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도라는 과 동기넘 땜에 얼떨결에 어떤 아가씨랑 채팅을 하게 되었다. 또 얼떨결에 번개팅까지 하게 돼 버렸다. 그렇게 해서 얼떨결에 보게 된 ‘비포 선라이즈’는 세 번째임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매력이 넘치더라. 열정 어린 아이 같은 에단 호크도 매력적이지만, 주관이 뚜렷하고 보통 내기 여자 같지 않은 샐린느의 매력은…이상형이라는 것을 만들라고 한다면 샐린느가 바로 그 모양새가 될 것 같다.
이 영화에는 그 양만큼이나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대사들이 많다. 예컨대 이런 거…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평생 일에만 매달려 살았어. 52세에 문득 깨달았지. 사랑을 줘본 적이 없다는 걸. 삶이 무의미해졌대. 울면서 그렇게 말했어. ‘만일 신이 있다면 우리 안엔 없을 거야. 너나 내 안엔. 우리 사이의 공간에 존재할 거야.’ 마법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 있을 거야.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겠지. 그럼 어때? 해답은 노력 속에 있어.” – 샐린느
즉자 05/07[21:11] 엇! 번개팅? 어떠했는지 궁금하군… Carlito 05/07[22:35] 나는 번개팅 같은 것으로 쉽게 인연이 만들어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즉자 05/10[00:58] 그렇다만, 삶은 알수 없는 일 투성이기도 하지 않냐~^^; Carlito 05/10[17:45] 그렇다고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또한 부질없는 일일 수도 있지…
굳이 이 영화를 ‘평등’이라는 의미에 천착해서 보지 않더라도, 해석은 매우 용이하다. ‘블루’나 ‘레드’와는 달리 이 영화는 장르적 틀 안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나마 번역이 수월했던 영화.
평등 : 폴란드인 카롤이 프랑스인 도미니끄와 결혼하고 프랑스에 거주하며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일종의 성불능 상태에 놓인다. 이는 계속 지켜보면 심리적 억압이나 위축에서 기인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성적 쾌락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프랑스인 도미니끄가 이혼을 하려 하는 데에는 볼품없고 기백없고 발기도 잘 되지 않는 왜소한 카롤에 대한 못마땅함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카롤은 도미니끄로부터 버림받은 후 비참한 모습으로 프랑스 거리를 떠돈다. 그는 처절하게 폴란드로 돌아가 독하게 돈을 모으고는 위장 장례식을 치르고 유산을 도미니끄에게 넘겨준다. 그러나 그것은 예전의 멸시에 대한 복수였다. 자신이 처했던 위축된 상황, 왜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스란히 도미니끄에게 경험시키기 위한 계략이었다. 카롤의 살해 혐의로 옥살이를 하는 도미니끄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동등한 위치에 서서 서로를 존중하는 것만이 사랑이라는 것을. 진정한 평등 하에서의 관계란 어떠한 심리적 위축감도 개입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카롤은,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카롤은 도미니끄 앞에서 위축될 것이 없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는 도미니끄에게 오르가즘을 선사해 줄 수 있었다.
병을 넣으려는 노파 : 자기 키보다 조금더 높은 위치의 구멍으로 병을 넣으려 애쓰는 한 노파는 ‘블루’, ‘레드’에도 나온다. 항상 이 노파는 주인공에 의해 관찰되고,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노파를 지켜보던 주인공은 웃음을 잠시 머금으며 관조하다가(동시에 자신에 대한 관조? 자기의식과 동시에 운명에 대한 선택의 순간?) 문득 작은 결심을 하게 된다. 이렇게 같은 장면으로 비슷한 심상과 전환 효과를 내면서 이 노파는 세 영화를 이어준다.
