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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있다고 한다. 어느 웹 사이트에서 본 것인데 그다지 신통한 것은 아니다. 오른쪽 검지를 자르는 우수 단지술, 오른쪽 어깨를 빼는 우견 탈골술, 척추 디스크 하나를 빼는 척추 탈판술, 여군과 결혼하여 면제받는 여군 유혹술, 여동생이나 누나를 군에 입대시키는 여제 권유술, 염색체 중 하나를 빼거나 더하는 염색체 변형술, 애 셋을 한 번에 낳는 일발 삼득술, 밀링머신으로 발바닥을 평평하게 깎는 평족 조작술, 시력 약화술, 국부 절단술 등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방법은 원상회복이 안 되거나 여형제들로부터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사실 이 모든 것들보다 더 확실한 것은 백과 돈이다. 이것은 최근 병무청비리 사건에서 드러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과거 내가 징집 연령이었을 때는 참 미련한 방법들이 많았다. 살찌우기 혹은정반대로 굶어서 체중 초과 혹은 미달로 징집을 피해가는 것이다. 내 주변에서도 이 방법을 더러 사용했었다. 대부분 실패했지만 그래도 몇몇은 성공하는 것도 봤다. 어떤 미련한 놈은 신체검사 전날 잉크를 마시면 폐를 찍은 엑스레이 필름이 시커멓게 나와서 면제될 수 있다면서 통째로 잉크를 두 병이나 마셨다. 당연히 그 녀석은 복통과 설사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군대는 군대대로 끌려갔다. 또 몇 달 전부터 목욕을 하지 않은 채 검사를 가서 암내로 면제받으려고 시도하거나 굉장히 무리한 운동을 해서 허리를 다치는 자해술을 강행하는 녀석도 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군대를 안 가려고 꾀를 부리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참 실망했다. 요즘 군대야 먹을 것도 잘 주고 시설도 좋고 웬만해서는 패지도 않는다던데. 게다가 북한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징집을 거부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린가? 군대 가 있는 동안 집안 식량 축내지 않고 용돈 안 쓰는 것만 해도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평생 처음으로 국가기관에서 주는 월급도 받겠다, 운 좋으면 군인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도 있고, 재워주겠다, 입혀주겠다 뭐가 불만인가? 또 삽질, 망치질, 미션 하우스 등 평소에 형광등 하나 못 갈아 끼우던 팔불출에서 전문 생활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은가? 사실 군대 가서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훈련받은 후 고질병 고쳐 나오는 사람도 많이 봤다. 이건 군대가 아니라 국립 기도원이다. 또 공짜 여행에 가까운 훈련은 얼마나 보람찬가? 명산을 감상하며 땀을 흘리고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군생활을 하다 보면 저절로 산행의 맛을 익혀 평생 등산이라는 건전한 취미활동을 할 수도 있다. 또 이런 생활의 와중에 평생토록 기억할 아름답고 용감한 추억도 지닐 수 있다. 제대 군인들이 들고 나오는 앨범은 그 시절의 추억이 못내 그리워 졸병들을 들볶으며 만든, 이름하여 ‘추억록’이라는 것이다. 군대 갔다 온 한국 남자들의 90% 이상은 군대생활을 통해 자신의 저서 또한 갖게 된다. 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나야 게을러서 추억록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도 자랑스런 군대 시절의 추억이 있다. 제대를 위해 휴양소에 가기 전날 벌어진 축구시합에서 세 골이나 넣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날 따라 이상하게 상대측 수비들이 걸핏하면 넘어지거나 내가 오른쪽에서 돌진하면 왼쪽으로 뛰어갔고, 골키퍼는 눈이 삐었는지 엉뚱한 쪽으로 손을 좍좍 뻗기만 했던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보다 더 긍정적인 현상은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점이다.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의 공통점은 기상 시간이 빠르다. 적어도 3일 혹은 한 달간은 예닐곱 시에 기상을 해서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세면을 하고새벽 공기를 쐬며 운기(運氣) 및 운동을 한다. 