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해석학에서 존재미학으로

엄밀히 말해 푸코는 조형예술에 관해 그리 많은 글을 쓰지 않았다. 그는 주로 문학에서 영감의 원천을 얻는다. 그가 조형예술에 관해 남긴 글들은 본격적인 미학적 분석이라기보다는 그의 글의 서두를 장식하기 위한 미적 엠블렘에 가깝다. 가령 < 광기의 역사>에 나오는 브뤼겔의 < 바보들의 배>는 이성의 타자인 ‘광우'(狂愚)라는 개념의 상징, 같은 곳에 나오는 고야의 < 잠자는 이성>은 근대적 이성주의에 대한 비판의 상징, < 말과 사물>의 서문에 나온 벨라스케즈의 < 라스 메니나스>는 아직 ‘주체’라는 개념이 없었던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였던 ‘순수 표상의 표상’이다. 마그리트의 그림에 바쳐진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역시 < 말과 사물>에서 제기된 ‘유사성'(ressemblance)과 ‘상사성'(similitude)의 차이라는 도식을 들뢰즈의 시뮬라크르의 개념에 맞추어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

자기의 테크놀로지

미학에 대한 푸코의 기여는 정작 다른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사후에 미완으로 발간된 < 자기의 테크놀로지>에서 푸코는 놀랄만한 사유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나는 지배와 권력의 테크놀로지에 지나치게 역점을 두어왔는지도 모른다. 요즘 나의 관심은 점차 자기 자신과 타자의 상호작용, 그리고 개인이 행사하는 지배의 테크놀로지에서 얼마나 개인이 자기자신에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역사, 즉 자기의 테크놀로지로 기울어졌다.”

말하자면 ‘주체’라는 개념을 지식권력의 함수로 보았던 그가 이제 ‘주체’가 단순한 담론의 효과 이상이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즉 이제까지 그가 주체형성 과정을 계보학적으로 추적함으로써 주체를 객체화하는 데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그런 지식권력과 담론의 망 속에서 객체화된 ‘주체가 어떻게 자신을 다시 미적-도덕적 주체로 세울 수 있느냐’ 하는 윤리학적 물음으로 관심을 옮긴 것이다. 계보학이 도덕의 근원을 파헤치는 냉철한 유물론적 기술(description)이라면, 주체의 윤리적 자기구성이라는 새로운 문제의식은 본질적으로 규범적(normative) 성격을 갖는다.  

위에 언급한 책에서 푸코는 그는 < 네 자신을 배려하라>는 고대 그리이스의 존재의 원리가 어떻게 후에 < 네 자신을 알라>는 인식의 원리로 전도되는지 분석한다. 애초에 그리이스에서 ‘네 자신을 알라’라는 격률은 ‘네 자신을 배려하라’라는 격률을 실천하는 여러 가지 방식 중의 하나로서 정식화된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새에 ‘네 자신을 알라’는 인식의 격률이 존재의 목적으로 격상하고, 인식을 절대화하는 이 사고방식의 우위 속에서 ‘네 자신을 배려하라’라는 애초의 격률은 잊혀져 갔다는 것이다.

“< 네 자신을 배려하라>와 < 네 자신을 인식하라>라는 고대의 두 원리의 위계질서가 그간 전도되어 왔다.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자기 인식은 자기배려의 결과로서 나타났다. 근대 사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기 인식은 기본원리로 구성된 것이다.” (미셸 푸코 외, [자기의 테크놀로지], 이희원 옮김, 문예출판사 p.43)

