가의 꿈을 접은 사람들에게서 출발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평론가란 대개 애초 생산을 꿈꾸었으되 재능의 부족이나 의지의 박약, 혹은 지나치게 운이 없어(본인의 주장이 그렇다는 얘기) 꿈을 접었으나, 아예 그 바닥을 떠나려니 너무나 서럽고 딱히 갈 데도 없어 ‘남의 생산에 평론이나 일삼으며 사는 사람‘이다.”

괴테와 쉴러를 낳은 빙켈만, 추상표현주의의 아버지 그린버그, 미디어 이론의 선구 벤야민이 어디 ‘생산에 기생하는 사람’이었던가? 평론은 생산이 아니란 말인가? 그의 말대로 평론가들이 ‘생산에 기생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평론가를 비난하는 글을 쓰는 김규항은 ‘생산에 기생하는 사람에 기생하는 사람’일 게다.

 

그는 예술과 학문이 제 이해력의 안쪽에 머물기를 원하는 듯하다. 한국의 예술과 인문학이 무지한 개인의 이해력 너머로 발전 좀 하면 안 되는가?

대중의 지성?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이 이 지경이니 대중은 말할 것도 없다.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자칭 ‘문화평론가’의 말은 대중이 전문가에 대드는 수준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미학이론이 복잡한 수식이 있는 물리학도 아니고 의사처럼 특별한 수련을 필요로 하지 않는 학문이라서 일반인들도 쉽게 경쟁자로 나설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하다못해 주먹질에도 전술이 있고 훈련이 있다. 일반인이 복서 앞에 “쉽게 경쟁자로” 나서면, 맞는다. 그리고 맞으면 아프다.

강준만을 추종하는 또 다른 ‘문화평론가’는 제 스승에게 배운 스킬을 활용해 내게 “미학을 제대로 공부했는지 의심스럽다”고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어떤 분인지 궁금해 검색해보니, 미학분야에 저서가 하나도 없다.

 

그는 또 내게 “대중문화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고 인신공격을 한다. 그가 자랑하는 “대중문화에 대한 지식”이 뭔지 찾아보니, 대충 이런 것이다. ‘에로 배우 유리, 제2의 진도희가 될 것인가.’ <디워>에 대해 한 마디 하기 위해 젖소 부인의 가슴 사이즈를 알아야 하는가?

방송 인터뷰에서까지 이런 대중의 헛소리에 대한 나의 견해를 요구한다. 이를 반박하려면, 역으로 인신공격을 퍼붓거나 내 입으로 자기자랑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냥 웃고 넘어가지요”라고 했더니, 또 ‘왜 대답을 회피하느냐’고 아우성들이다.

 

굳이 이런 물음에 대답하려면, 제3자의 평가를 들이대야 하는데, 굳이 방송에서 자칭 대중문화 전문가가 쓴 책의 판매지수가 22이고, “대중문화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자의 것은 지수가 11788이라고 너절하게 늘어놔야겠는가?

정치적 욕망들

이게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꼴이다. 그 와중에도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으려는 이들도 있다. 조선일보는 진중권에 대한 네티즌의 분노가 정권을 잡고서도 일자리 하나 못 만든 386세대에 대한 포스트 386의 반란이라고 주장하며, 12월 19일 날 이 싸움의 결판을 내자고 선동을 한다.

 

이 황당무계한 주장의 근거를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은 엉뚱하게 소설가 김영하와 사석에서 나눈 얘기에서 끌어온다. 그래서 소설가는 수준 낮은 기자와는 술을 안 먹는 게 좋다.

강준만의 추종자는 <디워>를 위해 경쟁작을 공격한다. <화려한 휴가>가 열린우리당의 정권재창출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황당한 주장은 호남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민주당의 시각이자, <조선일보>의 필자에게 따르는 의무의 충실한 수행이자, 세간의 관심을 모으는 사건에 편승해 이용해 자기가 만든 매체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다목적 포석이다. 안티조선에서 프로조선으로 변신한 꺼삐딴 변은, 귀순용사는 환영대회 끝난 뒤엔 용도폐기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정란이 스스로 망가지는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이뤄야 할 어떤 정치적 대의 때문일 게다. 그의 글을 실어준 <데일리 서프라이즈>는 대표적인 친노 매체. 황우석 사태 때에도 그들은 대중의 분노를 표로 연결시키려 그 열기에 편승한 바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지지자들과 달리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은 <디워>와 보조를 맞추되, 이를 <화려한 휴가>와 대립시키지 않는다. “<화려한 휴가>의 관객이 500만이 넘으면 대선에 승산이 있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김규항의 것은 민중주의적 버전이다. 그는 ‘포스트모던’ 먹물의 어려운 언어에 울분을 터뜨린다. 한국 지식인들의 행태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이론적으로 비판할 일이지, 대중의 분노를 선동할 문제는 아니다.