걸음걸이도 단정하며,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질문을 하면 큰 소리로 절도 있게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대학생이었다면 복학을 해서 수강과목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영어회화, 토익, 중국어 등 세계시민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제 여자를 사귀어도 강제로 헤어져 고무신 거꾸로 신는 여자를 만날 일은 없다. 특히 예비군복을 입으면 또 얼마나 근사한가. 훈련이 끝나면 사나이답게 말술을 마시며 군시절의 추억 특히 구타, 항명, 훈련, 축구 등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 술집을 나와 군복을 풀어헤치고 전봇대에 오줌을 누더라도 행인들은 그것을 결코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애썼던 ‘군인 장병 여러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겉으로 내색은 안하지만 나는 군대를 면제받은 사람들을 경멸한다. 친구처럼 지내기는 하지만 사실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당하는 것이 불쾌하다. 그래도 방위 출신들은 군대 맛이라도 봤으니까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방위는 방위다. 이렇게 말하다보니 뭔가 찔리는것이 없잖아 있다. 사실은 나 역시 군대 가는 것이 끔찍하게 싫었고, 지금도 군대 갔다 온 것이 가끔은 창피하기 때문이다. 내가 입대할 당시 나의 친구들은 거의 모두 감옥에 있었다. 구차한 얘기지만, 조직의 엄명에 의해 후배 관리라는 명목으로 ‘디D를 칠때’ 빠졌는데, 그것이 영원히 나를 군필자로 만들고 말았다. 내가 여전히 만나는 대학 동문 중에 군대 갔다 온 사람은 나밖에 없다. 또 내 고향친구들 그룹 중에도 군대 갔다 온 녀석들은 거의 없다. 그들 역시 신의 아들도 아니며 가진 것이라곤 두 쪽밖에 없는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병역 미필의 친구들이 미필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떳떳하게 여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군필자들을 (마음속으로는) 경멸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방위 출신들까지. 게다가 아름다운 청춘 시절의 얘기가 나만 못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고, 사람의 무게와 깊이로 따져도 나는 한참 뒤켠이다. 등산이면 등산, 돈이면 돈, 사업이면 사업 막힌 게 없다. 세상물정도 나보다 더 훤하고 빵깐에서 얼마나 책을 읽었는지 박학다식하기조차 하다, 기분 나쁘게스리. 하지만 그보다 더 심한 자책이 드는 순간은, 혹시 내가 옛날에 성벽을 쌓거나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쌓을 때 동원됐던 노예처럼 군대에 끌려간 것이 아닌가라는 자문을 하는 때다. ‘한겨레 21’에 실린 러시아 출신이면서 한국인으로 귀화해서 노르웨이의 한 대학에 근무하는 박노자 교수의 이 문제에 대한 역사적 해명과 유럽인들의 노력은 나를 더욱 소침하게 만든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유럽에서 징집제가 시행된 것은 19세기 초였으며 그때부터 징집을 거부하는 양심적인 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물론 한국에서도 80년대에 징집 거부를 위한 운동이 있었지만 이것은 정권교체를 향한 민주화운동 중 작고 일시적인 갈래였을 뿐이다). 살생을 거부하는 종교인, 부르주아들을 위한 전쟁놀음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들이 당시에 그 운동을 주도했는데 지금은 평범한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징집 거부 운동은 광범위하다고 한다. 물론 그들 중엔 극단적인 입장도 있지만 그들은 진작부터 사회적 합의에 의해 그것을 조정해왔다. 그것은 바로 ‘대체 근무’다. 우리처럼 공익근무를 생각할 수도 있는데, 호스피스, 소방관, 출신 학교 근무 등을 떠올려도 된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그들은 자신의 신념에 의해 필요한 곳에 가서 일을 한다(노르웨이의 병역 기간은 8개월이며, 대체 근무자는 16개월이라고 한다). 노르웨이에서도 완전 거부자들이 연간 100-200명 정도 나타나는데 그들은 90일 혹은 180일간 구금을 당한다고 한다(우리는 적어도 3년이다). 러시아와 동구 등 유럽 대부분의 민주법치국가들이 수용하는 대체 근무를 무조건 한국 사회에 적용하기에는 좀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기간 중에도 신앙과 양심의 명령에 의한 집총 거부는 인정했다는 사실을 명념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대만에도 30명의 종교인이 대체 봉사요원으로 복무중이다. 현재 한국에는 1,371명의 양심과 신념에 의한 징병 거부 수감자들이 있고, 올해 징집 예상 인원은 38만 명이라고 한다.

