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21 2006.09.01 ‘편집장이 독자에게’ 김기덕의 퍼포먼스

 

[편집장이 독자에게] 김기덕의 퍼포먼스

2006.09.01 08:00

 

김기덕 감독의 몇 차례 발언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시간> 시사회 뒤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작해서 <100분토론>을 거쳐 사죄문 소동까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김기덕 감독이 <연합뉴스>에 보낸 사죄문의전문을 보지 못해 그의 진의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보도된 내용이 맞다면 그걸 사죄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일종의 코미디라는 생각이든다. 그래, 당신들이 맞고 내가 틀렸다, 당신들을 우롱해서 죄송하다, 는 말이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자학과 자책은 김기덕의진심이라고 믿기 어렵다. 정말 김기덕 감독은 자신을 “열등감이 낳은 괴물”이라고, 자신의 작품을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할까?역설에 관한 약간의 상식을 동원한다면 그렇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그의 글을 사죄문이 아니라 차라리 격문이라고생각한다. 자신을 쓰레기로, 괴물로 이름 붙인 사회를 비판하는 격문.

김기덕 감독

“쓰레기통을 뒤지면 향기가 난다.” 언젠가 김기덕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그는<악어>에서 <나쁜 남자>에 이르는 영화들에서 사회의 쓰레기로 취급될 만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그런 밑바닥 인생에서 숭고함을 발견하는 것이 김기덕 영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자신의 영화를 쓰레기라 부르는 것은김기덕의 자기 부정처럼 들리지 않는다. 쓰레기에서 예술을 만드는 감독에게 쓰레기와 예술의 이분법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김기덕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괴물을 끄집어내는 감독이기도 하다. <사마리아> 개봉 때 했던 인터뷰에서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가 어떤 그물망을 던져서 그물에 걸리는 사람은 악이고 빠져나가는 사람은 선으로 정리될 뿐이다.그물코에 따라서 다 걸린다. 이 사회의 법과 제도는 그물코다. 그물코가 좁으면 걸리고 넓으면 빠져나오는 것뿐이다.” 단순히말하면 김기덕 영화는 그물에 걸려든 괴물로 시작해서 실은 그물 자체가 괴물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영화다. 따라서그가 스스로를 괴물로 명명한 것은 김기덕을 괴물로 만드는 사회의 그물망을 고발하려는 의도처럼 보인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이렇게 덧붙였다. “그렇다고 이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내 영화는 한번도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이게우리 모습이 아니냐. 극장에서 우리 모습을 한번 확인하고 살아가자는 거다.” 그때랑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엔 극장이 아니라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그걸 확인했다는 것일 뿐이다. 어쩐지 나는 이번 사태가 김기덕의 행위예술처럼 보인다. 그의 영화보다 몇십배많은 관객이 찾아와 관람평을 남긴 퍼포먼스.

그의 신작 <시간>은 남자의 사랑을 회복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고있다. 만날 똑같은 얼굴 지겹지 않아, 라고 묻는 이 여자가 사랑을 되찾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자기 얼굴을 고치는 것이다.새로운 얼굴로 나타난 여자는 남자를 다시 차지한 뒤 울먹이며 관객을 향해 말한다. “제 뜻대로 됐네요. 그런데 제가 행복해보이나요?” 김기덕의 사죄문이라는 걸 접하면서 나는 <시간>의 이 장면을 떠올렸다. 김기덕의 글을 이 장면의 대사로바꾸면 이렇게 될 것이다. “당신들 뜻대로 제가 괴물이 되고 쓰레기가 됐네요. 그래서 당신은 행복해졌나요?” 대중의 사랑에목말랐던 그가 이제 더이상 구애를 포기하고 절망적 제스처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게 나만의 착각이고 오해일까? 그래도상관없다. 나는 그의 글이 사죄문도, 은퇴선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 사죄문이나 은퇴선언으로 읽어선 안 된다고 믿는다.제발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서둘러 묻고 제사 지내려 들지 말자. 그의 진심이 무엇이든 나는 그의 글을 오직 김기덕의 퍼포먼스로받아들인다. 그래야만, 그가 돌아올 수 있다.

글: 남동철

원문 : http://www.cine21.com/Magazine/mag_pub_view.php?mm=005003005&pageNo=1&mag_id=41176

– 프리미어 2006.09.01 객소리

객소리

2006-09-01

정기영 okbari@premiere.co.kr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만일 영화가 없어진다면?’ 당시만 해도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영화는 철저히 세상을 반영해야 한다고믿었다. 현실과 자신을 반성하는 매력적이고 유용한 도구라고 믿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무기라고믿었다. 거창하게 비유하자면, 영화는 내게, 브라질의 교육사상가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같은 거였다. 페다고지 교육의궁극적인 목표는 인간해방이다. 페다고지는 교육자가 피교육자에게 지식을 떠먹여주는 이분법적 교육을 거부한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사람의 전 인격적인 소통을 추구한다. 교육은 피교육자가 자신과 현실을 반성적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나는 영화도그렇다고 믿었다. 수용자로 하여금 자신과 현실을 반성적으로 사고하게 하고 그래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오버’였다. 지나친 오버였다. 요즘의 영상세대들이 들으면 코방귀를 뀔 일이다. 이를테면 이렇다. 프리미어의 막내 동현이와민경이는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고 동구(류덕환)에게 빠져버렸다. 그들에겐 동구의 춤만으로도 ‘짱’이다. 동구의 뚱보친구들이, 그들의 퍼포먼스가 마냥 귀엽다. 동구의 판타지(마돈나)에 자연스럽게 자신을 이입시킨다. 나는 다르다. 내 마음은 자꾸동구의 지리멸렬한 가족사로 향한다. 폭력적 권위와 무능으로 상징되는 동구의 아버지가 자꾸 눈에 거슬린다. 그 징글징글한 현실이동구의 판타지로 향하는 길목을 막고 서 있다. 민경이는 <천하장사 마돈나>의 ‘동구’에게 아낌없이 별 4개를던졌지만, 나는 동구의 그 지리멸렬한 가족사 때문에 민경이의 별에서 2개를 덜어내고 싶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너무 전형적이고위악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영화를 두고 동현과 더 이상 소통하기 어려운 때가 오면, 영화잡지 편집장을 그만둘 것이다.

