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학력주의
-계급적 관점으로 바라본 학력주의의 본질
심인호(고대 교육학과 95) redyippie@hanmail.net

Ⅰ. 들어가며

성인식이라는 통과의례는 이제 향수나 장미다발, 또는 연인들과 친구들의 한바탕 축제로만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조금 더 합리적이고 진지한 통과의례를 만들어 냈다. 당당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고대인들의 매몰찬 생존투쟁과 축복의 장이었던 원형적인 성인식을 대입시험이 대체하고 만 것이다. 대입시험이라는 성인식은 우리에게 생존경쟁의 장이고, 그것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 또는 무의식적 일탈에도 불구하고 마침내는 그것을 하나의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입이라는 생존투쟁의 장에서 승리한 자들이며, 현실에 대한 자긍과 미래의 비젼을 꿈꿀 수 있는 권리는 하나의 전리품인 셈이다. 여전히 고려대학교 학사학위가 나름의 사회적 기득권과 인간으로서 우리들의 품질까지 보증해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음은 명백하다. 고려대학교가 ‘마음의 고향’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20대의 젊음’을 회고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삶의 태도로서 ‘자유·정의·진리’를 확인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고려대학교를 둘러싼 권력망들의 인사이더로서의 우리 자신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우리가 학력주의를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행위는 명문대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자기부정’일 수도 있으며, 공고한 권력집단인 서울대출신들에 대한 ‘권리투쟁’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합리적인 경쟁구도를 창출함으로써 학력주의 사회가 아닌 능력본위의 사회를 만들자는 자유주의적 주장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과연 학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이것으로 충분한 것인가? 자신이 기반하고 있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행동을 촉발시키고, 사유와 행동의 합일은 곧 우리들 자유의 표현이다. 그러나 분석의 틀과 방법론에 따라서 지향점과 행동의 지침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력주의에 대한 체계적인 논문이 아닌 이글은 학력주의라는 매개를 통해서 ‘계급’적 관점의 중요성을 논거하는 학력에 대한 ‘정치적 문건’이다.

Ⅱ. ‘학력주의’와 학력-물신성, 그리고 얽힌 관계들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입학 수능시험은 치뤄졌고, 의례적으로 교육현실에 대한 훈계는 매스컴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조기유학이나 고액과외 등에 대한 다소 도덕적인 비판에서부터 ‘자립형 사립고등학교’허용에 대한 전문적인 논의까지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듯 하다. 이렇듯 누구나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지리멸렬한 한국의 교육문제는 학력주의라는 개념틀로 수렴될 수 있다.

▶ 합리성을 가장한 학력주의
‘학력주의’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학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주로 가정의 사회적 배경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귀속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이며, 근대사회로 이행하면서 사회계층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지표로 작용하게 된다. 학력주의 사회는 신분에 의해서 사회적인 지위가 조건지워지거나 결정되는 것과는 달리 학력이라는 ‘국가공인자격증’과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재화와의 교환 ‘가능성’이 높은 사회를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학력주의는 단연코 귀속주의보다 우월한 사회적 제도이다.
근대 이전의 시기, 언제나 한줌의 지배계급이 그들의 사회적 특권을 지켜내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한 것은 역사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신라시대에는 특권계층 내에서도 진골, 성골, 육두품 따위의 계층구조가 선명했으며, 조선시대에도 신분상승의 결정적 수단이었던 과거제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요건은 사실상 양반계층에 한정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개인의 능력을 여타와 다른, 학력이라는 단일한 요소로 평가하고 사회적 분업의 효율을 제고하는 것은 제도적 우월성을 담보하고 있다. 인간의 능력을 검증하는 기준이 학력이라는 단일기준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능력에 대한 정보가 제한된 상태에서 선발과 인력배치의 주요수단이 근대 공교육제도하에서 학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베버가 갈파한 ‘권력과 폭력의 합법적 독점체’라는 국가에 의해서 관리되는 공교육제도는 기회의 균등과 구성원에 대한 교육을 합리적으로 해결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시대마다 지배계급은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보편성이라는 허상을 덧씌워왔으며 학력주의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분석은 피상적인 것을 돌파해내어 근본에서부터 파악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추동된 권력관계나 사회적 작동방식에 대한 분석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런 분석방법의 핵심은 사회를 고정된 것이 아닌 변화하는 것으로, 그리고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인식하는 것이다. 법앞에서의 자유라는 정치적 근대성이 경제적으로 시장의 자율과 사적소유를 강제하기 위한 것이라면 근대의 산물인 학력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음이 분명하다. 근대성의 문헌적 어원이 ‘여기 지금’이라면 ‘여기 지금’ 자본주의체제 하에서의 학력주의의 작동방식을 고찰해보자.