 

모든 학문은 분석을 위해 B급 좌파의 모자라는 교양수준을 넘어서는 특수한 언어체계를 사용한다. 가령 ’내쉬균형‘이 뭔지 모른다면, 그 사태는 그가 책을 읽음으로써 해결할 문제지, 그 낱말을 내뱉는 수학자나 경제학자를 타도할 일이 아니다. 지식인에게는 무식할 자유가 없다.

진화냐 퇴행이냐

<디워>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이를 계기로 분출된 에너지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 영상문화와 더불어 신화적 의식이 강화되고, 네트워크의 힘으로 개인들이 군중으로 뭉치고, 냉엄한 현실에서 허황한 환상으로 비약하고, 이 과대망상을 실현하기 위해 영웅을 만들어내고, 자기를 소외시켜 자신을 그 영웅과 동일시하고, 그와 더불어 민족적 신화를 창조하려 하고, 그 목표를 비웃는 자들에게 집단으로 린치를 가하는 상황.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에 대한 인지다.

 

 

   
 
 

‘대중과 지식인의 전쟁’이라는 것도 실은 공격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누군가 날조한 허구에 불과하다. 대중들 중에도 영화를 그저 영화로 보는 개념인이 있는가 하면, 지식인 중에도 영화에 온갖 해괴한 해석을 붙여대며 대중의 가장 후진적 층위에 영합하는 이들도 있다.

 

이번 사태를 한 마디로 요약하는 최고의 표현. “심형래 감독은 영화에서는 역시 감독의 연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탁월한 문학성은 인터넷에 부유하는 무명 대중의 것이다.

과개발된 인터넷과 저개발된 인문성. 인터넷 대중은 비판적 합리성을 가지고 ‘다중’으로 진화하느냐, 원시적 폭력성을 가지고 ‘군중’으로 퇴행하느냐의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아니, 대중은 이미 분화를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난독증으로 타인을 괴롭히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거대한 감정의 덩어리가 되고, 어떤 이들은 집단에서 독립한 자율적 주체로서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개인과 접속해가며 지성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간다. 중요한 것은 이런 지형을 인지하는 것. <디워>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2007년 09월 20일 (목) 11:11:29 진중권 redian@redian.org

대구 집, 아니 이제는 부모님 집이라 불러야 할 그 동네에서 흐뭇한 뉴스가 나왔다. 소규모 자동차 부품 생산 하청 업체 삼우정밀에서 노조를 결성했고, 이 노조가 이주노동자를 동일한 노조원으로 가입시키는 성취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도 아직 성서 인근 섬유회사에서 비정규 기능직으로 일을 하고 있다.(그리고 자식은 정규직을 포기하고 나와 미쳤다고 비정규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 곳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한다. (사실 대구 성서 인근에는 이주노동자들이 많다. 명절 때면 텅 빈 성서 아파트 단지를 이주노동자들이 누비는 것을 보는 건 이제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어머니 얘기로는 그 곳 한국인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들과 반목 없이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한다.
그러나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친밀함, 더 나아가 연대는 상식적인 제도가 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위계화로 인한 내부의 균열은 노동자 전체 삶의 황폐함으로 돌아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이 자신을 쪼개지 않고 단일하게 자본에 제시할 때만 비로소 자본에 대항할 힘이 생긴다.(단일자는 단일자하고만 말하고 싶어 한다.) 이건 당연한 원칙이지만 언제나 힘들다. 눈앞의 가시적인 박탈감이 당장의 투쟁을 만들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놓인 강보다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사이에 놓인 강은 더 깊고 넓다. 삼우정밀 노조는 그 강을 건넘으로써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 그들은 지혜로왔다.