요즘 나는 영화에 시들해졌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현실을 바꾸지도 못한다. 예전엔 때로 위로라도 됐지만 지금은 그도 아니다. 요즘 내게 영화는 다른 의미로다가온다. 이를테면 이렇다. <괴물>보다는 <괴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실이 영화보다 훨씬 흥미롭다.영화 ‘안’ 보다는 영화 ‘밖’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이다. <괴물>이 ‘괴물’인지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한방송사는 <괴물>을 우려내 온갖 육수를 짜내더니, 마침내 ‘100분 토론’이라는 진국을 만들어냈다.<괴물> 신드롬에 한창 열을 올리더니, ‘<괴물> 싹쓸이’를 주제로 토론마당을 벌인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의제부터 잘못 설정했다. 제목의 선정적인 속성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토론의 전선(戰線)은 <괴물>이아니었다. 핵심은 한국 영화산업의 독과점 구조였다. <괴물>은 독과점의 ‘원인’이 아니라 독과점의 ‘결과’일 뿐이다.더욱 흥미로운 사건은 토론 이후에 터져 나왔다. <괴물> 관계자들에 대한 사과 끝에, “내 영화는 쓰레기”라고 김기덕감독이 선언한 것이다. 당혹스러웠다. 다시 여론은 들끓고 있다. 심지어 김기덕의 돌출발언은 <시간>의 개봉을 앞둔그의 노림수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김기덕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모든 영화가 쓰레기라는 그의고백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일단 세상에 나와 관객들과 소통한 영화는 감독만의 것이 아니다. 그건 관객의 것이기도 하다.

김기덕 감독. 나는 그가 다시 관객들과 소통하기를 바란다.

원문 : http://www.premiere.co.kr/magazine/magazine_think_datail.asp?OidThread=34&page=1

– 프리미어 2006.09.04 객소리

<괴물>은 괴물이야

2006-09-04

글 _ 강한섭(서울예대 영화과 교수)

<괴물>이 난리다. 한국영화 흥행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있다. 그러자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누구는 관객이 선택한영화라 하고, 한편에선 관객을 독점한 영화라고 한다. <괴물>을 독과점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강한섭 교수의 주장을소개한다. 동의하는가? – 편집자

<괴물>이 전국 620개의 스크린에서 개봉되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1600여 개의 스크린이 있다지만 지방 소도시의군소 극장이나 영업이 사실상 중단된 극장을 빼면 1300여 개의 스크린이 정상적으로 영업 중이다. <괴물>은 전체스크린의 거의 45%, 즉 절반에 가까운 스크린을 점령한 것이다. 좌석수를 기준으로 따지면 68%의 독과점을 기록했다. 실로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시장 독과점이 자행된 것이다. 전체 좌석수의 68%, 거의 70%를 독과점 했다는 것은 하나의스캔들이다.70%의 독과점! 아직도 이 수치에 놀라지 않는 강심장들이 많다. 70%의 독과점을 한국 영화산업의 역동성으로 평가하는 참으로 대범한심성을 가진 영화 전문가들도 있고, 영화가 너무너무 재미있어 관객들이 열광하니 스크린 수를 많이 차지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 수치를 극장이 아니라 도서 유통 시장으로 옮겨놓아 보자.

도시의 중심가에 위치한 한 대형서점은 그 넓은 매장에 총 10만 권의 도서를 진열할 수 있는데 그중 7만 권을 모두 하나의 책‘괴물’로 채워 넣었다. 책의 저자는 소위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출판 전에 세계적으로 유수한 도서 전시회에 출품되어 해외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래서 책의 출간 이전부터 예약 주문이 밀려들었고 상업적 성공이 예견되었다. 그래서 종교 등등의모든 서가에 꽂혀 있던 수많은 고전과 전문서적들을 뽑아내고 그 빈자리를 베스트셀러 ‘괴물’로 대체했다. 신간들을 서점의 후미진어두운 구석에 구색용으로 배치했다. 다음 날 아침, 서점의 문이 열리고 책을 사랑하는 독서인들이 매장으로 들어갔다. 과연손님들의 반응이 ‘와! 신난다’였을까, 아니면 ‘악! 짜증나’였을까?

필자는 <괴물>을 재미있게 보거나 좋은 영화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드라마와 영상을 즐기지 못했다. 탐욕스러운 스크린 독과점에 더욱 공포감을 느꼈다.

대박의 제1원인은 스크린 독과점이다

<괴물>의 흥행 대박 원인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영화의 재미, 메시지, 기술적 완성도, 맨 파워 등등 영화 전문가들은물론이고 일반 관객들까지 저마다 흥행의 이유들을 제시하고 있다. 흥행 성공 정도가 아니라 <괴물>과 같이 1000만아니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려면 위에 열거한 여러 이유들이 중층적으로 작용하는 즉 자본-작품-시대상황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는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 영화가 문화면을 넘어 경제면을 거쳐 사회면으로 진출하려면 즉 사회적 현상이 되려면 시대정신과 만나야한다. 사람들이 현실에서 맹렬하게 요구하는 그러나 충족되지 않아 폭발 직전인 무의식 속에 응축된 에너지와 만나야 한다. 바로 이욕구불만의 에너지가 어두운 극장 속 영사기로부터 분출하는 일종의 빛의 제사를 통해 주술적으로 충족될 때 1000만 영화가 탄생할수 있다. <괴물>이 이런 집단적 무의식과 만나 역사에 기록될 영화가 된 점에 대해 봉준호 감독이나 최용배 제작자에게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괴물>은 대박영화가 갖추어야 할 몇 가지 필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최고의제작비, 상대적으로 새로운 기획과 완성도, 노무현 정권의 정치, 경제, 사회 실패가 야기한 국가권력의 공동화 현상, 그리고시민들의 불만과 불안감. 그러나 현 단계 한국영화 시장의 흥행 변수에게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변수는 배급력과 그것을 지지해주는자본의 힘이다.

즉 <괴물>이 성공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스크린 독과점이다. 필자는 <괴물>의흥행이 한국영화와 문화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영화시장의 확대와 산업의 발전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김기독 감독이 <괴물>의 흥행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세간에 화제가 되었는데, 필자는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안의 어린이는 신나지만, 내 속의 어른은 화가 나고 슬프다.”

스크린 독과점은 독약이다

스크린 독과점에 의존하여 대박을 터트리는 영화가 한국 영화시장의 확대와 산업의 발전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경제학원론의 목차라도 일별한 사람이라면 시장 독과점이 시장을 확대하기는커녕 중장기적으로는 시장을 축소시킨다는 사실을 증명이 필요 없는경제학 원리로 생각한다.

한국 영화산업의 통계도 이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즉 영화 독과점이 점차 강도를더해가면서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1999년 이후 오늘 이 시간까지 한국 영화산업에는 정부와 영상투자조합 그리고 투자 리스크를두려워하지 않는 다양한 민간자금들이 6000억 원 이상 투자되었지만, 한국 영화산업의 규모는 확대되지 못하고 정체상태를 보이거나심지어 축소되고 있다.

