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랜만에 김기덕의 영화를 봐서일까.
피에타를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말문이 막혀 있다.
다만 그의 영화는 여전히 어떤 변증법적 힘을 지니고 있다.
그의 오랜 주제는 사랑과 증오, 죄와 구원, 복수와 용서의 동일성에 대한 탐구가 아닌가.
돈의 악마적 측면을 체화하고 있는 강도에게 미끄러지듯 침입해 온 엄마라는 존재에게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 당신은 용서인가요, 복수인가요?”

추가: 이 글을 쓰는 순간 베니스 영화제 수상 소식이 전해지니 덜컥 생각이 멈췄다.

이 영화는 의외로 88만원 세대의 특수성을 깊이 다루지 않는다. 두 주인공에게서 88만원 세대의 슬픔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구홍실은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어머니의 죽음이 고난과 슬픔의 조건이 되고 있고 천지웅은 실업 백수의 암울함을 대책 없는 천진난만한 캐릭터가 윤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고난에 놓인 인물이 서로를 동정하는 감정을 사랑의 한 형태로 그린다는 점에서 88만원 세대의 로맨스라는 마케팅 문구의 절반은 성취하고 있다. 내가 영화 말미에 작은 울림을 받은 건 이 점이다: 동정하는 연인은 현대적인 사랑 이야기의 소재가 아니지만 오래 된 보편적인 사랑의 형태가 아닌가.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동정의 감정을 배제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네가 불쌍해서 너를 사랑해’는 지금 시대에는 차마 당신에게 말할 수 없어 숨기고 있어야 하는 사랑의 신학적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