뉴스 원문 : 프레시안

  “피부색은 달라도, 노조활동은 같이 합니다”
  [기고] 이주노동자에 ‘유니온샵’ 적용한 삼우정밀 노조
  2007-09-18 오후 3:34:22

  산업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다. 법과 제도에 의해서만 소외된 것이 아니다. 심지어 노동운동에서조차 소외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대구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인 삼우정밀의 경우,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유니온샵을 적용해 눈길을 끈다. (☞ 유니온샵이란?)
 
  피부색은 달라도, 노동자라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또 유니온샵은 단결권이 사실상 봉쇄돼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유니온샵 적용을 보장받는 과정에서 삼우정밀 노동자들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드러냈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지 않고, 한국인 노동자들만 임금을 올린다면, 순간은 임금이 오를지 모르지만, 회사는 더 손쉽게 사용하고 더 적은 임금을 줘도 되는 이주노동자를 이용하여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분리하고 노동자를 분할 통제하여 근본적으로 저임금 구조를 깰 수 없다. 노동조합이 노동자 권리확보를 위해서 낮은 곳의 문제를 덮어 두고, 몇몇만 더 좋은 노동조건을 갖춘다는 것은 사실상 허구”라는 것. 전체 노동운동에 큰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다음은 삼우정밀의 사례를 소개한 글이다. <편집자>
 
  삼우정밀은 전체 사원 100명이 채 못되는 규모의 자동차 부품업체입니다. 현대, 기아차에 엔진주변 부품을 생산하여 납품하는 1차 하청업체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경영 상태는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원청의 저단가 정책은 고스란히, 영세 하청업체의 저임금정책을 낳고 있는 것이지요.
 
  “같이 고생하는 처지는 마찬가지인데….”
 
  이주노동자들이 삼우정밀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2003년 무렵입니다. 당시 3공단에서 성서공단으로 이전을 하면서 기숙사를 짓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재 한국인 노동자들과 똑같이 현장 라인에 배치되어 프레스, 조립, 포장일 들을 합니다.
  

▲ 이주노동자들.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면서도,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진집단 현장

  당시에는 회사에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든, 비정규직을 고용하든 삼우정밀 노동자들이 말할 입장이 못 됐습니다. 한국인 노동자들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 특별한 이질감은 없었고, 지내면서 같이 고생하고 산다는 현장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한국인 노동자 중심으로 노조가 설립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이 함께하지 못하고, 또 회사에서 방해하면서 일순 어색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삼우정밀에는 현재 22명의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산업연수생 취업비자로 근무하고 있고, 작년 10월경에 입사한 2명 정도만 고용허가제로 입사하였습니다.
 
  이들 중 최근에 3년 근무기간이 만료된 5명 중에서 결혼 때문에 인도네시아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라완을 제외하고 4명에 대해 계약연장을 노조에서 회사에 요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들 4명은 계약연장을 한 뒤 지난 월요일에 인도네시아로 출국했고 다음 달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들은 지금쯤 미등록노동자가 돼 있었을 것입니다.
 
  금속노조 삼우정밀 지회는 작년 12월 달에 설립된 대구지부 신규지회입니다. 2006년도 47명의 조합원으로 출발하여 현재는 43명입니다. 몇 명이 퇴사했거든요.
 
  노동조합이 힘을 얻으려면, 이주노동자와 함께 해야
 
  삼우정밀은 대구지역 성서공단에 위치하고 있고, 성서공단은 100인 미만 영세사업장이 밀집한 공단지역입니다. 공단사업주들이 “노조 생기면 회사 망한다”는 반(反) 노조의식을 광범위하게 유포시키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을 지키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12월 달 노조를 설립하고 회사의 금형반출, 노조불인정 등 많은 악조건을 뚫고 2006년 12월부터 2007년 7월까지 장장 8개월간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교섭과 투쟁을 진행했습니다.
 
  노동조합 인정, 단체협약 체결(조합활동 보장,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40시간제, 고용안정 및 후생복지, 노동안전 등), 임금인상, 금속노조 중앙협약 및 지부 집단교섭 결과 수용 등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이주노동자 관련해서는 ‘유니온샵’ 인정과 단체협약 동일적용, 임금인상 동일적용이 핵심 요구였습니다.
 