푸코는 이런 변화가 일어난 원인으로 “자기 포기를 구원의 조건으로 설정한 그리스도교적 도덕률의 전통”을 든다. 이 전통에 따르면 “자기란 우리가 거절할 수 있는 바로 그것”으로 규정된다. 또 하나의 원인은 좀더 세속적인 것으로 “데카르트에서 후설에 이르는 순이론적 철학”, 즉 근대의 반성철학을 든다. 여기서 자기(cogito)의 인식은 인식론의 첫걸음으로 여겨진다. 말하자면 초기 기독교의 ‘자기포기’의 도덕에 근대의 ‘반성철학’이 합쳐져, 자기를 버리기 위해 자기인식을 하는 ‘욕망의 해석학’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에의 배려’라는 존재미학에서 ‘자기포기로서의 자기인식’이라는 욕망의 해석학으로의 변화는 이미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인 AD 1, 2세기에 그리스 문명 자체 내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자기를 배려하라’와 ‘너 자신을 알라’ 사이에 일어난 이 전도된 위계질서를 다시 뒤집고, 자기를 배려할 줄 알았던 고대문화의 가능성을 이 시대에 새로운 미적 에토스로 구성할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 그것이 바로 < 자기의 테크놀로지>를 쓰면서 푸코가 가졌던 미완의 프로젝트다. 여기서 ‘테크놀로지’란 말은 오늘날과 같은 ‘과학기술’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리이스어의 ‘테크네’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실천적 지식, 즉 미적, 윤리적 실천의 능력 혹은 수완을 가리켰다. 그 그리이스인들이 예술 또한 ‘테크네’로 규정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푸코가 말하는 ‘자기의 테크놀로지’는 주체가 담론의 효과, 권력/지식의 함수로 객체화하는 데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자신을 미적, 윤리적 주체로 세우는 능력, 말하자면 자기에의 배려를 통해 제 삶을 예술작품을 끌어올리는 존재미학적 기술을 말한다.

주체를 권력지식의 함수, 담론의 효과로 바라보며 ‘주체의 죽음’을 선언하는 것으로부터 (과거의 금욕적인 반성적 주체와는 다른) 쾌락을 긍정하는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는 원리로서의 존재미학으로. 이 전회는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미 < 성의 역사>를 쓰던 시절에 예고된 것이었다. 가령 성에 관한 3부작 중의 하나인 < 쾌락의 활용>에서 이미 그는 그리스인들의 삶의 방식이 가진 ‘주인의 도덕’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킨 바 있다. 푸코에 따르면 그리이스인들은 자신을 영적으로 정화하기 위해 쾌락에서 도피하는 (순결성을 모델로 한) “처녀의 도덕”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이 비도적으로 본 것은 쾌락 자체가 아니라 쾌락의 노예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쾌락의 노예가 되지 않고, 그것의 주인이 되어 그것을 적절히 부리며 살아가는 ‘아르스 비벤디’로 갖고 있었다.

이 강의에서는 푸코가 부각시킨 ‘존재미학’이 현대미학에 대해 갖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그가 제공한 시각에 따라 플라톤의 < 향연>에 대한 새로운 독해를 시도하려 한다. 푸코의 분석의 바탕에는 니이체의 시각이 깔려 있다. (사실 수백년에 걸친 근대의 미학사에서 진정으로 새로운 요소가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관조자가 아닌 창조자의 입장에서 “제 삶을 작품으로 만들라”고 요청하는 니이체의 창조미학일 것이다.) 서구미학의 최초의 문헌으로 꼽히는 < 향연>은 근대미학의 시각에서 읽혀지는 바람에 ‘미의 이데아를 향한 영혼의 상승’이라는 인식론적 관점만 부각되어 왔다. 플라톤을 이데아의 형이상학자로 간주하는 가운데, 그 역시 제 삶을 미적으로 조직화하려 했던 그리이스인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푸코는 이렇게 말한다.

“플라톤의 경우 자기의 관조와 자기에의 배려, 이 두 주제가 대화를 통해 변증법적 관계를 이루었다.” (p.60)

기존의 해석은 < 향연>에서 이 변증법적 관계의 한 짝을 이루는 ‘자기에의 배려’를 지워버린 듯하다. 다음에서는 이 근대의 인식론주의적 해석에 의해 사라진, < 향연>의 또 다른 측면을 부각시키며, 그것이 현대미학에 대해 갖는 의미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미의 이데아

< 향연>에서 가장 부각되는 대목은 역시 구체적인 사물의 아름다움에서 점차 천상의 미의 이데아를 향해 ‘계단식으로’ 상승하는 과정의 기술이다. ‘미의 이데아’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리이스인들이 가졌던 ‘미적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미학의 관점에서 이 상승운동은 상대적인 미가 아닌 절대적인 미, 말하자면 미적 평가의 절대적 기준을 획득하는 인식론적 과정으로만 이해되어 왔다. 물론 이 인식론적 요소 역시 플라톤의 미론의 중요한 요소에 속함에 틀림없으나, 이 견해 속에서 ‘미의 이데아’가 < 향연>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현저하게 왜곡되고 만다.