영화시장은 크게 극장의 박스오피스와 비디오의 도소매 시장으로 구성된다. 요즘과 같은 시장독과점을 통한 소위 한국영화 붐이 시작되기 전인 1990년대 중반의 한국 영화시장의 규모는 극장 박스오피스 2500억 원과비디오 시장 1조 2000억 원(도매 2000억 원 + 소매 1조 원)을 합해 약 1조 4500억 원이었다. 이러한 거대한시장이 붐의 기간 중 최대의 극장 관객을 기록한 2004년에는 오히려 1조 4000억 원으로 축소되었다. 극장관객이 5000만명에서 1억5000만 명으로 3배 증가하여 9000억 원의 연매상을 기록했지만 비디오-DVD 시장이 그만 5000억 원(도매2000억 원 + 소매 3000억 원)으로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전에도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자 증거를 제시하라느니,1990년대 중반의 비디오 시장은 이상과열로 정상적이지 않았느니, 비디오 시장의 규모를 측정할 때 소매시장은 제외해야 하느니말이 많았다. 통계 증거는 문화관광부의 웹 사이트에도 있고 비디오 사업자들의 단체인 한국영상협회의 자료에도 있다. 그리고한국영화 제작가협회와 재벌 영화메이저회사의 자체 자료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한 가지만 덧붙이면 위의 수치는필자가 여러 자료와 통계들을 종합하여 그 중간치를 잡은 것이다.

박스오피스보다 4배 이상 컸던 비디오 시장이절반으로 축소되는 상황에서 박스오피스만 2배 이상 커지면 전체 시장은 확대될까, 축소될까? 변수가 하나인 1차 함수는 보인다.그래서 사람들의 감정을 뜨겁게 만든다. 그러나 변수가 2개 이상인 다함수 방정식은 눈이 아니라 머리로 계산해야 한다. 골치아프다. 게다가 이 통계에 1995년과 2005년 사이 10년간의 물가상승률 41.4%를 추가한다면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영화산업은 붐이 아니라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소위 한국영화 붐 , 전성시대는 단순한 시지각의 착시현상일수도 있다. 그러면 왜 전체 영상시장의 크기는 축소되었을까? 바로 한국 영화산업을 선도하는 재벌 메이저 회사들의 어리석고근시안적인 무차별 시장 독과점 행위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선진국들이 그냥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치 때문에 시장 독과점을 규제,통제하고 이를 위반하는 기업에게는 엄한 법적 처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 독과점은 윤리적인 가치에도 반하지만그와 함께 시장의 발전에 ‘10의 이익’을 준다면 ‘90의 손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조금 난해한 경제학 이론을 통하지않고서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시장 독과점이 시장 축소로 이어진다는 판단을 쉽게 내릴 수 있다. 시장 독과점은 한마디로 말하면“내가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시장 진입을 막겠다”는 경쟁자 추방과 경쟁자 제한 행위다. 그래서 시장 독과점은 시장참여자의 수를 가능한 최소로 유지하면서 생산품의 질보다는 양, 소비자 복지보다는 소비자 최면에 더 시간과 돈을 투자하게 된다.영화시장 독과점 상황에서는 영화 작품의 창의성을 높이려는 노력보다는 그냥 규모를 확대하는 블록버스터 전략과 스크린 수를 확대하는독과점 전략, 그리고 소위 융단폭격이라고 불리는 대박 마케팅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영화의 창의성은 점점 떨어지게되고 결국 한국 영화시장은 성장하지 못하고 위축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독과점이 시장 축소로 이어지는 과정은이렇다. 그러나 한국 영화산업의 양상은 좀 다르다. 박스오피스는 엄청 커지고 여기에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최하 15%에서거의 50% 이상으로 성장했는데 왜 전체 영상시장의 크기는 쪼그라들었을까? 비디오 시장의 몰락 때문이다. 박스오피스보다 4배나컸던 비디오 시장이 절반으로 위축된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일반적으로 네티즌들의 불법 다운로드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외국은다 비디오 시장이 급격하게 증가했는데 우리나라만 축소되었다. 미국, 유럽, 일본이라고 인터넷망이 깔려 있지 않은 걸까? 또는외국사람들은 다 저작권법을 잘 지키는 훌륭한 민주시민일까? 아니다. 비디오 시장이 축소된 진짜 원인은 극장 티켓의 덤핑때문이다. 한동안 7000원의 입장권을 이동통신사와 신용카드사들이 멤버십 서비스란 명목으로 경쟁적으로 대납해주었다. 영화산업은판매요금과 시간이라는 두 개의 변수를 축으로 소위 배급 윈도우를 확대하여 매출의 극대화를 꾀하는 비즈니스 모델에 기초하고 있다.그런데 극장 가격 덤핑은 이 비즈니스 모델을 허물어버린 것이다. 비디오 시장의 위축은 당연하고 결국 전체 영상시장이 성장하지못한 것이다.

‘공룡의 긴 꼬리’ 법칙

1948년 미국 대법원은 ‘파라마운드 판결’이라고 알려진 아주 중요한 판결을 내린다. 즉 그때까지 메이저 할리우드 영화사들의 관행이었던제작-배급-상영의 3개 부문 수직통합 행위가 미국의 자유시장과 공정거래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결정이었다. 이 판결로 메이저영화사들은 제작-배급이나 상영 중의 하나만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메이저 영화사들은 제작-배급 -상영은물론 여기에 투자와 매니지먼트업까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말 지독한 독과점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한국 영화 문화의 다양성은 파괴되고 중장기적으로는 영화산업과 시장도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정말 참을 수 없을정도로 불공정하고 미련하다. 공멸의 시스템이 그 종말을 향해 한국 영화인과 관객을 태우고 질주하고 있다.

