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진중권의 질문에 답하다
< 논쟁> “서울시장 선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오마이뉴스 기자 ohmynews@ohmynews.com

문화평론가 진중권 씨가 < 오마이뉴스>에 “이문옥 외면은 또다른 국민사기극?”(5.6), “이문옥과 자존심”(5.13) 제하의 글을 통해 서울시장 선거 관련, 전북대 신방과 강준만 교수에게 던진 질문에 대해 강 교수가 < 월간 '인물과 사상'> 6월호에 답장을 실었다.

진씨의 문제의 글을 게재한 < 오마이뉴스>는 이 사안을 둘러싸고 양자간의 건전하고도 진지한 토론을 기대하며 < 월간 '인물과 사상'>측의 양해를 얻어 강 교수의 답변 전문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진중권이 5월 6일 < 오마이뉴스>를 통해 “‘이문옥 외면’은 또 다른 국민 사기극?: 강준만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의 공개 편지를 나에게 주었다. 답을 드리기 전에 네티즌 여러분들의 이해를 구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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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옥 외면은 또다른 국민사기극?
이문옥과 자존심

강준만의 ‘인터넷 콤플렉스’

  
▲강준만 교수
진중권의 편지는 < 오마이뉴스>에 실렸으므로 < 오마이뉴스>에 나의 답을 싣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바람직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나에 대해 제기된 모든 공개적인 질문과 비판에 대해 내가 다 그 질문과 비판이 실린 매체에 일일이 답을 드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워낙 논쟁적인 주장을 많이 하는 탓이겠지만, 나에게 제기되는 질문과 비판의 양이 너무 많다.

따라서 나로선 나에게 제기되는 질문과 비판을 종합하거나 선별해 이처럼 < 월간 인물과 사상>이나 책을 통해 대략 월 1회 꼴로 한꺼번에 답을 드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다만 나는 그 어떤 질문이나 비판도 피해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게 알아 주시면 좋겠다.

둘째, 나의 기질적 한계 때문이다. ‘인터넷 콤플렉스’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이번호에 실은 < 김대중과 장기표: 한국 민주화 투사들의 비극>이라는 글에서도 “앞으로 장기표가 누구의 글에 대해 비판을 하려면 그 글을 서너 번 읽어 보거나 인터넷에 올리기 전에 제3자로 하여금 미리 읽어 보게끔 하는 것이 좋겠다.

내가 보기엔 장기표도 나와 같은 다혈질이다. 다혈질은 인터넷에 곧장 글을 올리는 것에 조심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지난번 나의 < 신동아> 인터뷰 파문 때에도 곧장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바람에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다.

반면 활자매체에 글을 싣는 것은 시간적으로 충분한 숙고의 과정을 거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실 진중권의 글에 대해서도 내가 곧장 인터넷에 답을 올렸더라면 나는 그의 ‘의도’를 문제삼는, 전혀 불필요한 신경질을 부렸을 것이다. 진중권의 글을 받아본 나의 첫 느낌은 “이건 질문을 빙자한 이문옥 선거운동이로군!” 하는 종류의 것으로서 다소 불쾌하게 생각했었다는 걸 고백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진중권의 편지에 감사드릴 만큼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러니 내 어찌 아무리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망정 인터넷 글쓰기를 멀리 하고 활자매체 글쓰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분명해 해두자. 나는 나의 그런 한계를 부끄럽게 생각하거니와 독자들께서도 나의 그런 한계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나의 그런 한계에 대해 네티즌들의 너그러운 양해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듯 장황하게 네티즌들의 양해를 구하는 것은 앞으로 나에게 제기되는 질문과 비판에 대해 내가 대응하는 방식에 있어서 원칙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며, 그걸 널리 알려 불필요한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왕 해명을 한 김에 ‘호칭’ 문제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밝혀두고 싶다. 진중권은 나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써 가면서 지극히 정중한 어법으로 말씀해 주셨다. 나도 그간 여러 가지 방식의 호칭과 어법을 구사해 보았지만, 내가 내린 최종 결론은 논쟁의 평등성 강화를 위해 ‘씨’, ‘교수’, ‘선생님’ 등과 같은 호칭을 쓰지 말고 이름만 부르는 게 제일 좋겠다는 것이다.

물론 어법은 가능한 한 정중한 것이 좋을 것이나 지나친 완곡 어법은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를 위해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게 나의 생각임을 밝혀둔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진중권은 진정한 ‘좌파’요 ‘민주노동당원’인가?