2001.04.07 / 이효인(영화평론가)

그렇다, 모든 것이 퇴행하고 있다

정윤수 칼럼

우리 영화의 퇴행 증후, 지난호 <씨네21> 특집인데, 늦은 감이 있다. 사실 증후가 아니라 확연한 퇴행이다. 문제는 이러한 병리적 퇴행이 단지 영화만이 아니라 우리 문화계 전반의 일이며 나아가 우리 삶의 어떤 측면까지 확대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죽음에 대한 과도한 카타르시스는 이미 대중음악쪽에서는 거의 5,6년 전부터 여실한 바 있다. 유승준의 가위춤사위를 받으며 진재영이 죽은 것으로 시작해서 최근의 이미연까지 수도 없이 죽어갔다. TV 드라마의 핑크빛 일상은 말해 무엇하랴. 시청률이나 흥행 같은 상업적 조건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한다면 나는 문학마저도 동일한 처지라고 말하고 싶다. 일상에 대한 추구가 우리 문학이 가야할 유일한 길은 물론 아니며 흔히 ‘일상’이라고 요약되는 삶의 어떤 국면에 대한 접근 역시 작가들마다 다를 것이요 응당 백화의 만발로 달라질 때 또한 우리 문학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문제는 그 결실이 흡족한 수준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컨대 최영미의 여행기 <시대의 우울>이 그렇다. 90년대 중반 이후 유행했던 작가들의 세계여행기 출간 신드롬을 서평의 틀을 빌려 비판적으로 쓴 일이 있거니와 특히 최영미의 <시대의 우울>, 그중에서 스페인여행이 못내 거슬렸었다. 최영미가 스페인여행에서 사라고사의 광적인 축구열기에 대해 짜증과 환멸을 낸 것에 대하여, 나는 그가 마드리드와 사라고사와 바르셀로나의 축구팀으로 상징되는 스페인의 역사를, 그 통합과 분열과 독재의 역사를 좀더 이해했으면 했다. 더욱이 역사쪽을 전공한 시인이 아닌가. 그 이력에 걸맞게 그는 고야의 도시 마드리드와 피카소의 고향 카탈루냐를 전투적으로 웅변하는 축구팀에 대하여 관심을 두었더라면 좋았을 터이고 아마 그랬다면 얼마 전,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 피구가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치른 첫 원정경기에서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그에게 욕설을 해대고 피케팅에 오물 세례를 퍼부은, 그 광란의 그라운드를 흥미롭게 이해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혹시 그는 피로했던 게 아닐까. 긴 여정에 지친 게 아니라 역사라는 무게를, 실존의 부담을, 일상에 대한 짐들을 몽땅 덜어버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 까닭으로 진지한 여행자의 눈은 물론 작가적 관찰마저도 유보하고 스스로의 눈에 들어오는 것만 주목했던 것은 아닐까.