▶자본주의체제에서의 ‘학력-물신성’_1
현실적으로 학력으로 기능하고 있는 고등교육은 개인적 차원에서 볼 때 교육에 대한 ‘투자’행위의 결과이다. 공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초·중등교육과는 달리 고등교육은 등록금이라는 훈련비를 내는 것이며, 기회비용을 감수하는 것이다. 이는 교육을 통해 형성된 개인의 지식이나 인지력은 업무수행의 수월성을 보증할 수 있으며, 그 외에도 가치관이나 태도 및 문화적 감각 등도 동일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개인의 행위가 역사와 구조라는 조건 없이 단순히 개인들의 합리적 선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고등교육이 개인의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능력까지 담보한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따라서 개인의 선택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분석이 선행해야만 한다.
학력주의를 분석할 때 집중해야 할 대상 중의 하나가 학력과 노동시장과의 관계이다. 학력을 획득하기 위한 교육경쟁은 교육 그 자체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에로의 편입과 임금 및 승진에서의 기회보장 때문임이 명백하다. 즉 노동시장에서 노동력 상품은 학력이라는 잣대로 평가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노동력 상품의 객관적 보증서인 학력(學歷)은 ‘개인이 거쳐간 학교교육의 이력’이며, 이것은 업무수행의 수월성을 담당할 수 있는 인지능력, 가치, 태도가 학교교육을 통해 개인에게 내면화된 학력(學力)과는 분명히 다르다. 상품의 이중적 성격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면 학력(學力)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함께 담지하고 있는 것이지만, 졸업장을 나타내는 학력(學歷)은 교환가치만을 지니기 때문이다. 노동력이 상품생산과정에서 잉여가치의 생산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교환가치의 측면만이 부각된 학력만이 단일 기준으로 작용해야 한다.
인간의 신체에 갖추어져 있는 정신적, 물질적 능력 등의 성격이 간과되고 다만 ‘학력’이라는 양적 기준만이 사회적 제 관계에서 작용함을 감안한다면 이를 ‘상품 물신성’과 마찬가지로 ‘학력 물신성’으로 파악할 수 있겠다. 즉 “상품형태가 인간 자신의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노동생산물 자체의 물적 성격으로 보이게 하며, 따라서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 즉 물건들의 사회적 관계로 보이게 한다”라고 한 ‘상품 물신성’에 대한 맑스의 정의는 학력에 대한 분석에서도 타당하다.
인간의 활동은 육체적·정신적 실존의 실현을 위한 능동성이며, 유적 인간의 본질에 어우러진 실현이다. 교육적 행위도 하나의 활동이며, 그런 면에서 자신의 실현과 함께 사회적 실현을 동시에 담당하는 사회적 행위이다. 그렇다면 학력의 상품화는 인간들 사이의 투명한 관계가 상품관계의 추상으로 나타나게 하며, 자신의 능동성과 생활활동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 학력주의의 일반적 작동 방식
‘학력-물신성’은 학력주의가 현실의 교육활동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학력이 상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면 상품생산관계의 적나라한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학력-물신성과 얽혀있으면서 교육의 모순을 상호 강화하는 요인들은 크게 네 가지로 분석될 수 있다.
첫째, 학력주의는 교육의 기능을 파괴시킨다.
‘학력 물신성’으로 규정되는 학력주의는 곧 선발에 있어서의 양적이고 물리적인 기준만이 중요해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시험이라는 객관적인 기준하에 모든 교육과정이 재편되고, 궁극적으로 대학입시로 귀결되는 한국의 현실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이 학력주의 공고화의 원인이 되었다. 자신의 소질을 계발하여 자신의 지향과 취향에 맞는 학력수준을 결정하며, 또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것은 학력주의 사회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교사는 국가에서 정해 준 교육과정을 학생에게 주입시키는 사람이었으며, 교수법 역시 인지발달만이 중시된다. 평가위주의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미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 대한 고려는 예체능과 윤리라는 교과목의 창설로 나타났으나 이들 과목의 평가 역시 시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지식과 기술을 도야하는 교육은 개인능력의 계발과 보편적 문화의 발전을 예비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학력획득을 위한 도구로만 이용된 것이다. 평가에서의 높은 점수를 위한 효과적인 교수전략은 폭력과 억압이었으며, 어쩌면 교사에 의한 폭력은 효율성을 담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교실환경에서 왜곡된 성향은 왕따를 통해 욕구를 해소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학생들을 만들어 온 것이 아닐까.
둘째, 학력주의는 경쟁을 강화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현실에서의 경쟁이 자극을 통한 개인능력의 계발과 사회적 풍요로움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사적 소유제 하에서의 경쟁은 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자극하고 타자를 배제하며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또한 경쟁에서의 승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게임의 룰을 강제하고 자신의 독점지위를 확대시켜 나갈 수 있다. 이미 게임을 주도하고 있는 권력이 강요하는 경쟁이데올로기는 착취의 다른 이름이다. 작금의 취업전쟁은 대학을 경쟁의 논리가 판치는 곳으로 만들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우리의 삶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질서’가 관철되는 경제논리와 교육의 가치는 분명히 다르며, 달라야 한다. 교육적 가치는 공동체적 가치이며 창조적인 개인의 자율성과 직접민주주의의 원리가 보장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 하에서만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소통과 연대가 가능한 공동체적인 경쟁체제가 성립될 수 있고 개인의 전면적인 발전이 사회의 발전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학력주의는 국가주도적 교육을 낳게된다.
학력은 국가에 의해 보증되는 자격증이라는 측면에서 여타의 자격증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국가에 의해 보장되는 학력은 결과적으로 국가에 의한 교육통제를 낳게된다. 흔히 정치로부터 교육의 독자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학력이 국가에 의해서 보증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국가는 교육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교육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따라서 교육은 곧 국가정책의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국가의 성격에 대한 논의는 교육에 대한 가치판단의 문제이며 공교육제도 자체에 대한 논의로 나아갈 수 있다. 체제재생산을 설명함에 있어 국가의 성격을 특화시켜 설명하려한 알튀세르의 논의는 경제적 토대의 강력한 힘을 감안한다면 여전히 타당하다. 최대한 양보해서, 국가의 정책은 본질적으로 계급간의 힘 관계로 관철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의 오랜 우익독점적인 정치구조, 특히 국가권력의 과부하는 교육 현실을 지배계급을 위한 교육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국정교과서’로 공식적인 ‘대학입학시험’에서 정답을 찍어온 이들에게는 정답만이 진실이다. 공식적인 진실을 교육과정에서 강요하는 것은 비공식적인 것들의 배제를 통해서 가능해진다. 초·중등교육을 통해 각인된 지식이 공권력을 통해 강제된 체제이데올로기임은 명백하다. 국가주의적이고 체제옹호적인 교육과정 속에서 수시로 실시되는 평가는 우리의 모든 것을 물리적으로 양화하여 성적표로 세분화하고, 궁극적으로는 ‘대학입학시험’으로 나타난다.
넷째, 학력주의는 결과적으로 학력의 인플레 현상을 낳는다.
개인이 학습을 계속해 나간다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가 보장되는 것 또한 정당하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학개혁의 양상, 특히 대학원 중심대학으로의 변화 전략은 학력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제 학사학위만으로 학력에 대해 말하는다는 것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 입학인원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가 이를 방증한다_2. 학력의 인플레이션 현상은 상대적 과잉인구(산업예비군)의 생산과 함께 분석이 가능하다. 자본은 노동시장에서의 분단구조강화를 위하여 노동자 사이의 경쟁조장과 분할통치를 기도한다. 자본의 입장에서 남아도는 고학력인구는 유리한 조건이며 이윤창출에 기여한다. 물론 현재 진행되는 고학력화는 생산기술의 발전에 의해 노동생산성의 발전이 급격히 이루어지는 정보-기술혁명에 의한 산업예비군의 창출과정으로 파악할 수도 있고, 고도로 전문화된 숙련노동자의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학력인플레이션은 학력-물신성에 의한 경쟁구조로 파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타당할 것 같다. 노동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이것은 결과적으로 고학력 노동력의 구조적인 실업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학력인플레이션이 구조적 실업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면 ‘사회적 노동권’에 대한 요구로 취업문제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Ⅲ. 학력주의의 태동과 역사적 전개과정