  특히 유니온샵 인정은 단체교섭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요구였고, 지난한 투쟁을 통해 이주노동자를 포함하는 유니온샵을 따내고, 단체협약 동일적용 및 임금인상 동일적용을 쟁취했습니다. 상여금 인상에서는 단계적 인상으로 최종 노ㆍ사 합의를 도출하게 되었습니다.
 
  삼우정밀 현장근무 노동자는 약 80여 명입니다. 이중에서 이주노동자가 20여 명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단체교섭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라고 요구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계기가 있습니다.
 
  우선 지회를 설립하고 노동조합이 현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와 함께해야 한다는 요구가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게 된 첫 번째 동기입니다.
 
  “노조와 함께하면 출국한다”는 협박
 
  우리가 밤마다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기 시작하자 회사 관리부장은 이주노동자들을 협박했습니다.
 
  또한 “노조와 함께하면 출국 조치한다”는 송출업체의 한마디는 이주노동자들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노조는 이주노동자와의 만남을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노동조합은 이주노동자 조직화가 한국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제도적인 문제와 회사 및 송출업체의 횡포에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대항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이해하게 되었고, 단체협약 요구사항의 하나로 이주노동자까지 포함하는 유니온샵을 통해서 조직하는 것으로 확고한 방침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삼우정밀의 근무하는 모든 노동자들은 저임금의 구조에 놓여있고 저임금을 고착화하는 수단으로 회사는 이주노동자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삼우정밀에서 일하는 한국인 현장 노동자라 할지라도 조합원의 3분의 2는 법정최저임금에 묶여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법정 최저임금외에 상여금은 한 푼도 주지 않고 연차 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는 등의 불이익까지 주었습니다.
 
  “한국인 노동자 임금만 올려서는 저임금 구조 깰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지 않고, 한국인 노동자들만 임금을 올린다면, 순간은 임금이 오를지 모르지만, 회사는 더 손쉽게 사용하고 더 적은 임금을 줘도 되는 이주노동자를 이용하여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분리하고 노동자를 분할 통제하여 근본적으로 저임금 구조를 깰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노동조합이 노동자 권리확보를 위해서 낮은 곳의 문제를 덮어 두고, 몇몇만 더 좋은 노동조건을 갖춘다는 것은 사실상 허구”라는 입장정리를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당연하게 핵심요구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삼우정밀에서 단체교섭을 약 8개월간 진행하면서 최대 핵심이 유니온 샵이었다는 것은 사 측이 그만큼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같이 한다는 것에 강력히 저항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주노동자를 ‘저임금 고착화’ 수단으로 쓰는 회사, ‘유니온샵’은 끝내 반대
 
  우리는 교섭막판까지 유니온샵은 인정하는데 조합비 일괄공제는 할 수 없다고 했지요. 회사는 “유니온샵을 하더라도 이주노동자들이 노조에 참여하지 않으면 노조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9월 달에 조합비 일괄공제 서명을 해서 회사에 제출 했습니다. (참고로, 이주노동자들이 이국땅에서 뭔가에 서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하나가 있습니다. 단체교섭 막바지에서 이주노동자 문제가 끝까지 쟁점이 되자. 회사는 “동등대우는 명문화하고 유니온샵은 안 된다”라고 했지만, 노동조합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면 결국은 전부를 잃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마지막까지 사측과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인식하에 추진한 이번의 단협체결 노력은 기존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반성의 산물입니다. 또한 이것을 가능하게 한 주요한 요인은 바로 공동의 노력과 행동이기도 합니다.
 
  삼우정밀, 성서노조 이주사업부, 금속노조 대구지부, 삼우정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삼우정밀 이주노동자 대책회의’를 구성하고 매주 금요일 저녁 10시에 모여서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활동을 전개 했습니다.
 
  인도네시아 글로 대자보 붙이고, 함께 팔 흔들며 격려하고…
 
  한국인 조합원들에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한국에서의 현실에 대한 교육사업을 추진하고 한편으로 교섭상황을 이주노동자들과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기숙사에 간단한 인도네시아 글로 대자보 붙이기, 투쟁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 전체와 간담회를 진행하는 사업들을 펼쳤습니다.
 