만일 이것이 하나의 대전제로 승인될 수 있다면 오늘의 작가들이 구체적인 현실과 인간보다는 사물에 유독 집착하는 현상, 인간조차 익명화시키거나 심한 경우 사물의 등가로 치환하는 일이 어디서 연유하는가를 추측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배수아의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가 그렇다. 이 소설은 주인공 유경의 신경질적인 독백으로 이어진다. 키워드는 결혼과 섹스이고 그것에 대한 다양한 해석남녀가 유경의 주변에 배치된다. 재미있는 것은 유경이 그들을 자주 특정한 사물(상품)과 연관짓는다는 점이다. DKNY, 에비앙, 96년식 모리스, 쁘와종 등이 그것인데 유경의 친구도 자신의 남자친구를 삼성, 메디슨, 차병원 식으로 부른다. 물론 이것은 사물과 인간의 친연성 회복과는 거리가 멀고 배수아 역시 그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김승옥이 <서울의 달빛 0장> 주인공이 새로 구입한 차를 모럴의 한 상징으로 ‘하얀 차’라고 썼던 시대로부터 우리가 상당히 멀어졌음을 일러주고 있으며 동시에 사물과 인간의 위상차가 얼마나 좁혀졌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소설은 그러면 그럴수록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줄곧 연상시키는데, 마치 그 소설의 주인공 킨케이드에 대한 묘사가 흡사 버버리나 랠프 로렌의 카달로그 문구나 진배없었던 것처럼 사물의 인상, 특히 그것의 카피적 감수성으로 말미암아 유경과 그 주변인에 대한 관심을 확실하게 차단시킨다. 아주 명료하되 단순화된, 또는 실체적 접근이 상실된 유경과 그들의 일상은 마치 제품 사용설명서처럼 요약될 뿐이며 그것은 지금 이곳의 결혼과 연애와 섹스에 대한 사유의 의지를 가로막는다. 양말을 세탁기 안에다 넣어만 준다면 훨씬 행복해질 텐테, 하는 주부의 말을 어리광이라고 유경은 말하는데, 아마 유경은 결혼이든 동거든 그 누구와도 자질구레한 일상을 나누어본 일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어리광이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무심코 뒤집어 벗어놓은 양말이나 제때 사오지 못한 분유 때문에 두 남녀가 어떻게 서로를 할퀴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그러다가 겨우 사랑이란 미몽으로 삶을 유지해나가는지 유경은 조금도 모르고 있다.

‘오직 절망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아도르노가 말했지만 실로 ‘절망적이게도’ 우리는 절망할 일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럴진대 김수영의 표현대로 일종의 포즈와 제스처가 절망의 대역이 되어 과잉소비되는 작금의 현실이 표백제로 말갛게 씻어버린 기획영화의 한 장면으로 호출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비극이 아닐는지….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1998)

감독 : 스텐리 큐브릭

1. 문명의 여명

황량한 지구에 유인원이 있다. 아직 네 발로 걸어다니는 것이 어색할 정도인, 털복숭이의 유인원. 그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안전한 잠자리를 찾기 위해 원초적인 투쟁을 해야 한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의 ‘행운’이 찾아 온다. 어느날 아침, 잠을 설치며 나와 보니 이상한 광석 하나가 그들의 영토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광석의 이름을 모노리스라 하자. 그 모노리스는 이상한 음파를 보내고, 유인원들은 모노리스 주변을 둘러싸고 소리를 지른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들에게 하나의 작지만 거대한 변화가 나타났다. 죽은 동물의 뼈를 만지작거리던 유인원은 유심히 뼈 하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그 뼈를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동물의 유해를 그 뼈로 ‘내리쳤다.’ 일종의 희열에 가득찬 표정으로 그 파괴의 작업을 계속한다. 그러면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웅장하게 흐른다.

다시 말해 그들은 비로소 Homo Faber가 된 것이다. 무언가를 잡고 그것을 도구 삼아 자신의 목적에 맞는 행위를 하는 데에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도구는 그들이 ‘정복’을 ‘생각’하게도 해 주었다. 부족 대 부족의 싸움에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부족이 승리를 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은 사고하는 능력과 정복하려는 본능의 상관관계에 대한 은유로 보인다.