말하자면 ‘미의 이데아’는 단순히 인식론적 이상, 즉 관조자의 입장에서 사물의 미적 가치를 판별할 수 있게 해주는 절대적 기준에 불과한 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이 ‘자기에의 배려’를 통해 제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도록 이끄는 미적, 윤리적 실천의 원리였다. 즉 ‘미의 이데아’는 미적 관조의 원리라기보다는 무엇보다도 제 존재를 작품으로 완성하기 위한 창조의 원리, 다시 말하면 인식론적 이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존재론적 이상이었다. 플라톤에게 ‘미의 이데아’를 본다는 것은 자기목적이 아니었다. 제 존재를 이상적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인식론적 준비에 불과했던 것이다.

미와 에로스

‘미’에 관해 씌여진 서양미학 최초의 문헌에 속하는 이 텍스트에서 미가 ‘에로스’와 관련하여 논의된다는 사실에 먼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 향연>에서 미는 에로스의 상관자다. 그리고 이는 늘 아프로디테를 따라 다니는 에로스의 형상으로 상징된다. 말하자면 그들은 ‘미’를 늘 ‘사랑’과의 관계 속에 집어넣어 생각했다는 것이다. 근대 미학에서 ‘미’는 주로 ‘정신’, 그러니까 인간의 인식능력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 ‘미’란 대상과 인식능력 사이의 조화 혹은 인식능력들 사이의 조화로 규정된다. 그러나 플라톤은 ‘미’를 ‘에로스’의 상관자로 만듦으로써 그것을 무엇보다도 ‘몸’과 연결시키고 있다.

실제로 인간이 사물을 아름다움이라는 미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눈은 애초에 성애에서 비롯된 것이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최초의 미적 지각의 대상은 어쩌면 사랑하는 이성 혹은 동성의 몸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 향연>에서 천상의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여정은 우선 ‘신체의 아름다움’, 소년의 아름다운 육체를 보는 데에서 출발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미는 ‘정신의 대상’이 아니라 우선은 “욕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오면 미와 성애를 이어주던 이 원초적인 연결의 고리는  끊어지고, 미는 ‘대상과 인식 능력의 조화’, 말하자면 순수한 정신적 현상이 되어 버린다.

창조미학

근대 미학에서 ‘미’란 단순한 향유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 미학은 본질적으로 수용자 중심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플라톤에게서 에로스는 ‘미’를 매개로 인간을 정신적, 육체적 생식으로 이끄는 창조의 능력으로 규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미학은 본질적으로 정신적, 육체적 생식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가며 사는 창조자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그리이스인들의 삶이 미적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칼로카가티아의 이상 아래 제 삶을 미적으로 조직화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말하자면 ‘자기에의 배려’란 곧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나가는 세심한 미적, 윤리적 배려이고, 또 그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이 그들의 삶의 목적이었다.

이것이 플라톤의 관념론 아래로 여전히 숨쉬고 있는 그리스인들의 아르스 비벤디다. 다시 말하면 근대의 미학이 미적 대상과 예술작품을 향유하는 관찰자의 입장에 선 < 인식론적 미학>이라면, 그리스인으로서의 플라톤의 미학은 이와는 전혀 다른 < 존재미학>을 함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존재미학은 인간이 신이 되는 길, 말하자면 유한자가 무한과 영원에 도달하는 길이었다. 인간은 육체적 생식을 통해 제 존재를 무한으로 연장하고, 정신적 생식을 통해서는 불후의 명성, 즉 영원성에 도달한다. 그리스인들에게 ‘에로틱’은 이렇게 인간이 그 유한성을 극복하고 신의 경지에 접근하는 방법이었다.

포에틱과 에로틱

플라톤의 예술론은 제작술(poetik)이 아니라 성애론(erotik)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 역시 테크네, 즉 합리적인 규칙에 따른 제작활동으로 이해했다. 이것이 그가 ‘시’를 비합리적인 영감의 영역에서 끄집어내어 합리주의적으로 구원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플라톤에게서는 아직 이런 급진적인 합리화는 찾아볼 수 없다. 그에게 예술은 제작술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성애의 문제다. 말하자면 인위적인 제작활동마저 그는 physis의 자연적 생식력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예술’이란 좁은 의미의 예술만이 아니라 철학과 통치술을 포함하여 인간의 거의 모든 창조활동을 가리킨다. (물론 당시 고대노예제 사회에서 노예들이 담당한 수공업적 제작의 활동은 이 ‘창조활동’에서 제외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 모든 활동은 ‘제작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은 이를 ‘생식’으로 규정한다. 그에게서는 physis의 생식력과 nomos를 이루는 제작술 사이의 현격한 이분법적 대립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플라톤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는 그 짧은 시기에 그리스인들의 정신에는 급격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데몬