우선 진중권의 편지에 감사드린다. 글쓰기를 통해서나마 왕성한 사회참여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비판의 소지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나는 한국 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해 다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서울시장 선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마음이 전혀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럴 힘이 있으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치뤄지는 전주시장 선거와 전북도지사 선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중권은 내게 준 편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물었으니 나의 ‘소극적인’ 생각이나마 밝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진중권이 준 질문은 서울시장 선거에 관한 것인 동시에 보수적인 양당 정치 체제하에서 진보적인 정당의 후보, 그것도 이 사회가 마땅히 갚아야 할 빚이 있는 그런 훌륭한 과거를 갖고 있는 후보에 대해 개혁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답을 해보겠다.

나는 진중권의 글을 읽으면서 진중권이 과연 그간 자신이 당당하게 밝혀 온 ‘좌파’가 맞는지 내내 의아스럽다. 그는 노무현과 이문옥 사이에 존재하는 ‘친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으며, 심지어 과거에 대한 ‘보상’을 말하고 있다. 물론 공감이 가는 말씀이다. 그런데 과연 이게 ‘좌파’의 언어란 말인가?

나는 진중권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과연 민주노동당원이 맞는지 내내 의아스러웠다. 생각해보자. 유권자들은 ‘인물’과 ‘정당’을 동시에 본다. 그런데 진중권은 시종일관 ‘인물’만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라는 정당 이름은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으니, 이건 참으로 뜻밖이다. 민주노동당 사람들이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여태까지 늘 해온 이야기가 ‘인물 중심 세계관’을 버리라는 것 아니었던가?

나는 진중권이 이문옥을 위한 선거운동이 ‘좌파’와 ‘민주노동당’의 대의에 부합되는 것인지 도무지 그걸 모르겠다. 진중권이 진정한 ‘좌파’요 진정한 ‘민주노동당원’이라면 ‘노무현 바람’에 편승하려 할 것이 아니라 ‘좌파’와 ‘민주노동당’의 대의에 부합되는 관점과 방식으로 이문옥을 위한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는 걸 밝혀두면서, 진중권이 내게 준 질문에 답하도록 하겠다.

노무현 지지도 ‘국민 사기극’인가?

  
▲ 진중권 씨
진중권은 첫 번째로 “우리 국민들은 단지 힘없는 소수정당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이문옥)를 진지한 시장 후보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걸 지적한 후 그것도 ‘국민 사기극’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주었다.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이자 이문옥의 사이버 대변인인 진중권의 입장에선 그리 생각할 수도 있을 거라고 보지만, 내가 쓴 ‘국민 사기극’의 의미와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주로 민주당 지지자들을 향해 민주당 소속인 노무현에 대한 태도와 관련해 그 말을 썼던 것이다. 물론 내가 그걸 명확히 하지 않고 쓴 대목도 많아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겠지만, 그 경우에도 나의 비판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것이었음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진중권은 노무현을 지지하는 서울 시민, 그것도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네티즌들을 겨냥하고 있어서 진중권의 그런 어법엔 동의하기 어렵다. 정당을 초월해 훌륭한 인물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인물을 지지해준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해서 ‘국민 사기극’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진중권이 이문옥 홍보를 위해 과도한 욕심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더욱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중권이 나의 ‘국민 사기극’이라는 표현을 그렇게 원용해 쓰고자 한다면, 왜 그걸 권영길 홍보를 위해 쓰지 않고 이문옥 홍보를 위해 쓰느냐는 것이다. 권영길 홍보는 나중에 해도 괜찮지만 6·13 지방 선거가 코앞에 닥친 현 상황에선 이문옥 홍보가 더 급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나는 진중권이 나중에라도 권영길을 지지하지 않고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국민 사기극’을 저지르고 있다고 호통칠 만큼 분별력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중권이 ‘국민 사기극’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간단해 보인다. 그는 개혁 마인드를 갖고 있는 유권자들이 김민석에 대해 느끼는 반감 또는 불편함을 최대한 이용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김민석에게 아무리 많은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가 정형근이나 김용갑 수준이라도 된단 말인가?

나는 가끔 진중권의 날카로운 안목에 감탄하곤 하지만, 그의 운동권, 특히 한총련에 대한 적대감 표출에 대해선 섬뜩한 느낌을 갖게 한다. 진중권은 최근 민주노동당 실명게시판에서도 “운동권을 김대중의 밥상 위에 갖다 바친 그 개새끼들”이라든가 “‘대동단결’ 어쩌구 하며 운동권을 온통 말아 먹고, 그렇게 말아 먹은 진보 역량을 기껏 김대중이한테 갖다 바친 민족 프티 부르주아들” 운운하는 독설을 퍼부어댔다.

