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이 당신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다시 재회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아, 그리고…….]

남자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이걸 당신에게 전해달라고 했어요.]

그가 내민 것은 작은 유리병이었다. 찰랑거리며 흔들리는 액체가 담겨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으나 무엇인지 모를 수는 없었다.

단희는 손을 내밀어 유리병을 받았다. 조심스럽게 밀봉된 필름을 벗겨냈다. 뚜껑을 열려고 했지만 손이 떨려서 유리병은 자꾸 손에서 미끄러졌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남자는 단희에게서 유리병을 건네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넘겨주는 순간 단희가 심하게 손을 떨었고 병은 그만 바닥에 떨어져 엎질러지고 말았다.

단희는 그 즉시 방을 채우는 어떤 입자들을 느꼈다. 입자들은 일렁였고 공기 중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단희는 희미하게 감지되는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양말이 사막 구석에서 모자를 쓰고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제 단희에게도 입자들은 의미라기보다는 냄새에 가까워졌다. 둔감해진 후각기관은 한때 조안이 했던 것처럼, 공기 중에서 어떤 기억과 감정을 읽었다. 입자들이 단희를 그 시절로 데려갔다. 의미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것들에게로. 추상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너무 구체적이어서, 언어로 옮길 수 없는 장면으로. 조안이 말했던 그 공간들로.

<숨그림자>,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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