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도올 김용옥을 위한 변명’

 

 

 

영화 「아마데우스」를 본적이 있는가. 천재 모짜르트에게 질투를 느끼고 고뇌하는, 한 범용(凡庸)한 예술가 살리에르의 삶을 그린 영화. 『오, 신이시여! 어찌하여 내게는 귀만 주고 손은 주지 않으셨나이까』라며 절규하는 살리에르의 모습은 그대로 평범한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 같기도 하여 더 감동적인 영화.

어, 근데 이게 웬일인가. 80년대 중반 그러니까 그가 양심선언으로 고려대 교수직을 떠나기 전, 김용옥 교수는 강의중에 악동같은 괴짜천재 모짜르트의 기행과 고뇌를 충분히 공감한다면서 그와의 동일시를 내비치는게 아닌가. 아, 같은 영화를 이렇게 달리 볼 수도 있구나. 나는 그 차이를 깨끗하게 인정했지만, 그 복잡 미묘한 느낌-아마 살리에르 컴플렉스라고 할 수 있을 – 의 여운은 꽤 길었던 것 같다.

근자에 들어 장안은 온통 도올 이야기이다. 이른바 「도올논쟁」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학계에서 그에게 가하는 비판의 화살은 그에게 쏟아지는 찬사만큼이나 거세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태도는 유치하고 비겁하며 그 내용은 비루(鄙陋)하고 천박하여 논쟁이라 하기엔 민망해 보인다. 더더구나 문제는 논쟁이 핵심을 한참 벗어나 제자리를 못 찾고 있다는 점이다. 도올의 저서나 강의에 대한 성실한 독해, 꼼꼼한 뜯어읽기가 행해졌다는 흔적은 찾기 힘들다. 그의 TV강의 몇 번 듣고 난 뒤의 인상을 신문 또는 잡지에 기고하거나, 술집의 안주거리로나 적절한 수준의 내용을 전문가 대담이랍시고 교수 몇 명이 나와 태연자약하게 늘어놓는 모습은 참으로 한심하다. 일반인들이 도올의 스타일을 문제삼는 것은 언론의 선정성과 상업성에 의해 더 부추겨진 면이 있으며, 이는 공사미분화(公私未分化)의 전형적인 오류이니 차치하더라도, 학계의 주류시각에서 그의 스타일을 문제삼는 배면에는 필시 숨은 의도가 있을 터. 일반적으로 「스타일」은 모양이나 태도, 양식을 일컫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문체(文體)가 아니던가. 객관성, 정밀성, 형식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학문적 엄숙주의에 빠져 무미건조한 문체의 글쓰기와 말하기를 경전(經典)시 하고, 데카르트-뉴우턴적 패러다임의 과다한 강조에 의해 초래된 전공의 세분화와 학문의 단편화, 타 전공분야와의 벽쌓기(compartmentalization) 등 분과주의와 환원주의적 경향이 만연된 기존 학계의 풍토 속에서는 『나는 좌도 아니요, 우도 아니다. 마르크스도 아니고 예수도 아니고 콩쯔도 아니다. 나는 나일 뿐이다. 나의 전공은 영원히 나의 삶일 뿐이다』라며 동서고금을 종횡무진 내달리는 도올은 분명히 이단자다. 「이교도는 개종시키면 되지만, 이단자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 종교의 역사는 여기서도 되풀이된다. 이른바 살리에르 컴플렉스에 시달릴법한 이들이 이 ‘발칙한’ 사문난적(斯文亂賊)을 그냥 둘리 없음은 불문가지다.

삼십대 초반의 새파랗게 젊은 선비였던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이 오십대 후반의 대학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에게 도발적인(?) 편지를 띄움으로써 시작되어 8년간이나 지속되었던 그 유명한 사단칠정논쟁(四七論辨)은 당연히 생산적인 학문논쟁의 효시로 후학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데, 이는 이황과 같은 대가(大家)의 개방성과 포용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이다. 『그의 고재질족(高材疾足)이 더러 파격적인 흥미를 유발시키고, 그의 융통무애(融通無碍)가 ‘선비’에서 비켜가더라도 가만히 미소지으면 될 일이지, 사람 지나간 뒤에 개구리처럼 와와(蝸蝸)거릴 일이 아니다』라는 철학자 김영민 교수의 말처럼, 도올의 등을 두드려주며 격려해주고 그의 앞날을 축복해 줄 넓은 도량을 가진 퇴계와 같은 대가를 우리는 볼 수 없는 걸까? 이런 맥락에서 나의 「도올 김용옥을 위한 변명」은 「대가 대망론(大家大望論)」의 다른 이름이다.

<仲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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