학력주의라는 교육적 현상은 자본주의적 교육제도의 한 현상이며, 교육 또한 사회적 제도로서 당시 사회구성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학력-물신성’의 관점으로 정리해 보았다. 학력주의가 자본주의체제의 일반적인 현상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과잉교육열’의 문제나 대학의 서열화 등 특수한 국면들을 노정하고 있다.
이것은 ‘식민지 경험’과 ‘한국전쟁’, 그리고 권위적인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보편화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교육문제는 역사 속의 갈등축을 중심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모순의 ‘응축체’이며 국가제도의 권력작용을 통해 구체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역사 속에서 학력주의의 태동과 전개과정을 고찰하면서 학력주의 문제를 심화시켜 보자.

▶ 일제 ‘식민지’ 경험과 미군정의 교육정책
한국의 ‘과잉’학력주의는 과거제도에서부터 그 뿌리를 찾을 수가 있다. 조선조는 교육을 중시하는 사회이며, 과거를 통해서만 관료로 선출될 수 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백성들의 교육에 대한 열망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교육은 가문의 존속과 발전에 효과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는 가족주의적 교육이라는 특징을 낳는다. 혈연에 바탕을 둔 가족주의는 신뢰에 바탕을 둔 사회적 친화의 가교로서 혈연, 지연 등에 의존하는 연줄의식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출신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연고주의의 뿌리가 된다. 학력주의의 또다른 유인 요인들로 불리우는 ‘숭문주의’나 ‘입신양명적 교육관’, ‘서열의식’ 등도 일제시대 및 해방후 국가권위의 강화로 인하여 더욱 공고화되었으며 이 시기의 출세는 곧 ‘국가관료로의 임용’을 의미하였다.
구한말에는 학력의 사회적 활용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면서 학력주의적 교육의식이 싹트기 시작한다. 이런 흐름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체계화되기 시작하는데 신분제의 붕괴와 함께 근대적 학제가 성립되면서 학력이 구체적으로 지위와 연관을 맺게 되었다. 1918년 공포된 ‘고등시험령 제7조, 제8조에 관한 건’은 고등시험에서 학력규정의 원칙을 시도한 것이었다. 당시, 국가운영의 주체인 일제 식민권력은 형식적으로는 교육의 평등을 말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식민지의 인민들에 대한 교육 ‘배제’를 위한 전략을 취했으며, 그 결과 식민지 인민들 사이의 경쟁과 분열이 나타나게 되었다. 최소한의 학력을 갖추기 위한 경제적 조건의 불평등은 물론이요, 권력획득을 위한 ‘그들’ 사이의 경쟁은 고스란히 학력 취득을 위한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해방 이후 미군정에 의해 의무교육제도(1948년 1월 17일)가 실시되어 당년도에 18억원의 예산이 배정되었다. 이는 형식적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교육제도의 정착이라고 판단할 수 있으며 미군정에 의한 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서구의 교육 모델이 본격적으로 제도화되는 계기가 된다. 1948년 7월 대한민국의 헌법은 미군정에 의해 기초된 교육정책을 계승하는 법률을 통과시킨다. 그리고 원칙상 지방자치교육을 법령화함으로써 보통교육실시와 더불어 교육자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적 조건을 고려한다면 위에서부터 주어진 교육제도는 명분과는 달리 필연적으로 교육의 국가독점과 고등교육의 양적 팽창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해방이후에 한국의 교육기관 및 학생수는 전반적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장기적으로는 고등교육의 교육팽창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공교육제도의 설립에 따른 교육기회의 평등화를 설명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과잉교육열이 고등교육에 집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것은 교육팽창과 함께 학력주의에 대한 분석의 중요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은 입안과정에서부터 내용과 관철에 이르기까지 최고학력에 대한 관료적이고 집권적인 관리의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정부 수립후 발표된 교육법은 교육기회의 균등이나 의무교육제도의 실시라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육기관은 국가의 간섭을 받으며”를 명기하였으며, 특히 주목할 점은 1972년 공무원 임용시험에서 학력철폐가 있기까지 학력요건이 국가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는 측면이다.