근대 이후 철학은 금욕주의적 수도승의 모습을 닮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철학과 섹스는 에로스(=생식력) 속에서 하나였다. 전지한 신과 무지한 자들의 중간자인 에로스는 자기에게 결핍된 지를 사랑한다. 에로스는 지의 사랑(philos+sophia), 곧 철학의 정신이었다. 여기서 푸코는 도덕과 비도덕을 나누는 근대적 이분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니이체적 도덕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자기 앞에 미리 주어진 도덕률에 얽매여 사는 노예의 도덕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살아가는 주인의 도덕. 자기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예술가형 인간의 가능성. 근대의 합리주의적 해석의 지배 아래 오랫동안 잊혀졌던 < 향연>의 또 다른 측면은 바로 이 예술가형 인간의 미학, 즉 새로운 ‘존재미학’의 가능성이다.

“신들이 더 인간적이었을 때, 인간들은 더 신적이었다.” 쉴러의 말이다. 기독교 문명에서는 신과  인간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심연을 설정한다. 여기에서 인간이 신에 다가가는 것은 인간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신의 ‘은총’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리스에서 신들은 기독교의 신보다 더 인간적이고, 인간들은 기독교의 신자들보다 더 신적이었다. 가령 신과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난 에로스는 신과 인간의 중간자 ‘데몬’이다. 선악 이분법에 따라 중세의 신학은 데몬을 ‘마귀’로 해석을 했지만, 원래 ‘데몬’이란  끊임없이 신적 존재에 가까워지기 위하여 자신을 초월하는 인간, 즉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신화적 표현이었다.

근대의 미학은 인간의 창조성을 ‘예술’이라는 영역에 가두어놓고, 대중들에게는 그 천재들의 작품을 바라보는 능력, 즉 ‘관조의 미학’을 제시해 왔다. 플라톤의 < 향연>은 이 좁은 속박을 벗고 인간의 모든 활동을 창작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인간이 제 삶을 예술작품처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존재미학’을 요청하고 있다. 이것은 곧 미적 왕국을 삶으로부터 유리시키는 근대미학을 대체할 새로운 미학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것이 수 천년 전에 씌여진 < 향연>이 오늘날 현대미학에 주는 의미이다.

미적 에토스

푸코가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근대적 방식과는 다른 또 다른 형태의 윤리적 자기 구성이다. 푸코가 보기에 근대적 ‘주체’의 윤리적 자기 구성은 개별자를 보편자 속에 일방적으로 포섭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계보학적 관점에서 씌여진 푸코의 모든 저서는 이 근대적 주체 구성의 방식의 폭력성을 아르토의 잔혹극을 연상시키는 정도의 생생함을 가지고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푸코는 폭력성을 철회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윤리적 자기구성의 가능성을 모색하게 된다. 그리고 ‘자아에의 배려’ 혹은 ‘자기의 테크놀로지’라는 그리스인들의 미적 윤리에 그 해답의 실마리가 있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미적 원리를 윤리적 자기 구성에 도입하면 폭력성이 없어도 강력한 윤리적 자기 구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푸코가 주장하는 미적 윤리학은 최근에 대두하고 있는 탈근대 사상가들의 유미화, 미학화의 경향을 보여주는 예이다. 실제로 요즘 푸코 외에도 여러 사람에 의해 서서히 ‘존재미학’이라 불릴 만한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령 리차드 로티가 말하는 신실용주의적 ‘아이러니’는 인식론적 회의주의에서 적극적인 미적 윤리로 나아가는 전략이며, 아울러 누스바움의 신아리스토텔레스주의 역시 고대의 미적/윤리적 원리를 오늘날에 되살리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삶(bios)에 형상(eidos)을 줄 때에 비로소 존재자는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존재한다는 것은 곧 자기 삶에 미적 형식을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미적 형식은 윤리적 강제와 윤리적 방종이라는 근대적 이분법을 뛰어넘는 삶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우리 사회는 전근대적인 슈퍼에고의 폭력과 여기에 반발하는 몰취향한 성적 퇴폐가 묘하게 공존하는 괴상한 아노미 상태를 보이고 있다. 전근대적인 슈퍼에고는 자기 포기, 내지 쾌락으로부터 도피를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처녀성의 도덕”을 사회에 강요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초도덕적인 사회가 그 이면에 엄청난 성적 타락과 방종을 조장하고 있다. 쾌락을 겁내어 그 앞에서 도주를 하는 도덕주의와 쾌락에 함몰되어 그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향락주의는 어쩌면 ‘노예의 도덕’의 두 얼굴이다. 그런 의미에서 < 향연>이 제시하는 존재미학의 가능성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에토스의 형성을 위한 원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맑스는 “미래의 윤리학은 미학”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시대의 에토스는 미학적인 성격의 것, 즉 미적 에토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푸코의 < 향연> 독해