그리고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경제학 이론으로 보더라도 스크린 독과점은 산업을 위축시키는 아주 미련한 정책임이다시 증명되고 있다. 그 이론이 바로 ‘롱 테일 법칙(Rule of Long Tail)’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공룡의 긴꼬리 법칙”이다. 판매 상품과 판매량을 그래프로 그리면 공룡의 긴 꼬리 즉 롱 테일처럼 가파른 ‘L자 곡선’을 나타내게 된다.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게 긴 꼬리에 해당하는 매출이 몸통을 능가한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사실을 증거로온라인 서점으로 유명한 ‘아마존 닷컴’의 매출량이 동원된다. 즉 아마존사 수익의 절반 이상이 1년에 겨우 한두 권을 사는 80%고객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80% 고객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롱테일 법칙이 아날로그 경제 시대를 지배했던 소위 파레토 법칙을 대체할 이론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 파레토 법칙은‘생산량의 80%는 20%의 우수 사원이 만든다. 그러므로 20%의 우수사원에게는 연봉 인상과 승진을, 80% 보통 사원은 연봉삭감과 구조조정 리스트에 올린다’는 마치 동물의 왕국을 지배하는 것과 같은 아날로그 세계의 법칙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그리고 이 시대의 대표 상품인 문화상품의 시장에는 소수 20% 보다는 다수 80%가 더 중요하다.매출과 이익이 그 80%에서나오기 때문이다. 공룡의 긴 꼬리 법칙의 슬로건은 <괴물>과 같은 ‘싹쓸이-주자일소-끝내기 만루홈런’의 초대박‘소품종 대량판매(Selling More of Less)’가 아니라 ‘팀플레이-주자 더하기-내야안타’의 공동체주의적인‘다품종-소량판매(Selling Less of More)’다. <괴물>은 한국 영화산업이라는 생태계를 초토화하고 있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한국 영화진흥위원회의 정책은 한국영화의 산업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와 예술영화, 독립영화의 진흥을 통한 ‘문화다양성의 확대’라는2가지 정책 목표의 동시 추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정책 목표가 다 실패하고 있다. 시장은 확대되지 않고축소되면서 잔뜩 거품만 끼여 있으며, 문화 다양성을 위해 예술극장을 만들고 국제영화제를 지원하고 다양한 작가, 독립영화를제작지원하고 있지만 많은 독립영화인들이 숨도 쉴 수 없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도대체 선의로 시작하고 야심 차게 추진된영화진흥위원회의 정책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우선 한국영화 산업화 정책을 생각해보자. 산업화는 다른 말로 하면영화산업 메이저들의 ‘독과점 욕망 키우기 정책’이다. 산업화는 이렇게 선과 악의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조심해야 한다.산업화와 함께 독과점 금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효과적인 정책이 집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다음 영진위는‘영화 문화 다양성 확대’를 위해 독립, 예술영화 제작과 예술극장의 지원에 나섰다. 이 정책이 충분했는지는 또 다른 지면에서따져야 한다(나는 이 문제에 대해 ”예술영화와 냉면”이라는 제목의 글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제작 지원은 요즘과같이 거의 무한의 콘텐츠들이 시장에서 경쟁하는 시대에는 아주 불충분한 소극적 정책이다. 제작 지원해보아야 상영할 극장이 없다.따로 예술극장을 만들어보아야 몇 십억씩 마케팅비를 쓰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래서 이제 영화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우선 독과점 금지 조항을 영상진흥법에 추가하고 이것을 철저하게 시행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문화 다양성을 위해 현재 영화계의 많은 분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있는 다양한 영화 정책 대안들을 충분히 검토하고 빠른 시간 안에실시하여야 한다. 여러 아이디어 중에 1) 마이너쿼터제 2) 프린트 벌수 제한 3) 전용 상영관 설립 그리고 4) 스크린 수제한 5) 상영영화 쿼터제 등이 주로 제기되고 있다. 나는 마이너쿼터와 프린트 벌수 제한, 100개까지 구체적으로 제기되고 있는전용 상영관 설립은 모두 선의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제도들은 모두 현실적으로실효성도 없고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성이 크다. 상영영화 쿼터제도 그렇다. 가령 쿼터 70%로 한다면10개의 스크린을 가진 멀티플렉스에서는 항상 7개 이상의 영화를 상영해야 한다는 제도다. 이게 과연 제대로 지켜질까? 그리고다양성은 확보될지 몰라도 시장의 확대 발전에 도움이 될까? 그리고 극장이라는 사적 재산의 운영에 지나친 법률적 제한을 가해위헌의 소지도 보인다.

그래서 나는 ‘스크린 수(좌석수) 제한’이 가장 좋은 시장의 확대와 문화 다양성을 공히 살릴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몇 개의 스크린으로 제한할 것인가, 몇 %의 좌석수로 제한할 것인가도 별로 어려운일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결합 심사시 기준으로 삼고 있는 1) 하나의 사업자가 시장 점유율 50% 이상 2) 상위 3개업체가 점유율 합계70% 이상의 기준을 근거로 삼으면 된다. 그러면 대개 1600 곱하기 0.7해서 1020이니까 350개스크린 정도가 나올 것이다. 여기에 극장 산업의 특수성을 감안해 요즘과 같은 극장 성수기에는 20% 정도 더할 수 있다는예외조항을 추가하면 된다. 그래서 최고 스크린 수를 400개 정도로 제한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 좌석수도 고려해야 한다.

자본은 눈물을 믿지 않는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은 거대 군집을 이루며 몰려다니는 ‘쏠림 현상’을 보이고 있다. 금년만 하더라도 5.31지방선거의 한나라당 싹쓸이 현상, 6월 월드컵의 붉은 깃발 현상 그리고 <괴물>의 초대박 현상 등등. 쏠림 현상은 그자체로는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위적으로 그것도 시장의 자유경쟁 원칙을 위반하고 만들어진다면, 그런 영화가 좋지않은 가치를 선전하고 있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 게다가 이런 독과점 시장의 가장 무서운 점은 자본이 그 가공할 권력으로사회 여론도 대박 마인드로 길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을 영미권에서는 ‘Hit Mind Society’라고 하는데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하는 사람이 멋지고 세련되었으며 시대를 선도하는 사람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옳은(right)사람으로 평가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김기덕 감독같이 예술성에선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지만 국내 흥행에서는 실패하는 사람은 독선적이고재미없으며 결국 그릇된(wrong) 사람이라는 가치의 전도현상이 일반화될 수도 있다. 스크린 독과점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하나의블록버스터 영화가 모든 스크린을 완전 독점할 때까지 즉 시장을 붕괴시키고 문화 다양성을 질식사시킬 때까지 독과점 현상이 심해질것이다. 월드컵 중계 때 4개의 공중파 채널 중에 3개가 같은 게임을 중계하는 것을 방치한 나라가 한국이다. 독과점은 시장과다양성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결국 그 독과점을 행하는 당사자들도 불행하게 만든다. 자본은 오직 매출의 극대화를 통한 초과이윤의 획득 이외에는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고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의 리더들이 한국 영화산업을 위해 그리고무엇보다도 자신들의 궁극적인 행복을 위해 시장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시민들이 나설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문화산업에도 독과점 금지법을 만들도록 촛불을 들게 될 것이다.

