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행위가 의존하는 확실성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신념의 문제다. 참된 행위는 그에 관해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어떤 투명한 상황 속의 전략적 개입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참된 행위가 지식의 틈새를 메우는 것이다.
— 지젝봇 (@zizek_bot) February 28, 2019
인용
망각은 기억하려는 욕망
<삶을 위한 철학 수업>, 이진경
<화양연화>의 마지막에 차우는 캄보디아까지 가서 앙코르와트의 벽에 난 작은 구멍에 한참을 속삭여 넣은 뒤 흙으로 구멍을 막아 버리고 굳은 얼굴로 걸어 나온다. 앙코르와트, 기나긴 시간을 머금은 채 멈추어 선 과거의 시간, 그 기억의 공간 속에 자신의 기억을 비밀히 묻어 둔다. 그러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아니고 산에, 앙코르와트에 구멍을 파고 묻는 것은 그 기억을 자신의 손마저 닿지 않는 어떤 곳에 감추어 두려는 것일 게다. 그것은 상기의 고통을 잊기 위한 인위적 망각의 시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기억을 묻어 둔다고 기억이 사라질까? 그 기억에 달라붙은 고통이 사라질까? 왕가위의 생각은 이것일 게다. “잊으려 할수록 더욱 생각난다.” 왜냐하면 그렇게 인위적으로 지우고 감추어 두는 것은 역으로 누구도 지울 수 없게 감추어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도 지울 수 없도록 영원의 시간 속에 은닉해 두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각하기 위해서 잊는 것이고 잊지 않기 위해서 감추어 두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마시고 미련 없이 잊어 버리겠다던 황약사의 취생몽사와 다르다.
구양봉은 황약사와 헤어진 다음해 술을 찾아 취생몽사를 마시지만 예전에 살던 삶을 그대로 산다. 아무것도 잊지 않은 것이다.
이런 기억과 망각의 역설적 관계에 대해 명확한 개념적 통찰력을 보여 준 이는 프로이트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역시 지워지지 않는 기억, ‘트라우마’라고 불리는 상처의 기억에 주목한다. 그 기억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그 상처의 시간 속으로 반복하여 불려 들어간다. ‘증상’이라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자기의 행동을 통해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증상의 시간은 그 상처의 순간에 멈추어 있고 증상을 통해 우리는 그 멈춘 시간 속으로 불려 들어간다.
마치 “오, 이 순간이 영원하길!” 하고 외치기라도 한 것처럼 그 상처의 무게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어떤 것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 나아가도 다시 되돌아 온다. 증상이란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반동적 힘이 드러나는 임상적 증거인 셈이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트라우마라고 불리는 그 상처의 순간, 결코 잊기 힘든 그 사건이 하나 같이 망각되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결코 잊을 수 없기에 오랜 시간이 흘러도 되돌아 오는 것인데, 그것은 필경 ‘의도적 망각’이다.
그 상처가 기억나는 것이 불편하거나 힘들어서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의도적으로 잊는 것이다. 하지만 의도적 망각은 그 상처의 기억을 소멸시키는 게 아니라 생각나지 않도록 의식이 닿지 않는 어떤 곳에 깊숙이 감추어 두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중에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한다. 그렇게 감추어 두는 것은 지울 수 없고 지우고 싶지 않은 욕망 때문이다.
망각은 기억을 지우지 않으려는, 증상으로 남겨 두려는 욕망 아닐까.
회상의 윤리

작가는 미주를 포함해 우리가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기만함으로써 자신을 지키려 하는 방식을 들춰낸다. 이 진실 앞에 산포되어 있었던 “그때로 돌아간다면”이라는 가정법 과거의 문장은 차갑고 단단하게 다시 부딪쳐온다. 그것은 자신이 진희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미주의 유약한 회한이 아니라, 이 모든 파괴적인 상황을 자신이 야기했을 수도 있다는 잔인한 진실과 자기기만에 대한 참담한 응시다. 밝고 화사한 미래가 아니라 죄책감에 매인 채 자신을 상처 입히는 과거로 거듭 돌아가는 이 회상의 움직임을 윤리라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중략)
모래는 그렇게 떠남으로써 물질이 아닌 사람의 세계에 대해, 영원이 아닌 멈춤과 단절에 대해 알려준다. 그러나 소설은 사라진 존재에 대한 회한을 ‘나’가 성숙하는 계기로 삼지 않는다. 소설의 가장 마지막은 모래가 ‘나’를 만나기 위해 홍천까지 찾아왔던 어느 날, ‘나’의 무정하고 방어적인 태도 속에서 모래가 깊이 상처받던 순간을 부조해두었다. 되새기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라, 관계에 소리 없는 파열음을 남긴 서늘한 기억을 응축시켜 보여주는 방식은 최은영의 소설이 관계 속에서 지향하는 윤리를 투명하게 지시한다.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이 누군가를 배반하고 그에게 상처 주었던 순간을 끝내 잊지 않겠다는 의연함은 이번 소설집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것이다.
<내게 무해한 사람> 해설 「끝내 울음을 참는 자의 윤리」, 강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