신분제에서부터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 교육에 의한 신분의 이동이 철저하게 배제되었던 인민들에게 군정이후의 교육제도는 자신의 기회에 있어서의 ‘박탈감’을 해소하는 도구가 된다. 따라서 국가의 요구에 의한 교육기관의 증설과 인민들의 교육열은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되어 급격한 교육팽창을 불러온다._3

▶개발독재와 노동통제
미국의 원조에 의한 한국의 경제개발로 시작된 1960년대 이후 경제발전 과정에서 국가는 점차 독자적인 재생산기반을 지닌 사회구성체의 정치적 상부구조로서 자신의 지위를 확립해 나간다. 5.16쿠데타 이후 군사정부는 본격적인 자본축적을 위해 ‘반공이데올로기’의 강화와 함께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게 되며 노동인력의 수급을 위해 체계적인 인력관리를 시작한다. 1968년 선포된 ‘국민교육헌장’은 경제발전과 정권의 안정적 유지 및 재생산을 위하여 학력에 대한 국가관리를 정당화하고 학력을 통한 인력의 배치 및 경제개발을 위한 노동인력수급의 합리화를 꾀하였다. 이 시기에는 중등 학력인구가 급속히 팽창하였고 대학인구 억제정책이 실시되었다. 중등교육의 팽창의 경우 전후 베이비붐으로 ———-인한 교육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당시 산업구조에 적합한 대다수 노동인력의 숙련정도를 반영한 것이었다. 대학인구의 억제정책 역시 당시 고학력 실업자문제에서 볼 수 있듯이, 해방후 고등교육팽창에 따른 적절한 고급노동인력의 수급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즉 적절한 수의 학력인구는 경제개발 도구화의 산물이며, 이 역시 권위적 국가권력에 의한 통제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계급, 성별 등에 따른 실질적 ‘기회 불평등’의 문제 및 당시 정치권력, 자본가계급의 사회적 재생산에 복무하게 되는 기본적인 문제 등과 더불어 학력간 격차의 문제가 고졸자와 대졸 학력자간의 문제로 집약되어 나타남으로써 대학 학력에 대한 사회적 열망이 강하게 존재하게 된다. 이는 한국사회의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대졸자와 비대졸자와의 임금격차등의 문제를 낳는 토대가 되었으며, 학력주의를 심화시키는 주요한 결정기제로 작용한다.
전두환정권은 집권과정에서 드러난 정당성의 취약함으로 인해 강압적인 통치방식을 구사하는 한편, 형식적인 복지정책 또한 실시하게 된다. 1980년 발표된 7·30 교육개혁조치 중 과외금지, 대학본고사 폐지와 고교성적 내신제의 실시, 대학입학인원의 확대 등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지만 폭발적인 고등교육의 팽창을 야기시킨다. 이때부터 고등교육에 의한 ‘차별적 학력주의’가 대학의 서열화로 구체화되는 ‘세밀화된 학력주의’로 전화하게 된다.
이 시기의 고등교육의 급격한 팽창은 고학력 인플레이션을 야기했지만 한편으로 재수생의 급격한 증가를 수반하기도 했다. 이는 학력인플레로 인한 고등학력의 가치저하가 두드러졌음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에 대한 욕구가 해소되고 있지 않음을 말하며,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가 소위 명문대에 대한 수요로 ‘협소하게’ 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의 구조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변화하는 세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명분은 다양한 슬로건과 함께 국가정책 및 각 대학의 발전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다. 1994년에 발표된 정부의 ‘교육개혁방안’은 당시 대학선발인원의 자율권 강화 및 각 대학의 ‘대학원중심대학’으로의 변화방향을 낳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김대중정권 들어 제기된 정보화 및 지식사회라는 화두는 신지식인이라는 유행어의 창출과 더불어 ‘특성화대학’ 및 ‘BK21’로 구체화 되고 있다. 학력주의를 고찰함에 있어 우리가 주의할 점은 ‘대학원중심대학’ 및 ‘대학 및 학문의 특화’전략이 오히려 학력주의의 강화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된 대학팽창으로 인한 고등교육인플레이션 현상은 이제 대학 학부수준을 넘어서 대학원까지로 변화되었음을 나타낸다. 교육열과 학력주의는 이제 대입경쟁에서 취업경쟁으로 상승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한국의 학력주의는 사회제도가 상당정도 합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Ⅳ. 한국사회의 학력주의에서 나타나는 특징들