원문 : http://www.premiere.co.kr/magazine/magazine_story_detail.asp?OidThread=26&page=1

 

 

– 프리미어 2006.09.04 김기덕은 왜 싸웠는가

김기덕은 왜 싸웠는가
2006-09-04

글_신기주 기자

김기덕 감독에게 2004년은 가장 행복한 해였다. 베를린과 베니스가 그를 환대했다. 미국 관객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그리고 봄>에 열광했다. 세상이 그에게 웃어주는 것 같았다. 그도 자주 웃었다. 하지만 그 뒤로 김기덕 감독은 줄곧세상한테 배신을 당했다. 그의 방식으로 헤쳐나가기엔 대한민국은 너무 척박했다. 끝내 김기덕 감독은 검은 선글라스를 쓴 채 토론프로그램에 등장해서 마지막 싸움을 벌였다.

김기덕 감독은 말했다. “가위 바위 보를 합시다. 지는 사람이 저기 가서 말을 걸고 오는 거야.” 저쪽 너머에는 김태희가 앉아있었다. 프랑스 드골 공항이었다.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파리를 거쳐가야 했다. 공항에서 몇 시간을기다려야 했다. 김기덕 감독은 몇몇 기자들과 함께 움직였다. 무료했다. 그런데 저쪽에서 김태희가 나타났다. 우연이었다. 심심하던차였다. 김기덕 감독은 기자들과 장난을 치자고 했다. 지는 사람이 가서 말을 걸고 오자는 내기였다. 소심한 기자들은 쭈뼛했다.그런데 김기덕 감독이 졌다.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김태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선 말했다. “저, 김기덕이란 사람입니다.영화감독입니다.” 무리로 돌아온 김기덕 감독은 말했다. “영화감독이라니까 알아보는 거 같긴 했는데 잘 모르겠네. 스페인에서 광고찍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네. 같은 비행기래.” 김기덕 감독은 웃었다. 모두가 웃었다. 그의 트렁크 안엔 어제 저녁베니스영화제 폐막식에서 탄 은사자상 트로피가 들어 있었다.

행복

김기덕 감독에겐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거 같았다. 2004년은 그에게 최고의 해였다.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에서은곰상을 수상했고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인 은사자상을 가져갔다. 베니스 관객들은 <빈집>에열광했다. 첫 상영이 끝난 다음 기립 박수를 치지 않은 사람은 한국에서 온 기자들뿐이었다. 김기덕 감독이 큰 상을 수상할 거란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김기덕 감독은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르기 전에 객석에 앉아 있는 임권택 감독에게 큰 인사를 했다. 주류영화계와는 담을 쌓은 것처럼 행동해온 김기덕 감독으로서는 의외의 모습이었다. 한국에서 온 기자들은 웅성거렸다. “이상하다.김기덕 감독답지 않다. 이제 세상과 손을 잡겠다는 이야기인가?” 안 그래도 <섬>이나 <나쁜 남자> 때와달리 그의 영화가 세상을 향해 손짓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었다.

그 무렵 그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그리고 봄>은 미국에서 10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모으고 있었다. 북미 최대 영화제인 토론토영화제의 홍보이사인 가브리엘겝은 그해 토론토영화제에 초청된 영화들 중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최고로 쳤다. 김기덕 감독에겐 정말좋은 일만 일어나고 있었다. 이제 한국에서도 정말 좋은 일만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김기덕 감독은돌아오는 길에 기자들과 장난을 쳤다.

실망

그때가 김기덕 감독이 소탈하게 웃을 수 있는거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빈집>은 베니스영화제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4년 10월 15일 한국에서개봉했다. <빈집>은 베를린과 베니스 영화제를 모두 석권한 감독의 영화였다. 지금은 <괴물>을 제작한영화사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청어람은 당시만 해도 중견 배급사였다. 청어람은 <빈집>을 1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개봉시켰다. 스크린을 벌리면 관객이 들 것도 같았다.

김기덕 감독은 주연배우 이승연과 개봉 첫날 상영관을 돌며 무대 인사를했다. <빈집>으로 그는 관객을 만나고 싶어했다. 하지만 개봉 첫날 객석은 절반도 안 차 있었다. 그나마도 김기덕감독을 반기는 눈치도 아니었다. 김기덕 감독이 이승연을 캐스팅한 건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고도의 전술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그무렵 이승연은 위안부 뮤직 비디오 파문에 휩싸여 연예인 생명이 위태로웠다. 사실 이승연보다 먼저 캐스팅 물망에 올랐던 건이미연이었다. 하지만 이미연의 소속사인 싸이더스HQ는 노출 때문에 마다했다. 사실 이승연 역시 처음엔 출연을 거절했다. 이승연은전략이 아니라 막다른 선택이었다. 하지만 사실과 상관 없이 여론이 김기덕 감독을 심판했다. 베니스에서 김기덕 감독과 이승연은여유로웠다. 하지만 한국에선 상황이 달랐다. 이승연은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했다. 김기덕 감독은 <빈집>이 처참하게외면 받는 걸 지켜봐야 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100개 스크린에서 고작 2주 동안 상영한 끝에 9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빈집>의 강영구 PD는 말한다. “<사마리아> 때도 그랬다. 그 무렵 배급사 쇼이스트는 100개쯤 펼치면설마 20만 명 안 들겠냐고 그랬다. 그런데 정말 안 들었다. <빈집>때도 우리는 설마했다. 상처를 받을 수밖에없었다. 관객들에게 상처를 받았다. 배급사를 중심으로 한 한국영화 시스템에 대해서도 상처를 받았다.” 김기덕 감독쪽 입장에서보면 배급사들은 영화를 가져다가 성의 없이 풀어버렸다. 별반 고민 없이 100개 스크린을 벌렸다가 안 되면 순식간에 내려버려서남는 건 넝마가 된 영화뿐이었다. 강영구 PD는 말한다. “김기덕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 배급하겠다는 곳은 많다. 돈을 크게 안들여도 어디 가서 회사의 필모그래피는 되니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김기덕 감독 영화를 배급한 영화사라고 하면 알아주니까.”<빈집>은 결국 텅 빈 집이 됐다. 김기덕 감독은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다.

배신

세상은 김기덕 감독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2004년 말 김기덕 감독은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접한다. 강영구PD는 말한다. “일산에 있는 김기덕 필름으로 연락이 왔다. <빈집>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선정될 거라는소식이었다. 그런 줄 알고 있었다. 마침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미국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었다.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어차피 김기덕 감독은 해외에서 제작비를 끌어와야 하는 처지였다. 그때까진 유럽이나 일본 제작사에서 도움을받았다. 혹시나 미국과도 인연이 닿지 않을까 싶었다.” 김기덕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름이었다. 하지만 제작비를 확보하는 게 늘어려웠다.