나는 진중권의 그런 독특한 성향으로 보아 진중권이 정형근이나 김용갑보다는 김민석을 더 혐오하거나 증오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내가 잘못 생각한 걸까? 내가 잘못 생각했을 망정, 나는 진중권이 “운동권을 김대중의 밥상 위에 갖다 바친 그 개새끼”에 대해 최소한의 균형 감각을 가져 주길 바라 마지않는다.

호남인은 ‘국민 사기극’의 주범인가?

진중권이 내게 준 두 번째 질문 역시 ‘정당’과 관련된 문제다. 나 역시 당시 이문옥만큼은 광주에서 당선되기를 원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광주 유권자들의 선택에 아쉬움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국회의원 선거가 대선의 볼모로 잡혀 있는 우리의 현실이 빚어낸 비극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 경우에도 그러한 비극을 ‘거대한 국민 사기극’이라고 부르는 데엔 동의하기 어렵다.

만약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호남 유권자들이야말로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여태까지 가장 많은 ‘국민 사기극’을 저지른 주범이 될 텐데, 진중권이 정녕 그런 사태를 원하는지 궁금하다. 너무 서울시장 선거에만 매몰되지 말고 크고 넓게 생각하기 바란다.

아무리 우리의 왜곡된 현실이 답답하고 비극적일 망정 유권자들의 특정 정당 선택을 도덕적인 수준에서 비판하기는 어렵다는 거다. 물론 모든 경우에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사안별로 꼼꼼히 따져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선 조금 후에 자세히 말씀드리겠다.

진보정당 독자후보론은 정당하다

진중권은 세 번째로 “과연 일부 네티즌들이 얘기하듯이 진보정당에서 독자 후보를 내는 것이 수구 세력을 돕는 일이며, ‘제2의 김문수, 이재오’가 되는 길로 비난을 받아야 하는 일인지”에 대해 나의 견해를 물었다. 내 답을 이미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진보정당 독자후보론을 비판했던 나의 과거 잘못을 사과드린다.

내 사과의 진실성을 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내가 그때 왜 그런 과오를 저질렀는지 말씀드려 보겠다. 나는 그때 민중후보 진영의 김대중 비판 내용이 진보적 관점을 벗어나 수구 세력의 김대중 비판 내용과 거의 비슷한 게 많았다는 점에 크게 분노했었다. 그래서 아마 내가 그런 막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민중후보 진영이 어떤 주장을 했건, 나의 막말이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진중권이 잘 지적한대로, 나 역시 “진보정당에서 독자 후보를 내는 것이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는 참정권, 즉 공무담임권의 행사라 보며, 이를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천부의 인권으로 보고 있”다는 걸 밝혀 둔다.

나는 그러한 천부의 인권을 믿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그런 막말을 하지 말 것을 간곡히 촉구하는 동시에 민주노동당 사람들도 반성할 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선 나중에 진중권에 대한 질문 형식으로 말씀드리겠다.

나는 앞서 진중권의 ‘과도한 욕심’을 지적했지만, 어찌 보자면 진중권에 이르러 한국의 진보진영의 지평이 넓어진 것만큼은 축하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라. 진보진영이 ‘진보정당 독자후보론’에 대한 수세적 옹호에서 ‘국민 사기극’ 운운하는 공세적 선점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 아닌가.

서울시장 선거의 의미

  
▲이문옥 후보
진중권은 네 번째로 “지방 선거는 대선의 전초전”이라며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려면 지방 선거에서 무조건 그와 같은 당에 속하는 후보를 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정치성 짙은 발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물었다.

나는 그런 발언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으며 사안별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대선과 총선, 지방 선거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는 가설은 우리의 정치사에서 한 번도 입증된 바 없는 미신일 뿐”이라는 진중권의 주장에도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는다.

선거는 어차피 ‘입증의 게임’은 아니며 그런 가설이 바람직하냐 바람직하지 않으냐 하는 건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미신’일 망정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면 그게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그 가설을 신봉하여 모든 경우에 그 가설대로 행동하는 것에 반대할 뿐이다.

나는 민주노동당이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 적극 참여해 민주노동당의 기상을 크게 떨쳐보는 것도 좋겠지만, 비교적 작은 선거에 역량을 집중시켜 확실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서서히 발판을 구축해 나가는 방식도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진중권은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들겠지만, 서울시장 선거의 의미와 여느 중소도시 시장 선거의 의미는 크게 다르다. 물론 대선에 미칠 수 있는 영향도 크게 다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진중권의 생각이 아니다. 중요한 건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들의 생각을 도덕적 잣대로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선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진중권은 다섯 번째 질문으로 “모두들 되어야 할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한탄하면서 정작 투표장에 나가서 될 사람을 밀어 주는 것 역시 또 하나의 국민 사기극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이에 대한 나의 견해를 물었다.