학력주의가 전개되는 과정을 정치적 변화와 교육제도의 변화를 중심으로, 몇가지 특징적인 사건들과 함께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았다. 그러나 학력주의가 인민 ‘주체’들에게 현실적으로 수용되는 과정 및 효과에 대한 분석은 미흡하다. 능력에 대한 검증의 기준이 학력에 ‘근거’하는 것을 넘어 지나치리 만큼 학력에 ‘의존’하고 있고, 수용 주체들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 학력주의의 특징이다. 이는 한국의 권위적 국가의 성격을 통해 학력주의의 계급성을 짚어봄으로써 더욱 더 명확히 할 수 있다. 한국의 권위적인 국가성격은 학력주의를 추동해낸 가장 중요한 원인이고, 이로인해 대학의 서열화와 계급재생산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국가에 의한 교육 통제로의 귀결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 한국에서의 학력주의는 그 부정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인민들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내면화 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식민지 규율권력에 찌든 인민의 정서구조가 군정시기 확립된 교육제도의 상대적 우월성을 자발적으로 수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맥락에서 교육제도의 급격한 변화가 수용되었으며, 개발독재시대의 교육과정에까지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해 보는 것이 중요해진다.
일제시대의 교육은 한마디로 식민지 지배체제의 강화를 위한 ‘수단’이었다. 지배체제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한 지적 헤게모니 창출의 노력은 교육을 통한 군국주의 이데올로기 주입이란 형식으로 나타났다. 교육과정 내에서 보여지는 단순한 산술과 일본어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수신(修身)이나 일본사가 중시되는 것은 식민지 동화정책의 일환이었다. 알튀세르가 말하듯 ‘교회-가족’의 이데올로기적 지배형태가 ‘학교-가족’으로 전화됨에 따라 교육제도는 체제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 자리 매김한다. 이런 자본주의적 교육제도의 보편성은 식민지체제의 특수성과 결합하여 기형적인 교육제도를 만들어 내었다. 이런 상황은 해방 이후 미국식의 교육제도가 저항없이 안전하게 정착하는 근거가 된다. 식민지 교육제도에 비하면 미국식 교육제도는 민주적이며 자율적이며, 형식적으로나마 기회의 균등을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한국교육과정에서 군사독재시기의 ‘국민교육헌장’으로 대표되는 국가주도적인 교육제도가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것은 일제시대 교육제도를 겪은 인민들에게는 무리없이 다가왔을 것이다. 최근 국가기조가 남북화해로 바뀌면서 교육과정 중에서 통일에 관한 부분이 강조되는 것은 교육과정의 고유한 독자적인 측면이 부정되어 왔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단 몇 달만에 교육과정이 바뀐다는 것은 교육의 장기적이고 독자적인 성격은 허구일 뿐이며, 교육제도는 언제든지 국가에 의해 변경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 복종의 미덕과 교육구조의 권위성
일제시대의 식민지 권력은 인민들에게 ‘복종의 미덕’ 및 ‘자발적 동의’를 내면화시켰다. 일제 식민지 권력은 교육목표를 훈육에 맞추었는데 이는 군국주의에 대한 인민의 자발적 동의를 촉발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제국주의 전쟁과 자본의 축적을 위한 노동력의 양성과 피식민지 일반계급에게의 노동자형 인간관과 병사형 인간형 제시는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인간형의 주물은 권위와 규제에 대한 복종을 하나의 미덕으로 여기게 하였다. 공장 운영원리는 학교로 고스란히 이동하여, 매일의 출근은 ‘등교’로, 일괄작업방식은 ‘시간표’, 성과급은 ‘상장’으로, 해고나 징계는 ‘처벌’로 나타났다. 공장 감독관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공장의 규율에 순응하는 노동자상과 황국신민의 자랑스런 개가 되어 출전하는 병사상은 우리의 근본적인 정서구조를 아직도 지배하고 있다. 서구에서의 근대성이 지난한 권리투쟁을 통해 내면화된 주체성이라면 한국의 근대성은 복종의 내면화라 할 수 있다.
권위와 지배에 복종하는 인간형은 결과적으로 학력주의의 강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명령과 순종, 지배와 피지배의 분열 구도는, 유리한 조건에서 학력을 취득한 지배계급이 사회적 권리를 획득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만들고, 소외된 인민들의 교육열을 자극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배-피지배의 구도, 즉 계급관계의 공고화가 학력주의의 강화로 나타나게 된 것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식민지 규율권력이 가져온 문제점은 권위의 일상화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학력주의의 보편화에 순기능을 한다는데 있다. 합리적 권위에 대한 존중과 효율성을 위한 조직의 위계적 구조는 자율적인 개인과 합리적인 소통구조를 전제로 할 때만이 가능하다. 식민지 규율권력은 자율보다는 타율, 소통보다는 명령과 복종을 내면화시킨 것이다. 현실의 교육문제를 고민할 때 간과되는 측면이 학교 내의 권위주의적인 구조의 문제이다. 특히 고등교육은 분명 초·중등교육과 차별을 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은 아직도 정책결정의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다. 대학 내에서의 권력관계에서 학생권력은 분명 당당한 힘을 발휘해야만 하며, 그것을 통해서만이 대학 내의 합리적인 구조를 창출할 수 있다. 대학이 궁극적으로 체제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유포시키며, 중간관리자나 기술자를 양성하는 현실적 기능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능을 제어하고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할 수 있기 위해서도 대학 내에서의 학생권력 강화는 필요하다. 학생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바로 식민지와 개발독재를 겪으면서 왜곡된 근대적 합리성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경험요소로 기능할 수 있다_4.

