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남자아이를 목말 태운 한 남자를 본 적이 있다.
남자의 주위엔 가방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마침 휴가가 시작되는 시기라 공항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댔다.
남자는 키가 굉장히 커서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우뚝 솟아 있었다.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큰 소리로 여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대답이 들려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대답 소리는 없었다.
“다이안!”
아빠의 어깨 위에 있던 남자아이는
겁먹은 표정으로 아빠의 머리를 꽉 붙잡고 있었다.
남자는 무척 피곤해 보였다.
난 엄청난 인파를 뚫고 다음 터미널로 움직였다.
그러자 조금 전과 똑같이 생긴 홀이 나타나고
조금 전과 똑같이 여행을 떠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한복판에서 한 여자가
어깨 위에 남자아이를 목말 태운채 서 있었다.
여자의 주변에도 역시 여행 가방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여자의 어깨에 올라탄 아이는 잠이 들어 있었다.
아이는 방금 내가 보았던 다른 남자아이와 판박이였다.
쌍둥이였다. 심지어 옷마저 똑같았다.
여자가 큰소리로 외쳤다.
“리처드!”
난 그녀의 주의를 끌기 위해 사람들의 머리 너머로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곤, 다시 남자가 있던 방향을 가리켰다.
여자는 내가 서 있는 방향을 바라봤지만 날 보지는 못했다.
그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남편의 이름만 외쳤다.
나 역시 계속 이동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 당연히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사진처럼 각인됐다.
라과디아 공항에서 찍은 이 두 장의 사진은
내가 그 이후에 이 공항에 내렸을 때,
리처드와 다이안을 생각하며 찍었던 것이다.

 

<한번은>, 빔 벤더스, p29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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