우리에게 윤리란 오직 “국민윤리”뿐이고, 우리가 배운 유일한 도덕은 “반공도덕”뿐이다. 학교든 사회든 개인을 배려하는 윤리나 도덕을 가르쳐준 적이 없다. 윤리성을 갖는 것은 충실한 “국민”이 되는 데에 있고, 인간이 지켜야 할 최고의 덕목은 “반공”이라고 배웠을 뿐이다. 물론 이는 국가주의 파시즘의 통치를 받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하는 극단적인 예이나, 서구의 근대 역시 비록 이렇게 극단적이지는 않다 해도 어떤 보편적인 정치적, 종교적, 도덕적 규범을 제시하면서 사회성원들에게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사회가 설정한 규범에 자신을 뜯어맞추는 것이 곧 윤리요, 도덕이라 가르쳐왔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자기를 포기하라고 가르치는 도덕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자기를 배려하는 윤리가 있었다.

푸코에 따르면 이 자기 배려의 윤리는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먼저 자기의 몸을 배려하는 양생술, 이어서 자기 가정을 배려하는 가정관리술,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를 배려하는 연애술이 그것이다. 여기서 양생술은 적절한 운동을 하거나 히포크라테스가 제시한 다이어트 목록에 따라 섭생을 함으로써 몸을 늘 건강하게 유지하는 수완(=테크네)를 말한다. 오늘날 ‘경제’라는 낱말의 어원이 된 가정관리술은 남성이 배우자와 함께 농장을 관리하고 후사를 잇는 데에 필요한 수완이었다. 그리스인들에게 부부 사이는 연인이라기보다는 가정관리를 위한 조력자라는 의미가 강했기에, ‘에로틱’은 부부 사이의 사랑이 아니라 성인 남성과 어린 소년 사이의 동성애의 관계를 배려하는 수완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세 가지의 성애가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었다. 이성애, 게이, 레즈비언. 이중에서 어느 특정한 성애를 보편적 규범, 신이 부여하신 자연의 질서로 모든 이에게 강요하는 문화란 그리스인들에게는 아직 낯선 것이었다. 그들이 모든 성애를 허용했다고, 성을 전혀 규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규제하는 방식이 전혀 달랐을 뿐이다. 가령 그리스인들이 성을 규제하는 원리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먼적 양적인 기준으로 ‘과도하냐, 적절하냐’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특정한 성애의 형태를 금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성애든 과도한 성교로 방종에 빠지는 것만을 규제했던 것이다. 다른 하나의 기준은 질적인 것, 즉 ‘성행위 속에서 역할이 능동적이냐, 수동적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리스인들은 남성이란 성행위 속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두 가지 원리를 가만히 보면, 그리스인들이 성을 규제하는 원리는 ‘도덕적 금지’가 아니라 ‘미학적 절제’였음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그리스인들은 성 윤리를 미적으로 조직했던 것이다.