▶ 학력주의를 통한 계급갈등의 편입과 소멸
학력주의를 주도한 계급이 어떤 계급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어떤 효과를 미쳤는지를 분석해 보면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명확히 할 수 있다. 더불어 국가의 계급적 성격이, 폭증하던 계급갈등의 소멸을 조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M. 카노이는 교육팽창을 노동자 계급에 대한 노동통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노동을 균질화하기 위한 자본의 전략과 경제발전의 성과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분배요구가 결합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교육제도의 변천과정을 분석하면서 계급갈등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국의 경우 학력주의 이데올로기가 폭발하는 계급투쟁을 무마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작용했다.
지배계급은 해방공간에서의 폭증하는 계급투쟁을 교육경쟁을 통해 체제내화시키려는 전략으로 노조에 대한 정치참여의 배제 및 좌익정치세력의 폭력적 소멸을 도모하면서 교육팽창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 더불어 한국전쟁과 분단을 거치면서 국가통제와 국가이념의 주입의 장이 필요했으며, 따라서 교육은 체제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주목을 받게 된다. 학력주의에 대한 설명에서 국가통합 전략은 중요한 것인데, 지배세력은 학력을 매개로 공정하게 거래되는 정치권력의 환상을 유포하고, 결과적으로 학교교육을 통해 계급갈등을 무마시킨다.
체제의 안정적 재생산을 위해서 노동력의 재생산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노동력 재생산은 가정과 학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재생산을 위한 물질적인 조건을 보장해주는 것과 더불어 노동력에 대한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 노동력으로서의 자격을 주는 것은 국가 공인의 공교육이며, 공교육에서 배우는 것은 일반적인 교과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은 법적, 제도적 규칙에 대한 존중과 노동의 사회-경제적 분할에 대한 인정과 계급지배의 원리를 내면화시키는 국가기구일 따름이다.
미군정에 의한 교육정책 입법에 관여한 주체의 계급적 기반은 지주 및 소자본가 출신의 고등학력 소지자인 학자와 정치가였다. 그들은 미군정과 결탁함으로써 국가 성립의 주체가 되는데 일제시대에도 식민지배의 관료로 군림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을 활용하여 일제시대 이후 축소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계급기반의 ‘갱생’을 도모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교육정책 수립시 계급적 의도가 녹아들어갔던 것도 우연만은 아니다. 기회균등이라는 형식적 평등 이면에는 ‘학력’과 ‘권력’의 교환 가능성이라는 그들의 안전장치가 존재했으며, 당시 인민들의 생활수준으로 미루어 학력획득은 지배계급에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형식적이나마 존재하는 교육기회의 부여는 인민들의 정치적 경험의 부재와 더불어 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저항의 토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과잉 교육열이라는 형태로 전화하여 드러난다.