“될 사람이 아니라 되어야 할 사람을 밀어주어야 한다.” 당연한 말씀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아무리 ‘되어야 할 사람’이라 하더라도 ‘당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이 경우에도 진중권의 ‘국민 사기극’이라는 진단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걸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이런 가정을 해보자.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의석을 몇 개 갖고 있고, 서울시내 구청장 자리도 몇 개 차지하고 있다면 어떨까? 물론 나는 그렇지 못한 민주노동당의 현실에 대해 민주노동당에게만 책임을 묻는 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노동당의 그런 현실에 근거하여 민주노동당의 역량을 의심한 나머지 민주노동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매우 낮게 평가해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유권자들을 도덕적으로 탓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저는 특히 진보적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기 의사를 미래를 위해 투명하게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소위 전략적 투표, 정치적 고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용주의적 지지자들은 이런 투명한 표를 전략적인 실패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자리를 더 많이 마련해주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인 노혜경이 최근에 이문옥을 ‘시대의 표상’이라 부르며 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로, 진중권이 내게 준 편지에서 인용한 것이다. 나 역시 진중권처럼 “바로 이 말 속에 시민사회의 상식이 들어 있다”고 보며 지지를 보낸다.

다만 내가 동의하지 않는 것은 진중권의 글은 그런 수준의 호소에 머무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달리 말씀드려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해서 ‘국민 사기극’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다는 거다. 진중권은 노혜경과는 달리 호소를 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공격을 하고 있다. 나는 그가 점수를 얻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잃는 전략과 전술을 쓰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방법으로서의 현실성’

진중권은 마지막 질문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노무현 후보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이문옥 후보에 대한” 나의 견해를 물었다. “일신상의 불이익을 무릅쓰면서까지 원칙과 소신의 길을 걸었던 사람에게 시민사회가 보상을 하지 않는 것”은 내가 개탄한 ‘국민 사기극’의 또 다른 측면이 아니냐고 물었다.

물론 나는 이 견해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무현보다는 이문옥이 더 존경받을 만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또 나는 노무현보다 훨씬 더 훌륭한 과거와 개혁적 의지를 가진 인물들이 민주화 투사들 가운데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분들이 노무현을 가소롭게 보거나 ‘변절’ 운운하는 것에 대해 나는 상당 부분 동의한다. 문제는 ‘대중적 지도자’가 되기 위한 덕목은 꼭 훌륭한 과거와 개혁적 의지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노무현을 비판하는 게 바로 그 점일 게다. 즉, 대통령이 되기 위한 ‘전략과 전술’ 말이다. 나는 그런 비판에 일면 동의하면서도 일면 부적절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비판을 그대로 수용했다간 대통령 되는 건 영원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진보주의자들의 생각을 존중하지만, 멀리 내다보는 ‘적극적 진보주의’에 앞서 우선 당장 박정희와 전두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된 세력에게 정부와 서울시의 리더십이 넘어가는 걸 못 보겠다는 사람들의 ‘소극적 진보’도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이른바 ‘현실성’에 대해 개념 정의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실성’엔 수구기득권 세력이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차원에서 주장하는 ‘목적으로서의 현실성’과 개혁 세력이 모든 게 뒤틀리고 엉망이 된 상황에서 개혁의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주장하는 ‘방법으로서의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는 ‘방법으로서의 현실성’에도 많은 문제가 있으며 또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길로 빠질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경험을 해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현실성’을 배제하는 것이 능사일 수는 없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바람’에 대한 과대 평가나 지나친 미화에 단호히 반대한다.

‘노무현 바람’은 두 얼굴을 갖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노무현 바람’엔 ‘이상(理想)’도 큰 역할을 했지만 거기엔 현실 세계에서의 승리도 가능하다고 하는 ‘현실성’에 대한 평가도 크게 작용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노무현 바람’은 모든 현실적 고려를 초월하면 할수록 더 거세게 불 것이라는 희망은 ‘현실성’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방법으로서의 현실성’마저 뛰어 넘으려는 사람들의 이상주의는 칭찬받아 마땅할 것이나, 행여 그들이 그런 현실성을 고려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도덕적 잣대로 비판하거나 은연중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려 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우리는 1차원적인 ‘도덕성 게임’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현실성’에 대한 고민도 같이 해야 하는 2차 방정식을 풀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진중권에게 드리는 질문