플라톤의 < 향연>에 따르면 에로틱은 양생술로도 막을 수 없는 육체의 유한성을 극복하는 수완이다. 즉 육체적 영원성에 도달하려면 여자에게 가서 후손을 얻으면 되고, 정신의 영원성을 얻으려면 미소년에게 가서 그의 머리 속에 자기 생각의 씨를 심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동성애에 그 어떤 성애보다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다. 그들에게 동성애, 즉 성인 남성과 미소년 사이의 성애는 그저 개인적 차원의 사적 관계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동시에 기성세대가 폴리스의 미래를 담당할 2세들을 교육하는 공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말하자면 성인 남성은 소년과 달랑 성 관계만 맺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소년과 함께 운동을 하고 그에게 지혜의 말을 들려줌으로서 그의 몸과 영혼을 성숙하게 만드는 폴리스의 임무를 수행했던 것이다. 이렇게 동성애 속에는 사적 애정의 충족과 공적 의무의 수행이 행복하게 통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동성애가, 그것도 성인 남성과 미소년 사이의 동성애가 그리스인들의 성담론의 중심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인 남자와 미소년의 관계에는 사적 애정과 공적 임무의 이 행복한 결합을 교란하는 요인이 내재되어 있었다. 즉 사적인 애정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 관계 속에서 능동적(=남성적) 역할은 자연스레 성인 남자에게 돌아가고, 구애를 받는 수동적(=여성적) 역할은 소년에게 돌아간다. 반면 공적 임무의 측면에서 보면 성인은 소년을 무엇보다도 ‘남자’로 키워야 했다. 말하자면 성관계 속에서 여성적 역할을 하는 소년을 동시에 남성으로 키워야만 한다는 모순. 이것이 그리스인들로 하여금 이런 류의 동성애를 끊임없이 문제삼지 않을 수 없게 했던 것이다.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유일한 방법은 소년이 자라남에 따라 점차 그 관계의 성격을 사랑(=아프로디지아)에서 우애(=필리아)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아무리 동성애를 허용했던 그리스인들이라도 다 자란 성인 남자 사이의 동성애는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보았다. 즉 사랑을 우애로 전화시키지 못하고, 다 자란 성인이 되어서도 과거와 똑같은 형태의 애정관계에 빠져 헤매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왜? 다 자란 성인 남자 둘이 관계를 맺을 때, 그 관계 속의 한 사내는 남자가 아니라 여성의 역할을 하고 있을 터이고, 이렇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할 남성이 성인이 되어서도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여성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주인의 도덕’에 위배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성인 남자와 소년의 동성애는 소년에게 2차 성징이 나타날 때쯤에는 서서히 남성적/여성적이라는 ‘불평등한’ 아프로디지아의 관계에서, 둘 다 능동적인 남성의 역을 하는 ‘평등한’  필리아의 관계로 발전해야 했다.

이렇게 보면 이제 플라톤의 < 향연>이라는 텍스트가 가진 의미가 드러난다. 푸코가 보기에 < 향연>은 구애의 ‘주체’인 성인 남자와 구애의 ‘대상’인 소년 사이의 불평등한 아프로디지아의 관계를 두 ‘주체’ 사이의 평등한 필리아의 관계로 전환하는 전략과 관련이 있다. 가령 성인 남자와 소년의 관계를 보자. 성인 남자는 자기가 가진 ‘지혜’로써 소년에게 구애를 하고,구애를 받는 소년은 아름다움 ‘몸’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지혜는 성인 남자의 머리에서 소년의 머리로 옮겨지고, 소년은 그 대가로 자기의 몸을 허락한다. 지혜가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흐르는 일방적 관계를, < 향연>은 두 주체가 함께 지혜를 찾아 나서는 평등한 필리아의 관계로 바꾸어놓으려 한다. 이제 지혜는 성인의 머리가 아니라 저 천상의 이데아의 세계에 존재하고, 남자와 소년은 함께 그 지혜를 지향하는 도정 속에서 평등한 동반자가 된다.