제작비를 벌어들이려면 국내 시장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그러나 국내 시장 환경은 너무 척박했다. 시장에 맞춰진영화가 아니면 한국 관객들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1000만 관객이라는 숫자는 그런 천편일률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그 안에서빈틈을 찾는다는 건 어려웠다. 그래서 아카데미 영화상이라는 건 또 다른 기회일지도 몰랐다. 베니스나 베를린 영화제는 예술영화상이다. 아카데미라면 다르다. 그런데 얼마 뒤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다른 소식이 전해져 왔다. 강영구 PD는 말한다.“그러니까 결과가 다르다는 내용이었다. <빈집> 대신 <태극기 휘날리며>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로추천됐다는 얘기였다.” 아카데미가 상업적인 영화상인 탓에 <태극기 휘날리며>가 훨씬 더 수상 확률이 높다는설명이었다. 하지만 강영구 PD는 다르게 해석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미국 수출과 개봉을 준비 중이었다. 강제규감독도 미국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아카데미라는 날개를 달면 유리했다. <빈집>은 이미 상업적으로 거덜난 상태였다.<태극기 휘날리며>에 힘을 실어주자는 얘기였다. 김기덕 감독은 강영구 PD에게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주류영화계가 나를 배척한다. 그들끼리 모든 걸 짜고 친다. 공고한 시스템이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나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이런 게어디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김기덕 감독은 한국영화계의 바깥에서 영화를 만들어왔다. 주류가 아니었다. 주류 영화계를둘러싼 벽은 점점 두터워지고 있었다. 상업적인, 전략적인 이유를 들어 팔이 안으로 굽고 있었다. <빈집>이 흥행에서침몰하는 걸 보며 김기덕 감독은 이미 충분히 상처를 입었다. 2004년만큼 김기덕 감독이 뉴스메이커였던 시기는 없었다. 하지만칸에서 수상한 다음 스타가 된 박찬욱 감독과 달리 김기덕 감독에게는 여전히 차가운 시선뿐이었다. 김기덕 감독은 스스로 스타가 된경우였다. 박찬욱이나 봉준호, 강제규 감독은 시스템이 낳은 스타였다. 그건 시스템과 그들이 어울린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김기덕감독은 아니었다. 그건 결국 타협이 불가능하단 얘기였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논쟁이 그런 경우였다.

좌절

김기덕 감독은 <활>을 만들면서 앞으로는 시스템과 타협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어차피 한국영화의 주류는 그의 명성을이용하려들 뿐 그를 품에 안으려고 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기 길을 걸어야 했다. <활>은 일본 자본을 벌어서만들어졌다. 어차피 한국의 어떤 영화사한테도 빚이 없었다. 어차피 김기덕 감독은 한국영화계의 변방에서 혼자 힘으로 영화를 만들고있다. 그런데 극장과 배급 시스템은 중심의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동안은 그들과 손을 잡아서 중심으로 들어가려고 했다.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김기덕 감독이 직접 극장에서 영화를 개봉하기로 했다. 사실 김기덕 감독이 <활>을 만들었을때도 극장 개봉을 주선하겠다는 배급사는 많았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은 그들이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봤다. 주류 영화에 길들여진관객들은 1000만 영화를 만들 수는 있을 지언정 20만 영화를 만들 수는 없었다. 김기덕 감독은 <활>을 들고 직접극장을 찾아다녔다. 다른 사람 손을 빌리느니 직접 극장을 만나서 진정 원하는 극장에만 영화를 풀겠다는 얘기였다.

김기덕감독은 비교적 소규모인 시너스 극장과 계약을 맺는다. 시너스 극장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자기 영화의 체인 안에서만 개봉하되분명하게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말은 지켜지지 못했다. 김기덕 감독은 대형 멀티플렉스들보다는 작은 극장들이 오히려영화를 보호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틀렸다. 하루도 제대로 틀지 않고 영화를 내려버렸다. 극장이 작은 탓에 홍보도 제대로되지 않았다. 김기덕 감독은 불가능한 한계를 넘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대세는 넘어가버린 상황이었다. <활>은 고작1100 명이 들었다.

진실

그무렵 김기덕 감독은 대형 투자사나 제작사, 배급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었다. CJ엔터테인먼트는 김기덕 감독에게 대형 영화의연출을 맡아볼 것을 권했다. 김기덕은 어떤 식으로든 상업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름이었다. CJ엔터테인먼트도 김기덕 감독과영화를 찍고 싶어했지만 그에게 전권을 주지는 않았다. 사실 수십억 원짜리 영화를 김기덕 감독 스타일대로만 찍을 수도 없는노릇이었다. 결국 그런 기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가 상업적으로 돌아선다면 화젯거리가 될 터였다. 김기덕 감독은 마다했다. 이미겪은 게 있었다. 시스템에선 개인은 이용만 당할 뿐이었다. 결국 한국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건 늘 주류와의 마찰을 뜻했다. 영화를만들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도, 영화를 개봉시키는 것도 늘 한계였다. 김기덕 영화의 내용부터가 그랬다. 강영구 PD는 말한다.“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제작하는 과정만큼은 너무나 행복하다. 하지만 문제는 늘 영화를 다 찍은 다음에 생긴다. 그걸 돌파하는 게가장 힘들다.”

<활>의 처참한 실패는 김기덕 감독에게는 큰 교훈을 줬다. 영화는 내 마음대로 만들 수있어도 주류가 점령한 지금의 시스템을 혼자 힘으로 돌파하는 건 불가능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관객들은 이미 멀리가버렸다. 1000만 관객이 나오긴 쉬워도 작은 영화의 흥행이 힘든 곳에서 영화를 하기란 버거웠다. 그렇다고 주류 영화권과 손을잡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김기덕이라는 브랜드를 언제든지 폐기처분할 사람이었다. 한국은 영화 하기엔 참 나쁜 곳이었다.