  특히 대책회의에서는 성서노조 이주사업부 인도네시아 활동가인 ‘페리’동지 덕분에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대책회의에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 일상 활동에서는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간에 인사하기 등 현장 분위기에서부터 투쟁과정에 이르기 까지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원칙을 세우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삼우정밀 지회에서 교섭이 난항을 겪고, 삼우지회 한국인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고 현장을 순회할 때는 이주노동자들이 파업대오에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 작업장에서 함께 팔을 흔들면서 마음만은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한국인 파업대오에 힘을 불어 넣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끝으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삼우정밀 지회 조합원들이 교육과 조합원 총회를 통하여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할 때만이 노동조합을 지키고, 삼우노동자의 권리를 확보 할 수 있다는 확고한 인식을 가졌고, 총회를 통해 그 결의를 흔들림 없게 하였습니다.
 
  삼우정밀 조합원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한 아줌마 조합원은 대구지부 노보에 이렇게 글을 적었습니다. “내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입니다. 노동자의 눈을 갖고 노동자로 다시 태어 난 것을 오히려 감격해 합니다.
 
  ‘유니온샵’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
 
  삼우정밀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법적으로는 조합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기업 내에서 산업연수생 신분이거나,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의 단결권은 사실상 구조적으로 봉쇄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우정밀에서의 유니온샵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유일한 출구입니다.
 
  아무리 유니온샵을 하더라고 노동조합은 자주적인 조직임을 확인하고, 자발적으로 노동조합에 참가할 때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 질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삼우정밀 이주노동자들은 빠르게 주체적으로 노동조합의 주인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입국하는 노동자들도 조합원이 되냐고요? 당연합니다. 한국인, 이주노동자 할 것 없이 새로 입사하는 노동자는 조합원이 되는 것이니까요.
 
  “삼우메탈 유니온 짱!”
 
  삼우정밀 이주노동자들은 이제 금속노조 조합원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다른 이주노동자 친구들에 얘기 합니다. 자부심이 상당합니다. 현장에서 이제는 눈치 안보고 일해, 임금도 같이 올라, 노동조합도 같이해, 앞으로 스트라이크도 같이 할 거라고 얘기 합니다. 그들은 “삼우메탈 유니온 짱!” 이렇게 말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최근에는 3년 근로계약이 끝나고, 회사가 계약연장을 거부하는 것을 노동조합에서 회사와 교섭을 하여 계약연장을 관철하였습니다. 이번에 인도네시아로 돌아갔다 오는 4명의 인도네시아 친구들은 조합간부들과 감포 바닷가에도 같이 갔다 오고, 삼우정밀조합원과 식당에서 환송식도 같이 했습니다.
 
  사진 찍고, 비디오에 다 담아서 인도네시아로 갔다가 한 달 후에 다시 돌아 올 겁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식구들과 친지들에 보여 주고 한국에서의 얘기를 하겠지요, 그들의 얘기들이 기다려집니다.
 
  통역 확보, 고용허가제 개정…. 민주노총의 지원이 절실하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현장 작업에서의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이라면 일상적 소통에서 대화가 어렵다는 것이고요. 또한 노동조합 활동에서는 금속노조, 민주노총 차원에서 지원책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 커다란 어려움입니다.
 
  단체협약을 체결해도 인도네이사아어로 번역이 되어야 하는 문제, 이후 조합원 총회나, 교육을 일상적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통역의 문제 등 앞으로 해결해야 될 과제가 많습니다. 그리고, 현행 고용허가제가 매년 계약을 갱신하도록 하고 있어 이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당장은 이주노동자 조합원 교육을 첫 번째로 진행해야 할 것이고, 한국인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삼우정밀 최초의 조합원 총회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임단투 시기 같이 배웠던 노동가요 ‘노동자는 하나다’를 힘차게 같이 부를 것입니다. 또한 삼우정밀 이주노동자 대의원을 선출해서 노동조합 일상 활동과 의사결정에 함께 참여 하도록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가 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하나로 단결하고 함께 연대 활동을 펼치는 과정으로 더 큰 노동자의 하나됨을 위해서 전진하는데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김형계/금속노조 대구지부 수석 부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