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내 이신애는 자신의 불가해하기까지 한 고통에 대한 신의 보이지 않는 응답을 바라는 듯했다.
이신애는 제도적 교회가 용인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 경계를 잔혹하게 오고갔다.
전도연은 정말 경계 끝까지 가려는 것 같았다.
가슴이 턱 막혀 쥐어짜는 울음소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녀는 어린 양과 목자, 그리고 악마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물론 이 중에서도 갈대밭 가운데 유부남 아래 누워서 하늘을 향해 ‘잘 지켜보고 있어?’라고 나즈막히 읆조리는, 상하가 뒤집혀 기괴하기까지 한 악마같은 얼굴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 독을 품은 사악한 질문은 고통받는 인간이 구원이라는 동일한 질문에 대해 얻은 다른 한 측면의 대답 같은 것이다.
그리고 끝내 이신애는 구원받지 못했다.
비밀스런 햇볕은 이신애의 실질적 고통을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 햇볕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지 텅 비어있는 응시, 2시간 20분 동안 완전히 지쳐버린 이신애가 앞마당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동안 뒷켠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조차 미동도 않고 있는 바로 그 말없는 응답뿐이다.
‘잘 지켜보고 있어?’라고 다시한번 묻는 것일 수도 있고 ‘여전히 너는 말이 없구나’라고 확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신애는 거울을 들고 앞마당으로 나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려 하는데 쫓아온 노총각 김사장은 그 거울을 들고 이신애를 비춰주며 원치 않는 친절함을 보이고, 이신애는 말없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른다.
그리고 카메라는 컷을 하지 않고 뒷켠으로 물러나 말없는 햇볕만 비춘다.
이 시선의 이동을 컷으로 나누는 것을 생각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신애가 머리 자르는 숏과 아무것도 아닌 햇볕 숏을 커팅해 병치해 버리면 이신애의 지금까지의 고통은 갑자기 의미없는 햇볕의 완전한 객관적 응시로 대체돼 버린다.
반대로 커팅을 하지 않고 두 숏을 한 숏으로 만들면 햇볕의 응시가 이신애의 주관적 고통의 세계로 빨려들어간다.
그래서 주체가 일종의 신과 같은 대타자에게 던지는 원망과 질문 같은 것을 이 마지막 숏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밀양(Secret Sunshine)

密陽”에 대한 2개의 댓글

  1. 뭔가 주절주절 쓰다가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것 같아 그냥 다 지워버렸네요.
    옆에서 아무때나 웃어대던 두 여자분을 뺀다면
    저도 잘 보았던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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