고집

<시간>을 시작하면서 김기덕 감독은 강영구 PD에게 말했다. “이 영화는 국내 개봉을 안 시킬 수도 있다.” 강영구 PD는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뜻대로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강영구 PD는 나름대로 여러 배급사들을만났다. <시간> 제작은 늘 그랬듯 순조로웠다. 5억 원 남짓한 예산으로 한 달 동안 준비하고 한 달 동안 촬영하고두 달 동안 후반작업을 해서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배급사들과의 이야기는 그렇게 순조롭지가 않았다. 배급사들은 영화를 본 다음결정하겠다거나, 1억 원 정도 판권료를 주고 배급 수수료까지 주면 대행을 해주겠다는 식이었다. 사실 1억 원이면 비디오나DVD만 팔아도 남는 돈이었다. 결국 극장 개봉은 대충 시키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그러다가 시장에선 나쁜 소문이 돌기시작했다. 김기덕 감독이 판권료를 두둑하게 챙기려고 배짱을 튕기고 있다는 소리였다. 역시나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개봉이문제였다.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김기덕 감독은 일산에 있는 김기덕 필름 사무실 구석에 앉아서 자주 생각에 잠기곤 했다. 김기덕필름이라곤 하지만 그곳은 다락방 정도였다. 김기덕 감독의 자리는 4층 건물 꼭대기 다락방에서도 구석 한편이었다. 그곳에서쭈그리고 앉아서 시나리오도 수정하고 이야기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심지어 편집까지 했다. 스태프들은 방바닥에 누워서 잠을 자고다시 일어나서 일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과연 개봉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카를로비 바리에<시간>이 개막작으로 선정됐을 때도 개봉은 불투명했다. 그는 더 이상 미련이 없었다. 김기덕 감독은 미련 때문에영화를 억지로 시장에 내놓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1000만 명

2000년 무렵 김기덕감독은 <섬>과 <나쁜 남자>를 만들면서 좌충우돌하고 있었다. 그는 베니스영화제에서는 축복을 받았지만한국에 돌아오면 그를 기다리는 건 싸늘한 평단의 시선이었다. 그런 가운데에서 <나쁜 남자>는 뜻밖에도 흥행에서성공한다. 그건 <나쁜 남자>를 마초적이고 에로틱한 마케팅으로 포장한 덕이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중에선 가장 많은70만 명을 모았다. 김기덕 감독과 오래 알고 지낸 저예산 영화 배급사 스폰지의 조성규 대표는 말한다. “<나쁜남자>의 흥행 성공이 대중에게 김기덕이라는 브랜드를 각인시킨 꼴이 됐다. 비호감 감독으로 말이다. 오히려 흥행이 안 됐으면좋았을 텐데 말이다. 차라리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흥행했다면 인식이 달라졌겠지.”

김기덕 감독은세상과 맞서는 과정에서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그는 마초 감독이었고 영화계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그를 터부시했다.김기덕 감독도 그걸 느끼고 있었다. 소통하려고 해도 다들 도망가버렸다. 무슨 일을 해도 관심을 끌려는 행동처럼 보였다. 그러더니김기덕 감독은 어느 순간부턴 장사 안 되는 예술영화 감독의 대명사처럼 돼버렸다. 언론들은 저예산 영화, 작은 영화의 흥행 실패에대한 천편일률적인 기사를 생산할 때면 늘 김기덕 감독을 팔았다. 김기덕 감독은 지긋지긋해 했다. 관객을 구걸하는 감독처럼비쳐졌기 때문이다. 무슨 앙탈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던 거다. 그런 김기덕 감독에 대한 인식은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질 않았다.1000만 명이 보는 영화라면 따라 봤고 다들 싫어하는 감독이라면 눈길도 주지 않았다. 김기덕 감독은 그런 편견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김기덕 감독은 강영구 PD와 술을 마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1000만 시대가 우리한테는 더 나쁜 환경을만들어줄 거다.” 그 말이 맞았다.

자존심

스폰지의 조성규 대표가 김기덕 감독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건 인연 때문이었다. 김기덕 감독은 평소에도 늘 스폰지에서 개봉하는 작은영화를 보러 다녔다. <메종 드 히미코> 같은 영화를 롱런시키는 스폰지의 경험은 시너스처럼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증거가 될 수도 있었다. 조성규 대표는 말한다. “감독님한테 그랬다. 많이 들게는 못해도 볼 사람은 보게만들 수 있다.” 조성규 대표는 헤이리에 있는 김기덕 감독의 집에 찾아가서 설득했다. 작지만 세련되게 개봉할 생각이었다. 사실김기덕 감독은 국내 시장을 돌파하기 위한 거의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 장동건이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나온 것도 그런맥락이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한국은 그에겐 고향이지만 무덤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씨네21>에서 <시간>을 보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조성규 대표는 말한다. “마음은 고마웠다.그런데 그게 김기덕 감독이 정작 원하던 게 아니었다. 또다시 저예산 영화의 상징처럼, 시장에서는 안 통하는 불구의 감독처럼그려지기 시작했던 거다. 그게 싫어서, 관객한테 구걸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 국내 개봉을 안 하겠다고 한 건데 결국 또그렇게 포장되고 있었다.” 관객 운동이 일어났다. <시간>을 보기 위한 모임이 결성됐다. 하지만 정작 영화 관계자들은씁쓸했다. 이미 한국 영화시장은 괴물처럼 커져버렸다. 1999년 <박하사탕>이 관객 운동을 끌어냈을 때만 해도 한국영화시장은 작고 야무졌다. 적은 관객들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관객 운동은 시장에 아무런 변화도 불러일으키지못하게 돼버렸다. 다시 보기 운동은 결국 시장에서 패배한 불쌍한 영화들에 대한 동정처럼 여겨질 뿐이었다. 조성규 대표는 말한다.“감독님의 마음을 돌리려면 그의 영화가 동정을 받고 있는 게 아니라 지금 고착화된 시스템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줘야 했다. 그건 패배주의나 동정주의를 벗어나 당당하게 관객과 만난다는 의미였다.”

싸움

김기덕 감독은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천편일률적이란 거였다. 기자들은 늘 같은 것만 물었다.저예산 영화,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이런 말들이었다. 하지만 국내 개봉을 결심한 이상 영화를 알려야 하긴 했다. 조성규대표는 김기덕 감독에게 몇몇 매체와의 인터뷰를 제안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은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했다. 그냥 한 번에끝내버리겠다는 심사였다. <시간>의 기자 간담회는 평지풍파의 시작이었다. 언론은 김기덕 감독을 이용하려고 들었다.마침 <괴물>이 흥행하고 있었다. 다들 <괴물>이 만들어내는 이런 저런 현상들을 쫓느라 혈안이 돼 있었다.하지만 별다른 게 없었다. 결국 언론이 잡은 건 <괴물>이 너무 많은 스크린을 잡은 게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먼저이문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플라이 대디>가 <괴물>에 묻혀버리자 그는 “<괴물>이 너무 많은스크린을 잡은 거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은 당장 언론에게 좋은 구실을 제공했다. 그러자 이문식은 두문불출해버렸다. 김기덕감독에게도 역시 <괴물>에 관련된 질문이 들어왔다. 그러자 김기덕 감독은 예상했다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괴물>의 수준과 관객의 수준이 만난 결과다.” 기자들은 일제히 그 부분을 대서특필했다. 조성규 대표는 말한다.“그래서 일찍 기자 간담회를 끝내려고 했다. 그런데 끝이 나질 않았다.”