▶ 대학 서열화와 패거리 문화의 심화
한국사회의 지나친 경쟁구조의 직접적 표현인 대학의 서열화는 ‘학벌(學閥)’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대학의 역사와 전통이 다르고 학부마다 고유한 대상이나 방법론 등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의 ‘사실’이다. ‘사실’은 그자체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사실의 이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와 사회적 파장이 문제가 된다. 현재의 서열화는 학부의 독특한 정체성이나 대학의 특성화가 아니며, 권력 패거리들의 재생산방식이며 독점의 방식이다. 한정된 명문대의 독점적 지위는 소위 ‘밀어주고 끌어주는’ 선후배, 동기들의 지난한 노력으로 유지할 수 있으며 독점지위의 구조는 견고해진다. 서열화는 패거리 문화를 부추기고 패거리 문화는 서열화를 강화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점의 형태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학력주의가 중등교육 이수자와 고등교육 이수자의 임금격차와 승진에 있어서의 불공정성의 문제를 넘어서 소수정치권력과 독점자본의 문제로 집중되고 있는 경향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특히 ‘고대 교우회’의 막강 파워는 줄줄이 터지는 권력형 비리에 고대 교우의 단골 출연이라는 해프닝을 낳고 있다. 대학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교수진도 아니고, 교육여건도 아니며, 이런 대학을 떠받치고 있는 공고한 교우들의 힘일 뿐이다. 그것은 전통을 낳고 학교의 명성을 낳으며 우수학생의 선발을 통해 다져진다. 선발과 배제를 통해 명문대에 진입한 이들은 또다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갈 것이다.
이런 패거리 문화에 균열을 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의 핵심논리는 간단하게 ‘공과 사의 구별’이라는 ‘상식’과 ‘합리성’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고한 권력의 담합집단에게 합리성의 잣대를 들이댄다고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는 않을 것 같으며, 또한 패거리 문화가 없어진다고 해도 학력사회의 폐지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합리적이라는 서구에서도 학벌이라는 특정대학의 독점적 지위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대학의 경우 선발에 있어서의 계급적 편향까지 보인다고 한다. 즉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계급관계가 교육을 통해서 재생산된다는 것은 실증적으로 검증되고 있는 사실이다. 이것은 학벌과 패거리 문화가 구체적인 권력독점과 권력투쟁의 문제라는 것을 암시한다.

▶학력주의를 통한 계급재생산의 공고화 경향
군정시기의 몇 안되는 합리적인 정책결정이었다고 평가되는 교육정책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50∼60년대 초기의 계급간 계층간 사회이동이 급격히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 당시 대기업가의 직업세습률이 73%로 나타난 연구에 비추어 보면 – 소수의 지배계급에 의한 계급적 세습은 철저한 것이었다. 결국 교육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는 일반적 인식을 넘어서 계급적 재생산도 담보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교육제도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학력에 의한 사회이동의 편향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표2>는 1988년의 통계치이다. 이 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세대간의 계급이 어느정도 세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80년대가 90년대 이후와 비교해서 사회변동이 심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놀라운 경향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2000년에 들어서는 완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2000년 11월 15일 한겨레 신문에 의하면, 서울대학교 2000학년도 신입생 구성비율은 놀라운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신입생중 고급관리직과 전문직 자녀가 49.8%를 차지하고 있으며, 생산직 노동자 9.3%, 농어업 종사자 3.5%, 판매직이 9.5%였다고 한다. 또한 지역별로는 서울지역 출신이 45.2%, 광역시가 31%, 읍·면출신이 3.3%였다. 그나마 읍·면 출신들이 농어촌 특별전형에 의한 것임을 감안한다면, 학력에 의한 계급재생산이 더욱 공고해질 것임을 예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교육제도의 재생산과정을 적나라하고 실증적으로 분석한 보울스와 진티스의 연구성과물들은 어느정도 안정된 축적구도에 진입한 한국사회에도 이제 적용시킬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역사적 뿌리가 깊고 문화적 전통이 중시되는 유럽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문화적 재생산’의 메커니즘도 아직 한국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보편화될 경향성을 보인다. 이는 학력주의가 단순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계급투쟁의 연결고리로 작용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나타낸다.

▶ 대학의 자본종속과 보수화
지속되어온 교육개혁논의가 이제는 ‘지식사회’라는 개념으로 정리된 듯하다. 대학의 생존은 산학협동에 의해 승패가 좌우되고, 인문학마저 ‘BK 21’프로젝트에 편입이 될 때에만 유효성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급변하는 정보-기술혁명과 문화산업의 도래속에서 대학은 이제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창조와 확산을 담당하던 점잖은 지위에서 산업-금융자본의 하청업체로 자신의 위치를 정리하고 있다. 특히 과거 구체화되던 산학협동의 문제가 벤처열풍과 맞물리면서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BK 21’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대학의 서열화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화폐가 대학의 목줄을 쥐고 있는 한 자유로운 학문 탐구는 이상일 뿐이다.
대학의 자본주의적 기능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공공적 성격은 사회의 기본적 가치와 지식, 기능을 구성원에게 전수할 수 있었다. 대학 공동체 안에서 대학인은 학문과 함께 자유로울 수 있었던 최소한의 공공적 성격이 바로 대학의 자율성이란 가치였다. 그러나 현재 대학은 최소한의 자율성마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체제에 싱싱한 영감을 제공하고, 행동의 근거를 제시해 주던 대학의 창조적 기능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으며, 화폐와 학문의 교환이 노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지식과 교육의 가치를 비판과 창조라고 규정내리고 싶다. 거대한 변혁운동의 역사 속에서 지식과 이론이 저항계급의 혁명적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해 왔던 역사를 돌이켜 보게 된다. 기독교 운동은 지난한 투쟁으로 노예제를 타파하고 1000년 왕국 봉건제를 건설해내고야 말았다. 루터의 문제의식은 종교개혁을 낳았으며, 과학혁명과 근대 철학은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광범위한 사회변혁을 정치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현실의 대학의 모습은 단편적이고 현상적일 뿐이며, 충분히 변화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다. 특히 근대성의 반성적이고 부정적 사유라는 또다른 모습은 현실의 역동성을 담보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지성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가 절박해진다. 대학은 아직도 변혁운동과 함께 할 수 있는 유효한 진지일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
대학내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집요하게 문제제기를 해나가며 체제와의 선을 명확히 긋는 대항헤게모니의 촉발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상승시켜야 할 것이다. 노동자 계급과 연대하는 대학은 우리가 부여잡아야할 마지막 희망이다.