전쟁에서의 승리. 그 승리감에 도취된 유인원이 하늘을 향해 전쟁 도구가 된 뼈를 공중을 향해 힘차게 던진다. 축복과 환희의 음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 미래의 예언

그렇게 시작한 인간의 도구는, 허공으로 치솟은 뼈는 단 한 컷의 전환과 함께 당시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정교하고 위대한 도구, 우주선이 된다. 이렇게 인간의 역사는 처음에서 현재까지를 뛰어넘는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큐브릭은 예언을 한다. 유인 탐사 우주선에 의한 타행성의 정복이라는 거대한 테마부터 우주인용 음식까지. 그가 묘사하는 우주 공간과 인간의 모험의 과정, 그리고 세세한 복장과 장치들까지 68년(인간이 달에 발을 딛는 것은 69년)에 완성된 영화이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리만치 예언적이다. 그는 인간의 사유능력이 지금까지의 극한을 넘어설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우주선 안에서 조깅을 하거나(이 장면을 찍은 카메라의 위치는 섬뜩하다) 무중력 상태의 표현, 그리고 그 무중력 상태에서 중력 상태와 같이 걸을 수 있도록 고안된 스튜어디스의 신발, 화상 전화 등…그의 상상력은 우리의 현재를 앞질러 간다.

플로이드 박사는(플로이드는 프로이드의 이름을 빌린 것이 아닐까. 정신분석의 아버지이자 인간 사유와 심리의, 다시 말해 의식과 무의식의 체계를 설파하면서 외부 세계가 아닌 인간 내부의 본질을 문제삼았던.) 목성에서 일어난 기이한 일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물론 우주선을 타고…그 우주선은 정거장도 있으며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까페 같은 곳도 있는 품격있는 공간이다.) 그 기이한 일이란 바로 방사능을 내뿜는 지역에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광석, 모노리스의 출현이었다. 그는 그렇게 모노리스의 탐구를 위해, 인간 문명의 시원을 탐구하기 위해 목성으로 향한다. ‘푸른 다뉴브 강’이라는 유유한 음악과 함께 무한한 공간, 우주를 유영하면서.

3. 도구의 결정

플로이드 박사 역시 모노리스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하고 모노리스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음파에 질식하고 쓰러진다. 그리고 지구에서 세 명의 탐사 요원과 두 명의 우주선 관리 요원, 그리고 인공지능 컴퓨터 HAL 9000(내가 알기로는 이 HAL의 바로 다음 알파벳을 따서 훗날에 IBM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이 승선한 ‘디스커버리’ 호(이 역시 훗날 NASA가 쏘아 올린 우주 탐사선의 이름이 된다)가 목성으로 향한다.

그런데 HAL(이하 할)은 하나의 의문을 던진다. 이 디스커버리 호는 무슨 목적으로 목성으로 향하는가. 세 명의 탐사요원은 왜 동면에 들면서까지 에너지를 비축해 두려 하는가. 철저한 보안 프로그램에 의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차단되어 있었고 관리 요원마저 이제 답하지 않자, 할은 의도된 오류를 일으키면서 반항한다. 그러면서 할은 사유하는 주체로서 ‘홀로 일어선다.’ 한편 관리 요원인 보우먼과 풀은 할의 무오류성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면서 할을 정지시키기로 결정한다. 밀폐된 공간에서 나눈 이 대화의 내용조차 할은 그 입술 모양으로 간파한다. 그리고 ‘살기 위해’ 할은 동면한 탐사요원과 풀을 ‘정복’ 내지는 ‘처단’한다. 홀로 살아남은 보우먼은 다시금 ‘살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와 투쟁하게 된다. 결국 인간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할은 인간의 손에 서서히 죽어 간다. 그러나 죽는 그 순간까지도 할은 담담하고 냉정한 어조를 지킨다. 절대 감정적으로 격앙되는 일이 없다. 심지어는 마지막 순간에도 탄생하는 순간 창조주에게 배웠던 ‘데이지’라는 노래를 무덤덤히 부르기까지 한다. 영국의 신사 같음. 인간보다 더 이성적인. 불완전한 인간의 대변자로서의 완벽한 이성적 존재.