비둘기 날개 소리 :
하나 — 이 영화에서는 줄곧 비둘기는 보이지 않더라도 비둘기 날개 소리가 주인공 주변을 맴돈다. 나의 작위적 해석을 듬뿍 가미한다면, 이 음향 장치는 주인공의 감정이나 사고의 전환과 처한 입장의 변화 등이 일어날 때 그것을 감각적으로 체크할 수 있도록 설정된 것 같다. ‘블루’에서는 잠시간의 암전이 일종의 소격 효과를 일으키며 관객의 몰입을 저지하고 생각을 정리할 여지를 부여한다. 이 음향 장치는 관객이 내러티브의 전개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장치이자 앞으로 일어날 인물의 변화 양상에 대한 예측을 유도하여, 감상의 용이함을 도우면서도 동시에 관객의 능동적 감상을 안내하는 것, 다시 말해 감상의 용이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유발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말고)
둘 — 엇갈렸던 두 인물의 위상이 일치되는 지점? 카롤에게는 위축되었던 심리가 극복되는 순간, 도미니끄에게는 카롤의 위에서 그와 동일선, 또는 그 아래로의 위치 변화…평등이라는 관계가 성립되는 찰나의 순간? 평등이란 한 번 성립됨으로써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각자의 위상의 변화 사이에 잠시잠시 이루어지는 순간적 상황?
셋 — 아니, 첫장면에서 카롤은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 비둘기의 똥 세례를 받는다. 평등의 상태가 무너지는 상황을 뜻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위의 허접 해석과 정반대로 비둘기는 평등의 균열상태를 뜻하는 것인가?(한 번 보고는 절대 섣부른 판단 불가)
프라이즈너의 음악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프랑스에서의 클래시컬하면서도 현대적 느낌의 음악, 폴란드에서의 민요풍 흥겨운 음악…그러나 정성일 씨에 의하면 음악이 흐르는 순간 그 장면은 이미지의 진실을 회의케 하는 픽션적 성격이 덧입혀진다고 한다…(이해하기 힘듬)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서 자신이 존중받기를 원할 수는 없다. 상호간의 존중이란 동등한 위치에서만 가능하다…
대학입시 심층 면접 예상 문제 정윤수의 이창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문 1. 다음 제시문을 읽고 문대성의 입장이 되어 의견을 말하라. 요즘 태권도협회가 국가대표 선발전의 잡음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지난해 시드니올림픽 선발전에서도 미담 속의 잡음이 한 차례 있었다.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것 자체가 금메달 수상과 직결되는 태권도. 이 종목에서 10여년 이상 세계를 평정한 불세출의 영웅 김제경을 위하여 김경훈과 문대성이 기권과 부상이라는 이름으로 선발전 자체를 ‘무의미한 영광’으로 만든 바 있다. 그런데 김제경이 부상으로 시드니행이 좌절되자 그때부터 영광에 금이 갔다. 협회는 2, 3위에 재대결을 결정했고 이에 99년 세계챔피언인 2위 문대성 선수가 1위가 낙마하면 2위가 출전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보이콧을 했다가 어쩔 수 없이 재대결을 치렀는데 김경훈에게 지고 말았다. 김경훈은 시드니의 면류관을 썼다. 너무 쉬운 문제라구? 그렇다면 문 2. 당신이 다음 시합의 4위 선수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시드니의 꽃 강초현. 올림픽 이후 그녀의 삶은 180도로 바뀌었다. 새 아파트를 얻었고 충남대 체육교육학과에 일시 진학한 바 있으며 독일 사격장비업체, 온라인게임회사, 의류업체의 모델로 새 삶을 살았다. 