Ⅴ. 활발한 논쟁과 행동을 기대하며

교육을 분석할 때 흔히 우리는 교육의 국가로부터의 상대적 자율성을 말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교육은 정책의 문제였으며, 그 정책에 대한 어떠한 조직적 저항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인민에 의해 그대로 수용되고 있다는 다소 비관적인 견해를 도출해 내고 말았다. 그러나 고정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판적 사유와 행동으로 현실의 견고함을 돌파해 내야만 한다.
먼저, 일상적인 차원에서 전근대적인 규율윤리를 타파하고 합리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식민지 교육과정에서 중시되는 규율권력에 대해 논했듯이 한국 교육제도에는 아직 전근대적인 잔재가 남아있으며, 현실의 비합리적인 행태의 모태가 되고 있다. 따라서 비판적 합리성을 견지해 나감으로써 대학사회의 구조를 혁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머무를 수는 없다. 일상적 차원에서 합리성의 확보가 중요할 지라도 근본적인 변혁적 행동이 수반되지 않고는 대학의 개혁이나 학력주의 타파 등의 교육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자본주의체제라는 ‘조건’에 기반해서, 한국의 역사적 ‘과정’을 통해 고민해본 학력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계급적 관점의 중요성과 조직적 투쟁의 필요성을 인식해야만 한다. 즉 국가와 교육의 관계는 ‘교육의 자율성’이란 이상으로도, ‘교육의 수단화’라는 비관으로 봐서도 안되며, 명확히 역사속에서 실증할 수 있는 계급투쟁의 생생한 전장으로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체제에서의 교육과 대학이라는 우리의 존재조건에 대한 고민을 통해 행동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참고문헌>
이두휴, 『교육경쟁의 정치경제학』, 교육사회학연구, 제9권 1호. 1999.
강희돈, 『한국의 사회이동과 학교교육의 효과』,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8.
강창동, 『한국 학력주의의 사회사적 고찰』,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김진균외, 「일제하 보통학교와 규율」, 『경제와 사회』, 한국산업사회연구회, 1996.
R.콜린스, 정우현역, 『학력주의 사회』, 배영사, 1989.
L.알튀세르, 김동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아미엥에서의 주장』, 솔, 1991.
김부태, 『한국 학력사회론』, 내일을 여는 책, 1995.
M.카노이, 김성열외 『국가와 교육』, 배영사, 1991.
김신일, 『교육사회학』, 교육과학사, 1985.
김동춘, 「한국의 근대성과 과잉 ‘교육열’」, 『근대의 그늘』, 당대, 2000.
K.맑스, 김세균역 『자본Ⅰ-(上)』,『자본Ⅰ-(下)』, 비봉출판사, 1990.
K.맑스, 최인호역 「경제학-철학초고」,『맑스엥겔스 저작선집』,박종철 출판사, 1991.

각주
1_학력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논의의 경우 ‘학력-상품’과 ‘학력-화폐’의 틀로 분석하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 ‘학력-상품’의 방식의 경우 학력의 상품적 성격을 과도하게 비약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학력-화폐’의 분석틀은 유통이나 가정, 학교등의 재생산영역에서의 노동도 생산적일수 있다라는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아직은 고민해 보아야할 문제라 생각된다. 여기에서 필자는 학력의 상품적 성격을 ‘학력-물신성’으로 풀어나가겠다.
이상 이두휴, 『교육경쟁의 정치경제학』, 교육사회학연구, 제9권 1호, 1999.
홍월이, 「인민의 지성으로 학력화폐 개혁을」, 『고대문화 50호』,1999. 참조.

2_자본주의체제는 축적이 계속되면서 자본의 평균 증식구조를 초과하는 상대적인 과잉인구 즉 산업예비군을 필연적으로 생산해낸다. 호황시기 산업예비군은 안정적 노동력의 수급의 역할을 하게 되어 임금투쟁에서의 유리한 조건을 창출한다. 불황시기에는 노동자에게 노동권을 박탈하고, 취업부분에 압력을 가하여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노동일을 연장시키며 자본의 명령에의 굴종을 강요한다.

3_기존 연구의 경우 한국의 학력주의를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접근하거나, 콜린스식의 산업화에 따른 기술·직업적 요구로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회문화적 접근의 경우 국가 설립 당시의 경제구조로 인한 정치적 역관계에 대한 분석과 급격한 사회구조의 변화를 간과한다. 또한 콜린스식의 접근은 한국의 특이한 권위주의적 국가권력에 대한 분석이 미흡하다.

4_이런 견고한 벽에 도전하는 유효한 시도들이 있다. 교수-학생관계 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 학생회의 권위적 구조이외에도 일상에 횡행하는 비합리성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들이 그것이다. 계급적인 관점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의미심장한 활동들이라 보여진다.
* CARLITO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11-2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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