가령 소크라테스를 생각해 보자. 지금 남아있는 조상으로 보아 그는 결코 잘 생긴 얼굴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많은 소년들의 사랑을 받았다. 정신의 ‘지혜’와 몸의 ‘절제’로써 그는 이렇게 구애의 주체인 동시에 소년들의 사랑을 받는 구애의 대상이 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나는 지혜를 갖고 있지 못하나 그것을 낳게 할 수는 있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소위 ‘산파술’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지혜는 소크라테스의 머릿 속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지혜를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그것을 소년의 머리 속에 옮겨줄 수도 없다. 하지만 그는 “지혜를 낳게 할 수는 있다.” 말하자면 소년과의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그 대화 속에서 진리를 산출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소크라테스와 소년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지혜를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지혜를 생산하는 주체가 된다. 바로 이렇게 일방적인 아프로디지아를 평등한 필리아로 바꾸어 놓는 수완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에로틱의 대가였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소년들의 구애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 향연>에 나오는 ‘계단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드러난다. 거기에서 디오티마라는 무녀는 하나의 몸의 아름다움에서, 여러 개의 몸의 아름다움으로, 거기서 영혼의 아름다움으로, 거기서 법과 제도의 아름다움으로, 나아가 미 그 자체, 저 천상의 미의 이데아로 상승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이는 육체적 아프로디지아에 매몰되지 말고, 그 관계를 발전시켜 인간의 영혼과 지적 산물과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상승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육체적 사랑에 머물지 않고 대등한 주체가 되어 함께 저 지혜의 세계, 저 천상의 이데아를 향해 올라가는 연인의 등에는 깃털이 돋아나, 두 사람의 영혼은 날개를 달고 저 천상으로 상승하게 된다. 이 두 연인의 필리아(philia)는 지혜(sophia)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그의 지의 사랑을 우리는 필로소피아(philosophia), 즉 철학이라고 부른다. 결국 그리스의 철학은 본디 에로틱에서 나왔다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철학은 애초에 몸에서, 즉 섹스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흔히 말하는 ‘플라토닉 러브’란 실은 플라톤과는 별 관계가 없는 말이다. 플라톤은 결코 육체적 사랑을 배제하지 않았다. 외려 그에게 육체적 사랑은 이데아를 향한 영혼의 비상이 시작되는 전제조건이었다. 그가 경계한 것은, 아프로디지아의 관계에 매몰되어 거기에만 머물면서 더 고차적인 단계로 사랑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에로틱에서의 무능력이었다. 동침을 하더라도 성교를 절제한 소크라테스의 금욕은 결코 자기의 쾌락을 포기한 처녀성의 도덕이 아니었다. 그는 심히 목이 마를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야 물을 마심으로써 물을 마실 때마다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심히 목이 마를 때까지 참는 그의 금욕이 결코 쾌락의 포기가 아니라 더 큰 쾌락을 위한 것이었듯이, 성에 관한 그의 금욕과 절제 역시 실은 더 큰 쾌락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고대 말에 이르러 서서히 그 의미가 변화하여 중세의 기독교 문명이 시작되면서, 영혼을 위해 육을 경멸하고 쾌락 자체를 죄악시하는 도덕적 코드로 변질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여기서 푸코는 고대 그리스의 성도덕을 오늘에 되살리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그리스에서 주목하는 것은 오늘날의 상황과 맞지 않는 당시의 구체적인 성도덕이 아니다. 그리스인들이 자신을 윤리적 주체로 구성하는 그 미학적 방식, 푸코의 관심은 바로 거기에 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굳이 윤리적 규준이나 도덕적 규범을 개인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다할 금지 없이도 성생활이 방종에 흐르지 않게 형식과 스타일을 부여하는 그리스인들의 미학적 자기 구성의 방식. 바로 그것을 오늘날에 되살리고 싶은 것이다. 나쁜 일을 하는 것보다 촌스러운 일을 하는 것을 더 꺼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때로는 미적 원리가 딱딱한 도덕규범보다 더 큰 윤리적 구성력을 가질 수가 있다. 한 마디로 개별 인간들을 어떤 보편적 규범 하에 종속시키는 강압적 방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미적 윤리에 따라 자아를 구성할 가능성을 그리스인들에게서 보았던 것이다.

흔히들 < 성의 역사> 1권과 2권 사이에 푸코의 사유에 ‘단절’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2권을 쓰는 시점에서 전기 푸코와 후기 푸코의 문제의식에 전환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 ‘단절’을 ‘연속’으로 파악하지만, ‘단절’이든 ‘연속’이든 이 책에서 푸코의 관점은 180도로 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는 주체를 담론이나 권력의 효과로 간주함으로써 주체를 객체화했다면, 이 책에서부터 그는 주체의 자기 구성이라는 관점에서 담론과 권력의 망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물론 이 관점의 전환이 푸코의 앞의 저작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외려 푸코의 이러한 전환은 전기의 저작들이 가진 논리적 필연성 위에서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푸코에게서 “주체”는 죽지 않았다. 죽은 것이 있다면 신민(=subjet)이라는 의미도 가진 근대적 주체(=subjet)이고, 그 낡은 주체의 주검에서 새로운 주체, 즉 ‘자아’라는 이름의 주체가 등장한 것이다. ‘자아’란 자기배려의 윤리로 자기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미적 주체, 자기 삶을 작품으로 만들어나가는 예술적 주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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