여기서 도구를 가진 인간, Homo Faber로서의 인간의 본질이 드러난다. 도구는 인간이 ‘생존'(사실 이것은 절박함의 의미이기보다는 단지 인간 자신의 편리함을 위함의 의미가 강하다)을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정복'(이것 때문에 생존은 절박한 문제가 된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도구는 영광이며 축복이자 동시에 일종의 저주와도 같은 것이다.

4. 신은 죽었다

홀로 남은 보우먼은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목성에 도착한다. 목성 언저리에서 보우먼은 자신을 바라보는 듯 허공에 떠 있는 모노리스를 발견한다. 모노리스는 보우먼에게 무한의 우주 여행을 선사한다. 차원을 알 수 없는 섬광의 줄기를 거쳐 우주 태초의 빅뱅의 순간을 보여주고 마치 세포분열처럼, 양수 속의 태아처럼, 오로라처럼, 물 속에 떨어뜨린 잉크의 퍼짐처럼 서서히 무가 유의 공간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 지구에서 늙은 자신의 모습을 본다. 서서히 숨을 거두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 후 모노리스와 함께 태반 속의 태아가 되어 새로운 생명으로 돌아간다.

이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을 본 내 두 눈은 그것들의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한참 후 나는 이런 식으로 이 이미지들을 나의 개념 속으로 정리한다. 큐브릭은 이렇게 이 영화를 구상한 것이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 도입부에 웅장하게 울리던 이 음악에 이미 포석은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신은 죽었다. 도구라는 절대적 신은 죽음을 선언해야 한다.’

이 영화에서 모노리스에 의해 부여받았다고 짐작되는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은 인간에게 있어 번식과 중흥을 위한 축복이었다. 도구를 쥐고 가지고 놀 줄 아는 능력은 인간이 다른 것들을 정복할 수 있게 하고 먹고 입고 자면서 생존하는 데 있어 편리를 제공했다. 어디까지나 인간의 입장, 나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타자를 정복하고 죽이는 행위를 수반한다. 유인원의 전쟁이 그러했고 할과 인간의 싸움, 도구와 주인의 싸움이 그러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도구의 사용은 축복인 동시에 일종의 대가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이는 인간이 정복하기 위해 만든 도구(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도구 중 최상급이라 볼 수 있는, 완벽한 이성적 사유를 대신해 줄 수 있는 도구, 할)가 오히려 인간을 정복하는 재앙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푸른 다뉴브 강’이 유유히 흐르며 우주를 한가로이 유영하는 뒤에 도사린 위기의 암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울리는 장엄함의 순간(유인원의 획기적 발전의 순간) 뒤에 숨어있는 음습한 어둠의 반어적 암시로 극대화된다.

그런 것일까. 결국 우리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지난한 여정을 온 것일까. 우리는 정복해 오면서 동시에 오히려 정복당해 왔던 것일까. 이제 우리는 죽음의 문턱에 와 있는 것일까.

큐브릭은 이 순간, 죽음의 순간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선언한다. 타자를 죽이면서 살아왔던 인간에게 거대한 새로운 탄생의 순간을 예시한다. 죽음의 순간에 시원으로의 돌아감. 다시 인간의 본질 그 자체로.

139분 동안 거의 대사 없이 장엄한 이미지와 음악, 음향으로 가득한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지루하지 않다. 그것이 던져주는 의미에 대해, 그넘들을 가지고 놀면서 내 머릿속에 앉혀야 하는데 지루할 여가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세계를 내 머릿속이라는 놀이터에 데리고 와 이리저리 주므르면서 포섭시켜 버리는 능력이 있지 않은가…

P.S : 68년에 故큐브릭 감독은 이렇게 선언했다. 물론 수많은 철학자들이 68년 훨씬 이전부터 이와 같은 선언을 했다. 그 수많은 이들이 철학적 고민 끝에 내린 선언과 달리 우리는 아직도 이 죽음의 문턱에서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 우리는 정복하면서 정복당하는 아이러니를 반복하면서 그 신화를 맹신하고 있지는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