베스트드레서 시상식이나 우리 영화 보는 날 같은 행사에 도우미로 불려다녔으며 조성모, 이휘재 등과의 깜짝 이벤트에도 나갔다. 부도덕한 뮤직비디오 <아시나요>의 파문을 수습하기 위한 기획사의 전략에 말려들었다는 충고는 사후약방문이었다. 그 모든 과정에 미디어가 개입했다. 강초현은 해병 청룡부대에 입소해 지옥훈련을 받았다. 강초현은 미디어의 강요에 따라 여자 코스보다 세배 이상 긴 남자 코스에 도전했으며 로프를 잡고 중간까지 갔다가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카메라는 이 과정을 생생히 잡아냈다. 이들은 시합장까지 쫓아갔다. 수십대의 ENG 불빛과 셔터 소리를 들으며 사대에 오른 강초현이 지난 몇 개월 동안 꼴찌에 예선 탈락을 반복한 것은 당연한 노릇인지 모른다. 결국 며칠 전 서울월드컵대회 선발전에서 강초현은 17위의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다. 여갑순 이후 여자 사격의 대들보였던 비운의 최대영이 1위, 장미가 2위, 비공인 세계타이기록을 세운 이문희가 3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사격연맹의 어이없는 규정 해석과 무언의 압박에 따라 2위를 차지한 장미 선수가 출전 포기를 밝혔고 연맹은 17위의 강초현을 대표로 뽑았다. 올해 전문대에 입학한 장미 선수는 잇따른 대회출전으로 수업결손이 많아 출전을 포기했다고 밝혔는데 전혀 설득력이 없다. 진작에 수업이 걱정이었다면 선발전에 출전하지 말았어야 했으며 그럼에도 2위가 포기했다면 4위가 선발되는 게 원칙 아닌가. 강초현 역시 지난 시드니 선발전에서 무명으로 2위를 했다가 자신보다 관록 높은 3위를 내보내야 한다는 변칙 대신 2위를 내보내야 한다는 원칙에 힘입어 시드니로 갔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 상황. 자, 이 과정을 4위의 입장에서 풀어본다면 어찌될 것인가. 마지막 문제. 다음 제시문을 읽고 ‘착한 사람은 위대한 예술을 만들 수 없다’는 말 같지도 않은 가설을 믿는다는 전제 아래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이 비장하게 죽는 장면을 비판적으로 설명하라. 에스더 김은 한국계 미국인 태권도 선수. 탁월한 기량으로 대표 선발이 유력했으나 같은 체급의 동료 케이 포가 준결승에서 부상을 입는 바람에 에스더 김은 아예 결승전 출전을 포기해버렸다. 결과는 몰수패. 에스더 김의 놀라운 결정 덕분에 포가 대표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미담이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 스포츠 감상주의의 대제전인 올림픽으로서는 에스더 김의 이 기막힌 드라마를 놓칠 수 없었다. 각종 외신과 인터넷을 들끓게 한 이 미담은 <오프라 윈프리 쇼>를 통해 천사들의 이야기로 등극하였으며 미국 올림픽위원회는 에스더 김에게 스포츠맨십상을, 그리고 미 하원의장은 감사장까지 수여하였다. 사마란치는 특별 초청 케이스로 에스터 김을 시드니로 불렀다. 에스더 김에게는 ‘진정한 승자’라는 닉네임이 주어졌다. 이 세레모니의 조연 케이 포는 어찌해야 좋은가. 준결승에서 뼈아픈(실제로 케이 포는 무릎 연골 덮개가 탈골되는 중상을 입었다) 부상을 입은 것도 억울한데 이제는 ‘진정한 승자’의 조연이 되어야만 하는 케이 포. 원하지도 않게 ‘진정한 승자’의 들러리가 된 케이 포. 결전의 날. 시드니 올림픽파크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플라이급 1회전에서 케이 포는 덴마크 선수에게 패해 패자부활전으로 밀려난 뒤 결국 예선 탈락했다. 이때 중계 카메라는 매트의 패배자 케이 포를 잠시 비추더니 관중석의 ‘진정한 승자’, 탈락의 비운을 맞은 동료를 향해 아쉬운 눈물과 격려의 손짓을 보내는 에스더 김을 비춘다. 혹시 케이 포는 일부러 진 것은 아닐까. 에스더 김은 그날 경기장에 나오지 말았어야 한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