‘현실성’ 문제와 관련, 진보정당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좌파들의 어떤 어법의 문제를 지적한 진중권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우리 모두 깊이 음미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끔 몇몇 ‘좌파’들의 얘기를 들으며 그 논증 방식이 매우 ‘신학적’이라 느낀다. 사회주의라는 유토피아의 이상에서 직접 논거를 끄집어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편적 이상에서 연역을 하기에, 그들은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 이미 준비된 대답을 갖고 있다. 물론 그 대답은 늘 동일하다. 그 대답은 현실이라는 질료의 저항과 싸운 흔적이 없이 너무나 매끈하다. 저항 없는 표면을 운행하는 자기부상열차, 물론 그 열차는 결코 현실이라는 지면과 접촉할 일이 없다. 그런데 이런 태도로 과연 구체적인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장기 게임에서 다른 정치 세력들에게 이길 수 있을까?”(진중권, 『폭력과 상스러움: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푸른숲, 2002), 279-280쪽)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다. ‘현실이라는 질료의 저항’을 ‘계급’이나 ‘도덕’이라는 잣대만으론 돌파해내기 어렵다. 나는 지금의 민주노동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왕성한 내부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진중권에게 묻고 싶다. 지금의 민주노동당에 왕성한 내부 비판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또 민주노동당이 진중권 자신의 위와 같은 비판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진정 민주노동당의 발전과 승리를 위해 민주노동당에게 고언을 아끼지 않는 ‘악역(惡役)’을 맡을 생각은 없으신가? 그리고 이문옥의 서울시장 당선 가능성과 민주노동당의 ‘평소 실력’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는가?

나는 민주노동당 사람들과 여러 차례 논쟁을 하면서, 또 그와 유사한 다른 논쟁들을 지켜 보면서, 한 가지 안타깝게 느낀 게 있다. 민주노동당 사람들은 논쟁을 하는 상대편에게 ‘김대중 광신도’라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는다. 나는 김대중이 나의 ‘우상’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또 어떤 사람은 “노무현 지지자들의 다수는 ‘상처받은 김대중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내가 아무리 김대중을 비판했어도 그건 다 내가 ‘김대중주의자’로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던, 김대중 정권 초기부터 김대중에 대해 호된 비판을 했는데 내가 도대체 상처받을 일이 뭐가 있다는 걸까? ‘상처’로 말하자면 늘 패배의 아픔을 겪어온 민주노동당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받은 게 아닐까?

진중권에게 묻겠다. 그 여하한 경우를 막론하고 ‘김대중 광신도’니 ‘우상’이니 ‘상처받은 김대중주의자들’이니 하는 표현이 온당한가? 그런 표현을 쓰거나 그런 생각을 하는 민주노동당 사람들이 소수인가? 왜 민주노동당 사람들은 자기들의 지지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은 잠재적 지지 세력에게 그렇게 모욕적인 발언을 하며 등을 돌리게 만드는가?

민주당 후보와 지지자들에 대한 민주노동당 사람들의 비판이 한나라당의 그것과 다를 게 없거나 더 모욕적인 것이라면, 민주당 지지자들이 민주노동당을 특별하게 대우해줘야 할 이유도 없는 게 아닐까? 이 질문들에 대해 답을 주시기 바란다.

진중권은 지난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이 각기 후보를 낸 걸 호되게 비판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비판의 정신을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적용시킬 생각은 없으신가?

사회당의 서울시장 후보 원용수는 < 오마이뉴스> 5월 6일자 인터뷰에서 민주노동당과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와 관련 “이미 사회당과 민주노동당이 당 대회를 통해 후보를 선출한 만큼 후보 단일화는 양당 모두에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진중권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국민 사기극’ 운운하는 비판을 하기에 앞서 진보정당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위해 뛸 생각은 없는가?

만약 없다면, 진중권 역시 자신이 과거에 했던 비판의 화살을 이번엔 자신이 되받아 마땅하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주시기 바란다.

나 역시 진중권이 말한 것처럼, 불행히도 정치적 견해가 달라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이 민주노동당에게 부당한 정치공세를 펼 때 시민사회의 상식을 넘지 않는 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엄호’할 수는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본다.

아니 나는 더 나아가서 민주노동당이 누려 마땅한 ‘제 몫’을 찾는 걸 방해하는 제도적 장벽들을 민주당이 앞장 서서 적극적으로 혁파하지 않을 경우 민주당에게 혹독한 공격을 퍼붓겠다는 걸 약속드린다. 비록 생각은 다르지만 이 중요한 시기에 뜨거운 연대를 할 것임을 맹세하면서 이 글을 여기에서 접는다. 진중권이 건필하고 내내 건강하길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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