논란은 끝나지를 않았다. 그건 기자들 때문이었다.<괴물>은 여전히 가파르게 흥행하고 있었다. 기사 거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관객 스코어 중계방송은 식상했다. 배우들인터뷰, 관계자들 인터뷰도 다 했다. 이제 할말이 없었다. 김기덕 감독을 자꾸 물고 늘어졌다. 다시 김기덕 감독은 언론에 의해저예산 영화의 독립군이자 피해자이자 동정의 대상이자 독불장군으로 변해갔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김기덕 감독을인터뷰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은 거절했다. 사실 몇 달 전부턴 아예 핸드폰을 없애버린 터였다.

지난 8월 16일 아침 강영구 PD는 김기덕 감독한테서 메일을 한 통 받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뉴스에 내가 100분 토론에나간다는 얘기 들었지? 그냥 할말만 하고 올게.” 강영구 PD는 안 그래도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전화가 없는 그에게 연락할방도가 없었다. 김기덕 감독은 결국 손석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또 다른 프로그램인 에는 출연할작정이었다. 그런데 주제는 김기덕 감독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결국 <괴물>에 대한 김기덕 감독의 발언이그를 그 자리에까지 밀어올린 셈이었다. <괴물> 논란에 김기덕 감독마저 휩쓸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건표면적인 이유였다. 김기덕 감독을 토론 자리에 서게 만든 건 <빈집> 이후 김기덕 감독이 통과해온 시간들 때문이었다.<빈집> 이후 김기덕 감독은 부단하게도 한국을 통과하고자 애써왔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이 그럴수록 상황은 꼬여갔다.주류는 그를 배척했고 관객은 그를 외면했다. 그럴 거면 상업영화를 만들라는 핀잔을 들었다. <괴물>에 대한 김기덕감독의 발언은 그 나름의 사연이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는 토론 자리에까지 나서게 됐다. 강영구 PD는 말한다. “아마 이게마지막일 거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버텼는데 한 줌의 관객이라도 설득을 못 시키면,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면 결국 다시는관객이나 언론과 소통하려고 하지 않을 거다.”

100분 토론은 지루한 공방을 되풀이했을 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김기덕감독은 선글라스를 쓴 채 자신의 영화가 시장에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을 설파했다. 함께 토론에 나왔던 강한섭 교수는말한다. “그는 우리를 가지고 논 거다. 사실 김기덕 감독도 꽤 전략적인 사람이다. 그는 지금 한국영화의 환경이 치유불능이며소수의 권력자들만 득세하고 변방에선 늘 주류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권력 구조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그 나름대로세상에 저항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그는 토론에서도 선글라스를 끼고 나오고 블랙유머로 일관했던 셈이다.” 김기덕 감독은 다시한번 <시간>을 홍보하기 위해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 아니냐는 독설에 시달렸다.

김기덕 필름 사무실에<월스트리트 저널> 아시아판의 한 기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기자는 말했다. “김기덕 감독이 특별히 영향을 받은 감독이누구인지 알고 싶다. 그런 내용의 기사를 쓰고 싶다.” 전화를 받은 강영구 PD는 대답했다. “ 지금 그런 한가로운 이야기를 할때가 아닙니다. 지금 인터넷이 난리가 났어요. <괴물>과 관련한 감독님의 발언 때문이죠. 모르셨어요?” 기자는 전혀모르고 있었다. 그는 김기덕 감독이 그런 논란에 휩싸여 있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정말 김기덕 감독이 무슨 영화를좋아하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사실 <월스트리트 저널>의 궁금증이 정상이었다. 한 감독의 작품 세계를 궁금해하는 게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김기덕의 영화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게 왜곡돼 있다.

지난 21일 김기덕감독은 <연합뉴스>에 보낸 이메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관객들의 질타를 계기로 차분히 제 영화와 영화 작업을돌아보니 참으로 한심하고 이기적인 영화를 만들었고, 한국 사회의 어둡고 추악한 모습을 과장하여 관객에게 강요하고 관객들로 하여금불쾌감을 갖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기형적으로 돌출해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임을 알았습니다. 제영화는 어느 관객의 말처럼 모두 쓰레기입니다. <시간>도 수입사가 계약을 해지해준다면 개봉을 멈추고 싶습니다.늦었지만 이제라도 한국 관객의 진심을 깨닫고 조용히 한국영화계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김기덕 감독은반짝 관심과 언론의 장난질 속에서 오랜 동안 싸워왔다. 그러나 이젠 그 싸움마저도 끝나가고 있다.

원문 : http://www.premiere.co.kr/magazine/magazine_star_detail.asp?OidThread=128&Page=1

김기덕과 「괴물」 혹은 배급시스템이라는 ‘괴물’, 혹은 자본주의라는 ‘괴물’”에 대한 3개의 댓글

  1. 괴물 정말 독과점 맞나? 그렇게 단순한 거가? 정말 모르겠어서 하는 소리다.
    그리고 나, 강한섭이 100분 토론 나온 거 보고 넘어가는 줄 알았다. 그 사람 평론가 맞고 가르치는 사람 맞나? 논리도 없고 토론의 자세도 없더만.

    • 글쎄, 그 프로를 제대로 안 봐서 뭐라 할 수가 없네.
      그래도 배급시스템이 소수영화에 대한 안전장치는 없이 소위 대박영화를 향해 레밍즈처럼 달려들고 있다는 건 사실 아니냐?
      우리나라는 아직도 거의 모든 분야에서 대박에 열광하고 있잖냐…
      딴 데서도 한 말이지만 그 100분 토론에 참석한 패널들 중 중요한 당사자는 없었다.
      우리나라 현재 메이저 배급사 중 한 군데서라도 나왔어야 했다.
      걔네들 갈구면서 얘기가 진행됐어야지.
      김기덕 감독은 현재 배급시스템이 자신의 영화를 어떻게 이 땅에서 내쫓고 있는지에 대해 증언에 가까운 발언이 필요했고, 토론의 논점은 영화 괴물이 괴물이냐가 아니라 배급시스템이 괴물이냐로 맞춰졌어야 했다.
      내가 알기로는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내용이었어.
      다들 초점을 맞추지 못한 mbc에 플레이 말린 게 아닐까…

  2. 트랙백 연습용 포스트

     

     

     

    그런데 생각해 보니 트랙백 기능을 악용할 경우

     

    또 다른 인터넷 공해가 될 것 같다..

     

     

    Carlito군이 화를 낼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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